Last Samurai의 추억

조회 수 1405 추천 수 97 2006.02.12 15:20:21
Last Samurai의 추억



이번 주 내내 제 책상 앞 창문으로 보이는 저희 집 뒷마당에 눈송이가 흐드러지게 내렸습니다. 꽃피는 춘삼월이 다가오는 데 그것도 년 중 따뜻해 눈 구경을 할 수 없는 LA에서 말입니다. 사실은 뒷마당에 있는 흰 벚꽃 잎이 바람에 날려 정말 눈 부시게 눈처럼 내린 것입니다.  

눈이 부시다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화창한 햇빛이 꽃잎 하나하나에 비쳐 반사되기 때문입니다. 날씨가 흐릴 때 내리는 눈과는 또 다른 운치입니다. 나아가 꽃잎이 바람에 휘날리므로 각도가 수시로 바뀌어 그 빛도 순간순간 달라집니다. 정말 수천 마리의 작은 나비가 나는 듯이 화려하기 짝이 없습니다.  

벚꽃이 약 2주간 만개해 있다가 이번 일주일 간은 그렇게 다 떨어졌습니다. 대신에 잔디밭에 눈처럼 덮였지만 별로 아름답지 못합니다. 햇빛에 반사되지도 않고, 초록 잔디에 묻혀 먼지도 앉고, 무엇보다 탈수가 되면서 그 새하얗던 잎새가 누렇게 변색이 되어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꽃잎 속에도 있던 작은 생명력이 완전히 소진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톰 크루즈와 일본 배우 켄 와타나베가 주연한 영화 Last Samurai가 생각납니다. 밀려오는 현대화의 대세 앞에 결국은 무릎 꿇게 된 마지막 무사 켄이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할 때에 벚꽃 잎이 눈보라처럼 휘날리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둡니다. 스스로 가장 완벽한(perfect) 죽음이라고 기뻐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그를 대적했던 같은 일본 군인들 모두 그 죽음 앞에 무릎 꿇고 절을 합니다. 그야말로 벚꽃 잎으로 무덤을 뒤덮었습니다.  

알다시피 벚꽃은 일본 사람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자기들 나라 꽃이기도 하지만 만개했을 때의 화사함은 아마 세상 어느 꽃도 따라 갈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아가 일년 중에 2주 정도 잠시 화사한 자태를 보여 주고는 또 잠시 만에 사라지기에 더 좋아할지 모릅니다. 그들의 기질이 짧고 화끈하게 살다가 할복자살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화끈하게 죽는 것을 좋아하니까 말입니다. 벚꽃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그들의 기질이 그래서 벚꽃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둘 다이겠지요.

벚꽃은 나무에 붙여 있을 때도 화려하지만 마지막 사무라이가 죽어가는 마당에도 완벽하다고 감탄했듯이 바람에 날려 눈송이처럼 휘날릴 때가 정말로 더 화려한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죽음이 가장 화려해 가장 사랑 받는 꽃이 된 셈입니다.

인생도 벚꽃 같이 산다면 완벽한 삶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려하게 세상의 주목을 끌어라는 뜻이 아닙니다. 흔히 말하듯이 짧고 굵게 살아라는 뜻도 아닙니다. 죽음이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까지 열정을 바치고, 아니 더 바쳐서, 아니 몽땅 다 바쳐서 자기가 이루고자 하는 일을 이루는 인생 말입니다.

마치 그 사무라이가 밀려오는 대세를 거역하고 자기만의 고집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기꺼이 자기 방식대로만 죽어 갔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죽은 이후에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자가 되었듯이 말입니다.

누군가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가 비로소 살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습니다. 생명 보험에 들고 재산 정리를 하고 유서를 미리 마련해 두거나 아니면 자살을 준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다른 말로 자기 전 생명을 걸고서라도 진정으로 하고 싶고, 꼭 해야만 하고, 또 자기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만큼 행복하고 화려한 인생이 따로 있을까요?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1:11,12)

2/12/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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