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과 가장 크게 다른 점

조회 수 3241 추천 수 328 2005.05.11 05:33:30
지금부터 15년 전 미국으로 이민 온 첫해 미국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에 우리 아이들에게 “미국과 한국의 가장 크게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미국 화장실은 어디 가나 깨끗하고 휴지가 있어 마음 놓고 갈 수 있다는 아이들다운 대답을 했다. 당시는 서울 강남의 국민학교 변소마저 불결하여 수업 중에 화장실 가고싶어도 억지로 참는다는 불평이 있었던 때였다. 미국은 아무리 깊은 산속 캠프장의 변소도 비록 수세식은 아니지만 깨끗한 좌변기에 두루마리 화장지가 항상 준비되어 있다.

작년에 서울 강남에서 조기 유학 온 국민학교 5학년생에게 똑 같은 질문을 했더니 공교롭게도 이번에는 “미국 화장실은 더러워서 못 가겠다”는 정반대의 답을 들었다. 미국도 시골 중소 도시에 비해 뉴욕, LA 같은 대도시의 공중 화장실은 지저분하다. 거기다 최근 한국의 눈부신 발전으로 특별히 월드컵을 치룬 이후로는 화장실의 시설과 청결도에선 아마 세계 최고인 것 같고 한미간의 사정도 그 바람에 완전 역전되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로부터 제가 동일한 질문을 받으면 거의 자동적으로 대답하는 한마디가 있는데 경제, 군사, 국토, 인구, 자원의 비교가 아니다. “미국은 ‘네가티브 시스템(Negative-부정적 System)’ 사회이고 한국은 정반대로 ‘파지티브 시스템(Positive-긍정적 System)’사회다”라는 것이다. 언뜻 들으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설명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오래 전 한국에서 무역업에 종사했을 때에 매년 관세청에선 수출입이 가능한 상품 리스트를 기별공고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던 것을 기억한다. 한국이 외화 부족으로 쩔쩔맸던 60년대-70년대 초반까지는 수입 가능한 품목만 발표하고(Positive System) 나머지는 모두 수입금지 품목으로 묶었다. 70년대 중반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되어 어느 정도 외환보유고가 쌓여 나라 살림에 여유가 생기자 그 반대로 수입할 수 없는 품목만 발표하고(Negative System) 나머지는 모두 수입할 수 있는 제도로 바꾸었다.

따라서 미국이 네가티브 시스템이라는 것은 “명시적으로 금지된 것 외에는 다 할 수 있는 사회”이고, 한국은 파지티브 시스템이라 “명시적으로 허락한 것 외에는 반드시 별도 허가를 얻어야만 할 수 있는 사회”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한국은 이제 달러 보유고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게 되어 수출입은 대폭자유화 되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관습, 제도, 법령 전반에 걸쳐 그 내용과 적용이 일일이 허락을 받아야만 되는 체제라는 뜻이다.  

설명의 편의를 위해 예를 하나 들면 미국에선 유턴(U-turn) 금지 표시가 따로 없으면 다 유턴이 된다. 또 별도 좌회전 화살표 신호가 없는 교차로는 전부 비보호 좌회전이다. 반면 한국은 유턴이나 비보호 좌회전이 되는 곳만 별도의 표시를 해 놓고 나머지는 다 안 된다. (물론 한국의 복잡한 교통사정으로 대도시에선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한가한 곳에서도 그렇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미국은 모든 법령과 그 운용에 국민들의 일상 활동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한 줄여 자유롭도록 집행되며 공무원들도 법에 위배되지 않는 한 모든 민원 사항을 당연히 허용되도록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한다

오죽하면 이민 와서 사는 교포들마저 이 나라에 세금 내는 것이 아깝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할 정도이겠는가? 이곳의 법과 제도에 익숙하지 못한 이민자의 눈에도 그만큼 미국정부가 국민을 위해 성의껏 봉사하려는 자세를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관공서, 경찰서 같은 곳에 출입하려면 아무 잘못도 없는데 괜히 주눅이 든다. 미국 와서도 그런 습성이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긴 하지만 일반인은 몰라도 고압적인 자세의 공무원은 아직 보지 못했다. 고속도로에서 타이어 펑크가 나도 순찰차가 다가와 다른 일 제쳐두고 도와줄 정도다.  

더 확실한 예로는 미국에선 이민국에 내는 서류 말고는 제록스 복사된 서류를 거의 모든 관공서나 일반회사에서 그대로 인정해준다. 별도 원본을 첨부해야 하거나 원본대조필 도장이 필요 없다. 서로 믿고 거짓말 하지 않는 사회라서 그렇다. 법으로 제한하지 않는 제도는 그만큼 사람을 믿고 전적 재량권을 준다는 뜻이다. 복사한 것도 공문서로 인정해주는 것은 속이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되었을 때만 가능하지 않겠는가?

어떤 사회든 그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개별 구성원의 권익과 자유를 최대한 증진시키는 것이다. 말하자면 파지티브에서 네가티브 시스템으로 이행되어 가되 제한과 금지 규정이 적으면 적어질수록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된다. 선진국을 지향하는 이유가 물자가 풍부 해지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자를 쓰고 누리는 면에서도 더 자유로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여러 면에서 물자도 부족하고 여유가 없어서 온갖 제한이 많다고 변명하고 치울 문제가 아니다.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규정이 적을수록 그 규정의 집행은 더 엄격해져야 한다. 네가티브 시스템은 쉽게 말해 “다른 것은 다 해도 좋은데 이것만은 죽어도 하면 안 돼!”라는 뜻이다. 대통령이 부탁해도 아니 대통령 당신이 범해도 절대 안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상적인 사회가 될수록 법 집행은 더 엄격해지고 그에 따른 개인의 책임도 비례해서 커져야 된다. 카피 서류도 인정해 주는 것이 신용사회이기도 하지만 공문서를 위조하면 그 뒤에 따르는 벌이 굉장히 엄중하기 때문이다. 또 거짓말을 한번이라도 했다가 들통나면 사회 활동을 계속해 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우며 망가진 신용을 회복하는데 거의 평생이 걸린다는 것을 철저하게 실감하기 때문에 아예 거짓말 할 생각도 못하는 것이다.

비보호 좌회전이란 별도 금지 표시가 없으면 좌회전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사고가 났을 때 문자 그대로 좌회전의 자유를 누린 자는 보호 받지 못하고 전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 자유도 반드시 앞에서 오는 직진하는 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자유로울 뿐이다. 미국의 개인 가정집 앞마당은 담이 없이 이웃에게 훤히 열린 잔디 마당으로 되어 있다. 어떤 집이 앞마당을 제때 손질하지 못해 민들레나 잡초가 군데군데 파 먹기 시작하면 당장 그 동네에선 왕따감이다. 잡초 씨가 바람에 날려 이웃집 잔디까지 망치기 때문인데 심하면 벌금도 물어야 한다.

‘내 마당을 내가 제때에 손질하든 말든 내 마음이다’는 법은 미국에선 절대 없다. 오직 남의 자유를 제한 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기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뿐이다. 세계에서 인권과 자유가 가장 많이 보장된 나라도 자유보다는 책임이 훨씬 먼저라는 뜻이다. 어느 사회건 그 구성원 전부가 책임 없는 자유란 아예 꿈도 못 꾸어야 한껏 보장해 준 그 자유가 자유로서 구실을 마음껏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진국을 눈 앞에 둔(?) 한국 사회가 혹시 자유만 있고 책임은 완전 실종되지는 않았는지? 단적인 예로 노동 쟁의만 하면 왜 마치 점령군처럼 공장 집기 시설을 제 마음대로 부수고 공장을 올스톱 시키는가? 내 것도 이웃을 생각해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을 때 진정한 자유가 형성되는데도 공장 집기 시설은 그 소유권이 노동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주에게 있다. 남의 물건을 제 멋대로 할 자유는 결코 없다. 사원주주제로 비록 종업원도 주식을 소유한 주주가 될 수 있지만 여전히 주주 전체의 것이지 쟁의에 참여한 노동자만의 물건이 아니다. 미국 같으면 사유재산훼손 및 강탈죄 하나만으로도 무조건 전부 철장행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는 전부 체포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게 한다.  

한국의 화장실이 아주 깨끗해진 것 분명히 세계의 자랑거리다. 그러나, 세금을 내어도 아깝지 않은 나라, 경찰을 보아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않지 않는 나라, 모든 제도와 법령에서 파지티브에서 네가티브로 전향이 되는 나라, 관공서에 가면 공무원이 서로 민원인을 도와주려는 나라, 비보호 좌회전하면서 어떻게 하든 상대 직진보다 앞질러 먼저 가려고 서두르기보다 자신이 비보호 하에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나라, 내 앞마당의 내 소유를 즐기는 권리를 이웃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당연하고도 기꺼이 포기하는 나라, 스트라이크를 해도 공장 시설은 손도 대지 않고 하는 나라, 등등이 여전히 실현이 요원한 한갓 꿈이라면 대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선진국이 되는 유일한 길은 책임이 자유를 앞서는 것뿐이다. 책임보다 자유가 앞서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앞뒤 질서가 뒤바뀌어 정신 없는 나라가 될 뿐이다. 바로 이런 것들이 국민소득 2만 불보다 먼저 달성해야 할 전국가적인 목표가 아닐는지?

4/1/2005

김인기

2005.08.01 02:11:44
*.75.241.100

한국이 가야할 길에 대한 제 생각과 가장 정확하게 일치하는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근데....전 왜 미국에서 교통경찰만 보면 가슴이 덜컬덜컹 하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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