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분규의 근본적 해결책

조회 수 2879 추천 수 369 2005.05.11 05:35:05
최근 한국에서 미국으로 들어 오다 공항에서 갖고 있던 현찰을 전부 뺏기는 경우가 가끔 있다. 액수가 유달리 많아서가 아니다. 외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여행객이 현금(달러 외의 외국화폐, T/C-Traveler Check, 개인 혹은 은행발행 수표도 포함)을 만불 이상 소지한 사람은 반드시 세관에 신고해야 한다. 그런데도 혹시 빼앗길까 지레 겁을 먹고 신고 하지 않은 바람에 거꾸로 돈도 빼앗기고 몇 시간씩 별도로 문초 당하는 곤욕을 치른다. 물론 나중에 변호사를 통해 근거를 대어 신청하면 상당한 벌금을 물고 나머지는 돌려 받을 수 있다.

미국은 수백-수천만 불의 현찰을 갖고 들어와도 신고만 하면 하등 문제가 없다. 돈이 외국에서 들어오면 당연히 미국 내의 어딘가에는 소비될 것이므로 아무 해될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뭉치 돈이 마약, 밀수, 테러 같은 범죄 조직의 돈이면 미국 정부가 오히려 나쁜 일을 조장하게 되는 것 아닐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 모든 금융거래가 완전실명제로 이뤄져 현찰의 흐름이 한 눈에 드러나 절대 속일 수 없기 때문이다.

슈퍼에 가서 일용품이나 먹을 것을 사는 정도의 푼돈을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이야 도저히 확인할 길이 없지만 수천불 단위로 올라가는 상거래에선 당국의 추적을 피할 길이 없다. 아마 추적 없이 현찰로 살 수 있는 최대 한도는 기껏 피아노나 고급 전자제품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무료든 유료든 하자보장(warranty) 계약을 맺으려면 소비자가 자신의 신상명세를 밝힐 수 밖에 없다.

추적을 피하려면 흔히 동양 사람들이 잘 그러듯이 침대 밑에 돈을 깔아 숨겨놓고는 수시로 수십 불씩 쪼개어 평생 쓰는 길 밖에 없다. 물론 범죄 집단끼리는 현찰로 대형 거래를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차피 그 번 돈을 쓰려면 들키던지 소액을 나눠 쓰던지 해야지 다른 방법은 일절 없다.  

미국은 한국처럼 주민등록 체계가 전국적으로 일원화 되어 있지 않고 자치 정부인 50개 주가 모인 연방 체계라 이원화 되어 있다. 주거지, 성별, 나이 등을 증명하는 Photo I.D.(사진 부착 신분증)는 각주의 운전면허증이 대신한다. 그러나 납세, 보험, 의료, 금융, 교육, 년금 등 제반 경제 및 사회적 활동은 각 개인에게 고유로 부여된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를 통해 전국적인 관리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중요거래의 계약시에는 반드시 이 번호가 병기되어야 하고 특별히 모든 금융활동은 이 번호 없이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요컨대 이 번호 하나로 개인의 모든 경제 활동이 일목요연하게 다 드러나므로 부정 거래나 탈세가 원천적으로 방지된다. 쉬운 예로 은행에 현금으로 하루 만불 이상 입금하면 바로 국세청(IRS)에 자동 신고가 된다. 그런데 괜히 잔머리 굴려서 여러 은행에 9900불씩 나눠 자주 입금하면 오히려 수상한 자금이라고 판단되어 그 때야말로 경찰과 국세청의 본격적 조사를 받는다.

금융실명제는 단순히 위명(僞名)과 차명(借名) 계좌만 막는 것이 아니라 검은 돈의 부정적 흐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데 더 큰 목적이 있다. 예컨대 은행에 하루 수천만 불을 수표로 입출금하는 것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IRS에 따로 보고하지도 않는다. 어차피 모든 거래의 기록이 은행의 컴퓨터에 남고 또 수표는 하나씩 마이크로 필름에 찍혀 사진으로 다 보관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개인도 일정요건만 갖추면 은행을 자유롭게 설립이 가능하며 은행들끼리 완전 자유경쟁체제이기 때문에 부도나 망하는 은행도 많다. 그래서 어지간한 은행은 부도날 경우 예금주를  보호해주기 위해 FDIC(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번역하자면 ‘연방준비금보험공사’)에 보험을 들었다는 표지를 큼직하게 부쳐둔다. 그러나 무한정 보호해주는 것이 아니라 십만 불이 한도다. 그 이상 예금해도 부도나면 십만 불 이상의 원금은 돌려 받을 길이 전혀 없으므로 구태여 현금을 은행에 많이 예치해 둘 필요가 없다. 또 이자 금리도 너무 낮아(높아야 보통예금 년 1.5%, CD 년4-5% 가량) 현금으로 은행에 묵혀 봐야 별다른 실익(實益)이 없다.

한 마디로 말해 모든 상거래를 수표(개인 당좌 수표 포함)로 하도록 유도하고 제도화 되어  있어 투명한 거래를 할 수 밖에 없다. 투명하다는 것이 거래의 내용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출처와 근거가 분명하지 않은 돈은 은행의 개인 금고나 침대 밑 밖에 보관할 데가 없다는 뜻이다. 말하자면 잔돈으로 쪼개 쓰는 것까지는 통제하지 않겠지만 실제 정상적인 경제 활동은 근거가 분명한 돈으로만 돌아가게 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경제는 정부의 간섭 없이 경제인이 자기 실력대로 무한 경쟁하는 체제다. 경쟁에 아무 제약이 없으면 올바른 실력뿐 아니라 밀수, 범죄, 부패, 사기 같은 부정한 실력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완전 실명제 체제하에선 소매 영업을 하면서 현찰로 받은 것을 세금 보고에 누락시키는 것 말고는 부정한 상거래가 형성될래야 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법인 체제하의 회사 사장이 뒷구멍으로 돈을 빼돌릴 수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은 경영자가 사업이 부진하면 언제든지 가장 손 쉬운 경비 절감의 수단으로 수시로 해고를 단행한다. 해고 당한 근로자도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아무도  반발하지 않고 또 못한다. 노동자 눈에도 사업이 잘 안 되는 것이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법으로 규정된 최저 임금, 차별 대우, 근무 환경 등의 요건을 철저하게 지키므로 그런 부분에서 쟁의할 여지도 없다. 경영자 측에선 해고를 일개월 전에만 통보하면 된다. 노동자로선 언제 있을지 모르는 인원 감축에 포함되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고 관리자의 눈 밖에 벗어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공사간(公私間)에 구별도 엄격해 근무 중 개인전화 사용 같은 것은 꿈도 못 꾼다. 그런 작은 잘못도 해고의 우선 순위에 올라갈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쟁의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오직 하나다. 회사의 이익에 비해 노동자에게 돌아 오는 몫이 적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돈 문제다. 만약 노동자 생각에도 경쟁회사에 비교해 회사의 이익규모에 맞는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자꾸 분규를 일으켜 영업에 지장을 줄 필요가 없다. 결과적으로 자기에게 돌아 오는 몫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사가 분명히 실적이 나빠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반(半) 억지성(?) 분규를 하는 이유는 사장이 돈을 뒤로 빼돌려 개인적인 치부를 했다는 불신 때문이다. 사장이 개인적으로 희생해가며 직원들과 라면 끓여 먹고 밤낮 없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고도 분규 한다면 그것은 노동자의 잘못이던지 무엇인가 숨겨진 다른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노사분규의 근본적 해결책은 무엇이겠는가? 노동법을 정밀하게 바꾸고 노동자의 권익을 더 많이 보장해 주어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어 완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오히려 완전 실명제로 돈의 흐름이 정당해지면 노사간 갈등의 근원 자체가 해소되지 않겠는가? 사장의 벌거벗은 모습을 노동자가 언제든 확인할 수 있는데 또 다시 더 벗어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거기다 깨끗한 돈으로 올바른 실력을 가지고 무한 경쟁하여 살아 남는 기업은 자동적으로 일류가 되어 노동자에게 돌아갈 과실(果實)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정직과 신용과 품질 외에 사장과 노동자가 동시에 승리(win-win)할 길은 따로 없다. 또 회사가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한 마음이 되어 진짜 실력을 쌓으면 야바위는 절대 발 붙일 곳이 없어진다.

4/19/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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