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왕인 미국

조회 수 3269 추천 수 320 2005.05.11 05:36:34
한 일년쯤 전 텍사스 한 아파트에서 불이나 소방관들이 일반인들의 접근금지를 표시하는 노랑 테이프를 처 놓고 진화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청년이 그 테이프를 뛰어넘고 아파트로 달려 들어가 개 한 마리를 구출해 나왔다.(참고로 미국의 아파트는 대개 목조로 2-3층짜리 구조다.) 그 청년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자기 애완견을 데리러 들어간 아파트 주민이었다.

우리 같으면 박수갈채를 받을 영웅인데 그 자리에서 바로 체포되었다. 아무리 자기 집에 자기 개를 구하러 갔더라도 소방관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겼기 때문이다. 또 자칫 개인이 들어가 위험한 경우를 당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런 경우도 반드시 소방관에게 알려 전문가가 처리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근 10년이 넘는 오래 전 어떤 종교의 메카로 불리는 미국 중서부 한 도시의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종교가 생활의 전부이며 신자가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다시피 하는지라 그 학교에선 오랫동안 졸업식에서 자기들 종교의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전통으로 내려왔다. 그 종교를 믿지 않는 어떤 학생이 법원에 종교의 자유를 위배한다고 소송을 내어 졸업식에 찬송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판결을 받았고 학교 당국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도 일단의 학생들이 수 십년 전통을 중지할 수 없다고 졸업식 무대에 올라와 순서에도 없는 찬송을 했다.

당연히 지역 사회에 문제가 되었고 언론에서도 크게 다루었다. 경찰의 조사 결과 교장을 비롯한 학교 측에선 사전에 그런 움직임을 알고 학생들에게 노래를 하지 말도록 설득도 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저지한 것이 인정되어 아무런 벌칙을 가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법원의 명령을 어긴 학생들은 전부 어떤 형태로든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미국은 이런 경범의 경우, 특별히 청소년 초범일 때는 그 위반 사항의 경중(輕重)에 따라 양로원, 도서관 같은 지역사회 봉사(Community Service) 등을  일정 시간 반드시 부과시킨다.

둘 째 아이가 중학교 다닐 때 뻔질나게 우리 집으로 놀러 오던 미국 친구가 뜸한 것 같아 무슨 일이 있는가 아이에게 물었더니 “자기 아버지로부터 2주간 Grounded(외출 금지) 당했어요”라는 답을 들었다. 사연인즉, 한 콜라 회사가 판촉 활동으로 뚜껑 속에 한국식으로 이야기하면 “또 뽑기” 스티커를 붙여 놓고 “또(Buy one get one free)”가 걸리면 한 병을 공짜로 더 주는 행사를 했다. 한창 때의 장난기와 호기심이 발동해 그 넓은 미국의 슈퍼 마켓에서 점원 몰래 살짝 열어 보고는 아니면 다시 닫아 놓고 걸리면 카운터에 들고 나가 한 병 값으로 두병 사먹는 재미를 보다가 들킨 것이다.

사춘기 때의 학생이 장난으로 그랬다고 사과하면 그냥 넘어 가줄 법도 한데 미국은 이런 경우 점포 매니저가 담당 학교와 부모와 심하면 경찰에 반드시 연락한다. 물건을 훔치지는 않고 속였기 때문에 부모가 책임지는 것으로 끝났지만 돈을 내지 않고 들고 나가려 했다간 “Shop lifting(가게 물건 슬쩍 훔치기)”으로 경찰이 와서 바로 수갑까지 채운다. 놀라운 것은 이런 때 부모들이 “아이들이 장난으로 그런 것 가지고 한번 봐주면 되지 부끄럽게 학교에 연락하고 바쁜 사람 괜히 오라 가라 하느냐”고 절대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백배 사죄하고 아이를 데리고 가서 집에서도 엄하게 벌을 주었고 아이는 두 말 않고 그 벌을 감수한 것이다.

미국은 법을 위반한 사실이 발각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관련 규정에 따라 반드시 형벌을 가하고 사건을 종결 짓는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절대 없다. 작년 미국 NBA 프로 농구 사상 최악으로 관중과 선수가 뒤엉켜 치고 받았던 사건도 나중에 비데오로 일일이 한 사람씩 추적해서  선수 관중 할 것 없이 폭력의 세기에 따라 다 벌을 주었다. 이곳에선 어떤 잘못을 범했는데 혹시 경찰이 알고도 관련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 경찰이 벌을 받는다.  

그래서 이들은 어려서부터 가정, 학교, 지역 사회, 법 집행 기관 등이 협력하여 준법 정신이 완전히 몸에 배도록 훈련 시킨다. 따라서 이들에게 법을 어긴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공권력을 집행(Law Enforcement) 하는 공무원에게 반항 하다간 그 자리에서 경찰 곤봉으로 두들겨 맞아도 공무집행방해 죄가 적용 되므로 아무 보상을 받지 못한다. 노랑 경찰 테이프는 문자 그대로 “접근 금지, 접근하면 발포한다”는 의미와 같다.

공권력이란 그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위한 최소한이자 최후의 보호막이다. 어떤 나라건 국민을 외부의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군대와 내부의 무질서와 불법으로부터 보호하는 공권력이 있게 마련이다. 이중 하나라도 그 권위가 무너지면 그 구성원으로선 더 이상 기댈 언덕이 없으므로 그 사회에서 살아가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

오래 전 대머리 배우 율 부린너가 주연한 “황야의 7인”이라는 서부 영화가 있었다. 멕시코의 어떤 농촌 마을이 추수 때만 되면 무법자들이 나타나 그 해 수확한 것을 다 약탈해 가버리니 도저히 살아 갈 재간이 없었다. 궁리 끝에 그 동네 사람들 전부 가진 돈을 다 끌어 모아 총잡이를 고용해 함께 총 들고 싸워서 그 해 수확을 지켜냈다. 공권력이 무너지면 그 사회에서 탈출해 더 안전한 사회로 옮기든지, 총 들고 자기 방위(Self-defense)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공권력의 권위를 살리라고 해서 무조건 힘으로 강제 집행을 하라는 뜻이 아니다. 틀린 것은 틀렸다 하고 맞는 것은 맞다고만 하면 된다. 그래서 틀린 것은 그만큼 제재와 벌을 주고, 맞으면 그만큼 격려와 포상을 하면 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것만큼만 하면 된다. 다른 말로 하면 정상은 정상이라고 하고 비정상은 비정상이라고 다들 인정하고 그에 따라 대처하라는 것이다. 비정상을 권력과 금력과 지연과 학연과 인맥에 따라 정상으로 바꾸든지 그 반대의 경우로 가면 아무리 경찰이 페퍼포그와 물대포로 무장해도 그 권위가 결코 서지 않는다.        

최근 한국에 유사한 사건이 두 건 발생했다. 현장 실습간 중학생들이 집단으로 연쇄점에서 물건 값을 계산하지 않고 나온 것과, 또 K대 학생들이 학교에서 정해 놓은 행사를 방해 한 것이다. 전자는 법을 위반한 것이 분명하지만 후자는 단순 학내 행사니까 외부에서 간섭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 한국의 법규를 잘 몰라 언급할 입장은 못 된다. 그러나 참고로 미국의 경우는 어지간한 크기의 대학은 대학경찰서(University Police)가 규모는 작아도 일반 경찰서처럼 청사, 순찰차, 무기 다 갖추고 있고, 이번 K대 사태 같이 학교 공식 행사를 방해 하면 그 원인은 따지지 않고(경찰이 따질 문제가 아님) 행사를 방해한 죄만으로 바로 수갑 채워 체포하고 해당 되는 벌을 준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정서가 다르고 자라는 학생들에게 개선의 기회를 주어야지 일벌백계로 다스려선 안 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부모일수록 매를 자주 드는 법이다. 매를 들되 부모의 진심어린 눈물과 정성과 사랑이 함께 묻혀 나오는 매를 든다. 그리고 부모부터 법을 어기지 않는 본을 보여가며 매를 드는 법이다. 한국은 그 동안 너무 매를 들지 않았다. 아니 정당한 매도 돈으로 다 유야무야 되어 버리니 매를 드는 사람만 바보가 된 것이다. 아니면 어른들부터 매를 들기가 아이들 보기 너무 부끄러웠든지…

“아이들이 조금 그런 것 가지고 좀 봐주면 어때”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애들이 조금 그런 것을 봐주기 시작하면 우리말 속담 그대로 바늘 도둑을 소 도둑으로 키우는 결과가 된다.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과 그른 것은 그르다고 분명히 가르치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똑 같은 하나다. 조선 블로그 한은경님의 어떤 글에서처럼 악을 악이라고 하지 않는 사회는 결국 악만 성행할 뿐이다.  

5/6/2005

김인기

2005.07.29 21:23:45
*.231.106.2

여기에도 제 생각을 달아보겠습니다.
K대 사태의 개략은 학교측의 공식지정행사를 학생들이 방해한 것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학교측이 이회장에게 수여하기로 한 명예박사학위에 대해 학생들이 '노동탄압자로서의 이회장에게 학교의 명예박사학위를 주는 것은 근로에 관련된 정의에 어긋나므로' 용납할 수 없다라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지나온 과거를 보자면 6.29항쟁과 같은, 당시 정부하에서는 '불법일 수 밖에 없는' 집회와 시위를 통해 한국은 이만큼의 민주화를 이루어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민주주의가 옳다거나, 혹은 공산주의가 더 맞다거나..이런 생각이 없습니다. 어떠한 ism도 결국 하나님의 아래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인간의 ism일 수 밖에 없기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아닌 대다수 유럽국가들은 노동자들의 노동권 탄압에 대한 항거를 본질적으로 허용해 왔습니다. 경찰국가인 미국에서는 용납이 안되는 경우가 많겠지만, 이와 같이 옳은가 그른가의 기준이란 인간들의 기준하에선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k대 생들이 이회장의 학위수여를 방해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직도 그런 학생들이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취업고시원화되어가는 한국대학에 아직은 정의를 귀히 여기는 자들(설령 그들의 정의가 한시적이고 한계가 분명하다하더라도)이 있다는것에 오히려 저는 감사했습니다. 다만 그들의 시야가 하나님과 목음이 아닌 인간의 정의의 기준에 맞추어져있음이 아쉬울 뿐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젊은 피들의 열정이 언젠가 복음을 만나고 복음의 정의를 만나는 날에 불피워져 한알의 밀알로 심겨질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은 정의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의 정의에 대한 관심을 하나님앞으로 돌려주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amazing_grace

2021.02.18 18:41:42
*.141.153.202

16년후에 다는 답글이 되겠는데 미국에도 말씀하신 탄압에 대한 항거의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civil disobedience'라는 개념인데 특정 법률이나 정부의 명령이 부당하다고 느꼈을때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의도적으로 위반하여 항의하는 것입니다. 60-70년대 때 흑인 인권운동당시 법을 어기고 버스앞자리에 앉았던 로사 파크의 경우나 (그당시 흑인과 유색인종은 버스 뒤쪽에만 앉아야 했습니다) Sit-in 이라고 레스토랑 같은데서 조용히 앉아서 항의하던 운동도 있었지요.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목사님이 말씀하신대로 공권력의 위엄이 대단한 나라가 미국이고 또 인종에 따라 공권력이 대응하는 방법이 다른 곳이 또 미국입니다. 흑인들의 Black Lives Matter 운동중의 폭동과 같은 폭력적인 행위에 대응하는 것과 얼마전 국회의사당을 폭력으로 점령한 백인위주의 트럼트 지지자들의 폭력행위에 대응하는 것에 많은 차이를 보여서 인종차별이 뿌리깊이 자리잡은 나라임을 다시한번 상기시켜 주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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