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식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은?

조회 수 1729 추천 수 43 2011.03.26 13:40:36
성찬식에 참여하는 마음가짐은?


[질문]


오늘 성찬식이 있었습니다. 매번 성찬식 때 마다 갈등하게 되는 것은 마음속에 분노의 쓴 뿌리와 정결하지 못한 삶에 대한 흔적들이 있는데도 연약한 의지를 갖고 성찬식에 참예한다는 것입니다. 마침 오늘 예상치 못하게 길이 심하게 밀려서 평소에는 없던 상황인데 예배 시간에 조금 늦게 되었습니다. 떡이 나눠진 직후였기에 하나님께서 참여치 말라는 뜻인 것 같아 포도즙에도 참여치 않았습니다. 성찬식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지 교인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하여 외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찬식에 참여하는 기본적 인 마음가짐은 알고 있지만 이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한 가지 더 여쭙고 싶은 것은 고린도후서 13:5 말씀의 뜻을 정확히 가르쳐주십시오.  

[답변]

성찬의 한 가지 목적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11:23-29)

우선 밝혀둘 것은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에 세례교인 이상이라고 제한을 두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교회 앞에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이 예식에 참여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직 세례 받지는 않았지만 온전한 믿음을 가진 자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중직을 맡아도 온전한 믿음이 없는 자도 많습니다. 교회로선 각자의 내면까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까 현실적 대안으로 세례의식을 거친 자로 그 자격을 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것 외의 어떤 기준이라도 적용시키면 안 됩니다. 옷차림이나 태도 같은 외모와 그 사람의 믿음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이단이 아닌 이상 다른 교단, 교파의 교인이 마침 예배에 참석했다 해도 얼마든지 성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질문자님이 갈등하는 것처럼 현재 죄를 짓고 있거나 영적으로 평강을 유지하지 못해 선뜻 내키지 않는다면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본인이 도무지 참여할 기분이 나지 않아서 빠진다면 누구라도 말릴 수는 없는 문제이지만 교회가 참여해선 안 된다고 못 박는 것은 본문을 너무 문자적으로 확대 해석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잘 살피면 죄 지은 자는 참여하지 말라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생긴다고 합니다. 성찬 전에 죄 지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성찬에 합당치 않게 참여하는 것이 죄가 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 둘은 엄연한 차이가 있는데도 제대로 가르쳐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럼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것이 무슨 뜻인지 잘 살펴야 합니다. 주님은 성찬에 오직 한 가지 목적만 부여했는데 그 목적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먹고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만 했습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주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은, 기념하는 것과 사실상 같은 맥락이긴 하지만, 바울이 덧붙인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기념하지 않고 먹고 마시는 것이 합당치 않는 참여이며, 대신에 기념만 하면 누구나 합당하게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기념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고인을 기념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생전의 업적을 기리고, 또 받은 은혜가 있다면 감사하고, 나아가 그분의 유지(遺志)를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공사역을 회상하고, 십자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이 맡기신 소명을 준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 값을 감당하셨고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마땅히 그분의 당부대로 따라야 합니다.

바울은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5)고 고백했습니다. 승천 직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아 세례를 주고 당신께서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했습니다.(마28:19,20) 그래서 바울은 주님 죽으심을 주님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 주님을 올바르게 기념하는 것이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아니 저부터도 솔직히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속의 쓴 뿌리들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습니다. 정결하지 못한 삶의 흔적들을 몸에 잔뜩 지닌 채 예배에 참석하고, 아니 뻔뻔하게 설교합니다. 땅 끝까지 복음 들고 가라는 명령은 언제 제대로 수행할지, 아니 시작할지 모를 정도입니다. 만약 질문자님과 같은 갈등을 안고 있는 자가 성찬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모든 성찬식장은 텅텅 빈자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성찬은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기념하는 의식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시고 지금도 있는 모습 그대로 당신의 보좌 앞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게 하신 그 은혜 말입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스스로 씻을 길이 도무지 없기에 그분은 인간으로 오셔야 했고 또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했습니다. 그분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지 의인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비유컨대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온갖 잘못을 저지르는 아들이라도 부모의 추모식에는 참여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현재 모습이 부끄러워서 참여하지 않겠다는 당사자의 입장을 인간적 도리라는 관점에선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 참여하여서 추모식을 계기로 개과천선하겠다고 회개한 후에 새사람으로 살면 됩니다. 추모식에도 나타나지 않는 것과, 와서 용서를 빌며 새롭게 출발하는 것 둘 중에 과연 어떤 모습이 더 부모의 유지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입니까? 일반인의 추모에도 이럴진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을 기념하려면 더더욱 그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1:8-10)

성찬 예식의 의미

성찬식이 신자가 위선자인지 아닌지 판정받는 의식이 아닙니다. 대신에 주님의 십자가에 다시 연합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이미 받아들여졌음을 다시 확인하고 정말로 다시 자라기 시작하겠다고 결단하는 출발선일 뿐입니다. 주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더러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 신자는 매일 새벽마다 사실은 개인적인 성찬을 거행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거행하는 성찬식에선 모두가 단지 용서 받은 죄인에 불과함을 다 함께 공개적으로 분명하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일의 시작이자 핵심입니다.

그 고백 위에 진정으로 주님을 닮아가기를 소원하며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겠다는 헌신을 보태어야 합니다. 성찬이 세상에서 죄악과 사단과 사망에 넉넉히 승리했다는 승전 보고를 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물론 그럴 수만 있다면 더 없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인의 추도식에서도 고인에 비하면 우리는 여전히 많이 모자란다거나, 그 유지를 아직도 온전히 계승하지 못했다는 고백이 항상 따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주님의 일에서  완전한 승리자라고 자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 까요? 어쩌면 그렇게 자부하는 것만큼 교만한 죄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2-14)

성찬을 시작할 때는 쓴 뿌리와 죄의 흔적들을 잔뜩 안고 들어왔어도, 성찬 중에 혹은 마친 후에는 이와 같은 고백과 헌신만 나오면 됩니다. 또 주님은 그렇게 하라고 성찬 예식을 제정한 것입니다. 기독교 최초의 성찬식을, 그것도 주님과 얼굴을 맞대고 한 제자들이 몇 시간도 안 되어 저지른 행적을 생각해 보십시오. 성찬 의식은 승리한 의인을 축하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있는 모든 신자에게 주님이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을 다시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특정한 죄에 습관적으로 빠져 즐기고 있고 또 미처 회개도 하지 않았기에 성찬에서 경건한 척 하려니 도무지 위선자처럼 여겨진다면 참석 안 해도 됩니다. 그래도 정말로 회개할 소원이 있다면 성찬에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참여하면 됩니다. 대신에 자신의 죄 때문에 지금 성찬에 부어질 주님의 은혜를 못 받겠다든지, 받아선 안 된다든지, 나는 아예 받을 자격조차 없다는 인식에 사로잡힌다면 오히려 사단에게 넘어간 것입니다.

문제는 회개하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지 나는 성찬을 받을 자격조차 없는 죄인이라는 타령만 하고 있다면 주님의 십자가 공로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으심을 전하기는커녕 온전히 기념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찬식에 위선자 같아서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말해 위선자이기에 오히려 더 뻔뻔하게(?) 그러나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을 주님은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10:19,20)      

믿음에 있는지 어떻게 확증하는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13:5)

추가로 이 구절의 뜻도 물어 오셨는데 성찬에 참여할 자격 여부와 연관된 질문 같습니다. 혹시라도 질문자님의 의도가 성찬에 합당하게 참석하기 위해서 스스로 자신의 믿음이 있는지 시험하고 확증하고 싶다는 것은 아닙니까?    

먼저 이 구절 안에 정확한 답변이 이미 들어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지 않습니까? 내 안에 분명히 그리스도가 계신다는 확신이 선다면 믿음에 있다는 확증입니다.

만약 그런 확신이 없다면 아직은 그 은혜 가운데 들어와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저주 받아서 지옥 형벌로 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의 구원을 아직 받지 못했다는 것뿐입니다. 주님은 무한한 은혜와 긍휼로 그가 온전하고도 철저한 회심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또 때가 되면 당신만의 방식으로 중생의 은혜로 덧입혀 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있다고 해서 어떤 초자연적 신령한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뒤 문맥과 신약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의미와 견주어 봐야 합니다. 먼저 분문의 조금 더 구체적인 의미는 바로 앞 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13:4) 신자는  비록 현실에선 약하나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분 품 안에 있기에 그 인생이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나아가 천국과 부활의 영광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바울처럼 이런 확신 가운데 있다면 그것이 바로 주님이 자기 안에 있는 것입니다. 당장 죄를 안 짓고 거룩해진 것과는 다른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봉사, 선교 등에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는지 여부도 문제는 아닙니다. 정말 주님이 나 대신 죽었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나를 끊어낼 것은 이 세상에는 단 하나도 없다는 확신이 있는지 여부만 문제될 뿐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무조건 내 편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비록 이해할 수 없는 환난이라도, 그분께서 합력해서 선으로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0,31)

본문에 바로 이어서 바울이 "우리가 버리운 자 되지 아니한 것을 너희가 알기를 내가 바라고"(6절)라고 당부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하나님께 버리운 자가 아니라는 확신만 있다면 바로 그 속에 그리스도가 있고 또 믿음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이것 외에 어떤 외형적, 도덕적, 종교적, 영적인 믿음의 표시는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진짜 자신의 주인인지는 가만히 살펴보면 스스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신자는 주님을 모시고서 그분 뜻대로 살기를 열망하기에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기에 그분이 와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분께서 우리를 악에서 건지시고 또 선을 행하게 인도하십니다. 비록 그 헌신과 실천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만, 주님 뜻대로 살고 싶다는 소망만 있어도 이미 그 안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자라면 아예 그런 소망 자체도 가질 수 없습니다. 또 그런 소망이 있는 자라면 비록 현재 마음의 쓴 뿌리와 죄의 흔적을 지녔어도 그 죄를 자백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은혜를 바라며 성찬에는 얼마든지 참여해도 되는 것입니다.

3/25/2011  

김순희

2011.03.27 11:17:23
*.174.66.90

주님의 은혜는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런 저런 추한 모습 그대로 가지고 나아와 고백하면 다시 받아주시는 그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요. 제 추악한 모습 만큼 십자가가 필요한 저임을..

mskong

2011.03.27 12:50:02
*.61.23.211

제 안에 예수님이 계심을 믿음의 눈으로 보고 또 믿기에 뻔뻔하지만 성찬식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감사와 부끄럼을 함께 가지고 갑니다.

김승겸

2011.11.08 13:30:58
*.227.210.21

감사합니다. 질문을 주신분도... 답변을 해주신 목사님도... 그리고 인도하시는 주님께 특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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