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신자의 복장은 어때야 하나요?
[질문]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 딤전 2:9-10
사람에겐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어 하는 욕구와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간의 본능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소년, 청년부 예배 때 복장에 대해서 잠깐씩 얘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맨살이 보이는 너무 짧은 옷 혹은 파인 옷들은 주위의 사람들을 범죄케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특별히 교회에서의 예배시나 성도들 간에 교제 시에 형제들이 이런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한 형제가 오더니 자기는 자매들이 아무리 짧은 옷을 입어도 (그냥 순수하게) 예쁘다는 생각만 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내가 틀렸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복장들은 형제들을 유혹에 빠지게(생각 혹은 행동으로)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자매들의 입장에서는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클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고 또한 대부분의 여자들에게는 노출욕망이 기본적으로 있다는 것을 책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청소년, 청년사역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항상 문제가 되어왔던 부분인데요. 특별히 여학생들에게 옷차림 때문에 남자들에게 시험거리를 주지 말라고 부탁(?) 까지도 하지만 대부분은 수긍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리가 짧아서 길어 보이려고 하는 건데 왜 남의 콤플렉스를 건드리느냐 혹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데 왜 옷차림가지고 그러느냐 그렇게 여자들의 노출된 부분을 의도적으로 보려고 하는 남자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 등등 수많은 반론들에 그저 할 말을 잃어버리게 되는데요.. 물론 더워서 반바지를 입는다든지 집에서 편하게 입는다든지 특별한날 가끔씩 입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이 얼마나 성적인 유혹에 쉽게 빠져들 수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교회에서 기본적인 예절교육 또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청소년, 혹은 청년들을 가르칠 때에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가장 성경적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될지 조언을 얻고 싶습니다.
질문을 요약하자면
1. 디모데전서 2장 9-10절 말씀을 현대에 적용하자면 어떠한 정도의 기준이 좋을지?
2. 성도들의 교회에서와 사회(직장, 학교, 사교모임 등등)에서의 복장은 어떠해야
좋을지 조언을 얻고 싶습니다.
[답변]
이 질문의 정답은 우리 모두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정상에서 오버(Over)만 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애매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기준은 사실상 정할 수 없습니다. 동시대의 사회적인 관습에 부합하며 모든 성도가, 담임 목사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갖게 되는 공통분모적인 인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딱 부러지게 수치나 규정으로 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예컨대 교회가 치마길이는 무릎 위 얼마 이상 올라가면 안 되고, 머리는 귀를 덮어서 몇 센티 이상 내려오면 안 된다는 것 같은 규정을 정해 가르치고 시행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또 그렇게 해본들 실제 효과는 나지 않으며 오히려 역작용만 나타날 것입니다.
간단하게 이렇게 접근해 봅시다. 마약에 찌들어 갱 단원이었든 사람이 어느 날 영적으로 너무나 피폐해져 평소 차림으로 교회에 왔다고 가정해 봅시다. 아래위로 몸에 딱 붙는 가죽 옷에다 머리는 Pony Tail에 수건으로 감쌌고 치렁치렁한 귀걸이를 한 데다 가죽 부츠를 신고 말입니다. 교회에 나온 것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것 아닙니까?
또 은혜가 완전히 들어가기 전까지는, 혹은 들어간 후에도 상당기간은 그런 차림으로 나올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회는 끝까지 용납해 주고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본인이 점차 자기 차림이 교회에는, 또 신자로서 너무 과하다는 인식이 들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나 온 몸에 이미 새겨놓은 문신만은 본인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이미 교회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의 교인이 한 사람 생긴 셈입니다. 그더러 갱을 갱생시키는 전문 교회로 옮기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같은 공동체의 소속원이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더욱 따뜻한 사랑으로 섬기고 배려해 주어야만 합니다.
그러면 본인 스스로도 언젠가는 문신이 가능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옷차림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 문신을 없애려 하겠지만 그 비용과 고통이 만만찮아 본인이 엄두가 안날 수 있고 교회도 선뜻 권할 수 없습니다. 어떤 면에선 극적으로 중생한 산 증인의 표식으로서 계속 문신을 갖고 있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대신에 기존 교인들이 스스로 오버하지 않는 복장을 함으로써 자기 교회의 특색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식입니다. 또 그러려면 목회자부터, 가능하면 직분을 맡은 자들까지 솔선수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규정을 정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의 관습에서 특별히 잘못된 것만 아니면 될 것입니다. 한국 같으면 문신이나, 남자가 귀걸이 한다든지 하는 정도만 무언으로 동의하여 금하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강조하지만 좀 튀는 복장으로 교회에 온다고 해서 직접 복장을 두고 이렇게 저렇게 고치라고 언급해선 안 됩니다. 본인에게 구원의 확신이 생기게 한 연후에 신자의 신앙 생활에 관한 기본적 교육부터 시켜야 합니다. 그러는 중에 근검 절제의 미덕이 소중함을 깨닫게 해야 합니다. 신체와 정신과 영혼을 하나님 자녀답게 거룩하고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가르쳐야 합니다.
따라서 그런 교육 과정 중에 예컨대 여자가 배꼽을 내놓거나 치마가 너무 짧으면 자궁의 건강에 좋지 않다고 검증된 과학 지식을 동원해서 깨닫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 전에 하나님의 창조의 뜻 가운데 결혼하여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신자의 임무이자 축복임을 강조해 두어야 합니다. 그럼 자연히 과도한 미니스커트와 배꼽티에 관한 교육이 되지 않습니까?
여자에게는 누구나 정도만 다르지 기본적으로 노출증이 있다는 말은 맞습니다. 교인이 되었다고 당장에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꼭 나쁘다고 볼 이유도 없습니다. 어떤 면에선 하나님이 남녀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인생에서 여자는 사랑을, 남자는 일을 소중히 여기도록 말입니다. 또 여자 스스로 아름답게 꾸미게 함으로써 남녀가 자연스레 사랑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질문자님이 이미 반발을 겪었듯이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남자들에게 시험들 기회를 제공한다고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조금 현명치 못한 것 같습니다. 대신에 성경에서 규정하는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서 정확하고도 심도 있게 가르치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란 큰 맥락 안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불신자의 사랑과 다르게 조명해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랑을 주제로 가르치는 가운데 잠시 복장이나 노출증에 관한 언급이 있는 것은 좋습니다. 반면에 복장만 따로 떼어서 규정을 만들거나 교육시킬 필요는 없고 또 그래선 안 됩니다. 교회가 율법을 규정해서 시행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강요하거나, 교회가 가르칠 본질이 아니라는 비난과 반발만 살 것입니다. 특별히 청소년 사역을 하신다면 건전한 이성교제, 순결교육, 결혼, 취미, 술 담배 같은 예민한 문제 등을 주제로 얼마든지 교육시킬 수 있고 또 많은 호응을 얻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런 문제는 직접 공식적으로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가르치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신자의 믿음과 영성이 더욱 깊어지게 하여 말씀과 기도에 열심을 내도록 해야 합니다. 신자로서 몸과 마음과 영혼의 올바른 자세를 가르쳐 경건을 스스로 연습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깨닫게 되어 교회뿐 아니라 사회에서의 복장 문제도 해결될 것입니다.
오히려 정작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은 도에 지나친 복장을 하더라도 교회 전체가 용납하고 기다려 주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동일한 관점에서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다시 또 복장을 두고 특별하게 언급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문제에서 서로 관용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면 됩니다. 복음의 내용이 사실상 그것 아닙니까?
무엇보다도 목사가 시범을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복장의 문제는 오히려 아주 사소한 것입니다. 세상 어떤 것으로도 즉, 재물 권력 명예 지성 어떤 것으로도 목사가 편애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교인과 외부인을 절대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교인이 확실히 보아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외모 중에 복장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합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딤전2:9,10)
이 말씀의 뜻도 자세히 살펴보면 복장에 관한 규정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여자 신자라면 선행과 염치와 정절을 가장 먼저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신자로서의 꼭 행해야 할 본질적인 문제에 치중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생의 목적이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재물, 건강, 미모, 가문, 교양 등으로 자신을 치장하여 사람 앞에 자랑하는 것에만 삶의 의미를 두었다면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면 금은보화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기에 옷차림도 자연히 검소하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앞 절에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8절)고 했습니다. “각처에서”라고 했으므로 남자 신자가 일상적으로 반드시 지켜야 할 신앙 규범입니다. 마찬가지로 여자 성도도 “각처에서” 인생의 목적이 바뀐 모습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복장에 관해선 “아담한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오버하지 말고 근검절약한 모습을 드러내어 검소하고도 깨끗하며 정결하게 입으라는 것입니다.
서울 강남의 큰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이 잘 어울리지 못합니다. 다들 너무 화려하게 차려 입고서 고급차를 몰고 오니까 주눅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그 문제를 직접 언급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봐야 주민들이 다 부유하니까 크게 실효성도 없고 교회 안에 아직 믿음이 미숙한 자도 많으니까 어차피 그런 자는 나오게 마련입니다.
결국 해결책은 하나뿐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을 올바르게 가르쳐서 온전한 믿음에 들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교인이 외모로 사람을 판단치 않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서 어떤 외모를 갖추어야 할지 자연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아직 미성숙한 교인을 용납하고 기다려주며 사랑하게 됩니다.
현재 제가 출석하는 미국 교회에는 갱 단원 같은 모습으로 오토바이 타고 출석하는 신자도 많습니다. 아예 오토바이 전용 주차장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런 자의 복장에 관해 간섭은커녕 문제 삼지도 않습니다. 아무래도 사고방식과 사회적 인식이 우리와 다르니까 그렇습니다. 서구인들은 공과 사를 잘 구분할 줄 압니다. 말하자면 교회의 공적인 부분은 복음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라고 간주합니다. 복장은 전적으로 사적인 문제이니까 비록 조금 마음에 안 차더라도 관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동서양 인의 사고와 관습에는 각기 장단점이 있습니다. 나아가 복장에 대해 기준을 정해 가르치는 것도 교회에 일부 유익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작용과 예기치 않은 여파가 많이 발생 가능할 것을 알고도 강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교회가 가르칠 본질이 아니며 믿음을 성숙시키다 보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라는 것입니다.
과다하게 노출한다든지 또 그런 것으로 시험에 넘어가는 것은 결국 죄라는 문제에 귀착됩니다. 문제의 원인부터 제거해야지 문제가 야기하는 결과적 현상을 없애야 별무 소득입니다. 인간은 어려서부터 철두철미 죄인입니다. 아무리 청소년 사역이라도 그들이 이해하고 절감하기 쉬운 방식으로, 교리적 진술이 아니더라도, 죄의 본질부터 철저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물론 죄에서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십자가의 방도와 함께 말입니다.
복음은 옷차림까지 변화시킬 수 있지만 옷차림이 바뀐다고 죄가 없어지거나 복음 안에 들어온 증거가 될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 청소년들에게 민감한 주제를 성경으로 해석한 바탕 위에서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어려서부터 예수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 목표와 삶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들을 반드시 성경에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님의 창조, 타락, 구속의 섭리 위에 기초하도록 만드는 것이 더 급선무입니다.
물론 신자라도 오버하지 않은 범위에서 젊은이다운 옷차림으로 인생의 즐거움과 활력을 누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또 그러기 위해서도 더더욱 젊어서부터 세상에서의 형통과 출세 대신에 하나님만 주인으로 삼아 그분 뜻대로 살겠다고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복장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히 검소하고 청결하게 바뀝니다. 문제는 교회 안에 흐르는 전체 영적인 분위기입니다. 그 키는 목사가 쥐고 있습니다. 성도는 목사를 닮게 마련이지 않습니까?
4/9/2009
초신자나 아직 신앙이 미숙한
성도들이 그렇다면 당연히 이해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오히려 초신자들이 리더급의 성도들의 오버된 복장때문에
실망하고 의문을 품을 때 참 곤란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소그룹 모임을 인도하고 찬양팀으로 앞에 서야하는 이들이
오버(?)하고 있을때 그것이 여러 성도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더군다나 하나님과의 교제에 대한 방해로 느껴질 때
중개자의 입장에서 참 곤란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하고 지혜로워야 할 것을 느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그것이 몸에
체질이 되어질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려주는
인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