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명을 문자적으로 지켜야 하나요?

조회 수 1465 추천 수 82 2009.04.18 19:14:21
계명을 문자적으로 지켜야 하나요?


[질문]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 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2장 4-5절에 보면 라합이 거짓말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 서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가나안의 입장에서 본다면 라합은 마치 나라와 가족들을 배신한 사람으로 비춰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계명으로만 따진다고 해도 계명을 어긴 범죄 행위로 간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라합의 행동을 믿음으로 인정하고 오히려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비단 라합 뿐만이 아니라 성경의 많은 부분에서 이와 비슷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가끔 선의의 의도로 무엇인가를 할 때 그것이 성경의 계명과는 어긋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주일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누군가를 전도해야 하는 목적으로 혹은 어떤 긴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 어쩔 수 없이 주일성수를 못할 때가 있고 직업상 다른 요일을 주일처럼 지키며 예배드릴 수도 있습니다.

종종 목회자들이 주일성수, 헌금, 공예배(?) 참석 등등 성경의 계명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고 어기면 벌 받는다고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모든 계명이 하나님을 온 맘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말씀에 속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정황상 비록 계명은 어기게 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에 더 가깝다는 행동이라는 확신이 있고 또한 그런 결과들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라면 계명을 어기더라도 히브리서에서 라합의 행동을 믿음의 행동으로 인정해주신 것처럼 현대에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해 주시는 것인가요?

주님이 주신 계명은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또한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때론 믿음의 행동을 해야 할 때 그것이 성경의 문자적인 계명과는 반대된다고 여겨지는 예외적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신자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요?

[답변]

교부 오리겐은 스스로 거세하여 고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에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5:28,29)라는 말씀을 문자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말씀대로 따르자면 세상사람 모두가 전부 고자, 애꾸, 팔다리 잘린 사람이 되어 있어야할 것입니다. 목사부터 아마 두 눈이 멀고 수족이 없는 채 강대상에서 바로 이 말씀을 설교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런 표현이 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수사법이라는 것은 앞뒤 문맥으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 오리겐도 단순히 문자적으로 적용 했다기보다는 아마도 성결에 전적으로 헌신하자는 의도로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나 네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 안식일(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는 것처럼 문자적 의미와 실천적 의미 사이에 오해될 소지가 전혀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문자적으로 지켜야 합니까?

하나님이 시킨 거짓말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와 함께 애굽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사흘 길쯤 광야로 가기를 허락하소서 하라”(출3:18)

도덕적으로만 따지면 너무나 놀라운 진술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모세와 이스라엘의 장로더러 거짓말하라고 시켰기 때문입니다. 분명 애굽을 탈출할 작정이면서 광야로 나가 희생 제사를 드리겠다고 말하라고 합니다. 사흘 길은 애굽 군대의 추격 범위를 벗어나는 시간적 지리적 여유를 뜻합니다.

제사 후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안 했으니까 출애굽의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므로 거짓말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온다는 소리를 하지 않거나, 신하들이 벌거벗은 임금님 앞에서 침묵하는 것도 아주 질이 나쁜 거짓말에 속하지 않습니까?

말의 진의는 듣는 자가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바로는 분명 거짓말이라고 느꼈습니다.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으로 역사를 쉬게 하느냐…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출5:4,9)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는 모세에게 너희가 제사를 위해 잠시 3일간 출타하여 역사를 쉬어야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도망가려는 거짓말 아니냐고 따진 것입니다.

이 경우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에 관한 문제입니다. 모세더러 그렇게 말하라고 지시한 후에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노니 강한 손으로 치기 전에는 애굽 왕이 너희의 가기를 허락지 아니하다가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출3:19,20)

만약 처음부터 노예 생활을 청산할 테니 자유를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로가 당장에 모세나 이스라엘 장로들부터 죽이려 들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그 일을 막으시고 어떤 방식으로든 출애굽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굽의 우상들과 열 번 씩 대결하여서 상천하지에 오직 하나님은 당신뿐임을 입증할 기회가 없거나 적어집니다. 무엇보다 열 번이나 인내하면서 애굽 사람에게도 회개의 기회를 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신자는 거짓말하면 안 되고 하나님은 그래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전개될 모든 상황을 다 아시므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출애굽 시키려는 뜻이었습니다. 또 그런 방식의 일환으로 모세더러 거짓말하도록 시킨 것입니다.

그 이전에 히브리 산파들이 바로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이를 살렸습니다. 추궁하는 바로에게 히브리 임부가 너무 튼튼해 자기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스스로 출산했다고 대답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간섭하여 그렇게 됐을 수도 있지만 당시 히브리인 숫자를 감안하여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거짓말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고(출1:20)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결국 하나님의 계명이라도 특별한 경우에는 꼭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특별한 경우란 과연 어떤 상황인지, 또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판단해야 할지 잘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명 준수에서 예외적 경우란?

히브리 산파의 경우는 비교적 판단이 용이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죽이라는 명령을 지키면 살인죄를 범하는 것이기에 거짓말을 해서라도 그 명령을 어겨야 합니다. 자칫 자신의 거짓말이 탄로 나면 자기 목숨이 달아날 판인데도 아이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세상 만물이 다 그러하지만 특별히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만 속한 것으로 인간이 함부로 해해선 절대 안 됩니다. 물론 신자의 모든 죄가 하나님께 지은 죄로서 경중(輕重)을 따질 수 없지만 다른 잘못은 다시 보상,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생명은 그럴 수 없습니다.

기생 라합은 자기 민족의 배반자가 되었지만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원을 얻고자 한 거짓말입니다.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었습니다. 사단의 노예가 되어 있는 자신의 비참한 영적 실체를 참 하나님의 은혜로 새롭게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녀도 거짓말이 탄로 나면 당장 육신의 생명을 잃을 것임에도 천국에서의 영생을 택한 것입니다. 히브리 산파처럼 다른 이의 생명을 보호해주기 위해서 거짓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신적, 영적 생명이 좌우되는 일은 기독교가 법으로 금지되어 핍박하는 선교지가 아닌 이상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하는 아주 특별한 경우입니다. 그보다 현실적으로 애매모한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예컨대 주일성수, 헌금, 공예배를 꼭 말씀대로 지키라고 목사님들이 겁을 줘가며 강요(?)합니다. 신자들도 그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그러지 못할 경우가 왕왕 있는데 그럴 때마다 죄책감과 부담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신명기 20장에 대적과 전쟁을 치를 때에 징집 대상에서 예외가 되는 경우들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치르지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들입니다. 구약 율법에 규정된 전쟁은 성전(聖戰)인데도 별 것도 아닌 것 같은 이유로 제외시켜 주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주일 성수에서 빠져도 되는 예외 규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외 규정의 정확한 의미가 선뜻 이해되지 않습니다. 또 그 규정들보다 훨씬 더 위급한 경우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물론 당시는 생활 방식이 아주 단순했기에 예외적 경우가 드문데다 대표적 예를 든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문자적 해석을 고집하면 역으로 따져서 본인이나 가족이 큰 병에 걸렸거나, 부모 장례를 치르지 못한 자 등은 예외 규정에 빠졌으니 전쟁에 나가야 한다는 모순이 생깁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이 말씀을 살펴보면 우선 두 가지 원리를 추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도 긴급사태에선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인정해준 셈입니다. 또 그 예외는 성경 말씀에 견주어서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 집, 새 포도원, 약혼 등에서 빠져도 되니까 집안 혹은 인간관계의 큰일만 예외라고 단순히 판단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세 경우다 혹시 전사(戰死)하면 다른 사람이 그것들을 차지할까봐 징집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소유권을 확실히 하여 분쟁을 막겠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모든 소유를 하나님이 주신 기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람이 거처할 장막으로서의 집, 생업으로서 포도원, 평생의 돕는 배필로서의 약혼자 등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그 때 그 환경에서 반드시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맡겼다면 전쟁보다 그 일부터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겁을 먹은 자 돌려보내라는 뜻도 동일한 맥락입니다. 전쟁 자체가 지금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주신 기업인데 그 일을 감당할 자신과 믿음은커녕 헌신과 준비조차 안 되어 있다면 당연히 그만두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런 예외 규정을 두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모든 전쟁을 당신께서 담당할 테니 두려워 말라고 당부하셨던 것입니다.(신20:1-4)

따라서 질문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여러 가지 정황상 비록 계명은 어기게 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에 더 가깝다는 행동이라는 확신이 있고 또한 그런 결과들을 가져다주고 있는 것이라면 계명을 어기더라도 히브리서에서 라합의 행동을 믿음의 행동으로 인정해주신 것처럼 현대에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인정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정황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더 가깝다는 행동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여전히 애매한 숙제로 남습니다. 신자 개인의 편견 선입견 아집이 개입할 수 있고, 감정에 치우친 주관적 판단이 앞설 수 있으며, 또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보거나 환경에 눌려 잘못된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에 의존하려니 당장 그 계명의 뜻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데 성경 전체에 일관된 하나님의 뜻과 연결해서 판단하는 일은  더 감감합니다.

하나님 계명에 대한 근본적 오해

사실은 많은 신자가 계명을 꼭 문자적으로 지키지 않아도 하나님이 양해해 줄만한 예외도  있음을 이미 알고 있거나 최소한 짐작은 합니다. 그러나 그 예외가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인지 알려고 들면 끝이 없습니다. 예외 사항을 알았다 해도 그 자체가 새로운 문자적 계명으로 추가되고 필연적으로 그 새 규정에 예외는 없는지 끝없이 따져봐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 인간의 유전을 성경 율법에 덧붙여선 그것에 오히려 더 얽매인 까닭입니다. 그들도 처음에는 율법을 세밀하게 지키려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주제에 접근하는 신자의 사고를 다르게 잡아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의 근본적 성격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모든 계명은 분명히 당신의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예컨대 신자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은 절대적이며 유일한 당신의 뜻입니다. 특별한 예외를 인정하느냐는 그 근본의사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자는 평생에 걸쳐 오직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삼아 거룩하게 자라고 피 흘리기까지 죄악과 싸우면서 세상에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신자에게 절대 강요하지 않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스스로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그분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 신자 본인에게도 궁극적인 유익과 성장이 나타납니다. 또 기꺼이 자진해서 계명을 지키려면 그 형식적 문자적 의미를 쫓기보다는 계명을 주신 근본적인 뜻에 대한 깊고도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해야만 합니다.

바꿔 말해 계명이 분명 명령이긴 해도 임무로 부과한 것은 아닙니다. 임무란 자발성(自發性)이 실종되고 오직 완수했느냐 못했느냐는 실적에 따른 상벌만 자동으로 수반됩니다. 그 명령은 율법으로 변하고 또 계명을 주신 목적도 임무를 완수시키는 것에만 한정됩니다. 신자가 아무 기쁨 없이 지켜도, 반대로 억지로 어쩔 수 없어 지켜도 임무는 완성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계명 준수 자체가 상벌의 조건과 전제가 됩니다.

모세 율법을 포함해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은 신자에게 권리로 제시된 것입니다. 권리란 안 지켜도 벌이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에 지키면 이미 보장되어 있는 혜택 중에 그만큼 더 많이 누릴 수 있을 뿐입니다. 혜택이 계명을 지켰다는 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관계에 의거해서 신자 쪽에 취사선택할 재량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본 문답 사이트의  #4 “성경에 ‘그리하면 ...하리라’고 표현된 하나님은 조건부 하나님인가?”의 글을 참조 바랍니다.)

오해는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권리라고 해서 하나님의 벌이 전혀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조직의 회원이 오래 동안 권리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용권을 일시 정지시키며 다시 살리려 할 때에 벌금을 물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신자가 계명을, 특별히 도덕적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당신만의 때와 방식으로 심판이 아닌 징계를 가합니다.(히12:1-13)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형성된 아버지와 자녀라는 혈연관계에서 오로지 신자의 성숙과 유익을 위해서 사랑의 매를 드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계명을 임무 대신 권한의 의미를 부과한 또 다른, 사실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아담의 원죄 하에 태어난 인간의 체질이 진토임을 그분은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 앞에 엎드린 자를 의롭다고 칭해주었지 않습니까? 그리고 성령의 간섭으로 새 피조물이 되었어도 죄의 본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당신의 계명을 문자적으로 완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따라서 십자가 은혜 안에 든 신자가 모든 계명을 문자적으로도 다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거나, 영적 지도자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심판을 받고 그렇게 하면 상을 받는다고 가르친다면 복음을 부인하는 결과가 됩니다. 나아가 자신의 영적 실체를 잘 알지 못하고 여전히 율법적 신앙에 묶인, 다른 말로 바리새인과 같은, 크나큰 교만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모든 계명을 정말 최선을 다해서, 무엇보다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기꺼이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지키지 못했다고 하나님이 벌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상황의 범위를 임의로 적용 확대하지 말고 성경을 잘 묵상하여 하나님의 근본적인 뜻과 영적 원리에 따라 판단해야 합니다.

때로는 그 판단이 잘못될  때도 분명히 있지만 이미 본인이 그분의 뜻을 따르겠다는 순수한 마음과 헌신과 실천이 있었기에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혹시라도 예외적 경우를 판단 시행하는 전후 과정 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면 진심으로 회개하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에게 구원을 얻은 후에도 십자가 복음이 계속해서 필요한 것 아닙니까?    

4/18/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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