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조회 수 2082 추천 수 102 2008.10.22 11:59:15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아래는 개인적으로 상담을 받은 내용입니다.  
너무나 많은 성도들이 겉으로 내색은 잘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 앓으며 고뇌하는 내용일 것입니다.
솔직히 십자가 복음 안에 바로 선 진정한 성도라면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데 주저할 자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성도가 교회에서 은혜를 받지 못하거나 상처를 받으면
그 것 만큼 불행한 일이 없습니다.
밤새 잠을 못 이룹니다.
주일날 교회 가는 것이 정말 내키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정말 진액이 빠져 나가고 골수가 말라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나 보편화된 상황인지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지 감감하니
자꾸 가슴만 답답해 옵니다.

제가 매일 드리는 기도의 첫 번째 제목은
미국과 한국 교회의 강대상에서 제발 십자가가 선포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함께 참 복음으로 되돌아가기만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신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신학이 회복되어서
장래의 소망을 잃지 않게 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래 문제에 대한 저의 일차적 해답은
조용히 바른 교회를 찾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교회가 너무 드물다는 것입니다.
또 지금 섬기고 있는 중등부 아이들의 문제도 걸립니다.

함께 생각해 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와 유사한 주제에 대해
성경문답 사이트 # 43 “목사님께 무조건 순종해야 하나요?” 와
# 51 “목사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하나요? 에 대한 보충 설명”의 글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그래서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을
(실제로 시도하고 체험했던 개선책이면 더 좋을 것입니다만...)
서로 나눠보기로 하면 어떨까요?
댓글 기다립니다.  


[상담내용]

다름이 아니라 가슴에 충동이 일어납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정말 평범(?) 합니다.  
요즘 들어 담임목사님이 전도를 강요하시고..   ......
물론 하나님의 명령이시며 이건 생명구원에 대한 사랑이심을 압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님은 "솔직히 전도 많이 한 사람들, 기독교를 믿는 국가들 다 잘 살았다. 우상숭배국가들 다 가난하지 않냐? 기독교 받아들인 국가 축복받았다" 이렇게 설교 때 말씀하십니다.
전 의문이 생깁니다.  그럼 전도 많이 한 사도들이 인간적 관점에서 부유하게 살았는가?
전 당연히 예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 목사님의 설교로 흔들릴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기도와 찬양 땐 정말 좋습니다.  그러나 설교시마다 계속 그런 식의 설교 - 예수님 믿으면 축복 받는다(물론 축복 받죠. 물질적 축복도 주심을 부인하진 않습니다.)는 것을 강조하시고
자꾸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것(물론 이것도 맞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인간적 관점에서, 믿음 없이 보면 실패사건 아닙니까?)이라고 설교하십니다.
세상을 섬기는 게 세상을 이기는 게 아닌지요?    
문제는 예배 중 중요한 말씀에 자꾸 목사님의 개인적 의견이 들어가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차라리 설교 말씀이 우리의 죄성을 자꾸 드러내게 하는 양심적 찔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물질적 축복을 강조하는 것! 축복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일반 성도가 아닌 목회자의 영향을 생각해 볼 때 어쩔 땐 화도 납니다.
하나님을 대가로 믿는 것을 강조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건 본질이 아니라 생각되어 예배가 기쁘지 않습니다.
예배 후 항상 영적으로 충전되는 걸 느꼈는데, 요즘은 힘듭니다.  저희 목사님을 이해하고 싶습니다. 가장 중요한 예배가 살아야 하는데 어찌해야 좋을까요?
저는 중고등부 교사로 있습니다. 주일날 대예배 때 제 자신이 진정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담임목사님께 이런 문제로 상의해 본적도 없습니다.  
저만의 문제지요. 제가 분란을 일으키는 것은 아닌가?  좋은 교회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닌가?란 고민 속에 점점 지쳐 갑니다.  어찌해야 좋을 지요?

10/22/2008
한국에서 K 집사가

김추강

2008.10.22 15:54:26
*.162.252.132

샬롬. 질문을 하신 K집사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K집사님의 염려처럼 분란을 일으키시는 것도 아닌 것 같고, K집사님만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교회를 옮기셔도 괜찮고, 마음에 평정을 찾으신 다음에 같은 교회에서 계속 생활하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나 K집사님과 하나님과의 관계이니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기 인생가운데 받아들인 사건이나 사연은 저마다 다르고, 자신들에게는 어떤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강하게 다가왔는지는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적으로 파탄이 났을 때, 하나님을 찾다가 해결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다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알게된 사람들은, 물론 예수님 십자가를 알지만, 자신을 경제적으로 회복시키시고 형통케해주신 감사와 은혜가 너무나 커서, 이런 경제적으로 부유케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을 자신의 신앙과 빚대어 말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자기 인생가운데 점철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다가오신 경로가, 각각의 인생의 특색에 따라 다릅니다. 따라서, 그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앙과 맞물려 인생을 바다볼 때, 하나님의 어떠하신 면이 자신들의 삶에서 강조되어야 하고 드러나야 하는지에 대한 관념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떤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측면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의 측면을,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상명령의 측면을 강조하게 됩니다. 목사님이라고해서 예외는 아니지요. 절대적으로,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해석하고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면에서의 성경의 해석도 교파마다 다르지 않습니까?). K집사님의 목사님이 본질적인면에서 성경과 맞지 않다면 당연히 교회를 나오셔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제가 말씀드린 이런 점을 이해하여 계속 다니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은혜가 되고 마음에 용기를 받을 수 있는 목사님이 있는 교회가 있다면 (?), 한번 가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한계가 보이지만 교회의 공동체가 아름답다면 계속 머무시기를 추천합니다.

김광찬

2008.10.22 22:32:16
*.169.140.105

주님 안에서 평안하시길 기도드립니다. K집사님의 고민을 들으니 어쩌면 저와 이리도 일치하는 고민일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해봤습니다. 물론 목사님의 물질축복부분은 정확하지 않지만 거의 제가 다니는 교회분위기와 흡사한것 같아 놀랐고, 또한 저도 중고등부 예배에서 고등부 교사로 있기에 K집사님의 심정을 정확히는 아니지만 잘 이해할 것 같습니다. 먼저는 우리 주님께서 분명히 K집사님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듭니다. 왜냐면 저도 똑같은 고민과 갈등 그리고 갈급함 중에 있던차에 이 사이트를 2005년도에 알게 되어 저의 신앙이 새로와지는 계기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저를 이 사이트로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들어올때 마다 기쁘고 감사하고 제 마음을 아시고 준비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지요. K집사님께서 이곳을 통해서 고민을 전하셨다는것은 그만큼 이 사이트를 통해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크셨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드니 우리 하나님께서 K집사님을 너무나도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든다는 말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말들이 그저 피상적인 위로가 되지않길 바랍니다. 샬롬 ^^
글쎄요 저는 K집사님의 고민을 다 듣고나서 이런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어쩌면 전혀 방향이 틀린것일 수도 있지만 한번 들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얼마전 저는 혼자서 등산을 할 기회가 생겨 서울 근교에 있는 산에 등산을 하러 갔다가 생각지도 않게 도토리를 주워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람쥐들의 겨울식량을 축낼 정도는 아니었구요 ^^) 대충 그양이 한 두되정도가 되었던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몇개 주웠다가 너무도 많이 떨어져있는 도토리를 보고 그래 도토리묵을 한번 내손으로 해먹어 볼까하고 그정도를 줍게 되었던 거지요. 인터넷에서 도토리묵을 만드는 과정을 숙지하고 일단
주워온 도토리를 선별하고(벌레먹은 것은 버리고 깨끗한것을 추리고) 햇빛에 말리는 과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다음 잘 말린 도토리를 껍질을 벗기고 반을 잘라서 조금더 말려야 하는과정에서 충격(?)적인 모습들을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겉모습은 깨끗하고 멀쩡하게 생긴 도토리를 반으로 쪼개보니 그안에 벌레가 꿈들꿈틀 대는 것이었습니다. 집사람은 혼비백산하고 저도 사실 꿈틀대는 벌레가 썩 기분좋지는 않아서 반을 쪼깨서 깨끗한 것만 선별하고 나머지는 전부 버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과정에서 이런 깨달음(생각)이 떠올르더군요. "하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 같이 자라게 하시는게 맞구나"라구요. 그러면서 제자신을 도토리와 한번 비교해보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앞에서 어떤 모습일까? 겉모습은 멀쩡해 보이는데 속에서는 꿈틀대는 벌레가 자라고 있는것 아닐까? 어쩌면 나중에 쓸모없이 버려지는 저 도토리같은게 나는 아닌가? 아니면 겉모습은 작고 약해보여도 속이 건강한 저 깨끗한 도토리처럼 잘 쓰여질수 있는걸까? 그러면서 솔직히 아직도 제안에 꿈틀대고 있는 저의 자아의 참모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를 더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같이 자라고, 나중에 그걸 걸러내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무섭기도 하지만 한편 위로도 되는것은 저만 느낀 감정인지 모르겠습니다. K집사님의 상황과 맞지않은 내용인것도 같아서 좀 죄송하네요. 끝으로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서두에서 목사님도 말씀하셨듯이 현재의 한국교회의 상황으로 볼때 반듯이 K집사님이 개인적으로 원하시는 교회를 찾기란 그리 쉬운문제는 아닌것 같습니다. 또한 그런 교회를 찾았다고 해도 현재 거주하고 계시는 곳에서 출석이 가능한지 또한 다른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을 수 있을테니까요. 분명한 것은 K집사님께서 우리 하나님께 이런 문제들을 놓고 기도하시면서 방향을 정해달라고 간구하시면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너무 성급하게 서둘러서 결정하시기 보다는 좀더 시간을 두고 기도하시면서 되어가는 상황(하나님의 기도응답)을 잘 주시하시면서 따르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두서없이 글을 올려 죄송하구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K집사님이 되시길 기도하고, 앞으로 주님의 응답으로 마음의 갈증이 해갈되시길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davida

2008.10.25 02:16:09
*.165.226.64

요즘의 큐티가 고린도전서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전도... 바울의 가문과 배경과 학문적 지식과 그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지혜와 예수님의 십자가능력을 대신 할 수 없다는 그렇기에 자신의 모든 과거의 것들은 십자가앞에 배설물로 여기며 자신보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드러나기를 원하며 자비량으로 죽음의 고비를 넘으면서까지 기쁘게 전파하려 했던 십자가 그리고 그것에 기본된 것이 교회임을 사람로나, 당으로 나뉘는 것이 아님을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쓴 바울사도의 진리가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씨뿌릴뿐이고 물주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감사하고, 우리의 잘못되고 어그러진 의도에도 결국은 하나님은 선한 것으로 베푸심을 감사합니다.(요셉의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위에 김광찬님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와 상황을 아시기에 우리의 갈급함에 교회에서 해결되어지지 않는 부분들에 이 귀한 사이트를 통해 하나 하나 쉽게 그리고 성경적으로 알려주시고 은혜받게 하시며 더욱 우리의 믿음을 굳세게 세우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김추강님 말씀처럼 같은 말씀도 각자에게 부어주시는 마음이 다르고(자기 편리로 해석하기도 하는 오류가 있지만요^^;;) 믿음으로 순종하는 깊이도 다르나 그래도 결국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예배가 살아있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귀한 시간이여야 하는데 갈등의 시간이 되어지는 K집사님의 마음을 하나님이 위로하실 것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예배에 대한 갈망을 아시는 하나님이 K집사님에게 선 한 것으로 인도하시고 베푸실 것으로 감사합니다.
현재에 주어신 곳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 자녀됨을 드러내는 삶으로 이땅을 회복시키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샬롬!!^^!!

사라의 웃음

2013.01.23 23:42:54
*.109.85.156

몇 안되는 교회들 마다 목회자들의 물질에 얽매인 모습을 보며 곳곳에 한숨소리만 배어나오는 미국의 자그마한 시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십자가가 실종되어진 강단, 이론만 있고 실체는 없는 속빈 강정같은 교회, 때문에 성도들은 모이기만 하면 교회와 목회자 비난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내야만 했던 그런 곳이였습니다. 개척하여 모셔온 목사님도 시간이 조금 흐른뒤엔 또 똑같아져 가기만 했습니다. 이 곳 운영자님께 여러모양으로 상담하였지만 은혜가 되지 않으면 다른 교회로 옮겨 보라는 권면에 갈 곳이 없던 저는 공연히 운영자님께 심통도 참 많이 부렸었습니다.

지금 곰곰 생각하면 저 조차도 십자가의 의미를 잘 몰랐던 이유가 가장 큰 문제점으로 생각되어집니다. 강단에서 십자가의 예수님을 전하긴 하기에 탁 꼬집어 설교에 십자가가 실종되었다라고 스스에게 조차 설명이 안되는 그런 답답함, 그러하기에 목회자에게서 예수님의 자상하신 모습만 찿으려 애를 쓰다 보니 물질에 얽매여 물질만 좆고있는 모습이 실망스럽고 놀라워서 도무지 은혜를 받을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아주 조금씩 말씀을 배움이 우선되어져야하지 않나 생각되어집니다. 말씀에 자신을 맞추기 보단 나에게 말씀을 맞추길 참 좋아하는 이런 습성으로 인해 여간 어렵지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맞는 것 같을 때, 참 억울하기도 하고 너무 속이 상하여 하나님께 투정도 많이 부려 보았습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 체면이 손상된 것 같아 죄송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내가 맞는 것 같기에 하나님을 설득하려 애를 썼고 내가 맞음이 증명되어지길 소원하며 기도했었습니다. 말씀에 나를 맞추는 것 보다는 성경말씀을 저에게 맞추려 애를 쓰는 모습이 훨씬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나 연약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인간을 사랑하시려 오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자꾸만 배워가는 것, 차근히 설득하시고 가르쳐 주시는 말씀 앞에 정말이지 조금씩밖엔 납득할 수 없지만 삶의 한자락에서라도 십자가 앞에 굴복되어지고 그 조금씩이나마 맞춰 나갈 수 있도록 배워나감이 참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사실 그래서 십자가 말씀이 있는 이 곳을 저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주 넘어지고 자주 쓰러지는 이유는 저의 이기적인 생각들이 틀렸음을 느끼도록 성령님이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고 계신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주 넘어지고 쓰러질지라도 매일 십자가 사랑을 가르쳐 주는, 그리고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꾸만 만나야함을 가르쳐 주는 이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배승형

2013.01.25 17:57:54
*.223.174.123

k집사님의 글을 읽고
k집사님의 마음은 두 가지로 보입니다.
첫번째 마음은 전도에 대한 부담감입니다.
두번재 마음은 기복 신앙에 대한 거부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전도에 대한 부담감이라는 본질이 기복 신앙에 대한 거부감이라는 다른 방향으로 표출시킴으로
사람들의 시야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도 전도라면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전도를 못합니다.
그래서 전도라면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 확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영혼 구원이라고 하면 현실과는 멀리 떨어진 느낌과 함께 거부감이 생기기 때문에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예수님을 알게 되어
예수님 때문에 삶의 참 의미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전도는 또한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큰 교회 만들어 자기 이름 날려보려고 성도들을 닥달하는 그런 경우.
또는 사례금을 더 많이 받는 수단으로 전도를 하게 하는 등
목사님 개인의 이기적인 욕심을 하나님 말씀을 빙자하여 전도를 독려하는 행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그 사람이 예수님 때문에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면
전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내가 전도를 하지 못한다고 전도하라는 그 말씀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그런 목사 밑에서 신앙이 제대로 자라나겟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분명 말할 수 있는 것은 기초 신앙을 키우는 곳은,
신앙의 기본을 세울 수 있는 곳 중 교회만한 조직을 갖춘 곳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단계는 하나님께 맡길 수 밖에 없죠.

배승형

2013.01.28 03:09:33
*.233.119.247

k집사님의 글을 읽고2
먼저 저의 블르그에 있는 글을 올려 보겠습니다.

너가 70%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잘못한 30%는 정당하다(?)

빌2:3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대부분의 싸움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30% 잘못한 측은 정의의 편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가 20%, 10% 아니 1%만 잘못했다하더라도 자기의 잘못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의 이름으로 70%, 80% 잘못한 측에 대하여 응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할 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 머리에 숯불을 올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더라도 상대방을 응징할 권한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 맡길 뿐입니다.

세상에서는 심지어 본인이 70%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30% 잘못한 상대방을 응징하려 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비록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더라도 하나님께 맡기고 도우심을 바라며 믿음의 길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문제는 보통 30% 잘못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간과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100%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싸움과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대방도 분명 자신이 잘못한 30% 때문에 상처를 받았음에도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한 30%를 솔직히 인정합시다.

그리고 내가 잘못한 30%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70% 잘못했는데 왜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하느냐고 말 합니다.

물론 백 번 그 말이 옳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자신이 잘못한 30%에 대하여 먼저 고민하고 아파하는 그런 자 입니다.

상대방의 잘못한 70%로 인해 내가 받은 상처가 더 크다 할지라도

자기가 잘못한 30%로인해 상처받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자 입니다.

이런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을까요?


k집사님은 자신의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 시키려는 자기합리화의 전형으로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과 같이 자신이 잘못한 30%(20%,10%,1%라도 좋다)는 보지 못한 채
상대방이 잘못한 70%를 크게 생각하고 거기에 몰입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전도의 문제에 있어서 뿐 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적용될 수 있다.

내면 속의 자신을 솔직하게 볼 수 있는 자가 자기 자신의 조그마한 잘못까지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그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자꾸만 타인의 잘못한 51%에 눈이 간다.
아니 아직도 타인이 잘못한 30%에 눈이 간다.

내 탓입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라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보여 줄 것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천국을 볼 것이요.(마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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