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교회 다닌지 오래 되어도 실제 삶에서 특별한 기쁨이 없을 뿐 아니라 아무리 기도 하고 성경을 보아도 영적인 충만함이 없습니다. 말하자면 신앙 생활이 자꾸 메마르고 힘이 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에 대한 확신은 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입니까?

[답변]

신앙 생활이 메마르고 힘이 드는 것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너무나 간단합니다.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의 질적, 양적 수준이 모자란다는 뜻이 아닙니다. 신앙 생활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는 현실의 생활이 힘들면 반드시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의 반응을 합니다. 우선 나름대로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해 신앙 생활을 열심히 했는데도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의아해 합니다. 또 그 반대로  주일날 교회 다니는 것 빼고는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이렇게 힘이 드는가 보다 라고 반성합니다. 두 입장 다 같이 현실의 고난의 원인을 신앙생활을 잘하고 못한 것에 둡니다. 나아가 그 신앙 생활의 의미도 교회에서 하는 여러가지 종교적 활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또 교회 밖에서도 경건을 훈련하는 연습을 얼마나 성실히 했느냐로만 따집니다.  

그 말은 또 많은 신자들이 평소 때부터 교회 활동 참여도의 성적만으로  스스로 자기 신앙 수준의 평가를 이미 내려놓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거나 등한히 했닥 평가하거나 결국은 삶의 충만도가 그에 따라 비례해야 한다고 분석하고 있는 것은 똑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자신에 관해 무엇이든 평가할 때 어느 누구도 딱 중간이라고 하는 법은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모든 평가란 속성상 평균 이상 혹은 이하 둘 중 하나로 구분하는 작업입니다. 그것은 자기 삶의 충만도를 스스로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불신자는 누구나 자신의 삶의 충만도를 만족 혹은 불만 둘 중 하나로 평가해서 불만으로 생각되면 자신의 노력과 투자가 부족한 것이라고 봅니다. 반면에 신자는 불만일 때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도우심이 적은 것으로  판단해서 이미 평가해 놓은 자기 신앙 수준에 기준 하여 반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힘든 일이 생기면 평소 때 별로 기도하지 않던 사람은 그 동안 잘 나오지 않던 새벽 기도에 누가 나오라고 권하지 않아도 스스로 나옵니다. 평소 때 자기 신앙 수준을 기도를 많이 하지 않는 평균 이하로 판단하고 있었고 그래서 어려운 일이 생긴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주 소수이지만 새벽 기도 개근하는 신자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겉으로는 신앙 좋은 것으로 정평 난 사람이라  내 놓고 고민을 상담할 수 없지만 마음 속 깊숙한 곳에는 그렇게  매일 빠지지 않고 열심히 기도했는데도 왜 이런 일이 생길까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 방식과 판단 기준으로 영위하는 신앙 생활은 신앙 생활이 아니라 종교 생활입니다. 신앙 생활이란 문자 그대로 신앙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흔히들 매일  말씀을 보고, 주일 성수를 잘 지키고, 교회에 성실하게 봉사하고, 십일조 꼬박꼬박 내면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또 그런 것들이 신앙 생활의 전부인 양 생각합니다. 기도, 말씀, 봉사, 예배, 헌금, 구제, 전도 등은 신앙이 종교적으로 들어난 외적인 활동일 뿐입니다.  그런 일들이 형식적인 의미밖에 없고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신앙을 가지게 하고 키우게 하고 지켜 나가기 위한 활동일 뿐이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종교 생활을 하는 이유는 신앙을 가지고 신앙으로 살기 위한 것이지 종교 자체를 가지고 종교로 살기 위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 실현 되는 곳은 현실의 삶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에서 실현되는 생활은 종교 생활입니다. 더 엄밀하게 말하면 현실 생활, 종교 생활, 신앙 생활이 시.공간적으로 절대 따로 구분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신자의 모든 삶이 신앙 생활입니다. 종교 생활 따로 현실 생활 따로 구분되면 벌써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에게는 현실 생활 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함을 믿지 않고 스스로도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므로 신앙이든 종교든 다른 생활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오직 현실의 삶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현실 생활과 종교 생활을 따로 구분하면 현실은 불신자처럼 살고 교회에 와선 신자처럼 종교 생활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것은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이전에는 현실 생활만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현실에서도 신앙 생활도 같이 더 정확하게는 신앙 생활로 현실 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짐이 하나 더 늘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 보다 더 힘이 들게 마련입니다. 주중에도 교회 봉사 위해 가야 하고 수요 예배, 금요 찬양, 구역 공부 등 교회 행사에 참여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자답게 현실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전 같으면 쉽게 부정한 방법이나, 뇌물이나, 권세를 동원하여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이젠 손해를 보더라도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잠시 한 쪽 눈만 감으면 큰 돈이 생기던 것도 하나님이 양쪽 눈을 다 뜨고 우리를 보고 계시기에 그럴 수 없어 수입이 훨씬 적어집니다. 그렇다고 기도한다고 하나님이 당장  돈을 더 벌게 해 주시는 것도 아닙니다. 기도하면 할수록 한 쪽 눈을 도저히 감을 수 없다는 확신이 들고, 또 부정을 저질러 큰 돈을 만질만한 일도 안 생기게 되어 오히려 더  수입이 줄어듭니다.  대신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혼의 수입은 늘어납니다. 그것이 신앙 생활입니다.

신자 가운데 적당하게 한 발은 세상에 한 발은 교회에 두고 신앙 생활을 쉽게 하려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 쉬울 것 같지만 오히려 더 힘듭니다. 우선 삶을 그렇게 두 가지로 구분 하는 것도 힘들지만 마치 두 집 살림 하는 것과 같아 어차피 시간, 노력, 경비가 더 들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신자 모두 전문 사역자가 되어라는 말이 아닙니다. 신자로서 신앙 생활만 착실히 하면 됩니다.  

신앙 생활이란 특별히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실력과 노력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삶에서 단순하고도 순진하게 그 분의 능력과 사랑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세상적 방법으로 수입이 줄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워 주시고, 간혹 더 줄 때도 있고 덜 줄 때도 있지만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것을 날마다 체험하게 해주십니다.

신앙이란  신자가 마음을 바꿔 먹어서 도덕적 혹은 의지적으로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확신이자 그에 따른 온당한 반응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이 신자에게 뜻해 놓으신 일을 방해 하지 못하며 그 분이 반드시 당신의 목적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고 소망하며 설렘으로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내 삶의 중심에만 모시면 됩니다. 그리할 때에 우리의 삶은 편안해지고 정말 쉬워집니다. 말하자면 참된 신앙 생활은 부담도 없고 짐이 되지 않으며 쉽고 가볍게 됩니다. 신앙으로 현실 생활은 자족하며 평강한 가운데 지낼 수 있으며 교회 생활은 기쁨과 보람으로 자원해서 참여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신자들이 자기들의 신앙 생활이 메마르고 힘이 든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종교적 생활이 신이 안 난다는 의미이거나 종교 생활은 열심히 했는데 현실 생활이 재미 없다는 뜻입니다. 둘 다 종교 생활을 통해 현실의 형통을 얻기 위해 한 것뿐입니다. 노골적으로 그런 뜻을 가지고 종교 생활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종교 생활의 열심에 따라 현실 생활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더 엄격하게 말해 종교 생활과 현실 생활을 둘로 나눠 따로  대응했지 신앙 생활은 안 한 것입니다.

물론 때때로 정말 신실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신자도 사단의 시험에 빠지거나 까닭 모를 고통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 때는 정말 간절히 그런 유혹과 환난을 이기게 해 달라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이 메마르다고 표현한 뜻은 일상 생활에 특별한 어려움이나 잘못은 없이 단지 기쁨이 없이 무미건조하다는 말입니다. 평소때 신앙 생활을 하는 중심이 흐트러져 있다는 뜻이지 긴급 사태가 생겼다는 뜻이 아닌 것입니다. 또 현실에서 어려움이 닥치면 오히려 하나님께 메어달릴 수 밖에 없으니 신앙 생활이 메마를래야 메마를 수 없습니다.  

신앙 생활은 신앙 생활만 제대로 하기만 하면 절대 메마르고 힘들 리 없습니다.  현실에서 신앙으로 자유함을 얻습니다. 또 성경보고 기도하고 교회 봉사하고 전도하는 일도 즐겁고 신이 나게 마련입니다. 교회 일에 신나고 열심 낸다고 신앙 생활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면 교회 생활은 즐거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 생활 하는 것을 신앙 생활의 목표로 삼아선 항상 힘듭니다.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 종교 생활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종교 생활은 메마르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종교 생활이 신앙 생활의 전부요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멍에를 사람들 어깨에 지웠습니다. 예수님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삶 바로 그것이 신앙 생활이고 그 생활은 언제나 쉽고 가볍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으로 모셔지지 않았을 때는 아무리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해도 메마르고 고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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