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없는 노총각의 결혼 문제?
[질문]
현실 형편이 전혀 허락하지 않았기에 마흔이 넘도록 결혼 못한 것에 대해 크게 괘념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외손자를 얻어 너무 기뻐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죄송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도 중매가 왔어도 말도 안 된 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그 때도 무척 죄송했지만, 경제적 능력도 없이 결혼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상황이 호전되기 전까지 결혼하지 않기로 한 그간의 결심을 다시 다졌습니다.
물론 저와 처지가 다르지만 선교에 전념하시는 분들은 정말 현실적 대책이라곤 하나 없는데도 결혼하여 부부가 함께 헌신하는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하심을 전적으로 믿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끔 그분들에 비하면 제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혼돈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올해 초에 아버님께서 막내아들인 제 결혼을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시고 홀로 계신 어머니를, 또 손자들을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죄송할 수밖에 없는 제 처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곤 합니다.
[답변]
결혼의 첫째 장애가 돈(?)
최근에 외국인들이 한국 문화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으로 전세제도를 꼽았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읽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둘이라고 합니다. 첫째는 왜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고도 집을 사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돈에 이자가 붙는 것도 아니고 전세 계약이 끝나면 원금만 돌려받는데 집을 사면 부동산 가격이라도 오를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혹시 값이 안 올라도 대출금을 다 갚으면 최소한 자기 집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금은 한국도 많이 달라졌지만, 외국에선 보편적인 장기저리활부금(mortgage)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제도가 없다는 것입니다. 비슷한 제도가 생겼어도 사람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세제도를 외국인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잘 이해 못하며, 영어로 번역할 마땅한 단어도 아직 없습니다. 외국에는 없는 제도라 그에 적합한 용어조차 생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는 미국에선 자신의 신용이 좋고 고정적인 수입이 있음이 증명되면 누구라도 쉽게 집을 살 수 있습니다. 미국도 최근에는 경제 사정이 아주 안 좋아지고 주택 버블로 금융위기를 초래해 대출조건이 많이 까다로워지긴 했습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젊은 부부가 맞벌이를 하기에 두 사람의 신용과 수입을 합치면 방 두 개짜리 콘도나 타운하우스는 살 수 있습니다. 또 그럴 형편마저 안 되면 한두 달분 임대료만 보증금으로 걸고 안락한 시설의 아파트*를 임대해서 살면 됩니다.
거기다 미국에선 사람이 가진 것이나 직업의 종류로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자를 오히려 차별할 정도입니다. 또 청년들도 부모의 도움을 받는 일을 가장 미성숙하고 부끄러운 일로 여깁니다. 최근에 너무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부모 도움 받는 청년이 늘어도 근본적 사고는 그러합니다. 돈 많은 부모도 자식을 호강하며 키우기보다는 스스로 자립하게 유도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고 가정 자체가 많이 파괴되었지만 보편적인 인식과 관습이 아직은 그러합니다.
결혼식도 심지어 아무나 사용하는 공용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진짜로 친한 친구와 가족 20여명 모아놓고 간단하게 치른 후에 식사 한 번 하는 것으로 그치기도 합니다. 아주 화려하게 하는 자들도 많지만 그렇게 초라하게(?) 한다고 아무도 흉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신랑 신부가 모르는 이는 결혼식에 초대도 하지 않고 찾아갈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요컨대 미국 젊은이들은 집을 사거나 전세해야 할 염려 때문에 결혼을 늦추는 일은 없습니다. 또 그럴싸한 직업을 갖고 평균 이상의 연봉을 받은 후에 결혼하겠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혼수와 예식비용 때문에 결혼하지 못하는 일은 아예 없습니다.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결심하면 마땅한 직업, 집, 예식비용 등이 없어도 결혼합니다.
결혼은 무조건(?) 하고 보는 것.
미국의 결혼 문화가 한국보다 우월하다는 뜻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결혼에 대한 본질적 의미를 추구하는데 비해, 한국인들은 결혼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현실에 너무 묶인다는 것입니다. 한국인들의 결혼에 대한 관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혼수를 줄이고 예식을 검소하게 치르고 주택구입 제도를 개선하라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전히 결혼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결혼 외적 여건을 바꾸는 것뿐입니다.
결혼은 미국식으로 마음에 드는 자가 있으면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성경적인 개념입니다. 미국에선 무엇보다 결혼이 오직 두 부부 중심으로만 이뤄집니다. 다른 사람이 개입하지 않고 할 수도 없습니다. 결혼식 초대를 부부가 아는 자로 한정하고, 예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뿐만 아니라, 어떤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지도 부부가 자기들 원하는 대로 결정 시행합니다. 특별히 상대의 직업은 배우자가 좋아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현실적으로 따져도 이런 저런 요소 다 재다간 시기만 자꾸 늦어집니다. 아무 것도 모를 때에 눈 찔끔 감고 결혼하지 않으면 못하거나 늦어진다고들 말하지 않습니까? 또 저희 세대나, 저희 부모 세대에선 숟가락, 냄비, 이불만 있으면 단칸방 전세 혹은 월세만으로 결혼했습니다. 또 그렇게 고생하며 살았던 부부가 금실이 더 좋고 자식들도 잘 자랐습니다.
물론 한국의 부모세대들이 너무 못 먹고 고생하며 살았기에 자식들에게는 다 갖추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유교적 체면 문화에 너무 젖어서 다른 사람보다 더 좋게, 최소한 같게는 결혼시키겠다는 잘못된 인식은 하루 빨리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결혼식 부조로 혼수비용을 뽑고 나아가 한 밑천 잡겠다고 덤비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이 결혼한 부부가 함께 고생하며 차츰 세간을 늘여가는 기쁨과 행복은 절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습니다. 또 아무 것도 없는 데도 결혼한다는 것은 상대를 그만큼 신뢰하는 것이며, 특별히 남편이 갖는 비전과 자신감과 당당함을 높이 샀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결혼하려는 남자가 제일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당장 가진 것 없고 직장이 하잘 것 없어도 앞으로 얼마든지 갖출 수 있다는 믿음을 본인은 갖고 있어야 하고 또 상대에게 그런 신뢰를 심어주면 됩니다.
신자라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자기만의 비전이 있지 않습니까? 최소한 그분의 의롭고 강한 손이 자기 인생을 붙들고 있으며 지금은 몰라도 그분의 계획과 뜻대로 이끌 것이라는 확신은 있지 않습니까? 언제 어디서 무슨 일에나 자신과 동행하는 하나님 때문에 신자는 더 당당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물론 기도만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는 법은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처한 여건을 개선하고 자신의 재능, 은사, 경험 등에 비추어 최선의 직장을 갖도록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질문하신 주제에 비추면 신자가 주님의 능력만 온전히 믿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아무 것도 안 가져도 결혼만 하면 하나님이 다 책임져 주시리라 믿는 것은 정말로 무책임한 신앙입니다. 아니 신앙이 아닙니다. 선교사의 경우처럼 주님께 받은 자신만의 비전을 가질 때에, 주님의 거룩한 일에 동참하고 있을 때에만 주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런 비전이 없어도 최소한 자기가 하는 일에서 주님의 뜻과 일을 발견해서 헌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혼 여부를 떠나 모든 신자가 천국 가는 그날까지 쉬지 않고 필수적으로 행해야 할 일입니다. 바꿔 말해 현실 여건 때문에 결혼 못한다는 것은 신자에겐 틀린 말이며 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주님 주시는 비전을 함께 공유하며 힘을 합칠 배우자를 못 만나 결혼하지 않고 있다고 해야 옳은 것입니다. 모든 신자가 가정, 학교, 직장, 자기가 속한 어떤 공동체에서라도 하나님이 세우신 곳에서의 선교사입니다. 신자의 배우자는 그런 선교를 감당할 동료 사역자입니다. 선교사만 아무 가진 것 없이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신자가 선교사이기에 선교사와 같은 결단과 헌신으로 결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런 기독교적 결혼관을 갖고 있는 자매라면 형제님이 현실적으로 많이 부족해도 자신의 비전을 당당히 내세우면 기꺼이 결혼에 응해 줄 것입니다. 당장에 그런 자매를 못 만나더라도 마음에 드는 이성이 생기면 자신의 비전과 장래 계획을 잘 설명해주어 비전을 공유토록 하면 됩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했어도 자매가 동참 할 의사가 없으면 아무리 감정적으로 좋아 해도 결혼 하면 안 됩니다. 그 자매가 원치 않을 것이며, 모든 것 무릅쓰고 결혼해도 독신으로 있는 것보다 더 힘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더 당연히 결혼해야 한다.
인류 최초의 결혼이자, 유일하게 완전한 결혼이었던 아담과 이브의 경우를 성경이 어떻게 설명하는지 살펴봅시다. 먼저 부부는 아내가 남편에게만이 아니라, 서로에게 “돕는 배필”(창2:18)이었습니다. 그 앞에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남편만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창2:24)하라는 것도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는 새로운 가정을 이루라는 뜻입니다. 남자의 책임을 더 강조하거나 그 반대로 데릴사위를 뜻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는”(창2:25) 것은 서로 간에 죄와 허물이 없어서 감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정말로 육신, 정신,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서로 온전한 사랑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비추어보면 하나님이 바라는 이상적 결혼이란, 예컨대 남자가 지금은 수입이 적거나 현실적 지위가 높지 않아도 아내가 그것으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결합입니다.
다른 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창2:23)이 되는 관계입니다. 상대가 아프면 나도 자동으로 아픈 완전한 한 몸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함께 하는 것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기쁨을 함께 나눠 두 배가 되게 하고, 고통을 함께 나눠 절반으로 줄이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고 기댈 수 있는 상대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질문자께서 지금 당장 내세울 것이 없어서, 이미 나이가 상당히 들었기에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닙니다. 부모의 걱정을 들어드리고 친손자를 보는 기쁨을 주겠다는 생각은 물론, 남자로서 아내를 고생시킬 수 없다는 관점으로 결혼을 접근해선 안 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결혼에 주위 사람을 개입시켜선 안 됩니다. 그런 생각이 잘못(bad)이라는 것이 아니라 결혼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결혼제도를 제정한 뜻과 상충됩니다. 신자가 결혼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이 땅에 하나님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참 생명으로 번성케 하는 것입니다.(창1:28) 하나님은 가장 기본적으로 가정이라는 제도를 통해 이 땅을 다스립니다. 가정은 당연히 남녀 간의 정상적 결혼을 통해 이뤄져야 하며, 그래야 자식이 번식이 됨, 또 그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가 하나님의 대리인 격으로 영적인 공동체로 유지 부흥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만들었습니다. 가정을 통해, 부모의 신앙교육과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지는 삶을 통해 믿음의 후손을 양육해야 합니다. 또 그 자녀가 다시 대대로 믿음을 이어가게 해야 합니다. 가정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구약과 신약 시대나 이 원리는 동일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과 야곱과 요셉의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이 특별히 독신의 소명과 은사를 주신 경우와, 예컨대 신학연구나 오지의 선교사 같은, 또 건강에 하자가 있거나 신체적 불구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반드시 결혼하여 자녀를 가져야 합니다. 신자가 교회생활에 충성하는 것보다 먼저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가정을 교회보다 먼저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님의 오죽 어려우면 결혼을 단념하겠다는 그 순진하고 착한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기에 주변 사람의 눈치는 몰라도, 남들에게 피해는 안 가도록 신자라면 더더욱 배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현실 형편이 어려워 결혼을 포기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을 과소평가 내지 무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형제님에게 가장 적합한 배필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형제님의 어려운 형편을 다 이해하고 함께 도와가며 가정을 일으키고 믿음의 후손을 배출하려는 배우자를 말입니다.
순적한 만남은 예비되어 있다.
질문자님께선 먼저 생각부터 바꾸셔야 합니다. 현실 때문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은 비성경적일 뿐 아니라, 엄밀히 말해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하나님보다 주위 여건을, 특별히 돈을 더 크게 여기는 불신앙입니다. 다기 강조하지만 아무 가진 것 없어도 오직 하나님만 믿고 결혼하는 것이 선교사에게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모든 신자는 자기가 서있는 그 자리에서 선교사입니다.
또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결혼과 가정이라는 제도 안에 하나님이 의도하신 뜻과 계획이 얼마나 풍성한지 모르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외면하거나 거부하는 것입니다. 죄송한 이야기지만 하나님을 전혀 몰랐던 옛날 사람들도 기혼자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미혼자와는 겸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인생의 깊이를 아직 알지 못한다는 뜻이었지 않습니까?
세태가 점점 각박해지고, 경쟁은 무한대로 격심해지며, 악한 풍조와 인간의 죄는 만연해 가기에 앞으로의 결혼 생활이 힘들 것은 명약관화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그 극심한 고통을 알고도 골고다로 올라갔습니다. 바울도 예루살렘에서 체포당해 어려운 고초를 겪을 줄을 알고도 하나님께 서약한 일과 선교 일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결혼 생활이 어려울 것을 알기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것은 사실상 비겁한 짓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인생사 전부가 어렵지 않은 것 하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중도 포기하거나, 열심히 사는 일을 뒤로 미룰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무엇보다 신비하며 풍성합니다.
형제님 다시 말씀드리지만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있는 자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한 번 엎질러진 물을 절대 도로 담을 수 없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더 풍성하고 아름다운 새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의 뜻을 자기 인생에게 드러내겠다고 헌신하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인간이 가장 늦었다고 여기는 그 때가 바로 하나님께는 가장 빠른 때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으로 결혼과 배우자를 위해서 그분 앞에 간절히 엎드립시오. 이삭이 리브가를 만나듯이 하나님이 예비해 놓으신 형제님을 이해하고 품어줄 배필을 순적하게 만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현실에서도 경제적 형편이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더더욱 성실히 일 하시고 실력을 쌓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무엇보다 주님 안에서 그런 자매를 만나기 위해서 교회 생활에 더욱 충실하고 교인들과도 폭넓고도 진지한 교제를 이어가십시오.
10/15/2013
* 참고로 미국은 아파트라고 하면 전부 월세 임대를 말합니다. 한국식의 개인이 소유하는 다세대 주택은 그 모양에 따라 콘도 혹은 타운하우스라고 합니다.
현재 청년실업 문제 때문에 결혼이 너무 늦어지고 또 안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이 사이트에 정식으로 올렸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어떤 실패한 인생도
다시 더 풍성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원리는
결혼 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 해당될 수 있을 것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