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59 33:18-23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는가?

조회 수 449 추천 수 0 2018.07.10 12:22:25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는가? 

출애굽기 강해 (59)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33:18-23)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배역 사건에 격노하셨으나 모세의 세 번에 걸친 간절한 기도로 가나안 땅으로 진군을 허락했다. 또 당신께서 친히 동행하겠다고 두 번이나 다짐하며 약속하셨다. 그런데도 모세는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다.(18절) 모세가 끈질긴 신앙인지, 의심 많은 신앙인지 조금 당혹스럽다.

 

먼저 집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모세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20절) 당신의 실체를 보고 살 자가 없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는 것이다. 시내 산에서 처음 십계명을 전수 받을 때에 하나님이 산 위에 가까이 하는 자는 다 죽인다고 직접 엄중하게 경고했다. 그래서 산 사면에 경계선을 그었다.

 

우레와 번개가 치고 빽빽한 구름 중에 하나님이 강림하자 모든 백성이 두려워 떨었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출19:16) 지금은 피뢰침이 발명되어 번개와 천둥이 과학적으로 해결되었다. 그럼에도 저는 목사인데도 두려워서 이불을 덮어쓴다. 모세 시대에는 하나님의 실체를 보면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는 것은 일반 상식에 속했다.

 

하나님의 직통계시만 해도 그렇다. 저 같이 겁이 많은 자는 그 자리에서 기절할 것이다. 주위에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는데 인간의 육성으로 제 이름을 부르고 뭔가 구체적인 말이 들린다고 가정해보라. 오금이 저려 얼어붙을 것 아닌가? 인간은 우리 생각만큼 결코 강하지 않다.

 

흔히 나이 70이 넘으면 귀신을 볼 수 있고 보아도 놀라지 않는 나이라고 말한다. 모세는 80이 넘어 어지간한 것을 봐도 놀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실체를 본다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모세는 또 그 동안 하나님에게 직통 계시를 받았고 친구처럼 대화해 왔다. 또 그의 지팡이는 출애굽 때나 그 이후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큰 권능을 실현하는 통로로 종종 사용되었다. 그가 지금 새삼스럽게 하나님의 본체를 꼭 보아야만할 이유가 없다.

 

피조물로 이 땅의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실체를 볼 수 없고 하나님이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딱 하나다. 그분은 추하고 더러운 것과는 일초도 공존하지 못하는 거룩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죽지 않게 위해 배려한 것이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과 80년 만에 처음으로 대면한 모습은 어땠는가?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임재 했다. 어찌보면 참 초라하고 빈약한 모습이었다. 모세도 원죄 하에 타락한 죄인으로써 하나님의 법정에서 죽어 마땅했고 실제로 그는 살인자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모세를 출생 이전부터 그 이름으로 알았고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하는 당신의 백성을 구출할 자로 세우는 은총을 부여했다. 이제 그 계획을 시행하겠다는 뜻을 계시한 것이다.

 

모세보다 약 1500년 후의 사람인 요한 사도는 지금껏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아버지 품속의 독생자 예수에게만 하나님이 당신을 나타냈다고 한다.(요1:18)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를 통해 본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실체가 아니었다. 그분의 사랑과 죄인을 구원하는 방식과 구원의 진리였다.

 

하나님은 그와 동일한 사랑을 1500년 전의 모세에게도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모습으로 보여준 것이다. 모세와 하나님의 첫 인격적 대면은 예수의 십자가상에서 이뤄진 것이다. 너무나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모세 자신을 상징하는 가시덤불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했다. 하나님을 만나면 당연히 죽었어야 할 그가 죽는 대신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워지는 영광을 체험했다.

 

바람피우고 큰소리치는 남편

 

그럼 모세가 하나님의 본체를 보겠다는 뜻이 아니었다면 그가 구한 그분의 영광은 과연 무엇인가? 항상 그러하듯이 정답은 성경 본문 안에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동행하지 않겠다고 선포하자 모세가 기도하면서 주의 길을 내게 보여 달라고 했다.(13절) 하나님이 친히 동행하겠다고 응답했는데도(14절) 모세는 재차 확인하면서(15절)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은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16절) 하나님은 이 일에도 네가 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답했다.(17절) 그러고 나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18절)

 

일련의 대화의 흐름 가운데 드러나는 모세의 의도는 무엇인가? 하나님더러 동행하겠다고 말만 약속하지 말고 뭔가 확실한 징표나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우린 어른들한테도 말대꾸를 잘 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 불경하게 여겨지거나 두려워서라도 동행해주겠다는 첫 번 응답을 받고는 그냥 예라고 답할 것이다. 재차 확인하고 증거를 보여 달라고는 결코 쉽게 하지 못한다. 모세의 의도를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하나 들어보겠다.

 

한 지위도 높고 큰 부자가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완전히 딴 살림을 차렸다. 마누라의 은금패물과 통장의 돈을 몽땅 찾아서 후처에게 갖다 주었다. 실은 남편의 집이 학교를 진학할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그런데 어렸을 때 소꿉장난 하면서 장래를 약속한 여자 친구가 그 약속을 잊지 못하고 직장에 취직해서 열심히 돈을 벌어 남자를 공부시키고 크게 출세시켜 성공한 후에 결혼까지 한 것이다.

 

결혼 후에도 아내는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도록 남편더러 우리 안락을 위해선 돈 쓰지 말고 검소하게 살아 여유가 생기면 이웃을 돕자고 했다. 반면에 남편은 이 정도 되었으니 나도 내 인생을 내 멋대로 즐길 권리가 있다고 하면서 마치 그 자리에 이른 것이 자기 실력으로 된 양 큰소리쳤다. 아내는 한 번도 내가 하자는 대로 해준 적이 없으니 잔소리는 그만하고 대신에 이제부턴 내 말대로 잘 들어주는 여자랑 살겠다면서 집을 나갔다.

 

그러다 큰 교통사고가 나서 거의 죽다 살아났다. 그 때서야 천벌을 받은 것으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은 패물과 돈을 다 챙겨서 아내를 찾아와 돌려주고 잘못했으니 제발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세 번이나 싹싹 빌었는데 의외로 쉽게 세 번 다 용서해주었다. 특별히 마지막 세 번째는 외부 모임에는 부부가 동반해 나가서 사이가 좋아진 것처럼 하여서 자기체면 즉, 이름을 세워달라고 했는데 아내가 그 일도 당신 말대로 해주겠다고 순순히 대답했다.

 

과연 이럴 때에 남편이 아내의 용서를 쉽게 믿을 수 있겠는가? 남편은 각서도 쓰고 패물도 돌려주는 등 행동으로 회개의 표시를 했다. 아내는 말만으로 용서했다. 남편이 생각해도 아내가 자기를 볼 때 얼마나 한심하겠는가? 정이 완전히 떨어졌을 것이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용서한 증표를 달라고 했는데 이를 두고 남편이 의심이 많다거나 성격이 끈질겼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설명만으로는 많이 부족하다. 그보다는 남편은 자기가 지은 죄가 너무 크다고 인정한 것이다. 아내의 평소 성격이 온유하고 사랑이 많아 양보 희생한다는 것을 남편은 잘 알고 있다. 아내를 못 믿은 것이 아니다. 자기가 용서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모세가 구한 하나님의 영광은?

 

모세도 금송아지 배역사건이 얼마나 하나님께 가증스런 죄악인지 절감했다. 처음 출애굽 때에 애굽의 금은보화를 탈취케 한 것은 전쟁에 승리했으니 패전국에 대한 당연한 권리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이다. 시내 산에서 성막과 언약궤에 대한 계명을 계시 받으면서 하나님 당신의 영광을 드러낼 성전의 기구에 쓰라고 금을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데 산 밑에선 그 소중한 금으로 황소 우상을 만들어서 음란하게 섬기고 있었다.

 

성경은 인간들이 썩지 않을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 없어질 짐승의 형상으로 바꾸어 섬길 정도로 타락했다고 선언하고 있다.(롬1:23) 하나님의 영광은 영원히 결코 썩지 않는다. 눈곱만큼도 줄거나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상징하기 위해 지상에서 썩지 않고 본래의 모습과 색깔을 가장 오래 유지하는 금으로 성전 도구를 제작하라고 명했다.

 

그런데 출애굽의 큰 은혜를 입은 이스라엘은 기껏 15년 수명의 황소로 만들어 자기들 신이라고 숭배했다. 황금을 비롯해 이 땅의 모든 것은, 인간이 성취한 어떤 화려하고 장엄한 한 것이라도 언젠가는 썩게 마련이다. 거기다 인간의 수명도 너무 짧다. 마침 모세 스스로도 인간의 년 수도 칠십이요 강건해야 팔십인데 그것도 수고와 슬픔 가운데 날아간다고 탄식했다.(시90:10)

 

하나님만이 유일하게 영원토록 자존하는 절대자이다. 야고보 사도는 그분에게 변함은 물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고 했다.(약1:17) 인간의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실체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그분이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는 것은 그분의 사랑도 그렇다는 것이다. 회전하는 그림자처럼 그 사랑 안에 불순물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썩지 않고 영원히 변함없을 수 있다.

 

결국 모세가 구한 영광의 뜻은 무엇인가? “저희가 지은 죄가 심히 막중합니다. 그에 비해 하나님은 너무 쉽게 용서해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과연 이 큰 사랑을 받을 자격과 조건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용서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도무지 믿기지 않습니다. 또 제가 무엇이관대 제 보잘 것 없는 기도로 이렇게 큰 은총을 베푸십니까?”라는 고백이다.

 

또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때문에 완전히 땅에 떨어졌습니다. 우리 모두 마땅히 진멸되었어야 함에도 당신의 나라 건설에 아직도 우리가 쓰임 받을 여지가 남아 있다니 이런 영광을 도무지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제 어리석은 이성과 보잘 것 없는 믿음으로는 도무지 이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당신께서 세우십시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럼에도 우리를 버리지 마시고 당신의 그 영광 중에 끝까지 품어주십시오.”라고 간구한 것이기도 하다.

 

하나님이 주신 증표는?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증표는 무엇인가? 모세가 당신의 영광의 뒷면이라도 본 것인가?(23절) 아니다. 이 또한 성경 안에 답이 있다. 성경을 자세히 잘 보셔야 한다. 모세를 바위틈에 숨겨서 당신의 영광이 자나도록 당신의 손으로 덮으셨다. 손을 거두자 당신의 앞은 보지 못하고 뒤만 보았다.

 

그런데 정말로 하나님의 실체가 지나갔다면 그 뒷면만 보아도 살아남지 못한다. 손으로 덮는다고 했는데 손이 실체라면 죽기에 덮을 수도 없다. 우주 전체를 창조하시고 그 전부를 완벽하게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우주 전체로 따지면 먼지만한 지구에 임재할 수 없다. 솔로몬도 성전을 봉헌하는 기도에서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한다고 했지 않는가?(왕상8:27)

 

다시 20절을 자세히 보시면 얼굴을 보면 살 자가 없다고 했다. 하나님의 얼굴이 그럼 실체라는 뜻이다. 뒤를 보고도 살았으니 뒷면은 실체가 아니고 단순히 그분의 임재의 상징이다. 그마저 모세가 눈 감고 있는 사이에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지나간 것을 20절이 뭐라고 표현하는가? 하나님의 모든 선한 것(개역 성경에는 형상)이라고 한다. 실체가 아니었다. 특별히 내 이름을 선포한다고 했다. 결국 모세는 하나님의 어떤 형상도 보지 못했고 평소처럼 하나님의 선포하신 말씀만 들은 것이다. 그 말씀이 무엇인가?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모세가 저희가 지은 죄가 너무 막중해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고백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이다.

 

내가 은혜와 긍휼을 베품에 인간의 조건과 자격은 전혀 문제 삼지 않는다. 인간이 노력한다고 받는 것도 아니며 인간이 정한다고 주는 것도 아니다. 오직 당신께서 받을 자를 정한다고 했다. 네가 이 은혜를 감당치 못하겠다는 진정어린 고백이 너무 기특하고 심히 기쁘다. 그런 자만이 당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용서하고 사랑하는데 조건과 자격이 거론되면 이미 용서와 사랑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와 너는 어려서 소꿉장난 할 때에 이미 장래를 약속한 사이다. 아브라함을 400년 전에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낼 때부터 이스라엘은 내 남편이고 나는 그의 조강지처였다는 것이다. 인간끼리 약속은 안 지킬 수 있으나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토록 불변이다. 비록 인간이 내 품을 잠시 벗어나거나 멀리하거나 의심 불평 원망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너무나 가증한 죄를 범했어도 언제든 진심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당신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끈질기고도 의심 많은 모세

 

하나님이 모세에게 앞은 안 보여주고 뒤만 보게 하신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고 당신의 사자만 보내겠다고 하자 이스라엘은 크게 슬퍼했다. 그래서 모세가 제발 당신의 백성으로 여겨달라고 기도했다.

 

지금 하나님이 앞서가는 모습으로 그 증표를 보였다. 여호와의 사자가 앞서 간다면 당연히 당신도 동행하신다는 뜻이다. 당신의 백성이 아닌데 어떻게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며, 또 당신의 실체는 보면 다 죽으니까 사자만 앞서 보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번 가나안 진군도 출애굽 때와 같이 당신의 얼굴, 이름, 그 권능이 가장 앞장선다는 것이다.

 

모세의 믿음은 분명히 끈질겼다. 처음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대면할 때도 다섯 번이나 되물었다. 지난 80년 간 당신의 부재와 외면으로 겪는 상처 때문이다. 또 스스로 사명감에 불타서 애굽 관원을 섣불리 죽인 실수를 다시 하지 않겠다고 각오한 탓이다.

 

그럼에도 그의 믿음에는 일관된 자세가 하나 있었다. 자신은 철두철미 낮추었다.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받을 자격 조건 성품 삶이 심지어 믿음이 안 된다고 인정했다. 그분 앞에 자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엎드렸다. 그는 자기를 내려놓고 비우는데 아주 끈질겼다.

 

또 그 끈질김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의 낮아짐은 죄책감, 자책감, 겸손함, 비움 등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그렇게 비워진 곳에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채워지길 끈질기게 소망했다. 하나님이 외면하시면 갈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분이 동행하지 않으면 절망과 죽음뿐인 이 땅에서 더 이상 살아갈 의미와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동행해주지 않으면 내 이름을 당신의 생명책에서 지워달라는 요구도 그렇다. 하나님이 동행해주지 않으면 자기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뜻이지 않는가? 자신의 모든 것이 다 없어져도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 지난 80년간 하나님의 영광을 찾고 또 찾아서 이제 겨우 당신의 영광 가운데 들어왔다는 것이다.

 

모세는 분명히 의심도 많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절대적 권능, 완전하신 성품과 속성, 구원의 섭리, 무조건적 사랑에 대한 의심은 전혀 없었다. 대신에 자기 같은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택한 자가 되는 은혜를 입었는지, 나아가 이스라엘이 그 가증한 죄를 짓고도 당신의 긍휼을 받았는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진지하게 물어야할 질문 하나.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할 질문이 하나 생겼다. 모세처럼 하나님 영광의 뒷면이라도 본 적이 있는가? 보지 않았다면 모세처럼 보여 달라고 기도한 적이라도 있는가? 그분의 실체를 보거나 직통계시를 받으라는 것이 아니다. 도무지 감당이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그분의 은혜와 긍휼을 받은 적이 있는가? 어찌 저 같이 비천하고 죄 많은 자에게 이런 사랑을 베푸시는지 의심스럽다는 고백이 절로 나온 적이 있는가?

 

그 은혜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처음 예수 믿을 때 큰 교통사고가 났음에도 기적적으로 머리카락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났을 수 있다. 완전히 쫄딱 망했는데 전혀 생각지도 않던 사람이 도와주어서 재기에 성공했을 수 있다. 사람마다 그분을 만나는 방식은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일만은 분명히 하나님이 해주셨다, 그 분이 아니고는 이 일은 절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절감하고 그분께 완전히 항복한 적이 있는가 말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를 이름으로 아시고 그분의 은혜와 긍휼을 받을 자로 뽑혔음을 확신하는가? 자기 멋대로만 살아가는 세상 사람과 전혀 다르게 살도록 세상에서 불려나왔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는가?

 

조금 더 실감나게 말해보겠다. 하나님 제가 기도하고 헌금하고 봉사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왜 아직도 이 모양 이 꼴로 그냥 두시는지 의심 불평 원망이 생기는지? 이젠 그런 것들이 없어졌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물론 인생살이가 너무 고달파 그런 심정이 드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이 나를 은혜를 베풀 자로 뽑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반증이다. 신자는 어려서부터 하나님과 서로 장래를 약속한 사이다. 나는 그분의 남편이고 그분은 나의 조강지처라이다. 그분의 선하심과 의로우심이 평생에 나를 떠나는 법이 결코 없다.

 

예수를 믿어 그분의 이름으로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독생자 예수를 통해 이미 보았다. 십자가에서 죽어 마땅한 우리 대신에 그분이 죽으심으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 너무나 초라한 가시덤불이었던 우리에게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고 그분과 대면하는 체험을 했다. 지금도 하나님은 그 떨기나무로 이 자리에 임재 하여 계신다.

 

우리는 연약하여 매일 쓰러지고 또 쓰러질 수 있다. 그래서 모세처럼 세상에선 아무 소망이 없음을 절감한다. 하나님께로 오는 은혜와 긍휼만이 우리의 소망이기에 끈질기게 매주 꼬박꼬박 교회로 예배드리러 나온다. 수십 수백 번이라도 그분께 은혜와 긍휼을 내려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할 수 있는 특권을 소유한 신분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자 된 영광이자 그분에게도 큰 영광이다.

 

6/17/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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