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관상을 봐도 되는지요?

조회 수 97 추천 수 0 2019.04.16 10:50:29

신자가 관상을 봐도 되는지요?

 

[질문]

 

저는 사람 얼굴을 관찰하여 데이터를 모으고 연구해서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데 실제로 거의 맞아떨어집니다. 어렸을 때에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으로부터 오는 리스크를 미리 감별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입니다. 물론 신자는 사람의 외모로 차별하면 안 되고 당하는 자의 입장에선 자기 잘못이나 책임도 아닌데 많이 억울할 것입니다. 제 지난 경험으로 관상과 성격이 소름끼치도록 일치하기에 어리석은 소견에 하나님이 각자의 외모를 만드셨다면 그에 적합한 성품도 함께 조성하셨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입니다.

 

[답변]

 

두 종류의 점쟁이

 

점쟁이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우선 신 내림을 받은 무당은 의뢰인의 과거사를 알아맞힌 후에 일부 미래사까지 예언합니다. 신 내림이란 자신의 지정의와는 상관없이 사탄의 영에 자기를 완전히 내어주는 영매(靈媒)의 역할을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점괘는 그 악령이 풀어주기에 간혹 족집게라는 평판을 얻는 무당도 있습니다.

 

둘째로 토정비결, 사주팔자, 관상, 손금 등을 봐주는 역술인입니다. 그 중에도 특별히 관상은 질문자가 행했던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데이터를 모아서 평균을 낸 것입니다. 통계를 내어 확률에 따라 분류 정리한 것이라 어느 정도 타당성도 있습니다. 오래 전에 한국최고 재벌회장이 신입사원 면접할 때에 역술인을 참석시켜 관상을 보게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신 내린 점쟁이는 신자는 절대 찾아가선 안 되지만 둘째 부류의 역술은 꼭 나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신자들도 꽤 있습니다. 불신자 시절의 습성이 남아서 일부 그런 것에 의지하거나, 그저 호기심으로라도 보기도 합니다. 질문하신 대로 단순히 사전경고의 의미로 관상을 참조만 하는 정도는 괜찮지 않는가 여기기도 합니다.

 

관상에 관한 성경적 견해를 말씀드리기 전에 흔히들 쉽게 간과해버리는 그런 생각의 가장 큰 오류 하나를 지적하겠습니다. 서양식 도박은 확률의 게임인데 카지노의 주인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게끔 확률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해 주인과 손님이 6:4 혹은 7:3으로 나눠 갖는 셈입니다. 그럼 손님들도 가끔은 돈을 크게 딸 수도 있지만 계속하다 보면 결국은 다 잃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이 자기가 크게 땄던 때만 기억하고 다시 그렇게 딸 수 있을 줄 알고 계속 하다가 도박중독이 되고 패가망신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관상도 맞아떨어진 경험은 끝까지 기억에 남기에 신빙성 있다고 과신해버립니다. 도박에서 돈을 잃은 적이 더 많았듯이 관상이 맞지 않았던 경우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됩니다.

 

실제로 얼굴이 곱상하고 체격도 연약한 사이코 패스가 더 많습니다. 사기꾼들은 가장 먼저 외모를 가꾸고 항상 웃는 얼굴로 다가옵니다. 험상궂게 생긴 사람 중에 의리파가 더 많을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관상학을 처음 고안한 사람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 것들만 근거로 삼았지 틀렸던 적은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며, 나아가 맞을 확률이 얼마인지 틀릴 확률이 얼마인지 전혀 과학적인 통계를 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슈퍼컴으로 빅 데이터를 산출한 것도 아닙니다. 그대로 따르다가 거꾸로 낭패를 볼 확률도 높습니다.

 

부부는 얼굴을 닮는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닮은 사람에게 호감을 느껴 결혼할 수도 있지만. 살아가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더 타당합니다. 부부는 항상 같은 희로애락을 겪기 때문에 동일한 감정에 따라 얼굴의 동일한 근육이 움직인다고 합니다. 따라서 오랜 세월 동안에 얼굴이 동일한 패턴에 따라 움직였기에 차츰 얼굴이 닮아져 간다고 분석합니다.

 

결국 한 사람의 관상도 시간, 사건, 여건에 따라 변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어른이 될수록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자기 얼굴 표정을 자신의 내면과 함께 일치시키든지, 아니면 내면을 감추고 위장하든지 둘 중 하나만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에게 항상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관상 법칙은 없습니다.

 

관상이 가장 안 좋았던 예수님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17:9-11)

 

성경은 먼저 사람을 주관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관상이 아니라 마음인데 모든 이의 마음은 거짓되고 부패해서 전혀 믿을 바가 못 된다고 선언합니다. 거짓된 마음이란 속은 악한데 겉은 선한 척하여 속였다는 것입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부자의 관상만 믿고 속아 넘어갔을 수 있고 부자는 또 그렇게 해서 부를 축적한 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폐부까지 속속들이 아시기에 불의로 치부한 자는 중년(나중)에 부를 잃게 만들고 그 종말은 어리석은 자가 된다고 즉, 당신의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바꿔 말하면 관상의 확률을 카지노와 비유했던 앞선 설명처럼 한 인생을 장기적으로 따지면 결코 관상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 인간의 이 땅에서의 운명은 관상은 물론, 자기 자신, 주변 사람과 여건, 사탄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그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성경의 모든 인물 중에서 관상학적으로 가장 별 볼일 없었을 것으로, 아주 잘 봐주어서 지극히 평범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사53:2,3)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에 대해서 예언한 내용입니다. 주님보다 600년 전의 선지자가 마치 십자가 사건 현장에 있은 듯이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선 2절에선 주님의 관상(고운 모양)과 골상(풍채)이 그리 좋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 따라 멸시했고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주님의 이 땅에서의 인생은 관상학대로 고난으로 점철되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은 하나님은 당신의 진노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사탄의 멍에에서 풀어내는 너무나 거룩하고 완벽한 구원계획을 주님의 관상과 전혀 상관없이 당신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4-6)

 

상기의 예레미야 선지자는 관상이 좋아서 출세한 자를 하나님이 망하게 한다고 선언했고, 주님의 경우는 그 반대로 관상이 안 좋았는데 당신께서 영광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관상은 정말로 휴지조각도 아닙니다. 그분은 관상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는 인간을 만들거나 그에 따라 적합한 성격도 주지 않았습니다.

 

관상 좋지 않은 사람만 모인 교회

 

세상 사람들은 다른 이를 외모로만 판단하여서, 그 중에는 관상과 골상도 당연히 포함하여, 차별하며 관계를 맺고 이어갑니다. 필연적인 결과로 세상은 관상이 좋은 사람이 형통하고 출세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러다보니 관상은 더 믿을 수 있는 것처럼 간주됩니다.

 

예수님의 관상이 별 볼일 없으니까 자연히 그 비슷한 자들이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 스스로도 세리, 창녀, 과부, 귀신들린 자, 불치병자, 불구자, 고아 등등 인간 사회에서 팔자가 드센 사람들과 주로 교제했습니다. 말하자면 세상에선 처음부터 괄시 받을 운명을 타고났다고 판단 정죄되었던 자들을 세상에 없는 사랑으로 품어서 치유하고 구원해주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세리장이었던 삭개오입니다. 민족의 반역자인데다 거의 난장이였으리라 추정되는데 당연히 사람들의 멸시만 받았습니다. 아마 본인도 그래서 세리밖에 할 수 없었으리라고 보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간사회가 그렇게 상대해주니까 결과적으로는 관상과 골상대로 그 인생이 흘러간 셈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그 집에 들어가 유숙하며 교제하고 사랑을 베풀고 구원해주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6-29)

 

세상에선 전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주님이 택하여 구원을 베풀고 교회로 불러 모았다고 합니다. 관상 때문에 천대 받은 자들도 포함됩니다. 그렇다고 주님이 세상에 강한 것들을 차별대우 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대로 거짓과 불의로 강해졌기에 그에 따른 벌을 주신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관상은 전혀 개의치 않고 교회로 불러 모으는 까닭은, 그래서 교회 안에 오히려 관상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 까닭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사람들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 외모로 즉, 관상이 좋다고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도 관상으로 차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신자가 다른 이를 외모로 차별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단순히 도덕적으로 선한 일이기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자부터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자랑하지 말고 겸손해지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모든 육체를 지으셨기에 모든 이가 당신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시고 또 그래서 각자의 인생을 당신의 절대적이고 완벽한 주권과 섭리로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관상은 한 사람의 운명이 사전에 완전히 결정되었다고 말합니다. 거기다 통계도 과거에 일어난 일의 평균일 뿐입니다. 모든 인간의 미래는 하나님만이 각자에게 고유한 뜻대로 이끄십니다. 관상으로 따져 최고로 좋지 않은 극악무도했던 살인자도 주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선 거룩하게 변화되어 그분의 일에 평생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관상 안 좋은 사람부터 사랑하라.

 

신자가 관상 대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아야 할 가장 첫째가는 이유는 한마디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인간인 주제에 방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삭개오의 예에서 보듯이 신자가 관상 때문에 멀리 했던 사람으로 인해 하나님은 더 큰 영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차별한 신자도 바로 그 차별 받은 사람으로 인해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었는데 스스로 그 기회를 발로 차버리는 너무나 어리석은 실패가 될 수 있습니다.

 

단지 도덕적 종교적으로만 판단하여 신자가 관상을 보면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한 것이므로 그분께 벌을 받을 수 있다는 미성숙한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 그분마저 외모로 인간을 차별하는 분으로 비하시키는 것입니다.

 

관상과 골상이 그리 좋지 않았던 예수님이 이 땅의 그런 자들을 사랑으로 먼저 품어주셨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합니다. 비록 주님이 사랑했던 그들이 세상에선 당신처럼 끝까지 괄시 받았고 심지어 순교를 당하기도 했지만 하나님 나라에선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아니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눈에는 아름다운 용모와 좋은 풍채로 비춰집니다.

 

질문자께서 가까운 사람에게 학대를 당했고 관상이 어느 정도 맞을 확률이 있는데다 부패하고 거짓된 사람들에게 속지 않으려는 사전 경고의 의미로 참조하겠다는 그 심정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얻은 정보라도 그 사람에게는 절대 적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전 경고라는 본래의 의도대로 자기에게만 적용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더욱 겸손히 낮추셔야 합니다.

 

요컨대 자신의 관상에도 전혀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전부를 그분께 내어드려서 그분 뜻을 실현하시라는 것입니다. 관상에 따라 다른 사람을 상대하면 그 사람도 자기를 그렇게 대할 것입니다. 신자는 인간 세상에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관상은 인간 세상에만 그것도 일부 사람들만 믿고 따릅니다. 신자는 세상 안에 살아가야 하지만 하나님께만 속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주님처럼 관상이 좋지 않은 사람을 멀리하기는커녕 오히려 먼저 찾아가서 더 큰 사랑과 친절로 품어주고 십자가 복음 안에서 교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분의 나라가 누룩처럼 조금씩 번져나가게 해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다시 강조하지만 관상 같이 외모로 차별하지 않는 것이 그 사람과 하나님을 위하는 길이기도 하지만, 세상이 괄시하는 사람을 오히려 사랑할 때에 신자 본인이 성숙되고 주님의 더 큰 은혜를 받아 누려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주님 안에서 더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관상 대로 판단하는 것은 세상 사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며, 관상이 나쁜 자를 먼저 찾아가서 사랑하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서는 것입니다.

 

3/3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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