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히12:9, 마1:21)은 보편속죄를 주장하는가?
[질문]
히브리서12장 9절에 “모든 영의 아버지”라는 말씀은 불신자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인가요? 보통 성경은 하나님 백성 곧 거듭난 자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믿지 않는 자들은 마귀의 자녀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구분하는데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 만물의 창조자이자 생명의 주관자로서 모든 영의 아버지라 이해하고, 영적으로만 믿는 자들의 아버지가 된다고 해석하면 되는지요? 보편 속죄를 주장 하는 사람들은 이 구절을 세상 모든 사람을 위해 속죄하셨다고 설명합니다만... 마태복음1장 21절의 자기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말씀도 자기백성을 세상 모든 인류로 해석 합니다.
[답변]
성경을 해석할 때는 가장 먼저 해당구절을 앞뒤 문맥의 의미의 흐름과 연결해서 그 뜻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문맥에서 찾은 뜻을 그 책의 주제와 합당한지, 성경 전체가 말하는 진리와 상충되지는 않는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바꿔 말해 성경을 해석할 때는 절대로 한 문장, 구절, 단어의 의미에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기의 주장은 이 최고 금지 사항을 어김으로써 무리한 해석을 낳은 것입니다. 실은 자기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본문과 상관없는 의미를 억지로 갖다 붙인 것입니다. 해당구절의 앞과 뒤 한 구절씩만 함께 살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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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히12:8-10)
히브리서 12:4-13이 한 묶음으로 신자가 된 후에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징계는, 심판이 아니라, 반드시 있다는 것을 논증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원 받은 신자의 성화를 주제로 말하고 있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목적과 효과가 제한적이냐 보편적이냐를 논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본문에서도 단순히 자기 개인의 육신적 아버지와 모든 사람의 영혼까지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대조하는 의미로만 말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10절에서 다시 두 아버지의 징계의 목적을 대조해서 설명한 것입니다. 그렇게 대조한 데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육신의 아버지는 본인의 부족한 뜻이나 일시적인 감정에 따라서 잘못된 징계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쨌든 자식이 잘 되라고 징계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뜻은 더더욱 그러하면서 완전한 징계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직 신자의 유익을 위해서 징계를 하여서 당신의 거룩함에 참여하게 만드신다고 말합니다.
둘째는 징계를 해도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그 관계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은혜로 구원을 준 신자에게 더 이상 정죄도 없고 그분의 사랑에서 신자를 끊어낼 것도 단 하나도 없습니다. 요컨대 구원의 취소는 없는 법입니다. 이것은 본문 상의 의미가 아니고 그 비유에 내포된 의미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원어는 단순한 복수 표현이지 ‘모든’이라는 수식어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영어번역과 최근의 한국어 번역에는 그래서 “영들의 아버지”라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초기번역본들이 어떤 영들의 아버지인지 논란이 생기는 것을 막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의미를 강조하려고 ‘모든’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개인적인 아버지와 하나님 아버지를 대조하되 육신적 아버지와 영혼을 주신 아버지로 나누는 뜻일 뿐입니다. 요컨대 영들의 아버지는 당신의 형상을 닮게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입니다.
이 구절이 보편 속죄의 타당성을 입증한다면 성경에서 앞뒤 문맥의 주제와 상관없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언급할 때마다 ‘모든 사람의’ 혹은 ‘일부 사람의’라는 수식어를 붙어야만 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됩니다. 무엇보다 원문에도 없고 번역시에 오해를 막으려 붙인 ‘모든’이라는 단어 하나를 갖고 문맥의 뜻과도 전혀 상관없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 진리를 옹호하려는 것은 그 출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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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이 구절에 대한 해석도 상기와 동일한 잘못을 범한 것입니다. 저자의 의도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예수(여호수아)라는 이름의 뜻을 밝히려는 것뿐입니다. 구원의 범위를 밝히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거기다 상기 구절과는 달리 ‘자기’(his)라는 제한되는 범위라는 뜻의 수식어까지 붙었습니다. 본문에서부터 예수님이 구원을 주실 자에 국한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입니다.
문맥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지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요1:11) 예수님이 구약의 언약대로 메시아로 유대 땅 이스라엘에게 왔으나 자기 백성이 오히려 배척했다고 합니다. 이 구절에선 “자기 백성”이 모든 인류가 아니고 예수님을 거역한 불신자를 지칭합니다. 이처럼 문맥에서 강조하려는 주제는 무시하고 단순히 ‘자기’ 혹은 ‘모든’이라는 수식어만 가지고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아선 안 됩니다.
구약의 여호수아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제사장 나라를 세우는 직분을 맡았습니다. 말하자면 유대 민족만의 구원자였습니다. 이제 신약의 여호수아는 모든 민족에게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고 죄에서 구원할 것입니다. 만약 이 구절이 보편 속죄의 근거가 되려면 자기 백성보다는 ‘모든’ 백성(all nations)이라고 해야 합니다.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려면 다른 구절에서 ‘모든’에 초점을 맞추어서 해석했다면 본문에선 ‘자기’라는 말에도 초점을 맞추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성경해석의 원칙대로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 성경전체가 말하고 있는 진리와 대조해봐야 합니다. 이 경우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만 비춰 봐도 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동일 주제에 대해서 여기서는 이런 뜻으로 다른 곳에선 다른 뜻으로 말할 리는 절대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 또 이르시되 그러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요6:39,65)
따라서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자기 백성’(his people)도 하나님이 보내주어야만 예수님께 올 수 있고 또 그런 자를 반드시 주님이 구원해주는 “택하신 일부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3/15/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