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성경 구절들?

조회 수 190 추천 수 0 2022.12.22 11:12:40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성경 구절들?

 

[질문]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나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어서 몇 가지 질문드립니다. 

 

질문 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창11:6)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낱 인간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실 리가 없는데 대체 무슨 의미인가요?

 

질문 2.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인데 굳이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지 않아도 아브라함의 마음을 충분히 파악하실 수 있는 분인데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아브라함 뿐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람의 마음을 다 파악하고 계실 텐데 굳이 시험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질문 3.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판결? 아브라함이 애굽에 갔을 때 아브라함은 사래를 자기 누이라고 속이고 파라오가 사래를 데려가는 걸 막지 않았습니다. 이 후에 하나님께서는 파라오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는데 누가 봐도 아브라함이 먼저 거짓말을 했고 파라오는 속은 것 뿐인데 왜 파라오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을까요? 이후 아비멜렉 때는 하나님께서 미리 경고를 해주셔서 재앙을 피해가는데 파라오의 경우는 이런 것도 없죠.  모 유튜버는 이걸 트집 잡으며 아브라함을 성매매 사기꾼, 하나님을 깡패에 비유하며 조롱하는데 뭐라 반박할 말이 없더라고요. 하나님께서는 대체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답변] 

 

답변드리기 전에 세 질문에 다 적용되는 성경 이해에 대한 중요한 원리 몇 가지를 먼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그분의 절대적 진리가 계시 된 책이지만 인간 저자의 손을 빌려 저작된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말을 통해서 당신의 뜻에 대해서 교통해야 하므로 인간 언어가 지니는 통상적인 표현법과 문학적 양식이 사용되었습니다. 요컨대 성경도 인간이 저작한 일종의 문학작품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해석하기 전에 시가, 격언, 역사, 전기, 예언, 묵시 등 어느 장르에 속하는지 구분하고서 사용된 구체적인 수사법에 비추어서 합당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예컨대 시가서는 아무래도 상징과 비유 기법이 많이 사용되며, 그 내용도 찬양 감사 회개 기도 등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산문도 역사적 사실, 영적 진리, 도덕적 종교적 계명, 나아가 악인과 사탄에 대한 객관적 진술 등등 다양한 내용을 다룹니다. 

 

모든 다른 종교의 경전은 인간 선각자가 세상과 인간에 대해 각성한 진리나 도덕적 계명 위주로만 기록해 놓았습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은 그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종의 인생에 개별적으로 또 그 백성의 공동체의 역사에 개입 간섭 주관 통치하시면서 당신께서 인간이 꼭 알아야 하는 영적 진리들을 계시해주셨습니다. 성경의 저자들은 그분의 은혜와 권능에 대해서 자신들의 삶과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서 실제로 체험했던 바와 또 전체 세상 역사 가운데 실현된 그분의 진리를 깨달은 바대로 기록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거룩하고 완전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물론 그와 대조되는 죄로 타락한 인간의 추악한 죄악상이나 하나님의 대적이 한 말과 행동 등도 함께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 문단, 구절, 문구, 단어 하나하나까지 그분의 완벽하고 거룩한 뜻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다른 경전과는 달리 훨씬 미개하고 불합리하며 때로는 아주 덜 경건해 보이는 까닭입니다. 

 

죄로 찌든 인간이 추악한 것과는 일 초도 공존하지 못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실체를 보는 순간 소멸해버립니다. 하나님이 설령 살려두고서 당신의 실상을 온전히 밝혀도 인간은 절대로 그분과 그분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언어로 교통할 수밖에 없는데다 당신의 뜻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어서 드러내십니다. 인간 저자도 지혜의 영이신 성령의 인도를 받아 깨달은 범위 내에서 저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하나님이 계시하신 내용도 당신의 전부가 아닌 일부이며, 계시하신 방식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차원에서 인간의 언어로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서 당신을 낮추신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뜻을 실현해가면서 거룩하게 살아가는데 필요한 진리는 전혀 부족함이 없도록 충분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지혜로운 인간이라도 아담의 타락 이후에 그분의 영적 진리에 대해선 완전히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그런 수준에 맞추어서 마치 인간과 동일한 모습으로 사고, 판단, 언행, 행동하는 것처럼 당신에 대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성경은 하나님이 질투도 하고, 화를 불같이 내시기도 하고, 슬퍼 울기도 하며, 기뻐서 노래 부르며, 때로는 당신의 뜻을 번복하는 듯한 존재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인간처럼 얼굴을 가렸다거나, 의로운 손을 펼쳤다, 발로 딛고 섰다는 등, 인간의 신체적 특성으로도 비유하는데 성경의 이런 특성을 간단히 신인동형법(神人同形法, Anthropomorphism)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인간처럼 때로는 인간보다 더 못하게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표현일지라도 그 문자적 의미처럼 하나님의 동등 내지 열등함을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특별한 사항을 더욱 강조하려는, 특별히 그분의 뜻과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하려는 문학적 기법일 뿐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스라엘 때문에 다른 우상 신들에게 질투한다는(출20:5, 34:14 등)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다른 우상 신들이 실존하거나, 그 신들에게 이스라엘을 빼앗겼기에 그 신에게 시기심을 드러냈거나, 나아가 하나님의 능력이 그 신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현실적 탐욕으로 당신과 함께 우상도 음란하게 섬기는 죄에 대해서 크게 분노하고, 그러면서도 그들을 너무나 사랑한다는 뜻을 실감 나게 표현한 것입니다. 남녀가 정말로 사랑하지 않으면 질투도 하지 않으며 연인이 잘못을 범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분노가 치미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인간 이성, 종교성, 영성 등이 많이 미숙했던 구약시대의 기록에 이런 식의 표현들은 더 많이 나옵니다. 그런 표현들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선 정말로 하나님을 비천한 인간의 수준으로 떨어트립니다. 어디까지나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준 것이니까 당시의 상황이나 앞뒤 문맥을 잘 살펴서 하나님 그분의 입장에서 분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원리 하나만 적용해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던 상기 세 질문의 답을 아주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완벽한 진실함과 선하심과 아름다움이시기에, 어떤 역사에도 단 한 치의 죄는 물론 하자, 불합리, 불공평, 모순이 개입될 수 없다는 절대적 전제를 벗어나서 해석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대신에 그분이 인간처럼 연약하거나 열등해 보이는 표현에선 말씀드린 대로 어떤 점을 강조하려는지 잘 파악해야 합니다. 세 가지 질문뿐만 아니라 앞으로 모든 성경을 읽을 때마다 반드시 기억해서 적용해야 할 대원칙입니다. 

 

이런 성경 해석 원리와 관련된 유사한 질문에 대한 이전 답변 글도 참조하십시오. 

 

하나님이 뉘우치셨다니 이해가 안 됩니다.

 

 

답변 1. 

 

인간의 바벨탑 쌓기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한낱 인간이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실 리가 없는데”라고 하셨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당연히 막을 수 있으며 수백만 가지 방법을 동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인간을 온 사방에 흩으시고 언어를 나눠서 그런 시도를 막았습니다. 그러기 전에 당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인간들이 계속해서 끝까지 완악하게 당신을 거역하며 인간만의 왕국을 지상에 건설하려 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불신 세상의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어왔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자기들 탐욕과 죄악의 삯으로 영원한 죽음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으며 그중에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남은 자들만 오직 하나님만을 주인이자 왕으로 모시는 공동체(교회)를 이 땅에 세우도록 할 것입니다. 

 

답변 2.

 

“굳이 아들인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지 않아도 아브라함의 마음을 충분히 파악하실 수 있는 분인데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의 가장 깊숙한 심령의 숨은 것까지도 당연히 꿰뚫어 다 아십니다.(시편139편 참조) 아브라함의 순전한 믿음을 모르실 리는 없습니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것은 하나님이 단순히 그의 믿음의 순전함을 시험해보려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겐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한 외아들입니다. 만약 그 이삭과 하나님 둘 중에 누구를 더 사랑하느냐고 말로 물었다면 당연히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을 실제로 번제로 바치라고 즉, 직접 칼로 죽이고 불에 태워서 바치라고 명했을 때 순순히 순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서 순종하는 것을 보려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까지는 사랑이 아니라는(짝사랑은 될 수 있을지언정) 속담도 있듯이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평생에 어려운 일들을 많이 겪으면서 어떤 경우에도, 특별히 불가능한 가운데도 아들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믿음을 확고하게 붙들고 있는지 행동으로 증명해 보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말로는 예수님을 자기 생명을 걸고 지키겠다고 큰소리쳐놓고, 그런 말을 했을 때에 그의 믿음은 순전하고 열정적이었지 절대 가식이 아니었음, 막상 자기 목숨이 걸리게 되자 세 번이나 부인했지 않습니까? 반면에 아브라함은 칼을 들고 정말로 이삭을 죽이려 했습니다.(창22:9,10) 하나님은 당연히 그렇게 순종할 것까지도 미리 아시고 이삭 대신에 번제 드릴 양을 따로 준비해두었습니다.(창22:13,14) 

 

예수님은 베드로의 큰소리치는 믿음을 순전하게 받았지만 그가 세 번 배반할 것도 아시고 미리 예언해주셨고, 실제로 그랬음에도 한 번도 꾸중하지 않고 용서해주셨습니다. 놀랍게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했던 모리아 산이 바로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 당한 골고다 언덕입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는 우리 죄를 대신할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예표 상징하는 더 깊은 영적 의미가 따로 있습니다. 다시 이해하기 쉽게 설명드리자면  부모도 자식이 지금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을 해주길 바라는지 다 알고 있지만 자식이 먼저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해 오길 기다렸다가 당신의 뜻에 합당하게 조치해주는 것처럼, 하나님도 다 아시지만 직접 기도로 상의하고 행동으로 순종하길 바라는 것입니다. 

 

답변 3.

 

하나님이 깡패일 리도 없고 아브라함이 성매매 사기꾼일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단편적인 기록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게 반박하는 유튜버에게 점잖게 한마디만 하십시오. 그렇게 곡해해도 당장 벌 받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살아계시는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그런 하나님이라면 믿기 싫고 믿지도 않겠다면 그렇게 평생 살라고 하십시오. 궁극적인 결과는 혼자 책임지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성경과 기독교를 비방 비평할 자격도 없지만 말입니다. 만약 가까운 사람 중에 그런 분이 있으면 계속 기도해주면서 합리적으로 변증을 해주어야 합니다.(벧전 3:15)

 

아브라함과 사라는 실제로 오누이 사이였습니다.(창20:12) 그리고 사라가 너무 예뻐서 부부 사이라고 하면 남편인 아브라함을 죽이고 사라를 취하려 들기에 외지인들에게 오누이 사이라고 말하기로 사전에 서로 약속했습니다.(창12:10-13, 20:13) 물론 만에 하나 아내를 빼앗기더라도 자기 생명은 살리려는 순전치 못한 그의 동기는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 전적으로 그분께 의탁하지 않은 것도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가 갈대아 우르 고향에 그냥 남아 있었다면 이런 약속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완전한 타국으로 이주했기에 이 부부를 보호해줄 현실적 안전장치는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든 목숨을 걸어야 할 위급한 처지에 빠질 수 있었기에 궁여지책이었습니다. 

 

반면에 바로의 경우는 이미 할렘에 후궁들이 수도 없이 많았고 사라는 아무리 미모가 출중해도 이미 나이가 상당히 들었습니다. 바로는 굳이 그를 취할 이유도 없으나 오직 외모에 혹하였고 또 자신의 자존심, 허영, 쾌락을 충족시키고 특별히 모든 종족의 여인을 첩으로 삼아서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기근을 피해서 목숨을 건지려고 자기 나라에 온 이방의 불쌍한 손님인 셈인데 도와주려는 생각은 없고 곧바로 자기 욕구만 채우려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로를 상종한 적이 전혀 없으며 바로는 신하의 칭찬을 듣고 곧바로 사라를 후궁으로 취하였습니다.(창12:15) 아마도 동의도 구하지 않고 무력으로 빼앗았을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따라서 사실상 바로가 갑이요 가해자이고 아브라함은 을이요 피해자입니다. 나아가 바로는 당시에 이방 세계와 사탄의 종들의 우두머리였습니다. 출애굽 사건에 보면 열 번이나 하나님께 완악하게 대적했는데 그 이유는 자기는 살아 있는 신이자 세상의 가장 위대한 신으로 숭배를 받고 있었기에 마찬가지로 자존심을 지키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 바로를 심판할 차고 넘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출애굽 때는 오히려 그런 바로를 열 번이나 용서해주며 인내하신 하나님입니다. 절대로 깡패 같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엘리멜렉은 바로와 전혀 다른 경우입니다. 그는 사라를 만날 때까지 왕자가 없었고 계속 그러면 왕국과 가문의 큰 위기입니다. 그동안 모든 방안을 다 시도해 봤을 것이나 실패했던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사라를 만났는데 이상하게 그를 후처로 취하면 뭔가 아들을 얻을 것 같은 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는 성령이 미리 역사해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리 꿈으로 잘못을 범하기 전에 성령이 계시해주었고 나아가 그의 순전한 동기와 또 현몽대로 순순히 따르는 모습을 보고 그 집안의 태를 열어서 아들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물론 두 경우 다 그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셨기에,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사전에 계획하신 각본에 따라 일어난 일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외아들 이삭까지 바치는 순종의 단계에까지 성숙시키고 나아가 그의 이름을 열방 앞에 복의 근원으로 온전히 세우시려는 뜻에 따른 것입니다. 그를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이 저주하고 그를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 축복해준다고 약속하셨는데(창12:3) 애굽의 바로는 아브라함을 저주한 자이고 아비멜렉은 그를 축복한 자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방의 한 노인을 통해 하나님은 가나안의 열방의 왕들보다, 특별히 당시 세계 최강인 바로보다 더 강력한 권능을 드러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연약하고 어리석은 판단으로 각 상황에 임기웅변으로 대처했으나 하나님이 그의 모든 약한 것까지도 주관하셔서 당신이 그와 맺은 언약을 당신께서 실현시킨 것입니다. 

 

성경을 단순히 인간 세계의 도덕 윤리 수준으로 파악하시면 안 됩니다. 성경의 주인공인 창조주 하나님은 일개 피조물인 우리와 비교가 아예 불가능만큼 선하고 의롭고 거룩하시며 완벽하신 분입니다.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당신의 거룩한 계획에 따라서 성경의 모든 사건과 인물을 주관하셨습니다. 한두 가지 사건을 두고 표면적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절대 금기 사항입니다. 성경 특별히 구약성경을 읽고서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나올 때마다 우선 이 신인동형법 해석 원리부터 꼭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질문하신 세 가지 문제 다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과 연결하여서, 하나님의 인류 구속사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질문 1,3에 관련해선 제 창세기 출애굽기 설교는 물론 구원 시리즈, 기도 시리즈 등에서도 자주 아주 깊이 다뤘습니다. 크롬을 실현해서 “whyjesusonly.com /이삭 번제” (혹은 엘리멜렉 등의 주제어만 뒤에 붙여서 검색하면 제 관련 글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런 글들에서 상기 답변보다 더 자세한 뜻을 함께 참조하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12/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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