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4:3-8) 지구의 멸망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구원 완성 담화 (8)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마24:3-8)

 

최근 전 세계적으로 무질서하고 타락한 양상들이 너무 많이 나타나서 모든 이가 종말이 조만간 닥칠 수 있다고 염려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간이 지구상에서 도무지 생존할 수 없는 생체학적인 멸망을 크게 두려워합니다. 인간끼리 힘을 모아서 어떻게든 모든 생활 여건을 개선해 보려 노력하나 나라마다 또 집단마다 추구하는 이익 목표가 달라 실제적 결실을 보기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일부 극단적인 비관론자는 화성으로 도피할 계획까지 세워서 실행에 옮기고 있습니다.

 

반면에 신자는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인류의 구원 역사를 당신의 뜻에 따라 영광스럽게 마감하는 종말을 믿습니다. 신자에겐 종말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큰 기쁨과 설렘으로 대비해야 할 거룩한 소망입니다. 그 소망을 올바르게 가꾸기 위해 신자로선 누구나 주님의 재림이 ‘언제’(when) ‘어떻게’(how) 이뤄질지 알고 싶어집니다. 

 

살펴본 대로 성경에 언제에 대한 구체적인 계시는 전혀 없으나 ‘어떻게’에 대해선 곳곳에서 진술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교파별로 혹은 목사님에 따라 ‘어떻게’에 관한 말씀의 해석이 각기 다르다는 것입니다. 비록 먼 훗날의 일을 비유, 상징, 묵시로 표현해서 해석에 어려움이 있다 쳐도 그 차이가 너무 다양하고 커서 신자들로선 솔직히 어떤 쪽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런 혼란을 제거할 해결책은 간단한데 재림의 주체이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확히 깨달아 종말과 관련된 다른 모든 말씀의 해석기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두 가지의 미혹

 

주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그 ‘어떻게’를 당신께서 다시 오시기 전의 징조(4-28절)와 직접 오시는 모습(29-31절), 두 단계로 나눠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먼저 오시기 전의 종말적인 상황에 대해서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은 종말의 시기와 징조를 궁금해하는 제자들에게 가장 먼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4절)는 경고의 말씀으로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종말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갖게 되는 첫째 이유가 사람의 미혹을 받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계시한 진리, 그중에서도 종말에 대해 지금부터 당신께서 가르칠 내용을 최종적 기준으로 삼으라고 못을 박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미혹을 두 가지로 나눴는데 첫째 자칭 그리스도라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도 속아 넘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주님은 초림 때 베들레헴 마구간의 구유에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으나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이를 심판하러 큰 영광중에 오십니다. 재림 때는 누구나 주님의 실체를 볼 수 있기에 자칭 그리스도라는 인간은 재림주가 절대 될 수 없습니다. 재림의 시기를 구체적으로 정하거나 자칭 그리스도라고 하면 무조건 둘 다 사탄의 종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속아 넘어가는 것은 이단 교주의 속임수가 현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 스스로 고달픈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무력한 마음이 앞서고 무엇보다 성경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은 탓입니다. 신앙은 목사의 말을 추종하기 이전에 성경의 절대적 진리를 정확히 깨달아 자기 삶에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속이는 자도 나쁘지만 속임 당한 자의 책임도 절대 무시될 수 없습니다. 잘못된 종말론이야말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해서 함께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지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둘째는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사람들이 퍼서 날라도 종말이라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마치 최근에 SNS로 온갖 종말에 대한 음모론이 퍼지는 상황을 미리 꿰뚫어 보신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6절)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음모가 아니라 실제로 전쟁과 기근과 지진이 곳곳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재난의 시작일 뿐 종말은 아니라고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은 물론 이방 족속들을 심판할 때 주로 전쟁과, 기근 지진 같은 자연 재앙과, 염병 세 가지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주님은 지금 염병을 뺐지만, 구약성경을 잘 아는 유대인 제자들에겐 그런 것들이 하나님 심판의 상징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에 염려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마지막 심판은 다른 모습으로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흥미롭게도 주님은 만약 신자가 그런 것들로 종말을 염려하면 현재 인간 생존 여건이 파괴될 그런 종말만 걱정하는 불신자들의 생각과 같다고 말한 셈입니다. 

 

전쟁 기근 지진이 재난의 시작이라는 의미는 그것들이 인간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주긴 해도 부분적 일시적 피해로 그치지, 전 지구적인 심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국에 근 천년 만의 폭우와 폭설이 내렸어도 종말과는 거리가 멀었듯이 말입니다. 인류 역사에 전 지구적인 심판은 딱 한 번 있었는데 알다시피 노아 때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재림 전의 징조도 노아의 때와 같다고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노아를 통해서 새 인류를 시작할 계획이었으므로 종말적인 심판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실 구원의 완성에 대한 예표였습니다. 온 땅을 삼킨 홍수가 끝난 후에 하나님은 노아와 어떻게 언약을 맺었습니까?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이라는 말씀은 “마지막 심판이 임하기 전까지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때까지 사시사철이 변함없이 지속된다고 했습니다. 노아 홍수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과 자연을 완전히 파괴하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인간의 일상적인 삶의 근거를 흔들지 않고 즉, 인간의 외부는 그대로 둔 채 인간 자체를 심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를 하나님이 그 전에 분명히 밝혔는데 사람이 어려서부터 계획하는 바가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창8:21)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본성적으로 악하므로 사람 밖의 환경을 흔들어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밖에서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만들지 않으며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전부 더러운 것이라고 즉, 사람 전체가 죄로 가득 찬 덩어리라고 선언했습니다. (마15:16-20)

 

또 그래서 주님은 남자는 밭일을 하고 여자는 가사 일을 하는 중에 즉, 일상적 삶에 전혀 지장을 받지 않는 중에 영원한 구원과 심판이 나눠진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40,41절) 노아 때처럼 시집 장가가고 먹고 마시느라 심판이 임한 줄도 모르는 사이에 멸망 당한다는 것입니다. 심판 때는 이처럼 오직 두 부류의 사람으로 단순히 나눠지기만 하므로 각 사람의 생전 선행이나 과오를 따로 심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서 그 은혜 안에 거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하나님은 하늘에서 다 알고 계십니다. 그전에 하나님은 당신의 절대적 주권으로 구원해줄 자와 심판할 자를 나눠서 당신의 완벽한 섭리로 그 인생을 이끌고 계십니다. 노아 홍수 때에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노아 가족만 구원받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계시록 13:16-18의 666이라는 사탄에게 굴복한 표시도 신용카드, 바코드, 컴퓨터, 베리칩, 최근의 백신 등으로 해석 적용해 종말이 임했다고 호들갑을 떨어서도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들은 인간의 외부를 개선하려는 목적으로 사탄이 아닌 인간이 개발한 것이라 절대로 하나님 심판의 도구나 사탄에게 굴복한 표식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 사조가 그리스도를 거역 대적하는 성향과 흐름을 예의 주시하면서 영적으로 분별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신기한 사물이나 사안이 생기면 무턱대고 마지막 심판에 대입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잘못이자 성경에 대한 지식이 너무 적다는 증거입니다. 

 

그럴 리는 절대 없지만 순전한 가정으로 그것들이 마지막 적 그리스도의 666이라고 쳐도 신자가 미처 잘 모르고 택했다고 해서 이미 작정해 놓은 구원을 절대 취소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택하신 자들도 미혹 당할 수 있지만(24절), 당신께서 재림하시면 택하신 자들을 다 모은다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31절)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라는 표현은 단 한 명의 누락도 없이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최대의 환난

 

주목할 사항은 전쟁 기근 지진 등이 재난의 시작일 뿐, 끝이 아니라고 했으니 그런 것들보다 더 심한 재난이 있어야만 끝이 온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그때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24:2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전 지구적이고 한 명도 빠짐없이 모든 이가 통과할 수밖에 없는 유사 이래 최고로 큰 환난이 닥쳐야만 종말입니다. 

 

“후에도 없으리라”는 언급을 일부 교파가 주장하듯이 주님의 재림 후에 또 다른 환난이 있다고 해석해선 안 됩니다. 말씀드린 대로 성경 예언은 이중적 의미가 있는데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 파괴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한 것입니다. 직접적으로는 그래서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 멸망 당하는 당대의 사건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 예언은 AD 70년경에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당할 때 이미 실현되었습니다. 로마군은 도시를 철저히 파괴하고 유대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성전을 약탈하고 불태웠습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예루살렘 공방전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이 무려 110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유대 군대는 결사 항전의 의지를 드높이고 평화협상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고 식량을 모두 불태웠는데 그로 인해 많은 시민과 군인이 굶어 죽었다고 합니다. 이때 굶어 죽은 자들을 성 밖으로 버렸는데 6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누구든지 도시를 탈출하려고 하면 붙잡아 십자가형에 처했는데 완전히 함락당할 때까지 만 명이 도시 주위를 둘러싸는 십자가에 매달려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을 처형한 것입니다. 주님의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28절)는 예언이 바로 그런 상황에 빗댄 것입니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할례받은 백성이라는 그 알량한 민족적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고귀한 생명을 헌신짝처럼 취급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을 앞세웠지만 그릇된 종교적 열심에 미쳐서 그분이 가장 저주하는 살인죄를 눈도 깜박 않고 엄청나게 자행했습니다. 정복자 로마에 비교해 피지배자 유대가 저지른 죄가 절대 가볍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성경적 진리의 생생한 증거가 바로 유대의 경건한 제사장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당시는 정확한 통계가 이뤄질 수 없었겠지만 어쨌든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이었던 것은 틀림없으며, 그 이후로 유대인들이 이천 년 동안 세계 곳곳을 유랑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나치 제국에 의해 600만 명이나 희생당하는 더 큰 참극을 겪었으나 그동안 유대인들의 전체 인구가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 본문은 구약 이스라엘의 멸망할 때 환난이 엄청날 것만을 강조한 예언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완성하신 이후로는 이스라엘이 맡았던 제사장 나라 소명이 교회와 신자들에게 계승되었고 그에 따라 이 예언은 종말의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홀로코스터와 연결해 예수님의 예언에 시비를 걸 수 없습니다. 

 

주님은 인류 역사 이래 최대의 환난을 일으키는 주체에 대한 힌트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15,16절) 이 말씀 또한 일차적으로 로마 군대에 의한 성전 파괴 사건을 예언한 것입니다. 주 후 39년경 로마의 황제 칼리굴라가 스스로 신이라고 자칭하며 제국 전역에 자신의 조각상을 세우려 했고 예루살렘 성전에도 제우스 신상을 세우도록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 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 로마군이 던진 횃불에 성전이 불타자 유대 제사장들은 목숨보다 소중한 성전이 불타는 모습을 보고 탄식하며 불길 속으로 뛰어 들어가 끄려고 하였습니다. 로마군은 불타는 성전 안에서 유대인들을 살육하고 성전의 모든 보화를 약탈하였습니다. 이때의 상황을 요세푸스는 “제단 주위의 시체 더미는 쌓이고 더욱 쌓이는 한편, 성소의 계단 아래로 피의 강물이 쏟아져 내리고, 꼭대기에서 살해당한 자의 시체가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부정하게 여기는 시신(屍身)들이 당신의 성전에 무더기로 쌓였습니다. 

 

그러나 놀랍고도 신기하게 당시의 유대인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16절 경고의 말씀을 순전히 받아들여 믿고서 미리부터 멀리 산으로 도망가서 사상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주님이 앞으로 당신의 교회를 이 땅에 세울 수 있도록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종교적 적그리스도이다.

 

성전 시대가 끝난 현대의 신자들이 이중적 의미를 지니는 이 예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바울이 설명해주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2:3,4) 하나님이라고 자칭하면서 성전에 좌정해서 “큰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을 나타내는 자”(살후2:9)가 출현하면 종말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먼저 배교(背敎)하는 일이 있다고 합니다. 교리를 배반하거나 진리를 저버리는 것인데 문법적으로 적 그리스도에게 직접 적용하지 않고 객관적 사건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단 교파들이 기독교를 너무 오염시켜서 십자가 복음의 순전한 믿음은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할 때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멸망의 아들이라고 단수로 표현한 것과 달리 예수님은 마지막 때 나타날 당신의 대적을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24절)이라고 복수로 표현했습니다. 주님은 우선 당대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요한에게 보여주신 계시에서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와서”(계13:1)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았기에 모든 이들이 그 짐승에 경배하게 된다고 단수로 표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극심한 환난이 일어나려면 당연히 마지막으로 최고 강력한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합니다. 바울이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라고 설명했으니, 모든 세상 종교를 말살시키고 오직 자기만 경배하게 만드는 존재입니다. 계시록 13장과 바울의 이런 진술들을 종합하면 또 신자들마저 거짓으로 현혹시킬 수 있을 큰 기적을 일으키려면 사탄 본인이 스스로 적그리스도가 되어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사탄은 하늘에서 가장 뛰어난 천사장이었으나 하나님의 보좌를 대신 차지하려다 실패해 지상으로 쫓겨내려 왔습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부터 인류 역사 내내 스스로 또는 자기 졸개들을 동원해서 인간을 타락시키고 신자들을 무너뜨리려 안간힘을 써왔습니다. 역사의 마지막 때에는 최후의 힘을 동원해 다시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려고 시도할 것입니다. 최초 인간의 타락을 주도했던 사탄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과 그분의 택한 백성들과는 원수가 된 사탄이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자기를 경배하지 않는 신자들에게 엄청난 종교적 핍박을 가하면 마지막 때가 된 것입니다. 모든 이가 이미 그에게 완전히 굴복하여서 숭배하는 중에 신자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버티고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말하자면 기독교를, 특별히 순전한 개신교를 완전히 말살시키려는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도 사회적인 제약이 전혀 가해지지 않는 때입니다. 예수님의 초림하여 십자가에 처형 당할 때처럼 그 일에 모든 정부, 단체, 개인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면서 너무나 당연하고 의로운 일로 여기는 것입니다. 실감 나게 말하면 신자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순간 바로 체포되고 그들의 요구를 듣지 않으면 곧바로 총살당하는 그런 때입니다. 그렇다면 아직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가 많고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십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현세대는 끝이 아닙니다. 

 

재림을 재촉하지 말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세상에 복음이 받아들여질 여지가 남아 있다면, 최소한 당신의 종들이 복음을 전할 수 있다면 굳이 심판을 결행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 고 선포했습니다. 전부는 불가능해도 최대한 많은 사람이 구원받아 진리를 알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인데 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굳이 심판을 서두를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14절)고 다짐했습니다. 복음은 죄로 타락해 사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전 지구인이 참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당신의 재림 전에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전제했습니다. ‘그제야’ 끝이라고 했기에 그전에는 끝이 아닙니다. 원어도 복음이 다 전파된 후에 끝이 된다고 그 전후 순서만 단순히 밝히는 표현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까지 세상 땅끝까지 가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마28:20) 우선 기독교는 인간이 만든 지역적 민족적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이므로 지역과 민족의 경계선으로 절대로 제한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땅끝까지 전파해도 전혀 씨가 먹히지 않을 때가 올 것인데 그전에는 다시 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재림의 일정을 최대한 늦추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작금 신자들은 복음을 모든 민족에게 최대한 빨리 전파해야 할 첫째 이유가 예수님을 최대한 빨리 오시게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현재의 모든 상황이 너무 타락했고 온갖 환난들이 생겨서 빨리 구원받고 싶다는 안타까운 심정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신자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재촉하려는 의도가 조금이라도 개입되어 있다면 큰 잘못입니다. 사실상 재림의 시기를 인간이 결정하거나 최소한 구체적으로 측정해보려는 시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에도 동일한 상황이 있었는데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당시도 네로 황제의 핍박이 격심해지자 신자들이 예수님이 왜 빨리 오시지 않느냐고 불평 원망하면서 어서 빨리 오시기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많은 자들이 회개하기를 바라기에 인간 신자들의 눈에는 그 재림이 더디게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네로에게 핍박받는 자들은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수고 희생하는 너무나 큰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주변에 아직도 예수를 몰라서 갈 바를 모르는 가족, 친척, 친지가 너무 불쌍하다고 여기는 신자는 절대 재림을 재촉할 수 없고 그러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어떤 멸시 핍박을 받아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면서 복음을 전합니다. 그러니까 끝까지 참는 자에게 하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대환난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근거

 

신자는 적그리스도의 핍박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적 그리스도의 출현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이고 출현 전까지 신자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살후2:6,7) 멸망의 아들이 반드시 그때, 정해진 바로 그때 나타나도록 하려고 하나님이 지연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마지막 때에 그가 나타나도 자기 능력으로 스스로 그 막음을 뚫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속 막고 계시다가 정해진 때에 풀어주었으니 그래야만 하는 목적이 반드시 있습니다. 신자의 믿음을 단련시키거나 테스트하려고 의도적으로 가장 극심한 환난을 허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 그를 심판하려고 풀어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2:8)고 선언합니다. 간단히 말해 예수님이 다시 오시려고 풀어준다는 것입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를 마감하려면 사탄을 멸망시켜야 합니다. 그럼 사탄도 마지막인 줄 아니까 극렬하게 저항하는 것입니다. 쥐도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벼들 듯이 사탄도 멸망 당하더라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고 망하겠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신자가 마지막 날에 적 그리스도에게 핍박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엄청나고도 영광스러운 역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에 사탄은 십자가에 주님을 처형시키면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거나 자기가 크게 훼방할 것이라고 여겼지만 오히려 인류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하나님은 사탄의 가장 사악한 모략마저 당신의 절대적 주권과 완벽한 섭리로 당신의 백성의 구원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했습니다. 주님의 재림 때도 사탄이 하나님을 방해하려고 신자들을 괴롭히려 들지만 어리석게도 오히려 자신의 멸망을 재촉하는 짓입니다. 환난 받는 신자들을 보시는 하늘의 하나님의 마음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그 환난의 기간을 사탄이 원하는 만큼 늘려줄 리는 만무합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마24:22)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창세 이후로 처음 있는 엄청난 환난의 기간을 대폭 줄여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멸망 때는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믿고 산으로 피난한 자들은 죽음을 면했습니다. 마지막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설쳐도 끝까지 견디라고 계속 강조했듯이 주님은 신자들이 견디는 중에 곧바로 오실 것입니다. 혹시라도 그 전에 순교하게 되더라도 초대교회 교인들이 산 채로 화형을 당해도 찬양을 불렀듯이 성령의 권능으로 죽음도 이기는 권세를 신자들에게 부어주십니다.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 당신의 입의 기운으로 죽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입의 기운은 진리의 말씀인데 창조 때 말씀 한마디로 우주 만물을 만드셨듯이 주님은 말씀 한마디로 적그리스도를 곧바로 멸하실 것입니다. 베드로도 그래서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온다고 했고(벧후3:10), 예수님도 당신의 임하심이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24:27)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순간적으로 임하면 사탄은 그야말로 한주먹거리도 안 되므로 주님에 의해 순간적으로 멸망 당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자들을 두고 “진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자들”(살후2:9,11)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불신자들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성령이 내주한 신자라면 진리를 알고 그에 따라 살고 있기에 사탄의 거짓에 속아 넘어갈 수 없습니다. 요한도 “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고 말합니다. “이 땅에 사는 자”란 신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보지 않는 자라는 뜻입니다. 택함 받지 못한 자만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한다고 합니다. 요한에게 예수님이 주신 계시이므로 마태에게 “택하신 자들을 모으실 것”(마24:31)이라고 약속하신 내용을 다시 반복한 것입니다.

 

종말을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이제 신자가 마지막 날의 징조를 어떻게 분별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확실해졌습니다. 자기가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만 점검해 보면 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 없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확실하고 내가 그분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종말을 전혀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난리에 대한 소문에 귀를 기울일 필요도, 대환난의 징조와 종말의 상황을 교파나 목사님들의 복잡다단한 해석에 흔들릴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아무리 현세대가 종말적 증상을 보여도 종말의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계시록 예언처럼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 재앙이나, 펜데믹 같은 병균으로 신자도 많이 희생되겠지만 그런 희생은 인류 역사 내내 있었고 여전히 종말의 초기 현상일 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예컨대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예수 믿는 신자들이 단지 그 이유로 체포되기 시작하면 비로소 끝이 오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으로 말하자면 복음을 전해보면 종말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 지역에서 선교하다 보면 순교를 당할 수 있는데 그럼 자기 인생의 종말이 왔고 곧바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마지막 때는 물론이고 지금부터라도 그런 환난이 두려우면 복음을 전하지 않고 신자가 아닌 척하고 있으면 됩니다. 적 그리스도의 대환난을 피할 수 있는 너무나 쉽고도 더 중요하게는 유일한 길입니다. 마지막의 핍박을 피할 수 있는 바로 이런 아주 손쉬운(?) 방법이 있으니까 적그리스도를 미리부터 겁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평소에 복음을 꾸준히 전하는 자들은 종말과 적그리스도에 대해 전혀 두렵지 않은데 단순히 예수님의 약속을 믿어서가 아닙니다. 복음이 절대적 진리이자 참 생명의 능력이 있음을 실제로 전도의 현장에서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전도의 천국 상급을 미리 쌓는다기보다는,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모습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나 피전도자나 주님의 사랑 안에서 큰 기쁨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런 은혜를 세상 어떤 것으로도, 적 그리스도가 나타나도 절대 막을 수 없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 죽어가면서도 찬양을 불렀듯이 말입니다. 

 

때가 차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는 하나님이 남겨 둔 자를 빼고는 온 천지가 사탄의 것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내 또한 한계에 이르고 역사는 종결됩니다. 사탄의 활동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아래 통제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은 거꾸로 죄인들에게 십자가 복음이 더 잘 전해지게끔 사탄마저 완벽하게 섭리하십니다. 마지막 때에 실체적으로 나타날 적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절대적 통치 아래 잠시만 설치다가 예수님이 오시는 순간 곧바로 멸망 당하고 주님 안에 있는 신자는 홀연히 영광스러운 영원한 부활을 입게 됩니다. 불신 세상은 처음부터 죽음의 형벌 아래 있기에 그대로 두어도 심판입니다. 주님은 신자의 구원을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그럼 종말에 대해 걱정할 것 전혀 없이 큰 기쁨과 설렘으로 소망해야 하지 않습니까? 

 

(1/22/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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