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7:5-7) 기독교 부흥의 최고 비결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8)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삿7:5-7)

 

사사시대 같은 현대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영적으로 가장 혼탁하고 암울했던 때였습니다. 그 이유는 사사기가 결론을 내린 대로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삿21:25) 때문입니다. 

 

오늘날 포스트 모던 시대는 절대자 하나님의 존재조차 부인되었습니다. 필연적으로 인간이 삶의 지표로 삼아야 할 절대적 진리도 함께 실종되었습니다. 대신에 자기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중에도 자기감정을 충족시키는 것이 절대적 선이 되어버렸습니다. 자기 취향과 개성을 추구하며 살아가야만 가장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위중한 범죄가 아닌 이상 다른 이의 삶에 간섭하지 않는 일이 최고의 미덕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상대를 배려해 주는 선의라 해도 다른 이와 그 삶을 함부로 판단 비평하면 가장 큰 죄악이 됩니다. 

 

예컨대 간음은 자기 인생을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성인의 자유에 속한 일이라 아무도 시비를 걸 수 없게 된 지 아주 오래입니다. 최근 미국에선 주(州)에 따라서 성적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보장되었고, 가장 진보적인 주인 캘리포니아 같은 경우는 미성년자가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가 좋아서 행한 일이라면 무슨 짓을 해도 죄악이 아니며 도리어 진리요 선입니다. 

 

이런 판국이니 절대자 하나님과 그분의 절대적 진리를 믿고 따르라고 가르치는 기독교는 이제 공공의 적이 되어 갑니다. 말하자면 남의 프라이버시인 성적 자유를 감히 하나님께 저주받는다고 정죄하는 꼴은 도무지 못 참아주겠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교회와 목회자와 교인들이 수시로 세상과 다름없는 잘못을 저지르니 종교 중에 가장 싫은 종교로 꼽힙니다. 지난달에는 저도 가끔 설교를 들었던 텍사스 한 대형 교회의 저명한 미국 목사님마저 성적 추문으로 사임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젠 그런 일이 다반사라 예수 믿는 일이 자랑은커녕 부끄러워졌고 교회 다닌다는 사실마저 숨겨야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잘못해도 성경에 계시 된 절대적 진리는 전혀 손상되지 않습니다. 사랑과 인자가 많으신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모두가 자기 소견대로만 살아갔던 사사시대에도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줄 자를 때에 따라 예비해 놓았습니다. 그중에 기드온은 하나님의 큰 용사로 칭찬받으며 가장 큰 믿음의 승리를 이룬 사사입니다. 사사시대 이상으로 영적으로 암울한 이 시대에 신자가 배워서 따라야 할 믿음의 본이 될 것입니다. 

 

너무 많으니 돌아가라.

 

성경은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시니”(삿6:1)라고 기드온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미디안은 7년이나 이스라엘을 수탈하고 학대하다가 급기야 멸하려고 쳐들어왔습니다.(6:5) 기드온은 13만 5천 명의 대군(삿8:10)에 겨우 삼백 명으로 맞서, 그것도 칼과 창이 아니라 나팔과 빈 항아리와 횃불만으로 완전히 격퇴했습니다. 단순 수치로 따지면 이스라엘 군인 한 명이 미디안 450명을 상대한 것이라 세계 전쟁사에 유례없는 대승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삼백 명을 선발한 과정이 흥미로운데, 익히 알고 있겠지만 간단하게 다시 살펴 보겠습니다. 미디안과 싸우려고 자원한 자의 숫자는 처음에는 삼만이천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하면서 두려워 떠는 자는 다 자발적으로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만 명만 남았습니다.(7:2,3) 

 

그마저 많으므로 손으로 물을 움켜서 핥아먹는 삼백 명만 남도록 했습니다. 개가 물을 핥는 것처럼 마시거나, 무릎을 꿇고 마시는 9,700명은 추가로 돌려보냈습니다. 쉽게 말해 물에 고개를 처박고서 마신 자들입니다.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를 두고 태평스럽고 담대하므로 믿음이 더 좋은 자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분석대로 하자면 물을 퍼서 핥는 자는 물도 마음 놓고 못 마셨으므로 믿음이 적은 소심한 겁쟁이인 셈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처음에 두렵거든 돌아가라는 기준을 뒤집은 것입니까? 전쟁을 앞두고 두렵지 않을 자는 골리앗 같은 슈퍼맨이 아닌 이상 아무도 없습니다. 비록 삼만 이천 명이나 모였어도 미디안 13만 오천 명을 보는 순간 모두가 큰 두려움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처음에 돌아간 자들은 동족들로부터 비겁하다는 욕을 먹을 각오를 했으니까 어떤 면에선 오히려 담대한 자입니다. 그 역도 성립되므로 처음에 남은 만 명이 더 겁쟁이일 수 있습니다. 

 

지금 말장난을 하려는 뜻이 아닙니다. 인간의 성격과 기질은 무 자르듯이 둘로 확연히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그런 복잡한 인간들이 만들어 내는 인생사도 더더욱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인간적인 판단 기준은 아무리 심사숙고하여 합리적으로 정해도 항상 장단점을 동시에 지니므로 막상 현실에 적용하면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모두가 이미 겁에 질려 있었고, 사실은 지도자 기드온부터 그랬습니다. 그는 곡식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목적이긴 했어도  미디안 사람의 감시를 피해 포도주 짜는 틀에 숨어서 밀을 타작했습니다.(6:11) 처음에 천사로부터 하나님께 사사로 택함을 받았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도, 그 천사더러 하나님이 보낸 것이 확실한지 징표를 보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6:17-22) 

 

그 천사가 하나님이 보낸 사자임을 확인하고서 군대를 소집했으나, 또 다시 이 전쟁에 승리할 수 있다는 징조를 보여달라고 하나님에게 두 번이나 요청했습니다.(6:36-40) 하나님의 기준에 따라 일차로 만 명으로, 추가로 삼백 명으로 줄여나가니까 계속 그의 두려움도 더 커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래서 한밤중에 부하 한 명만 데리고 적의 진영으로 넘어가 한 미디안 군인이 자기들이 크게 패배하는 꿈을 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해 준 것입니다.(7:9-14) 기드온은 미디안 군인들도 자기들처럼 전쟁을 앞두고는 똑같이 두려워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본격적으로 전쟁을 치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택 기준

 

이처럼 기드온을 필두로 모두가 내심 크게 두려워하고 있었다면 하나님의 선택 기준을 담력이나 용기가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물 마시는 모습만으로 만 명 중에 추려내려면 모두가 목이 말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앞에 시원한 물이 있어도 마시지 않는 자들도 나올 것입니다. 성경에 구체적 기록은 없지만 틀림없이 하루 종일 행군해서 모두가 지치고 갈증이 난 상태에서 한 강가로 이르게 한 것입니다. 그러면 평소의 기질과 습관이 물 마시는 모습에 절로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우선 고개부터 처박고 엎드려서 물을 마시는 것은 적에게 자기 약점을 완전히 노출하는 행동입니다. 자기들보다 몇 배나 많은 군대와 대적하려면 기습 작전을 펼쳐야 하는 것이 전쟁의 ABC입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몰래 기습해야 할 판국에 아무 방비 없이 물만 마시는 것은 적에게 빨리 자기들을 기습하라는 신호를 보낸 꼴입니다. 종일 행군한 것은 이미 전쟁이 시작된 셈인데, 그들은 전투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었고 그저 갈증 해소하기에 바빴습니다. 

 

반면에 물을 손으로 퍼서 핥는 자는 적의 침공에 대비하여 사방을 예의 주시하는 자입니다. 항상 사방을 경계한다면 준비성이 철저하긴 해도, 역으로 따지면 또다시 겁이 많은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 최고 겁쟁이 삼백 명으로 군대를 조직한 것입니다. 

 

숫자만으로 따지면 기원전 480년에 소수의 스파르타 군이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 왕으로 알려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이 이끄는 대군을 영웅적으로 막아냈던 사건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화 ‘300’에 소개된 것처럼, 육체적 군사적 훈련으로 강건하게 단련된 용사들이었고 아주 좁은 협곡에서 방어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의 지리적 배경은 골짜기이긴 하지만(13절), 군인들이 메뚜기와 해변의 모래처럼 보였다고 했으니 계곡 사이의 넓은 평야입니다. 거기다 기드온의 용사 삼백 명이 사실은 용맹스럽게 싸운 것이 아닙니다. 미디안 군인들이 밤중에 횃불이 대낮같이 환하게 밝아지고 항아리가 깨지며 나팔 부는 소리에 놀라서 이스라엘 대군이 쳐들어오는 줄 착각했습니다. 그런 황망 중에 자기들끼리 치고받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치느라 패배를 자초했습니다. 한마디로 그 삼백 명보다는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감당하신 전투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죄로 타락하다 못해 절대자 하나님의 실존조차 부인하고 제 멋대로 사악하게 살아가는 이 세대도 하나님에게 그냥 완전히 맡기면 됩니까? 하나님이 미디안을 대패시켰듯이 당신을 부인하는 모든 악인을 완전히 망하게 해주시고, 신자는 기드온처럼 세상 앞에 엄청난 승리를 할 수 있게 해주십니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고 갈수록 더 사악해져 갑니다. 이번에 캘리포니아주에서 자식들이 성적 정체성을 선택할 때 부모와 상의하여 허락받게 하자는 법률을 제정하려 했으나, 발의(發議) 정족수가 훨씬 모자라 제안조차 못했지 않습니까? 

 

겁쟁이 기드온

 

하나님이 대신 감당해 주셨기에 엄청난 승리를 이뤘으나 주목할 사항은 기드온이 가만히 두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전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려는 여호와의 사자를 직접 대면해 봤기에 자기는 틀림없이 죽게 되었다고 크게 두려워하자, 하나님은 죽지 않을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짓궂게도 네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서 그 나무로 모두가 볼 수 있는 산성 꼭대기에서 번제를 드리라고 명했습니다. 이때도 그는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여서 그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했습니다.(6:27)

 

기드온의 아버지는 므낫세 지파 아비에셀 가문이면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신묘한데 바로 그 아들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면서 아버지부터 개혁시키라는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아버지가 소중하게 섬기는 물건이나 일을 파괴하는 것은 혈연의 관계를 끊자고 덤비지 않는 이상 아들은 섣불리 행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 겁쟁이 기드온더러 그 일을 행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그로선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했는데도 죽이지 않고 살려주었으니까, 이번에 따르지 않으면 틀림없이 심판받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했던 성읍 사람들도 자기를 죽일 수 있다고 충분히 짐작했을 것이나,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니까 이판사판 밤중에 몰래 수행했습니다. 

 

놀랍게도 아버지 요아스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6:31)고 어제까지 그 제사장 역할을 했음에도 당당하게 성읍 사람들을 막아섰습니다. 바알이 정말로 신이라면 직접 기드온에게 벌을 내릴 것이므로 사람인 우리까지 나설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동안 기드온의 아버지도 자의 반 타의 반 우상을 섬기면서 신앙 양심에 많은 거리낌이 있었을 것입니다. 마침 여호와의 사사로 부름을 받은 아들이 과감히 우상을 파괴하는 모습을 보고 그도 회개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의 순종을 통해서 또 그에게 사사로서의 영적 권위를 세워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의 아비를 변화시킨 것입니다.

 

기드온 본인도 하나님의 사자와 대면해도 죽지 않았고,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신상을 파괴해도 아무런 훼방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양털만 이슬에 젖고 또 안 젖는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승리의 표적을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어느 정도 견고케 한 후에 밤중에 부하 한 명만 데리고 미디안 진영으로 넘어가 보라고 했는데, 이 또한 만에 하나 발각되면 목숨이 달아납니다. 그가 또 크게 두려워했을 것이므로 하나님은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 주었느니라”(7:9)고 다시 격려해 주었습니다. 넘겨 준다는 것은 소유권이 완전히 바뀐다는 의미로 전쟁의 완전한 승리를 상징합니다. 거기다 과거 시제로 약속했는데 승리는 하나님 안에서 이미 확보되어 있으므로 너는 내 말만 따르면 된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기드온은 부하 삼백 명의 생사가 자기 손에 달렸기에 승리가 완전히 결정 날 때까지는 두려움이 사라질 수 없습니다. 아니 삼백 명만으로 싸우라는 것은 사실상 모두 전사하라는 뜻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기드온과 부하 삼백 명은 시종일관 벌벌 떨고 있다가 미디안 군인들이 서로를 죽이며 도망칠 때부터 비로소 담대해진 것입니다. 

 

바꿔 말해 처음에 돌아간 이만 이천 명도 단순히 소심하고 겁이 많은 자들이 아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네 배나 되는 미디안 대군과 붙어봤자 어차피 패배할 것이 뻔하다고 영악하게 판단한 것입니다, 지난 칠 년 동안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해보니까 그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았기에, 틀림없이 전쟁에 패배하고 더 극심한 괴롭힘을 당하리라 예상했을 것입니다. 이번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면 승리할 미디안이 나중에 자기들을 조금 덜 괴롭히리라 기대 내지 계산한 것입니다. 그들은 어차피 당할 피해를 최대한 줄여보려는 현실적 방안을 선택한 것입니다. 

 

남기로 택한 만 명도 승리를 자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통째로 삼키려고 단단히 준비하고서 덤비므로 어차피 당할 바에야 한 번 싸워보기라도 하자는 최후의 결의를 품은 것입니다. 그중에 9,700명은 그런 결심을 하고도 목이 마르자 아무 생각 없이 평소 습관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삼백 명은 벌벌 떨면서 전쟁에 참여한 셈입니다. 최고의 겁쟁이이긴 하나 평소에 미디안에서 해방된 새 세상을 꿈꾸고 있었고 그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해주실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분이 역사하는 때와 방식은 몰라도 그분께만 의존하기로 마음먹고 하나님이 세운 기드온에게 순종했던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전력이 너무 기울어 가망이 없어 보이는 전쟁이나, 아니 그러니까 더더욱 처음부터 하나님만 믿을 수밖에 없다고 각오한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승리는 이스라엘 군대 숫자와 상관없이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러니까 담대하고 용맹한 자보다 오히려 전적으로 당신의 역사에 참여하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자들만 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시적으로 내세운 선택의 기준은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2절)는 것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동안 미디안에게 괴롭힘을 당한 까닭이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고의 겁쟁이만 고르고 골라서 엄청난 승리를 주면, 당신이 어떤 분인지 온전히 깨닫게 되고 또 그래서 당신만 온전히 의지하게끔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

 

성경은 기드온이 아버지가 섬기는 바알의 제단을 파괴했기에 바알과 쟁론하여 이긴 자라는 뜻으로 ‘여룹바알’이라고 칭했습니다. 바알 신을 이겼으면 그 신을 믿는 미디안 백성에게야 두말할 필요 없이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삼만 이천 명 중에 삼백 명만 남겼는데, 당신 혼자서 미디안 대군을 시쳇말로 완전히 갖고 노는 신나는 활극 한 판을 보여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지도자로 세운 기드온에게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대군을 “한 사람 치듯 하리라”고 약속해주신 것입니다.(6:16) 

 

무엇보다 기드온이 믿음으로 승리했기에 큰 용사로 부르지 않았고, 그를 사사로 세운다는 통보를 할 때부터 그렇게 불렀습니다.(6:12) 이 전쟁은 여룹바알이라는 용맹한 기드온의 지휘로 이긴 것이 아니라, 천하의 겁쟁이 기드온을 여룹바알로 바꾸신 하나님이 이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전투에 참여했으므로 승리는 이미 정해졌기에 이스라엘로 이기게 해주는 것도 일차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로 지난 우상숭배의 죄악을 진정으로 회개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기드온과 백성들을 당신의 큰 용사로 바꿔 나가는 훈련 프로그램을 하나님이 진행한 것입니다. 

 

오늘날 구원의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고 전쟁은 그분께 속했다는 진리를 모르는 신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도 연약하고 겁이 많아서 현실 고난 앞에 그런 믿음은 사라지고 그저 쩔쩔매기 일쑤입니다. 승리는 하나님 것이라고 믿고 간절히 기도해 보지만 제대로 응답이 안 되니까 수시로 하나님의 권능마저 의심하고 당신 백성의 고통을 외면한다고 원망할 때도 있습니다. 

 

반드시 기억할 사항은 하나님은 기도만 한다고 승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의 일에 믿음으로 한 걸음이라도 내디뎌야만 승리를 주십니다. 아주 담대하게 자기 목숨까지 바쳐가며 헌신 충성하라고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처럼 여전히 크게 두렵고 떨리지만, 오직 하나님만이 이 일을 해결해 주실 유일한 분이므로 그분이 하라는 대로 어쨌든 순종하겠다는 자를 하나님이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엄청난 능력으로 초자연적인 기적의 방식으로 개입하는 것은 매우 비상한 경우 말고는 거의 없습니다. 이 전쟁도 사실은 그런 비상한 경우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소수가 횃불, 항아리, 나팔을 사용해 밤중에 대군을 기습하는 전략은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자주 사용했던 고전적 수법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행하신 일은 따지고 보면 똑같이 전쟁을 두려워하는 미디안 병사의 꿈에 기드온이 나타나게 해서 그 두려움을 배가시킨 것 하나뿐입니다. 

 

정작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가 더 크게 실현된 차원은 따로 있습니다.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의 신상을 부쉈다고 성읍 백성들이 기드온을 죽이려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엄청난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엄격한 심판을 내려야 마땅한데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며 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죽이려 한 성읍 사람들 모두도 너무나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점을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로선 미디안의 학대를 받아보니까 얼마나 사악하고 잔인한 민족인 줄 익히 알았던 것입니다. 산에 웅덩이와 굴을 파고 산성을 만들어 곡식과 자신들을 숨겨야만 했었고, 이제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멸하려고 쳐들어오기 직전입니다.(6:1-5) 이스라엘 스스로 우상숭배 죄에 빠지긴 했어도, 다른 한편으로 전쟁은 어차피 질 텐데 미디안이 자기들 제단과 신상이 부서진 것을 보면 더 악랄하게 박해할 일이 두려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기드온 한 명을 그들 앞에 희생 제물로 바치면 미디안 사람이 나머지 사람을 잘 대해주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비록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했지만, 미디안에게 7년이나 괴롭힘을 당한 끝에 여호와께 구원해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6:6)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려고 미디안을 통해서 시련과 연단은 허락했어도, 당신의 백성이 다시 조금 정신을 차렸으니까 완전히 멸망 당하게는 버려둘 수 없어서 기드온을 세워준 것입니다. 

 

신약시대의 사사

 

이제 사사시대보다 더 타락한 오늘날의 상황에서 신자가 행할 일이 무엇인지 드러났습니다. 너무나도 사악해진 세상의 영적 사조를 보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신자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끝까지 부인하는 완악한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추한지 절감하고 제발 이 땅을 다시 깨끗하게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리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드온 때는 비록 죄로 타락했어도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인식은 눈 닦고도 찾아볼 수 없고 그렇게 권면하면 거꾸로 배척하고 핍박하는 단계까지 갔습니다. 

 

하나님이 부인되고 절대적 진리가 실종되어 가고 있으니까,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깨우침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을 닮아 자라가며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이 실존하고 그분의 절대적 진리대로 거룩하게 살아가는 인생만이 썩지 않는 영원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똑똑히 보여 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고난과 핍박이 닥쳐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환난 중에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 귀족 상전이 자기가 부리는 노예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르며 차별 없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겼던 모습을 현대의 교회 안에서도 실현해야 합니다. 자기 이익만 채우려 서로 헐뜯는 세상 나라와는 다르게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전히 실현 가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작금 세상이 너무 타락하고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거꾸로 종말의 징조들이 늘어가니까 예수님의 조속한 재림을 바라는 신자가 많아졌습니다. 어서 빨리 오셔서 이 추악한 죄악과 악인들을 멸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처음에 모인 삼만 이천 이스라엘 백성도 미디안을 향해서 그런 마음으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그중에서 삼백 명만으로 당신의 역사를 이뤘습니다. 적의 침공에 대비해 사방을 경계하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언제든 전투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 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행한 자들입니다. 믿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옮긴 믿음입니다. 

  

신자가 당장 세상을 전도하여 거룩하게 바꾸라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나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살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자기 삶의 모든 차원에서 그분을 증거해야 합니다. 범사에 그분의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이미 영생을 확보했기에 세상의 악과 절대 타협하지 아니하고 불의는 아예 멀리해야 합니다. 정말로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아름답고 진실한 사랑으로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 6:12)고 선언했습니다. 신자더러 신령한 은사를 사용하고 귀신 쫓는 기도만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탄은 믿음을 자꾸만 현실의 혈과 육을 풍성하게 하는 데에 사용하라고 유혹하고,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럴수록 신자는 하나님만 순전히 믿고 따르며 거룩하게 살아서 사탄에 미혹되어 있는 자들로 하나님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절대자를 부인하고 진리가 없고 자신만이 선이라고 큰소리쳐도 그들에게도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 남아 있습니다. 신자가 정말로 거룩하게 살고 있다면 그들에게 영적인 찔림을 줍니다. 쉽게 말해 사사로 세워지기 전의 기드온처럼 포도주 틀에 숨어 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독교를 오해하여 비방하는 세대라도 절대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당당히 절대적 진리대로 따르는 자기 삶 자체로 스스로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자에겐 성령이 내주하여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함께 합니다. 범사에 전적으로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 죄악, 사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환난도 염려하지 않으면서 참 자유와 평안을 풍성히 누릴 수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을 보고 가슴이 찢어질 정도로 진심으로 안타까이 여기며 함께 눈물 흘리며 기도한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이 삼만 이천 명 중 삼백 명으로 큰 승리를 주셨으니까. 백 명 교회에 그런 신자가 한 명만 있어도 교회 전체에게 온전한 영적 승리를 주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소심하고 겁이 많아도 관계없습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그런 자들이 아주 사소한 일에서라도 당신께 순종할 때 그분이 여룹바알이라는 별칭을 가진 큰 용사로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7/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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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1:4-9) 가짜 감사가 넘치는 추수감사절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19) - 2024년 추수감사절 설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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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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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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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1:2-6) 북한군을 빨리 죽여 주십시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7)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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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6) [2]

(왕하 9:5-7) 북한보다 남한을 징벌하실 하나님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6)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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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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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1]

(마10:1-7) 열두 제자 선택에 숨겨진 비밀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7)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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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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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5) [2]

(창2:25 & 3:7)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들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rdq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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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1:14-20) 참믿음인지 판단하는 기준.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6)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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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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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하 5:9-14) 행위 구원으로 변질된 믿음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3)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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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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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1-5) 예수님은 인간을 전혀 믿지 않았다.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4)

(마7:1-5) 예수님은 인간을 전혀 믿지 않았다. 새롭게 읽은 신약성경 (14)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보라 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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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6:11-13)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다고 확신하는가?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2)

(창16:11-13) 하나님의 예정에 들었다고 확신하는가?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2)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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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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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6:7-10) 살피시는 하나님과 눈물 흘리는 하나님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1) [1]

(창16:7-10) 살피시는 하나님과 눈물 흘리는 하나님 새롭게 읽은 구약 성경 (11)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물 곁 곧 술 길 샘 곁에서 그를 만나 이르되 사래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그가 이르되 나는 내 여주인 사래를 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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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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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8:1-6) 하나님이 숨겨둔 변절자가 되어라.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10) [2]

(왕상18:1-6) 하나님이 숨겨둔 변절자가 되어라.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10)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가니 그 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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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5:1) 신자가 믿은 후 가장 먼저 행할 일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3)

(롬5:1) 신자가 믿은 후 가장 먼저 행할 일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3)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5:1) 신자로서 첫걸음 예수를 믿고서 교회에 출석하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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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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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0:22-25) 두 얼굴을 가진 성령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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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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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1:9-11) 서원은 악하니 하지 말라. -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9) [2]

(삼상1:9-11) 서원은 악하니 하지 말라. 새롭게 읽는 구약 성경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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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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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28:1-6) 성육신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 - 새롭게 읽는 신약 성경 (11)

(행28:1-6) 성육신에 숨겨진 또 다른 의미 새롭게 읽는 신약성경 (11) “우리가 구조된 후에 안즉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비가 오고 날이 차매 원주민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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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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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삿7:5-7) 기독교 부흥의 최고 비결 -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8)

(삿7:5-7) 기독교 부흥의 최고 비결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8)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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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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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3:23-29) 하나님의 비전을 최대한 줄여라, -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7)

(신3:23-29) 하나님의 비전을 최대한 줄여라. 새롭게 읽는 구약성경 (7) “그 때에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기를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셨사오니 천지간에 어떤 신이 능히 주께서 행하신 일 곧 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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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6-30
  • 조회 수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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