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따르는 가장 큰 특권
마태복음 강해(#177)



http://www.youtube.com/watch?v=eDnptNfE69o&feature=c4-overview&list=UUNt3JlSqShQGS5sxosIjeiw
( 링크를 크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읍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마17:22-27)


목회자도 세금을 내어야 하는가?

미국에선 목회자가 교회에서 받은 사례비에도 세금을 부과한다. 최근 한국에서 교회개혁 운동이 다각도로 벌여지고 있는데 목회자 납세 문제도 일부 거론되고 있다. 지금 세금 받는 자가 베드로에게 너희 스승이 세금을 내느냐가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예수님도 베드로에게 세금을 내라고 하면서 직접 그 돈까지 이적을 통해서 마련해 주었다.

그래서 언뜻 본문이 목회자도 세금을 내야 한다고 가르치는 같다. 간접적으로는 그런 의미가 있기에 그렇게 해석 적용해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세금 받는 자가 말한 반 세겔의 세금은 유대인들이 자치적으로 성전의 청소와 수리를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내는 성전세다. 작금 이슈가 되는 목회자 납세와는 다르다. 지금으로 치면 교회에 내는 헌금, 그 중에서도 교회건물 건축 내지 수리 목적의 헌금이다.

그런 헌금을 내는 것에 대해선 모든 성도가 당연시하고 있다. 율법(민18:26)은 아무 생업이 없는 제사장 족속인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십일조를 받아 생활하지만 그들이 받은 십일조의 십일조를 바치게 규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목회자도 교회에서 받은 사례비에서 십일조를 비롯해 헌금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유대인이라면 너무나 당연히 자발적으로 내고 있는 성전세를 왜 유독 예수님에게만 문제 삼은 지를 따져야 한다. 예수님은 다윗 가문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출생하여 나사렛에서 성장했다. 시쳇말로 뼈 속까지 유대인이었는데 같은 유대인이 “너는 유대인이 아니지?”라고 시비를 거는 꼴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런 질문을 한 자의 정신 상태를 의심해봐야 할 정도다. 베드로도 아주 황당하거나, 너무 평범한 질문이라고 여기고 그냥 “내신다.”(25절)는 한마디로 대답하고 말았다.  

당시 세금을 거두는 자라면 지성이나 영성에서 평균 이상의 수준이다. 쓸 데 없는 농담을 하거나 예수님에게 밀린 세금 독촉하려는 뜻이 아니다. “너의 스승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 하느냐”라고 부정의문문의 형식을 사용했다. 안 낼 것이라고 전제 내지 가정한 것이다. 말하면 예수님이 정말로 여호와 신앙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따질 의도였던 것이다.

베드로는 그 질문을 예사로 여겼지만 예수님은 질문 속에 가시가 있음을 아셨다. 질문자의 진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시고 그냥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먼저”(25절) 말씀을 하셨다. 질문의 진의를 잘 깨달으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너 유대인 아니지?

그런데 유대인에게 여호와 신앙이 있는지 묻는 질문도 마찬가지로 “유대인이 아니지?”라는 뜻이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유대인이 가장 유대인다운 본질이 바로 여호와 신앙이다. 출애굽으로 구원하시고 모세에게 율법을 주신 여호와를 믿고 따르는 일을 삶의 최우선 목적으로 삼는다. 만약 그들에게서 여호와를 빼버리면 유대인이 아니게 될 만큼 이 땅에 유대인으로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독 예수님에게 그 문제로 시비 건 까닭이 유대교 장로의 유전에서 교제가 금지되어 있는 이방인들과 만나 식사하고 가르쳤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 문제는 7병2어 기적 때에 살펴본 대로 이미 시시비비를 가렸다.

예수님의 사역 말기에 이른 지금 단계에선 예수님이 스스로 당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또 제자들도 그렇게 믿고 고백했기에 그것을 따지려는 것이다. 지금도 마찬 가지이지만 예수님 당시 유대사회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칭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신성모독죄로 사형감이다. 실제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이 대중의 인기를 끌자 시기 질투하면서 자기들 기득권이 줄 것을 염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 이유는 정식 랍비 교육도 받지 않은 시골 청년이 랍비 행세를 한 것이다. 그나마 랍비 역할만 하고 끝냈으면 되는데 메시아라고 선포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자칭했기에 처음부터 분노와 증오를 품었던 것이다.

빌라도 법정에선 유대인의 왕이라고 자칭한다는 죄목으로 고발했다. 유대인들이 단지 사형을 시킬 권한이 없기 때문에 로마 총독에게 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율법(레24:16)에 명시되어 있다. 황제숭배가가 나타나기 전인 예수님 당대까지는 로마제국은 각 식민지 고유의 문화 관습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주었다. 설령 산헤드린에서 돌로 처형하는 조치를 취했어도 별로 문제될 바가 없었다.

그러지 않은 까닭은 일차로 유대 대중들의 반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 처형의 책임을 로마에 돌리려는 것이다. 거기다 십자가 처형은 로마만이 시행했다. 로마는 세금을 내고 반란을 꾀하지 않는 한에는 종교를 포함한 모는 자유를 허용했다. 반면에 로마에 항거하는 경우는 본보기로 삼아 경고하려고 고통이 최고로 극심한 십자가 사형에 처했다.

유대지도자들이 예수님이 로마를 배반하려 했다는 거짓 증거로 참소한 것은 십자가에 죽여야 말만큼 미워했다는 반증이다. 또 율법(신21:23)은 나무에 달린 죽음을 하나님께 저주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를 십자가 사형으로 내몰면 그가 신성모독의 죄를 범했기에 하나님께 저주받아 마땅한 자였다고 유대인들을 선동할 작정이었던 것이다.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는 이유?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류를 구속할 것은 하나님이 태초부터 세운 계획이었다. 예수님도 골고다 언덕에 어느 누구의 강요도 받지 않고 스스로 올라간 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도 십자가에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몰랐고 예수님과 3년간 동고동락한 제자들도 그랬다. 모든 정황은 사람들의 자유의지에 따라 기존의 제도와 관습대로 진행되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계획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온전히 달성되었지 않는가?

거기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님은 당신이 하나님이라거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보수진영에서 억지로 만들어낸 교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장에 본문만 잘 살펴도 그 주장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쉽게 알 수 있지 않는가? 성경을 정말로 성경이 말하는 대로 순전히 해석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의 본체라는 해석 외에는 나올 수가 없다.  

지금껏 살펴본 대로 세금 받는 자의 질문에 숨겨진 의도 때문만이 아니다. 예수님이 25절 이하에 베드로에게 가르친 말씀 안에 여실히 드러난다. 항상 그러하듯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먼저 비유를 하나 들었다. 세상 임금들은 자기 아들들에게선 관세와 정세, 지금으로 치면 재산세와 주민세를 받지 않는다고 했다.(25,26절)

마찬가지로 성전세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27절) 성전의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자기 아들에게 성전세를 내라고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서 성전세를 내자고 했다. 예수님이 지금 1+1=2라는 식의 직설화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당신께서 하나님의 아들임을 너무나도 분명하게 언급하신 셈이다.    

베드로에게 질문한 세금 받는 자의 의도가 예수가 세금을 내는지 단순히 그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도, 늦었지만 세금을 거두어 자기 실적을 올리려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는지, 사형에 해당하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주장을 했는지 여부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의문에 대해서 그런 말씀을 한 것이 분명한 사실이라고 시인해준 것이다. 그분에겐 당신의 당신 되심을 호도하거나 속인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떤 오해를 막겠다는 뜻인가?

유대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하겠다면 세금을 냄으로써 그들의 어떤 오해를 막겠다는 것인가? 이젠 세금 받는 자의 의심을 그대로 시인해준 예수님 쪽의 진의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세금을 안 내게 되면 돌로 처형당할 결정적 빌미를 제공하기 때문인가? 그래서 아직 십자가에 달릴 때가 아닌데도 미리부터 시달림을 받는 것이 싫어서인가? 그렇지는 않다. 세금을 거두는 시점을 따지면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 겨우 한 달밖에 안되었을 때였다. 십자가에 달리시기에 너무 이른 것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대 시민으로써 의무를 다하겠다는 단순한 뜻도 아니다.  
  
만약 예수님이 성전세를 바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었든 성전제도를 부인하는 셈이다. 성전만이 아니라 시내산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부인하는 것이며, 또 그것은 여호와 신앙과 구약성경을 부인하는 뜻이 된다. 결과적으로 구약성경에 기록된 메시야에 대한 모든 예언에 자신이 연결되는 모든 고리를 스스로 끊는 셈이다.  

그래도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만 하시면 메시야로서의 구속사역은 완성될 것이지만 신약의 메시야일 뿐이다. 다른 말로 이방인만 구원하는 메시야다. 유대인들은 당신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기 때문에 미워해서 구원에서 제외해버린 편협한 메시야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주라고 하셨다. 또 잘못한 자를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주라고 가르쳤다. 이방인만의 메시야라면 당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부인하는 위선자가 되어버린다. 원수는 사랑하지 않고 미워해도 된다는 윤리가 된다. 예수님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구약성경에도 이미 원수를 갚지 말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명하셨다.(레19:8) 또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할 이유도 보수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이라고 했다.(신32:35)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을 매단 원수에 해당되는 유대지도자들을 향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눅23:34)라고 기도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완성하러 오셨다. 율법을 통해 요구하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사랑을 당신의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완전하게 실현하셨다. 무엇보다 당신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온전하게 사셨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장래에 모세 같은 선지자가 올 것이라고 약속하시면서 그가 메시아인지 판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과 성취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했다.(신18:22)  

지금 예수님이 세금을 내겠다는 것은 여호와 신앙이 없다는 오해를 없애려는 단순한 목적이 아니다. 산상수훈을 비롯한 당신께서 가르치신 그대로 실천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바로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단지 말이나 제자들의 고백이 아닌, 당신의 행동으로 증험하겠다는 것이다.

복음이 복음다우려면

만약 누가 저에게 “당신 목사 아니지?”라고만 해도 아주 화가 날 것이다. 한술 더 떠 “너 한국인 아니지?”라고 하면 너무 황당무계할 것이다. 아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상대도 않을 것이다. 목사인 저도 그런 정도밖에 안되지만 예수님은 전혀 달랐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적 권세로 성전세를 내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데도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증하기 위해서 내셨다. 나아가 여호와 신앙을 가지지 않았다고 올가미를 쒸우려는 사람들을 미워하지도 따지지도 외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바로 그런 자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셨다.  

예수님은 율법준수와 선행을 강조하는 유대교를 십자가 은혜의 복음으로 대체했다. 무엇보다 복음을 복음답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완전히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이는 너무나 중요하고도 심각한 원리다. 신자 또한 그래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예수님이 그랬듯이 생명을 바쳐 순종해야 한다. 피 흘리기까지 부정한 것들과 싸워야 한다.

신자가 뒤로 호박씨 까는 위선적 모습을 보여선 복음이 절대 복음으로 알려지지 못한다. 전도에 방해만 될 뿐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다. 작금과 같이 기독교가 교회 중심의 종교 생활만 강조하는 데서, 조금 죄송한 표현이지만 교회 놀음(church party)이나 하는 데서 벗어나야 한다. 각 성도가 실제의 삶에서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기독교는 계속해서 쇠퇴할 수밖에 없다. 저를 비롯한 목회자들부터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데 대해 철저하게 회개해야 한다. 또 바르게 가르치고 목사들이 먼저 가르친 그대로 본을 보여야 한다.  

베드로의 너무나 놀라운 신분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어떻게 대우하셨는가? 너무나 놀랍고도 황송하게도 당신과 동격으로 올려주셨다. 먼저 “(하나님의) 아들들”(26절)이라고 복수로 지칭하셨다. “우리가 저희로 오해하지 않게”(27절)라고 그를 당신과 한 묶음으로 부르셨다. 돈을 한 세겔을 얻게 했다.(27절) 반 세겔 씩 두 사람의 몫으로 당신의 세금과 함께 납부하라고 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비난을 피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당신을 따르는 제자, 신자들은 성전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과 특권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엄청나게 고귀하고 소중한 위치인가?  

물론 예수님과 동등한 능력과 권능을 가진 존재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세상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로 보시고 대우하시고 그렇게 인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하고 온전한 통치를 받는다고 해서 세속 정부의 통치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예수님은 성육신 하나님 본체이시나 부활 승천하기 전까지 이 땅에서 완전한 인간으로써 할 바를 다하셨다. 메시야로서의 소명은 십자가에서 달성할 것이다. 그 전에는 참 인간으로, 하나님을 알고 따르는 자로서 반드시 살고 있어야만 하는 모습 그대로 사셨다.

유대교는 당시로선 가장 경건했다. 어쩌면 유일한 참 종교였다. 그런데도 그 장로들은 세리나 이방인과의 교제마저 금했다. 반면에 예수님은 과부, 고아, 세리, 죄인, 창녀, 불구자, 귀신들린 자들과 교제하고 섬겼다. 심지어 부정한 죽은 시체도 만지어 다시 살리셨다. 당신의 온 몸으로 그들 모두를 진정으로 사랑했다.

그러나 유대 당국은 물론 로마 제국을 뒤엎으려 하지 않았다. 기존의 체계 안에서 한 알의 밀알로써 땅에 떨어져 죽기만 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묵묵히 감당하셨다. 오직 불순물이 하나 섞이지 않는 당신의 사랑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천국 복음을 알게 하고 당신의 빛으로 거룩하게 변화시키고 성령의 사람으로 세워주었다. 한마디로 진짜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만 살았다.

신자 또한 그래야 한다. 또 그럴 수 있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순간 하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올라가 있다. 영원한 시민권을 천국에 두었다. 이 땅은 잠시 우거(寓居-stay)만 할 뿐이다. 세상 안에서 기존의 체계를 따르며 살 수밖에 없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다. 율법에 드러난 하나님의 목적대로 거룩한 성품으로 자라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실현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대표적 사례

신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하는 대표적 예가 있다. 바로 본문과 연결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우다. 본문의 주제는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과 그를 따르는 신자들의 영적 정체성에 관한 것이지 목회자의 납세에 관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기에 베드로는, 지금으로 치면 목회자는 사실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지만 예수님이 사람들의 오해를 막으려고 마지못해 내게 한 것처럼 이해한다. 또 그래서 목회자들이 세금 내지 않을 핑계로 동원하고 교인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다.    

성경은 목회자들의 면세를 가르친 적이 없다. 미국에서 목회자의 사례비에도 소득세를 부과하는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동일하게 교회의 일원 즉, 성도로 보는 것이다. 또 세금 납부는 성도 즉,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마땅히 준수해야할 의무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려야 한다고 오히려 납세 의무를 가르쳤지 않는가?(마22:21)    

바울은 성도가 주는 사례비로 생활함이 율법에도 규정되어 있기에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도록 자비량으로 선교했다.(고전9:1-12) 그도 틀림없이 예수님처럼 성전세는 물론 정세와 관세도 내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그런 일로 전도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 말이다.

오늘날의 일부 성도들의 모습은 어떠한가? 탈세 같은 부정한 방법으로 치부한다. 그러다 죄책감이 들어서 교회에는 헌금을 많이 한다. 또 그 헌금한 대가로 교회 안에 중직을 맡고서 세상에서 부리지 못하던 권세를 행사한다. 교회마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아무 가책이나 망설임 없이 세상의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유대인들이 일 년에 한번 성전세를 내듯이, 가끔 단기선교나 교회의 연례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마치 하나님의 거룩한 큰일에 충성한 것처럼 착각한다. 나아가 그런 자들을 목회자나 성도들이 믿음이 좋다고 대접해주는 분위기가 교회 안에 팽배해 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예수님이 지금 이 땅에 오셔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본다면 어떤 심정이실까? 돌 위에 돌 하나라도 남지 않을 정도로 다 무너뜨리시지 않겠는가? 초림 때에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듯이 애통해하며 탄식하지 않겠는가? 작금 복음이 참 복음으로 소개되고 가르쳐지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복음이 복음답게 전파되기 위해 성도들은 더더욱 온전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는 참 제자도의 길은 아예 가르쳐지지 않고 거의 실종되었다.      

하나님의 이 땅과 인간을 향한 유일한 관심이 무엇인가? 한 사람의 미혹된 영혼이라도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 구원하는 것이다. 또 구원 받은 자가 예수님의 분량에까지 자라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서 자기가 속한 사회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이라도 다시 찾게 되면 천국에서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했음에도 바로 죽이지 않았다.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신자가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음에도 바로 천국으로 인도하지 않으신다. 신자더러 바로 이 하나님의 소망을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수행하라는 것이다.

신자 인생의 목적

신자의 인생의 목적은 불신자와는 전혀 달라야 한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서 문제나 고통이 없고 형통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다. 세상 속에 살 수 밖에 없어도, 아니 그러니까 더더욱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등지고 있는 자를 찾아가 하나님 쪽으로 되돌리고 또 하나님 안에서 그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그 일만이 신자의 소망이요 보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겨우 한 달 남짓 남았는데 성전세를 내시고 또 베드로에게 그렇게 하는 이유를 가르치셨다. 당시에도 세금을 내는 납부 기한이 있었을 것이고 또 늦게 내더라도 연체료를 가산해서 내면 되었을 것이다. 아니 십자가에 처형당한 자의 세금 미납을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베드로에게 성전세를 내고 그래야 하는 이유는 “네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또 그래서 “하나님의 전권대사요 예수님의 형제로서 그에 걸맞게 살라!”는 것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을 너도 똑같이 걸어가라는 것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한 자였다면 세상의 방식대로 살 것이고 그러면 세상 사람들도 좋아해 줄 것이나, 그리스도 당신께 속했기에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러면 조롱과 멸시와 핍박을 당하게 된다는 것이다.(요15:19)    

이 사건 바로 앞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22-24절) 주님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산다고 하자 제자들은 심히 근심하였다. 주님은 약속하신 그대로 부활하시어 제자들의 근심을 없애주었다. 제자들에게도 부활 생명이 기다리고 있음을 실제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예수를 제대로 알고 진정으로 그를 따른다면 신자가 걸어갈 길은 좁고 협착한 가시밭길뿐이다. 그러나 이미 예수님의 부활 생명을 소지하고 있기에 그 어떤 환난에도 두려움 없이 담대할 수 있는 것이다.

신자의 시민권은 이미 천국에 마련되어 있다. 절대로 그 구원이 최소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원만이 목적이라면 예수 믿은 후에 바로 천국으로 인도하면 된다. 그러지 않은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진정으로 예수를 따르면 인간으로서, 하나님이 목적하신 그대로의 참된 인간으로 반드시 살아야 할 모습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베드로나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며 원수까지 사랑하고 기도해주는 그런 삶 말이다.  

또 바로 천국으로 인도되지 않기에 신자를 위해 독생자까지 아까지 않고 주신 하나님은 다른 모든 좋은 것을 은사로 주신다. 하나님이 신자의 편이기에 세상 어떤 것도 그 관계를 훼방할 수 없다. 하나님이 이 땅과 사람에게 목적하시는 바로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게끔 그러는 것이다.

예수 믿는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이미 된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 믿어 구원 얻은 신자의 가장 특권은 바로 예수님과 똑 같은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아니 그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단순히 인간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정도가 아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신분과 위치에서 이웃을 섬기며 사랑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몸은 죽여도 그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세상, 사람, 고난, 시험, 죄악, 사탄 등에게 당당히 맞서 싸워 이기는 것이다. 신자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그리스도의 향기와 빛을 드러내어야 한다. 그를 보는 자들이 그 속에 있는 예수님도 함께 발견해야 한다.  주위의 단 한 명이라도 예수님의 거룩한 빛 가운데로 들어오게 만들어야 한다. 신자를 보는 자가 예수를 믿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거나, 최소한 관심이라도 갖게 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알다시피 C. S. Lewis는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미쳤거나 당신이 말씀하신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다. 신자의 사는 모습을 보는 불신자들에게서 완전히 이상한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자이거나 혹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고 따르는 자라는 평가는 들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세상 사람은 갖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신자가 가진 가장 큰 특권인 것이다.

7/21/2013

국중후

2013.12.04 22:58:56
*.243.238.62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힘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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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자(小子)를 실족(失足)케 하는 죄란? 마태복음강해 (179) http://youtu.be/NjTfDgsrEhs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

정말로 천국에 입성할 조건을 갖추었는가? (마태복음강해 #178 - 마18:1-4) [2]

정말로 천국에 입성할 조건을 갖추었는가? 마태복음강해 (#178) http://youtu.be/Bce9n74I0gI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나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저...

예수님을 따르는 가장 큰 특권 (마태복음강해 #177 - 마17:22-27) [1]

예수님을 따르는 가장 큰 특권 마태복음 강해(#177) http://www.youtube.com/watch?v=eDnptNfE69o&feature=c4-overview&list=UUNt3JlSqShQGS5sxosIjeiw ( 링크를 크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읍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

귀신을 쫓을 수 있는 기도 (마태복음강해 #176 - 마17:14-21)

귀신을 쫓을 수 있는 기도 마태복음 강해(#176) http://youtu.be/Mt0gnEZE0d4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

순교할 각오가 없으면 전도하지 말라. (마태복음강해 #175 - 마17:9-13) [2]

순교할 각오가 없으면 전도하지 말라. 마태복음강해 (#175) http://youtu.be/Vpbke7xmaCs (클릭하시면 You-Tube 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

자기가 고백한 말도 모르는 신자 (마태복음강해 #174 -마17:1-8) [1]

자기가 고백한 말도 모르는 신자 마태복음 강해 (#174) http://www.youtube.com/watch?v=9FdUVIyZ6G4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

모든 신자는 순교해야만 한다. (마태복음강해 #173 - 마16:24-28)

모든 신자는 순교해야만 한다. 마태복음강해 (#173) http://youtu.be/DUyzMzB-GpM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분별하려면?(마태복음강해 #172 - 마16:21-23) [3]

사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분별하려면? 마태복음 강해 (#172) http://youtu.be/Tt4NB_opjHQ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어떤 교회가 참 교회(Real Church)인가? (마태복음강해 #171 - 마16:18-20) [1]

어떤 교회가 참 교회(Real Church)인가? 마태복음 강해 (#171) http://youtu.be/mvOUTHTg0tw (클릭하시면 You-tube 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磐石)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지금도 너무나 진지하신 하나님 (마태복음강해 #170 - 마16:13-17) [1]

지금도 너무나 진지하신 하나님 마태복음 강해 (#170) http://youtu.be/Q8Wm1DGQPqI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가로되 ...

뒤로 호박씨 까지 않는 신자가 되려면? (마태복음강해 #169 - 마16:5-12) [2]

뒤로 호박씨 까지 않는 신자가 되려면? 마태복음강해 (#169)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쌔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

우산장수보다 영성이 모자란 목사 (마태복음강해#168 - 마16:1-4) [2]

우산장수보다 영성이 모자란 목사 마태복음 강해 (#168) http://youtu.be/COwrBErfD5w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

“요나의 표적”의 올바른 의미? (마태복음강해 #167 - 마16:1-4) [1]

“요나의 표적”의 올바른 의미? 마태복음 강해 (#167) http://youtu.be/n9MCTjLOdj8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불쌍한 자? (마태복음강해 #166 - 마15:29-39)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불쌍한 자? 마태복음강해(#166) http://youtu.be/qTcPMbp-30I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큰 무리가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당신의 믿음은 얼마나 큰가? (마태복음강해 #165 - 마15:21-28)

당신의 믿음은 얼마나 큰가? 마태복음 강해 (#165) http://youtu.be/H478WztE6Pc (클릭하시면 You-Tube 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

부활 가운데 서있는가? (부활절 - 요17:1-5)

부활 가운데 서있는가? 2013년 부활주일 설교 http://youtu.be/-mgg9qhnS_s (클릭하시면 설교를 You-Tube에서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

이스라엘을 편애하는(?) 하나님 (마태복음강해 #164 - 마15:21-28) [1]

이스라엘을 편애하는(?) 하나님 마태복음 강해(#164) http://youtu.be/r9QBDS4JFIU (클릭하시면 설교를 you-tube에서 오디오로 들을 수 있음)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마태복음강해 #163 - 마15:15-20) [2]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마태복음 강해(163) http://youtu.be/5i_BO3cMMFI (클릭하면 You-Tube 오디오로 들을 수 있음)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입으로...

예정 교리는 예수님이 제정했다. (마태복음강해 #162 - 마15:10-14)

예정 교리는 예수님이 제정했다. 마태복음 강해(162) http://youtu.be/gIoMIua8IbY (클릭하시면 유튜브로 연결되어 오디오로 들을 수 있음) “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

지금도 교회에 만연한 고르반 (마태복음강해 #161 - 마14:34-15:9) [2]

지금도 교회에 만연한 고르반 (마14:34-15:9) 마태복음 강해 (161) http://youtu.be/OB9sbUBgzoM “저희가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그 곳 사람들이 예수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 가에라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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