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주님을 부인하면? 

 

[질문]

 

순교의 상황이 왔을 때 순교하지 않고 주님을 부인하면 결코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게 성경적 가르침인가요? 정말 주님의 피로 거듭났으며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는데 그 순간 너무 두려워 베드로와 같이 주님을 어쩔 수 없이 부인했는데 (그 순간 죽임을 당한다면) 그 사람은 무조건 지옥 간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요? 정말 구원받은 사람은,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어떤 순교 상황이 와도 죽을 수 있는 건가요? 결과적으로 주님을 부인하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요?

 

[답변]

 

구원의 방안은?

 

신자들이 궁금해하지만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은 문제입니다. 구원받았다는 기준에 대해 너무 표면적으로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받는데 입으로 부인했으니 스스로 자기 믿음을 부인한 셈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취소될 수밖에 없다고 여깁니다.

 

신앙상의 의문을, 그것도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구원에 관한 문제를 초등학생이 더하기와 빼기 하듯이 아주 단순하게 추정해서 결론을 내버립니다. 정작 그런 해답을 내고서 자기에게 적용해보니 그런 상황이 닥치면 끝까지 시인할 수 있을 자신이 도무지 없습니다.

 

그러니 그 얻은 답이 틀렸기를 바라거나 뭔가 다른 해결책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집니다. 교회에 물어도 목사를 비롯해서 막상 누구 하나 확실하게 답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게 된 까닭은 바로 로마서의 아래 구절 때문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바울 사도는 단지 입으로 시인했다고 구원받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마음에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말은 마음속에 있는 것을 겉으로 표출하는 통로입니다. 마음에 없는 말은 헛소리, 거짓말, 심하게 말해 소음일 뿐입니다. 그럼 마음에 믿는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 하는데 본문 안에 이미 설명해 놓았습니다.

 

네 입으로 예수를 주(主)로 시인하라고 즉, 먼저 마음으로 예수가 주라고 믿어야 합니다. 주는 자신의 존재와 삶과 인생 전부를 주관하시는 분임을 확신하고 그분께 자기 모든 것을 의탁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지키며 그분이 가신 길로 따라가며 실제로 실현하고 있어야 합니다. 종이 주인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듯이 예수를 그렇게 모시고 있는 것이 믿음이지 입술로 시인했다고 믿음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요한 사도도 같은 맥락으로 구원에 대해 정의(定意)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그 이름을 믿는다는 것이 바로 예수를 자신의 주로 영접하여 그분 말씀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구원의 기준은 마음의 중심에 예수를 모셨느냐에 달렸고 입술로 시인하는 것은 그 외적 고백입니다. 그럼 이 주제에 대한 정답은 벌써 나왔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입술로 부인했다 해도 그 중심에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느냐를 따져봐야 합니다. 단순히 입술로 부인했다고 해서 구원이 취소된다고 함부로 단정 지어선 안 됩니다.

 

입으로 세 번 부인한 베드로

 

예로 드신 베드로의 경우를 살펴봅시다. 그는 예수님과 삼 년간 동고동락하며 복음을 배웠고 제일 먼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마16:16) 그는 분명 주님을 영접했고 일생을 걸고 주님만 따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실제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체포되기 전에 앞장서서 목숨을 걸고서 주님을 보호하려 했습니다. 로마와 유대 당국에 결사 저항하겠다는 뜻으로 대제사장 하인의 귀를 칼로 잘랐습니다. (요 18:10) 주님의 수제자로 당시에는 그만한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판장에선 막상 자기 생명에 위협을 느끼자 입술로 세 번이나 스승을 부인했습니다. 그럼 그의 마음에 믿음이 없어졌고 주로 모셨던 사실을 취소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그 후 곧바로 재판정에서 나가선 자기 잘못에 대해 회개하며 심히 통곡했습니다. (마 26:75) 그의 중심에는 여전히 예수님이 자신의 주인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당연히 구원도 취소된 것이 아닙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생깁니까? 베드로야말로 오늘날의 신자 모두를 대표하는 자입니다. 예수 믿었다고 예수를 위해 목숨을 던질 만큼 당장 담대해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기를 다른 사람은 물론 심지어 하나님보다 높이려는 타락한 본성이 살아있습니다. 구원받았다고 실수나 죄를 한 번도 범하지 않는 온전한 본성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구원 전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찾지도 않고 거역하는 죄의 노예 상태였습니다. 스스로는 하나님을 따르거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구원 후로는 하나님이 좋아지고 그분을 스스로 찾고 기꺼이 따를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한 것뿐입니다. 항상 그렇게 되거나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 의지의 방향이 사탄 쪽으로만 고정되었던 것이 하나님 쪽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며 그분을 실제로 따르는 일은 신자가 피 흘리기까지 노력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부인했을 당시에 그는 이미 구원을 받았고 믿음도 정상이었습니다. 일시적으로 그런 죄의 본성에 진 것입니다. 그는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겁을 먹고 재판장까지 따라가지 않고 벌써 다 도망가버렸습니다. (마 26:56) 그들은 입으로가 아니라 아예 몸으로 부인했습니다. 우리가 만약 당시에 같은 처지였다 해도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가 부인했던 까닭은 아직은 성령의 권세를 충만히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제자들로 땅끝까지 끝날까지 천국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게 하려고 당신께서 함께하실 것이며 또 성령을 보내신다고 했습니다. 그럼 권능을 받는다고 합니다. 목숨이 걸린 상황에서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만한 믿음의 권능을 하나님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실제로 오순절 강림 이후에 베드로는 이전에 세 번이나 부인했던 모습과 정반대로 바뀌었습니다.

 

그날에 성전에서 예수가 부활하신 메시아라고 담대하게 선포하여 삼천 명이나 회심시켰습니다. 주님의 수제자였기에 당장 잡혀가서 자기도 십자가 처형을 당할 수 있는 처지임에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유대 지도층들이 그를 잡아 가두면서 부활 이야기만 빼라고 회유 협박했으나 그는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을 들을 것이며 그분께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했습니다. (행 4:16-20)

 

이처럼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게 역사해야 목숨을 걸고 순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주님을 사랑한다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충만해져 있다고 해서,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올지라도 절대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큰소리쳐서도 안 됩니다. 반대로 막상 주님을 부인했다고 해서 지옥 간다고 섣불리 가르쳐서도 안 됩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분도 그런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참고로 저는 설교나 성경공부 중에 도무지 그럴 자신이 없다고 실토합니다.

 

스데반과 초대교회 신자들의 순교

 

스데반을 비롯해 초대교회는 물론 중세 암흑시대나 종교개혁 당시에 이름 없는 수많은 신자가 순교했습니다. 산 채로 불에 태워지고 맹수에 먹혀도 찬송을 부르며 스데반처럼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며 평온과 기쁨에 넘쳐서 천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에 비하면 저희의 믿음은 너무 보잘것없어 보이며 주님을 부인하면 지옥으로 가는 것이 옳은 듯이 여겨집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성령이 임재해야 하고 믿은 후에는 성령이 끝까지 내주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 3: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순교하려면 성령의 권능이 충만하게 역사해야 한다면 어떤 권능을 말합니까? 성령이 당신의 뜻에 따라 각 성도에게 적합하게 나눠주는 여러 외적 은사 중에 특별히 “믿음의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고전 12:9) 예수를 주로 영접할 때 선물로 받는 믿음이 아니라 어떤 위급한 경우가 닥쳐도 믿음을 굳건하게 유지할 수 있는 권능을 말합니다.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의 권능에 충만해졌을 때에 믿음의 은사도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어떤 위협에도 예수를 입술로 부인하지 않고 순교할 수 있을 정도의 담대한 믿음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믿음의 은사를 받은 자들이 열악한 아프리카 오지나 순교할 가능성이 아주 높은 이교도 지역의 선교사로 자원해서 갈 수 있습니다.

 

순교에 있어서 또 살펴볼 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정작 성경에는 순교의 기록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삼손(삿16:28-31; 자원이라 엄밀히 말해 순교가 아님), 신약에는 세례 요한(마1:1-14), 스데반(행7:59-60), 야고보(행12:2) 정도입니다. 각각의 경우에 반드시 순교로 이끌어야만 했던 하나님만의 뜻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스데반의 순교에 바울이 크게 찔림을 받고 영적 고뇌가 시작되었을 것입니다.

 

바꿔 말해 순교는 신자가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해서, 심지어 순교를 소원한다고 해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께 믿음의 은사를 받아야 하고, 하나님께 복음 전파의 특별한 소명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이 핍박을 받는 상황으로 인도하여야 하고, 무엇보다 그 순교로 드러낼 하나님의 특별한 뜻이 있어야만 합니다. 순교는 인간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초대교회나 중세의 수많은 순교나 오늘날 이교도 지역의 순교자들이나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시키는 순교이기에 그것을 감당할 힘도 주십니다. 스데반의 경우에는 성령의 권능으로 감싸서 처음에는 몰라도 나중에는 고통 없이 세상이 모르는 평강과 기쁨 가운데 숨을 거두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이끄시는 순교 현장이라면 동일한 은혜와 권능이 임할 것입니다.

 

요컨대 이런 질문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 안에서 순교할 자만 순교하게 하므로 구원과 관련해 논의할 이유도 필요도 없습니다. 작금 단순히 교리로만 따져서 순교하지 않으면 그것도 입술로 부인했다고 구원 취소되고 지옥 간다고 말하는 것은 종교적 말장난에 불과한 시간 낭비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완벽한 섭리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셈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처음 주신 명령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을 정복해 다스리라는 인간 고유의 청지기 직분보다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창1:28) 그래서 살인이나 자살은 절대로 행해선 안 되는 죄입니다. 반대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지간한 잘못도 용서받거나 정상참작이 됩니다.

 

문제는 원죄 하의 모든 자연인이 청지기 직분을 감당할 뜻이 전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신자로 그 직분을 수행하도록 세상에서 불러냈습니다. 신자는 먹고 마시는 형통 안락 즉, 생명 유지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청지기 직분이 우선입니다.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되 특별히 믿음의 은사를 받은 자가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순교의 영광까지 얻는 것입니다.

 

사영리(四靈理) 전도

 

이 주제와 연관되므로 추가로 언급하고 싶은 사항이 둘 있습니다. 먼저 사영리 전도방식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구원에 관한 아래의 네 가지 영적 원리를 먼저 전합니다. 그대로 믿고 동의하면 예수 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따라 하게 하고 난 후에 구원을 얻었다고 인정해주는 전도방식입니다.

 

제1원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 제2원리: 사람은 죄에 빠져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 수 없고, 또 그것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 제3원리: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유일한 길입니다. 당신은 그를 통하여 당신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 제4원리: 우리는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각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게 되며, 또 그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이는 구원의 진리일 수는 있어도 구원의 방식은 결코 아닙니다. 최대한 양보해서 전도하는 여러 방식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신학적으로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여기서 논할 계제는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것이 전도가 아닌 구원의 통로처럼 오해 오용되고 있습니다. 이 또한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로마서 말씀을 단순히 문자적으로 적용한 탓입니다.

 

구원은 오직 정말로 성령으로 새롭게 되는 회심의 역사가 자신의 내면에 일어나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온전히 주님만 따르기로 인생관과 가치관이 이전과 정반대로 전도되어야 합니다. 실천은 더딜지라도 삶의 목표 방향 방식에서 완전한 유턴이 일어나야 합니다. 말 그대로 예수님을 자기 전부를 걸 수 있는 진짜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반면에 사영리 식의 전도는 전해지는 내용도 빈약할 뿐 아니라, 실제 회심이 수반될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언제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중환자라면 시간이 너무 없어 사영리로 복음을 간략하게 전할 수는 있겠지만 여전히 상대의 진정한 회심이 먼저여야 합니다. 회심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성령이 실제로 역사하여 마음에 순전한 믿음이 생기는 것이지 죽음 이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입술로 시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사영리로 전도 받은 자들이 금방 자신의 믿음을 부인하는 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전하는 자의 열심과 성의를 봐서 예라고 대답했다든지, 목사가 정색으로 권면하는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느냐, 사실은 하나님이 살아있다는 것도 확신이 없다고 하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전해진 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원 진리의 일부이며 또 진심으로 동의하고 믿었다면 지식적 수용이 있은 것은 분명하지만 진정한 영혼의 변화가 따랐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적그리스도에게 협조하면?

 

이와 정반대 경우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나치 독일의 참혹한 홀로코스트에서 생존한 유대인들이 무력으로 위협해 어쩔 수 없이 행동의 노예는 물론 말로 순종하기는 했어도 영혼까지 그들에게 항복한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습니다. 겉으로는 나치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어도 마음속 믿음까지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뜻입니다.

 

공산당이 총부리를 겨누고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고 그렇지 않으면 즉사시킨다고 위협하는데 끝까지 순교하겠다는 신자도 물론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자기 믿음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 어떤 상황이 됩니까? 사영리 전도를 받고 진정한 회심과 믿음이 없는데도 예수를 영접한다고 입으로 시인했더니 교회와 목사가 구원받았다고 인정해주었습니다. 반면에 당장 목숨이 달아날 판이라 속으로 믿음은 포기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입술로 주님을 부인했더니 이제 교회와 목사가 지옥 간다고 저주 심판했습니다. 전자는 구원받지 못하고 후자는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너무 쉽고도 자명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나치 독일, 한국 동란 때의 공산당, 일제 강점기의 일본, 마지막 때의 적그리스도 등에 목숨을 부지하려고 협력한 신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마찬가지로 내면의 믿음이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적국에 어쩔 수 없이 협력한 정도를 넘어서 충성하고 그 나라를 위해서 크게 업적을 세운 믿음의 선진이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 모세, 다윗, 다니엘, 그 세 친구 등이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일시적인 행위 한둘을 보지 않고 일생에 걸친 마음의 중심으로만 판단하십니다.

 

사실은 질문자께서 이미 답변을 알고 있다는 점을 질문에 시사해 놓았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주님을 어쩔 수 없이 부인했는데 (그 순간 죽임을 당한다면) 그 사람은 무조건 지옥 간다는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의도적으로 괄호를 쳤습니다.

 

로마, 공산당, 나치, 일본, 적그리스도 누가 되었던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부인했는데 죽일 리는 없습니다. 그 순간 죽임을 당한다고 가정한 것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을 질문자도 알고 있지만, 순전히 교리로 따져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 순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베드로처럼 심히 통곡하며 회개할 시간적 여유가 있음을 질문자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구원에 아무 문제가 없음은 성경이 이미 말하고 있는 진리입니다.

 

말하자면 입으로 예수를 부인하면 지옥 간다고 가르치는 자들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신자들에게 종교적인 협박을 하는 셈입니다. 막상 그런 경우가 닥쳤을 때 베드로보다 나을 자 한 명도 없다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나중에 세 번이나 회개할 기회까지 주셨습니다.

 

또 그에게 성령의 권능으로 입혀서 어떤 위협에도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사도로 세워주셨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는 영광의 자리에까지 주님이 인도하셨습니다. 정말로 순전한 믿음이 있음에도 오직 생명을 건지기 위해 입술로 부인하는 것은 칭찬은 못 해도 가장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입술로 그냥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지옥에 가겠지만 말입니다. 

 

12/12/2018


master

2018.12.12 14:04:24
*.246.12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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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기독 청년으로부터 카톡으로 개인적으로 문의 받은 것이지만 많은 이가 궁금해 하실 것 같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샬롬!

옷자락

2018.12.12 22:57:35
*.170.222.121

주님을 따르겠다는 마음으로 충만해져 있다고 해서, 자기 목에 칼이 들어올지라도 절대 주님을 부인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큰소리쳐서도 안 됩니다

 

 

아멘 !!!!!!!

샌디

2018.12.23 05:02:26
*.126.208.52

역시 명확한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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