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뜻은? (1)

조회 수 689 추천 수 3 2019.02.07 06:57:19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뜻은? (1)

 

[질문]

 

누가복음 10:25-37,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대해 궁금합니다.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인정합니다만 이 이야기의 시작이 영생을 얻기 위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잘못 해석한다면 마치 선한 행동으로 영생을 얻는 다는 뜻이되고 또한 그렇게 설명하는 교수님도 있었습니다. 선한 행실에 대한 많은 성경구절이 있지만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 비유를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까요?

 

[답변]

 

전체 문맥의 구조와 의미의 흐름

 

질문자님께서 지적하신 대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뜻을 정확히 알려면 그 비유를 말씀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야 합니다.  이 비유 하나만 따로 떼어내어서 해석해선 안 됩니다. 비유가 속한 전체 문맥의 구조와 그 의미의 흐름을 정확히 분석해야 합니다. 이는 모든 성경해석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절대적 원칙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영생을 얻는 방안을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24절) 주님은 그에게 율법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되물었습니다.(25절) 율법사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26절) 주님은 그것이 옳으니 그대로 행하라고 답해주었습니다.(27절)

 

그러자 그 율법사는 다시 내 이웃이 누구인지 물었으며(29절) 주님은 그에 대한 답변으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었습니다.(30-35절) 따라서 이 비유 자체의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의미는 선행을 독려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가 사랑으로 섬겨야 할 이웃의 범위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비유의 결론으로 누가 강도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반문한 것입니다.(36절)

 

주님이 율법사의 질문에 직접적인 답을 주지 않고 두 번이나 반문하면서 비유를 동원한 것은 당시의 유대 랍비의 전형적인 교육 방법이었습니다. 질문을 받으면 거꾸로 동일한 주제로 조금 더 발전된 질문을 던져서 스스로 생각하여 정답을 유추하게끔 하는 방식입니다. 비유는 실제 현실에서 자주 일어나는 일이나 익숙한 관습을  생생한 그림 언어로 보여주어서 질문에 대한 정답을 쉽게 얻도록 하려는 방안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이웃이 될 대상으로 제사장과 레위인과 사마리아인 셋을 예로 들어서 비유를 통해 서로 비교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었습니다. 그 비교는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답을 고를 수 있는 객관식 문제나 다름없었습니다. 율법사도 당연히 정답을 골랐기에 주님이 옳다고 확인해주면서 너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명했습니다.(37절)

 

전체 문맥의 흐름을 다시 정리하면 율법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는지 물었고 주님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답했으며 마지막에도 사마리아인처럼 자비를 베풀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언뜻보면 주님이 선행 구원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허술한 기록이 아니며 아주 정미하고 완전한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경우에 따라서 바뀔 리는 결코 없습니다. 특별히 구원의 방안이 은혜와 행위 둘을 다 지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잘 살펴보면 그런 뜻이 아님을 여러 곳에서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문맥에서 정확한 뜻을 유추해야 한다는 원칙만 간단히 따져봐도 그렇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21-24절) 어떤 내용의 말씀이 있었습니까?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22절)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만 이뤄진다는 절대적 대원칙을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하는데 당신께서 당신을 계시해주셔서 구원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원리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긴 것도 아버지의 뜻”(21절)이라고 하면서 “많은 선지자와 임금들이 보고 듣지 못했다”(24절)고 재확인 했습니다. 이어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럼 이 율법사도 그 원리를 보고 듣지 못한 자에 속하는 대표적인 예로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요컨대 그는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특별히 예수가 누구인지 모르는 이는 구원을 받지 못하며 하나님과 이웃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이 사마리아인 비유를 드신 주님의 참 의도인 것입니다.

 

문맥 상의 의미의 흐름도 단순히 [영생 얻는 방안-이웃 사랑 행위]의 구조가 아니라, [영생얻는 방안-이웃 사랑의 본질-이웃의 범위-구원의 원리]라는 구조입니다. 구원을 얻는 방안을 서두에 발제한 후에 결론으로 묶여 있고 그 중간에 이웃 사랑의 본질에 관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포함된 것입니다. 요컨대 이 비유는 율법 구원이 아니라 은혜 구원이라고 설명한 것입니다. 과연 그런지 본문의 정미한 기록을 추적해보도록 합시다.   

 

율법사의 질문 (1)

 

율법사는 “예수를 시험하려고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순수하지 않고 시험할 목적이었습니다. 그가 주님께 무엇을 왜 어떻게 시험하려 했습니까? 그가 뱉은 말 안에 진의가 숨겨져 있으며 또 그 진의는 당시의 전후 사정과 일치함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영생을 얻는 방안은 “무엇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스스로 미리 전제하고 질문했습니다. 행위구원이 절대적 진리라는 것입니다. 거기다 그가 주님을 신령한 랍비로 존경 최소한 인정하고 행위 중에서도 특별히 어떤 선한 행위를 해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정말로 궁금하거나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 시험한다는 표현을 사용할 리 없습니다.  

 

우선 선생님이라는 호칭부터 그러합니다.  유대교의 정통 랍비학교 출신이 아닌 나사렛시골의 비주류 랍비라는 의미입니다. 율법사는 자기들은 하나님의 선민으로 이미 율법을 소유하였고 그대로 따르니 구원은 확정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구태여 영생을 얻는 방안이 궁금할 것도 없습니다. 밤중에 주님을 몰래 찾아온 니고데모가 율법대로 행했으나 아무래도 구원의 확신과 평강이 없어서 겸손한 자세로 진지하게 질문한 태도와 대조됩니다.

 

그런데도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지 물은 것은 역으로 따지면 예수와 그 제자들이 율법대로 따르지 않기에 영생과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하여 비평하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치유사역을 행했고(눅4:31-37), 밀 이삭을 잘라 먹었으며(눅6:1-5), 제자들도 세리와 죄인(복음서에선 이방인을 주로 지칭함)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했으며(눅5:30-32), 요한의 제자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금식하고 기도하나 예수의 제자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눅5:33-39) 나아가 주님은 당신께서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졌다는 선언까지 했습니다.(눅 5:24)

 

누가복음의 본문 앞에 있었던 일을 간단히 살펴보아도 이미 주님은 유대종교지도자들로부터 여러 면에서 미움을 사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마른 사람을 고쳐준 일로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눅6:11)했을 정도입니다. 본문의 율법사는 그런 의논 끝에 대표로 나서서 주님을 유대 법정에 고소할 거리를 찾으려 한 것입니다. 최소한 예수의 가르침이 틀렸다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려는 의도였습니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은 그 정답을 누구나 알고 있고 하나 밖에 없는 닫힌 질문입니다. 어떻게 해야 학교 성적을 올릴 수 있습니까와 같은 성격입니다.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 유일한 정답입니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으면 율법대로 행해야 한다가 정답인데 주님과 제자들은 율법대로 행하지 않지 않느냐고 따질 참인 것입니다. 안식일도 어기고 세리 이방인과도 교제하고 금식 구제 기도에도 열심을 내지 않는다고 비방하여서 최소한 자기들이 영적으로 훨씬 의롭고 신령하다고 증명하려는 꿍꿍이였습니다.   

 

예수님의 답변 (1)

 

주님이 그 질문의 숨을 뜻을 모를 리가 없습니다. 정확하게 율법사의 의도를  집어내어서 되물었습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  이 반문의 숨은 뜻은 무엇입니까? “너는 지금 율법대로 행하면 영생을 얻는다고 믿고 있으면서 왜 이런 질문을 내게 하느냐? 그냥 네가 그 율법을 해석하는 바에 따라서 행하면 될 것 아니냐?”  모든 인간의 심령의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어보시는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대답입니다. 표현은 부드러우나 상대로 하여금 그 영적 권위 앞에 엎드리게 하는 내용입니다.

 

당연히 행위 구원이 옳다고 인정해주려는 뜻이 전혀 아닙니다.  질문한 의도와 방식에 맞추어서 랍비의 교육법에 따라 되물은 것입니다. 오히려 숨은 진의를 정확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이 반문으로부터 공격과 방어가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주님을 꼬투리 잡으려 왔다가 자기 속내를 정확히 들켜버렸습니다.

 

주목할 것은 율법사는 율법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행위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으려 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예수와 제자들의 자기들 보기에 율법을 위반한 행위들을 비방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지금 "율법을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율법의 전체적인 뜻과 주제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입니다. 율법이 규정하는 개별적인 행위가 아니라 율법을 제정하신 뜻으로 토론의 주제를 은연중에 바꿔버린 것입니다.

 

만약 주님이 “율법에 어떤 것을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기록되었느냐? 그럼 그대로 행하라”고 대답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율법사는 첫마디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습니다라고 답하면서 선생과 제자들은 왜 안식일을 안 지킵니까라고 따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 누가는 본문 서두에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라고 분명히 밝힌 후에 이 기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을 네가 어떻게 읽느냐?”는 질문은 율법의 전체 주제가 무엇이냐라고 물은 것입니다. 율법에서 핵심은, 법체계로 따져서 헌법에 해당되는 것은 십계명입니다.  알다시피 십계명의 전반(1-4계명)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 후반(5-10계명)은 사람과의 수평적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바탕에서 이웃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웃도 그와 같이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언뜻 보면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으니 구체적 행위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다시 비유컨대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은 성적을 올리기 위한 원리인 반면에, 자습서를 갖고 새벽 한적한 시간에 노트에 적고 암기해야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공부하는 행위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은 공부 열심히 하라는 원리와 같은 반면에, 겉옷을 저당잡지 말아야 하며 이자를 받지 말고 돈을 꾸어주라는 등은 구체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에 속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도 원리이며 안식일을 이렇게 저렇게 지키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는 행위인 것과 같습니다.

 

원리는 바로 정신입니다. 하나님이 온 율법을 제정한 정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라면 당연히 이웃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 주님은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마22:40)이라고 재확인해준 것입니다. 율법을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반문하신 주님의 뜻을 정확히 아셔야 전체 문맥의 흐름도 짚을 수 있습니다.  

 

율법사의 대답과 주님의 반문(2)

 

율법사는 “

 

-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이어질 것입니다. -

 


master

2019.02.07 07:05:43
*.94.91.146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관해선 앞으로 설명할 내용이 아주 많습니다. 질문자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는 것 같아 우선 간단히 참조하시라고 이사 정착하느라 바쁜 와중에 서두만 일부 작성해서 올렸습니다. 앞으로 계속해서 보충 수정될 것입니다. 물론 간단히 답변해드릴 수도 있지만, 성경이 얼마나 정미하고 완벽한 기록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되고 또 그에 반해 너무 설렁설렁 겉핥기 식으로 말씀을 대하는 본보기이므로  좀 길더라도 자세히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천천히 잘 읽어보시면 앞으로 성경을 대하는 자세나 해석하는 방법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샬롬!

낭여

2019.02.09 22:34:27
*.205.4.86

와우

forgrace

2019.02.12 05:12:14
*.109.232.153

전 질문자는 아니지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몇번 읽으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이웃이라는 걸까 의문이 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집중해서 읽었네요. 얼핏얼핏 그런 느낌이 들었던 부분들을 더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설명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뒷 내용이 궁금해집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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