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도 세상 실력을 열심히 쌓아야 하나요?
[질문]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공부로 성공하는 것이 자기 욕심을 채우는 셈이라는 설교를 많이 듣다보니 돈을 버는 것이나 또 그러려고 공부하는 것 등이 성공을 향한 탐욕과 같이 여겨졌습니다. 자연히 공부하는 마음은 내려놓고 주변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에만 최선을 다해 지난 10년을 보냈습니다. 자기 비움, 내려놓음 등으로 저는 어느덧 교회에서 성실한 언니 누나는 되었고 직장에서도 착하고 선한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제 안에 실력을 쌓고 또 그로 인해 번 돈을 나누는 적극적인 실천은 별로 없습니다. 성경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하였는데 저는 교회에서의 빛과 소금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반면에 돈 실력 학업 등에는 게을리 하고 산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공부나 실력 등을 어떻게 사용하길 원하시는지요? 또 신자가 열심히 공부해서 세속 직업에 충실해야 한다는 성경적 근거가 있는지요?
[답변]
하나님이 신자에게 맡기신 소명
신자는 세상에 속한(of the world) 자는 아니지만 세상 안에서(within the world)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시공간의 제약을 받고 인과응보의 법칙이 주관하는 물질계 안에서 사탄에 미혹되어 있는 죄인들과 죽음의 세력이 지배하는 세상과 어쩔 수 없이 매일 부딪히며 살아야 합니다. 쉽게 말해 일상생활은 세상 사람과 똑 같은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직업을 가져야 하고 교육을 받아야 하며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지 돈 자체는 가치중립적인 것입니다. 어떤 면에선 생산 유통 소비라는 경제구조를 원활하게 움직이는데 필수적이고 좋은 것입니다. 돈을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벌어서 그분의 방식으로 소비하면 됩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가장 원하시는 첫째 사항은 생명의 보존 유지입니다. 이는 모든 생명을 가진 피조물에게 다 해당됩니다.(창1:28a) 불신자에게도 그래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에 따라 내려주시는 것 같은 일반적인 은총을 베푸십니다. 이런 창조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이 신자를 포함해 인간에게 부여한 첫째 사명은 결혼하고 가정을 꾸려 자손을 낳고 번창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맡기신 둘째 사명은 이 땅을 그분을 대신하여 거룩하게 다스리는 것입니다.(창1:28b) 그런데 아담의 타락 이후로 모든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이 둘째 사명을 외면했습니다. 오직 자기만을 앞세우고 자신과 가족의 안락 풍요 형통만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자신만 위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됨으로써 세상은 죄악이 번창하고 사람끼리 무한 경쟁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 둘째 사명은 예수 십자가 구원의 은혜로 하나님께로 돌아온 신자들이 앞장서서 감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그것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불러내어서 주님의 복음을 품고서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게 했습니다. 신자들로 어떤 방식으로든, 특별히 자기가 행하는 직업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빛을 비추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에겐 성령을 내주케 하여 당신과 평생 교제하는 특별한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신자는 이 땅을 하나님 대신에 아름답고 선하고 진실 되게 가꿔야 하는 청지기의 직분을 맡은 것입니다. 단순히 영적으로 깨끗케 되고 다른 이를 복음으로 초대하는 것으로 부족합니다. 이 땅에 정말로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서부터 실현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과 교통하여 그분의 뜻을 분별하고 또 그분의 인도에 따라 그 소명을 실현하도록 성령이 신자 안에 내주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이 둘째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첫째 사명부터 제대로 유지되어야 합니다. 신자니까 특수 은총만으로 살라는 법은, 쉽게 말해 수도원에서 혼자 거룩해지고 영성만 갈고 닦으라는 요구는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당신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는 의미도 그것이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만 살면 쉽게 율법적 도덕적 신앙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습니다. 또 자기만의 영성만 갈고 닦다가 신비한 영적 체험을 중시하는 은사체험주의로 빠지거나, 아니면 현실도피적인 잘못된 종말주의 신앙으로 변질합니다.
최근에 목사들이 교회중심으로 살라는 또 그래야 복 받는다는 가르침은 완전히 틀린 것이며 비성경적입니다. 교회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특별히 예수 십자가 사랑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일주일 내내 청지기적 소명을 실현하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서 세상에 흩어졌던 성도들을 일주일 중 하루 다시 모여 재충전 훈련시키는 곳입니다. 주중 6일을 위해서 주일이 있는 것이지, 주일을 위해서 주중 6일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도 마지막 유언으로 세상 끝 날까지 땅 끝까지 가라고 했지 한곳에 모여 예배만 드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매일 부딪히며 살 때에 어떤 위험과 고난이 닥칠지 모르니까 하늘과 땅의 권세로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신자도 반드시 또 제일 먼저 자신의 전인격체를 건강하고 풍성하게 가꿔야 합니다. "공부해서 남 주나 다 내 잘 되라고 하는 것이지"는 불신자가 공부하는 목적입니다. 신자는 "남을 주기 위해서“ 즉, 사회를 아름답게 바꾸는 청지기 직분을 수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잘 건설하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최대한 키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뜻은?
성경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 세상 윤리가 말하는 중용(中庸)의 덕을 취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어느 쪽이든 극단 혹은 과잉으로 행하지 말고 적절한 선에서 양쪽을 균형과 조화를 맞추어 타협 포용하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좌나 우나 치우치는 것은 진리가 아닌 비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생명과 구원과 진리의 길로만 가야하고 그렇지 않은 길로는 절대 가지 말라는 뜻입니다.
질문하신 주제에 적용하면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에 들일 시간과 노력을 적절히 균형 있게 배분하고 어느 쪽이든 너무 과하게 하지 말라는 식의 뜻이 아닙니다. 교회나 사회 양쪽에서 다 착하다는 칭찬을 받는 사람이라고 해서 좌우로 치우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오직 진리만을 행하며 주님을 따라서 걸어가야 합니다. 신자는 무엇을 먹든 마시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을 하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를 어떤 방식으로든 드러내야 합니다. 이것이 반드시 걸어가야 할 한 가지 길,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정중앙 진리의 길입니다.
따라서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즉,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정도(正道)만을 걷기 위해서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신자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자에게 중도적인 타협 균형이라는 말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오직 신자 된 의미와 가치를 평생을 두고 최선을 다해 실현하는 일만 있을 뿐입니다. 자기가 속한 어느 사회의 어느 공동체에서나 실력 신용 정직은 물론이요 주님의 사랑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에서 하나님의 기뻐하는 사람으로 교육 훈련 받아서 주님 주신 소명을 귀하게 가꿔나가야 합니다. 주님이 반드시 그 소명을 이뤄주실 것이라는 확신과 소망도 키워야 합니다. 반대로 사회에서 주님 드러내는 일에 혹시라도 실패 낙심한 것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능력으로 재충전 받아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신자는 성경과 별개로 세상의 공부도 평생토록 최선을 다해 해야 합니다. 불신자처럼 SKY대학에 입학하여 최근에 가장 인기 있는 학과를 택하고 졸업 후에 일류기업에 취직하여 세상에서 출세 성공할 수 있는 공부를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와 재능을 활용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적합한 공부를 그 분야에서만은 전문가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에 걸맞은 직업을 준비해 놓고 신자가 하는 그 일을 통해 반드시 당신의 영광의 광채를 불신 세상에 드러내십니다.
평생 성경을 연구하여 영적 진리를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신학자 목회자들도 성경만 공부해선 안 됩니다. 역사, 철학, 심리학, 인류학 등 인문학에 대한 수준급의 지식을 갖춰서 인생의 거대담론에 대한 심오한 토의가 가능해야 합니다. 또 진화론과 맞서기 위해 연관된 생물학은 물론 지질학도 배워야 하고, 현대 정보사회에서 효율성 있게 사역 전도하기 위해서 컴퓨터는 물론 정보와 통신에 대해서도 배워야 합니다.
심지어 현실 삶이 돌아가는 방식을 알기 위해 경제 경영학에도 상식이 있어야 합니다. 현재 돌아가는 문화적 조류 영적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예술 문화에도 문외한이 되어선 안 됩니다. 자기가 맡은 양떼들과 일생토록 그 고달픈 현실 삶에 대해 권면 충고해야하는데 그러지 아니하고는 신앙상담을 제대로 행할 수 없습니다. 더 중요하게는 인간과 그 삶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인 성경의 진리도 정확히 깨달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일반 신자도 언제든 성경에 대해서 변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3:15)
신자도 인간사회의 한 구성원입니다. 성숙한 시민으로 지녀야 할 기본적인 상식과 지혜와 경륜을 가르치는 의무교육은 당연히 또 반드시 받아야만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하신다는 것 자체가 자칫 신앙생활을 성과 속으로 이분하는 도덕주의 내지 율법주의적인 견해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닌지 심히 염려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성경적 근거
성경은 너희 자녀에게 율법을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했습니다.(신6:6,7) 모세5경이 단순히 종교적 계명에 관한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당시 인간사회의 생활방식 관습 제도가 아주 단순했기에 개인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지혜이자 과학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고등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이 토라를 줄줄 외울 정도로 배웁니다. 모세5경을 저작한 모세 본인도 애굽에서 바로의 왕자로 40년을 지내면서 당시의 선진학문을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랬기에 모세5경을 저작할 수준의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이며 그 또한 하나님이 예비하신 완전하고도 절대적 섭리였습니다.
유대인으로 오신 예수님도 열심히 구약성경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그 결과 어린 나이에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을 할 정도였습니다.(눅2:41-52) 유대 남성은 반드시 손으로(노동으로) 밥 벌어먹는 기술을 하나씩 배워야 했고 주님도 30세에 공사역을 시작하기 전까지 아버지 요셉에게 목수 일을 배워서 그 일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로선 최고의 교육을 받아(행22:3, 빌3:4-6) 율법의 최고 전문가(지금으로 치면 일류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셈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은혜와 정확하게 대조하여 복음의 진리를 저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장막을 만드는 기술도 배워서 실제로 그 일로 생업을 삼았고 선교사역 초기에는 그 일로 돈을 벌어 선교자금으로 사용했습니다.(행18:3) 예수님도 제자들을 선교 여행에 내보면서 영적으로 순전해야하므로 돈이나 식량은 휴대하지 못하게 하면서도 뱀처럼 지혜로워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약성경을 배우는 것이 고등교육이었습니다. 직업교육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업을 물려받는 식으로 가정 안에서 당연히 이뤄졌고 각자가 장인 수준으로 배웠습니다. 나아가 유대인들은 삶의 모든 지혜의 원천은 하나님이자 그분이 가르쳐 주시는 것으로 믿었습니다.(잠1:7, 시119편, 약1:5)
성경에는 시대적 간격이 너무 커서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방안까지는 계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든 그에 적절히 응용할 수 있는 영적원리를 찾아내어 오늘날의 현실을 해석하고 판단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예수님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한 답으로는 그것 하나로 충분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고등교육을 마치 탐욕적 세속적 성공의 도구처럼 멸시 비하조로 가르친다면 아주 큰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일류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직하여 평안하게 살 것만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은 큰 잘못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선 평생을 공부해도 모자랍니다. 공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삶에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체가 아주 큰 착오이자 하나님 앞에 불성실한 죄입니다. 심지어 영적으로도 온전해지지 않습니다. 현세대의 온갖 사악한 흐름과 또 현실적인 여러 스트레스를 현세대를 배우지 않고 어떻게 온전히 분별 판단 대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전에 자기 소명을 실현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부는 너무나도 당연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0/4/2018
공부로 성공하는 것이 자기 욕심을 채우는 셈이라는 요지로 설교로 들었다면
설교를 오해하신 거란 생각이듭니다.
공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삶에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기는 자체가 아주 큰 착오이자 하나님 앞에 불성실한 죄란 목사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주신 달란트를 사용하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달란트를 통해서 우리의 필요도 공급하십니다..
공부하지 않는데.. 어떻게 의사가 되고.. 교사되고.. 목사가 되겠습니까?
이 세상에 의사가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세상에 학교가 없고 교사가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목사가 또 배우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어떻게 설교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노숙자를 사랑하시지만 기뻐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신앙이 되도록 우리는 매일 공부해야하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더 나은 신앙인으로 가는 좋은 상담내용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날 되십시오.
한국의 한 크리스천 자매와 개인적으로 질의 상담한 내용을 조금 보완하여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