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관심사와 신앙생활의 조화가 어렵습니다.
[질문]
세상을 살다보면 독서, 영화감상, 노래, 골프 같은 취미활동에 몰두하고 또 평소에는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온갖 재미에, 예컨대 유튜브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질 수 있습니다. 자꾸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다가 어느 순간 하나님과 멀어지는걸 느낍니다. 점차 영혼이 피폐해지고 이웃에 대한 사랑도 메말라갑니다. 성경도 읽기 싫어지고 하나님의 은혜가 감소 실종되어져 갑니다. 다시 성경과 기도에 집중하면 영적으로 살아나지만 또다시 나도 모르게 그런 것들에 몰두하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어떻게 해야 그런 악순환을 끊고서 하나님과의 관계와 세상 관심사 사이에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요?
[답변]
많은 청년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의문일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해답을 얻으려면 먼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몇 가지 기본적인 진리를 확실히 정리해두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신자는 세상에 속하지는(of the world) 않았지만 세상 안에서(within the world)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처럼 현실과 맞부딪혀서 살아야 합니다. 직장을 구해 열심히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며 장래를 대비해 저축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취미 생활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첫 번째로 주신 생육 번성하라는 명령을 충실히 실천하는 일입니다.
세속의 문화가 결코 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이 땅을 다스리라는 청지기 소명을 주셨습니다.(창1:28)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각종 생물의 이름을 붙였다는 것은(창2:19) 그 소명에 충실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재료를 갖고 질서 있게 활용하여 그분이 창조하신 피조세계에 더 아름답고 풍성해지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청지기 명령을 일명 문화명령이라고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성을 유일하게 닮은 인간이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들에게 풍성하고도 편리한 유익을 주기 위해 창조적으로 조성하는 모든 것들을 총칭해서 문화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원과 궁극적 운명에 관한 거대담론을 추구하는 철학과 신학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반 학문들도 문화를 개발시킴으로써 얻은 결과물입니다. 요컨대 문화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두 번째 뜻을 구현한 것으로 선한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등을 진 자들이 문화를 악용하는 것입니다. 자기만을 세상에서 최고로 높이려는 죄의 본성에 찌든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들을 자기 혼자만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많이 가장 빨리 차지하려는 경쟁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문화를 자기 탐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왜곡 오염시킨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자는 여자들을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취한 라멕입니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창4:23)
성경은 그가 상처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합니다. 당시에 농업과 목축업을 위한 기본적인 도구들이 이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라멕이 그 도구들을 살인에 동원함으로써 선한 농기구가 흉악한 살상무기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만든 문화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죄인인 인간이 악하게 사용함으로써 선했던 문화가 악하게 변질되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에선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이 일반 윤리나 다른 종교와 다릅니다. 자신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면 선이며, 그렇지 못하면 악이 됩니다. 주인 되시는 하나님만 따르겠다고 근본 가치관 인생관이 바뀐 상태에서 그분의 영광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선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 즉, 자기를 높이려는 목적에서 행하는 일은 아무리 세상의 윤리로 문제가 없거나 심지어 선하게 여겨져도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됩니다.
바꿔 말해 일반윤리기준에 따른 선한 행위를 지향하는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덕이요 다른 모든 종교들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종교적으로 의로운 모습을 하거나 신령한 의식을 행한다고 반드시 경건한 것도 아닙니다. 경건과 비경건, 의로움과 불의를 나누는 기준은 그 중심에 정말로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 있고 그 십자가 구원의 진리가 어떤 방식으로든 주위에 드러나느냐 아니냐에 달린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실제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평생토록 따라가는 삶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한두 번의 선행이냐 악행이냐로 구분해서 우리 믿음의 가치와 의미를 우리 스스로 격하시켜선 안 됩니다.
요컨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은 선하고 영적인 것이요, 세상 관심사에 몰두하는 것은 악하고 비영적인 것으로 딱 부러지게 나눌 문제가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성과 속을 나누는 싸움이 아닙니다. 겉으로 성스러워 보여도 얼마든지 악할 수 있고, 겉으로 경건과 거리가 멀어 보여도 얼마든지 성스러울 수 있습니다. 문화를 창조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인간에게만 주신 소명이기에 그것을 아름답게 발달시키고 활용하면 그분과의 관계에도 얼마든지 선하고도 더 신령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술과 신앙의 관계에 관한 이전 글에서도 밝힌 것입니다. 술도 하나님이 만드신, 최소한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포도 수확이 넘쳐서 먹고 남은 것을 오래 두었더니 발효되어서 포도주가 되었고, 빵을 먹다 남겨 두었더니 물이 고여서 맥주가 된 것입니다. 삶의 고통을 씻고 이웃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라는 뜻입니다. 이런 창조의 섭리를 통해서, 질문하신 대로 표현하자면 술이라는 세속의 관심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오묘하신 은혜를 발견하고 진정한 감사와 경외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 서구교회들은 맥주 Pub에서 모임도 갖고 전도도 합니다. 그들은 맥주 작은 병 한두 개로 몇 시간씩 담소를 나눕니다. 한국식으로 부어라 마셔라가 아닙니다. 정서적으로 친밀하게 만들어서 서로 마음 문을 열고 대화하려는 것이 주목적입니다. 불신자들과 쉽게 어울리게 되어 복음도 자연스레 전해집니다. 다음 날 아침에 그 전날의 Pub 모임이 아주 즐거웠고 인간관계도 더 돈독해졌으며 그리스도에 대해 유익한 대화를 나눴다면 술이라는 문화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하게 활용한 것입니다. 무엇을 먹든 마시든, 즉 세상의 관심사를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면 됩니다.
질문자께서 예를 드신 세상 관심사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과의 교제가 진작될 수 있습니다. 저도 인터넷 웹페이지는 물론, 스마트폰과 유튜브 채널로 복음을 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바울 사도도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9:21) 쉽게 말해 불신자와 세속 문화를 함께 나누면서 단 한 명의 미혹된 영혼이라도 건지려고 노력했다는 뜻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세상 일과 교회 일을 성과 속으로 나누지 말아야 합니다. 신자는 세상 안에서 세상 사람들 앞에서 그들과 같은 일상적인 방식으로 살면서도 그리스도의 빛을 비출 수 있어야 합니다. 문화 안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너무나 광대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그래서 그 역사도 오묘합니다. 종교나 윤리로 제한할 수 없으며, 문화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역으로 따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일대일의 깊은 교제를 세상과 격리된 채 행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 세상 죄악을 들고 와서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미혹된 영혼을 그분을 알게 해줄 수 있는 지혜를 성경 말씀과 기도를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자기 혼자 선하고 신령해지는 것은 기독교 영성이 결코 아닙니다. 신자의 영성이 성경과 기도와 예배 등으로 제한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영성을 더 순전해지게 한 후에 세상으로 나가서 세상의 관심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영광이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많이 어리석기에 세상 관심사들과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는 일을 세밀히 분별하여서 혹은 조화와 균형을 맞추어서 실현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성경에도 그런 정확한 기준이 없고 원리만 가르칩니다. 그래서 손 쉽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세속에서 실패하는 것을 막아보려 합니다. 그 순전한 동기는 이해되지만 자칫 질문자님도 염려한 대로 수도원에 혼자 따로 사는 꼴이 됩니다. 신자는 반드시 세상으로 돌아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부름 받은 자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기 위해서 매일 얼마간의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은 반드시 따로 떼어놓아야 합니다. 이왕이면 새벽시간이 좋습니다. 그럼 낮 동안에 세상 관심사에만 몰두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일은 거의 발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새벽에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가장 근본적인 길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신앙과 문화를 어떻게 조화시키면 좋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굳이 답변을 드리자면 자기가 하는 일 자체가 하나님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아프리카 선교사는 세상 문화에 관심을 돌릴 겨를이나 시간도 없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예이지 신자 모두가 전임 사역자가 되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기 직업을 통해서 즉, 평소에 가장 시간을 많이 소요하는 일에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유트브 채널로 신앙을 전달하겠다면 하루 종일 그 채널에 묶여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취미활동도 이왕이면 사회봉사나 기독교관련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세상 관심사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그분의 뜻에 맞추어 그분의 방식으로 행하면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둘을 나누려는 생각부터 잘못입니다. 세상 관심사를 하나님에게 맞추든지, 평소 시간과 노력을 가장 많이 쏟는 일을 그분의 일로 바꾸면 되는 것입니다.
11/6/2019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전8:13) 바울이 지킨 원칙입니다. 현대사회는 바울 당시의 문화적 종교적으로 아주 단순했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달리 복잡 다양해졌습니다. 자신과 상대의 믿음의 분량과 개별적 상황에 따라 판단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완전금주의 원칙을 지킬 수 있으면 더 좋습니다. 이때도 카톨릭과 비교해서 앞뒤로 꽉 막힌 개신교 꼴통이라는 또 다른 반발을 들을 수 있습니다. 당나귀를 타고 가는 아버지와 아들 이솝 우화처럼 이러나 저러나 반발은 생깁니다. 방법론이 문제가 아니라 진리를 진심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전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 전도대상을 계속해서 사랑으로 섬기고 간절히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순전한 믿음으로 기도한 후에 상황에 따라서 옳다고 판단되는 대로 행하시면 됩니다. 설령 상대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주위에 믿음이 약한 성도가 조금 실망하더라도 결국에는 광대하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이끌어주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당부한 대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온유하게 행하시면 됩니다. 또 바울이 선교 원칙으로 삼은 헬라인에겐 헬라인의 방식으로, 유대인에겐 유대인의 방식으로 접근하시되 진리만은 절대로 양보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일률적으로 선과 악, Do 혹은 Do'nt 식으로 양분되는 그래서 모든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옳은 방법이란 사실상 없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도 흔히 한국교회 교인들이 그러듯이 윤리적 종교적 방법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자가 풍부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광대하신 섭리에 자신의 모든 것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미혹된 영혼이라도 정말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성령님이 상황에 맞는 지혜도 주시고 때에 맞춰 적절한 방법까지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샬롬!
목사님,저 질문이 있습니다. 혹시 그렇게 좋은 의도로 불신자들과 술을 같이 먹었을때 아주 가볍게...그때 그중에 한명이 저를 보고실족했다고 한다면...혹시 크리스챤이 나는 이 세상속에서 빛으로 나가기 위해서 사람들과 같이 할로윈데이에 술을 먹고 같이 전도를 했는데, 귀신분장을 하고요. 그런데 그때 누군가가 나를 보고 실족하면요. 예가 좀 맞지는 않는것 같지만, 제 의도는 누군가의 실족하는것 또한 불신자던, 신자던지 내 모습에 책임을 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데...
왜냐면, 예전에 교회를 다니는 한 성도분이 저희 집에 오셔서 용 그림을 보고, 실족했다고 하셨는데..제가 미안하다고 말했던 기억이납니다. 저는 그 용그림을 솔직히 말하면, 안믿던 분이 선물로 주셔서 가지고 있던거였고...제 마음에 그분에게 미안하다고 말한것은이것또한, 누군가를 실족하게 만들면 안되겠다는 그 마음이였던것 같아요.
두서없는 글 읽어주시고, 답변까지 해주셔야 할꺼같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