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6:1-4)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에 관한 변론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1-4)
한 회원님이 상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범죄 한 천사로 보면서 그 근거를 몇 가지 들었습니다. 저는 반대로 셋 계열의 경건한 사람이라고 해석합니다. 이에 대해 성경을 함께 연구해보자는 뜻으로 저의 변론을 나누고자합니다. 이전에 이 주제를 다룬 적이 있는데 아래의 링크를 참조하십시오.
첫째 근거:
셋의 경건한 후손과 카인의 불경건한 후손간의 연혼이라면 왜 굳이 한쪽은 성별을 남자로 다른 한쪽은 여자로 표시했을까요? 연혼이 꼭 카인 계열의 여성과 셋 계열의 남성 사이에서만 이뤄지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 반대의 성별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굳이 성경에 남과 여를 구분해서 썼다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근거가 있어서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타 천사에 빙의된 인간이 모종의 성관계 방법으로 인간 여성을 수태시켜 태아의 영적 상태를 특별히 원죄 이상으로 오염시켰다면 이 부분이 말이 되긴 합니다.
첫째 변론:
당연히 경건한 셋 계열의 남녀와 불경건한 카인 계열 남녀와 결혼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상기처럼 표현한 이유가 있습니다. 결혼한 자들의 남녀 성별을 밝히려는 뜻이 아니라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성경은 결혼하여 가정을 아름답게 유지할 책임이 남자에게 있다고 정의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라는 표현은 첫째 경건한 셋 계열과 불경건한 카인 계열의 통혼한 것이 홍수 심판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며, 둘째 결혼은 남자가 책임을 져야하는데 셋 계열의 아들들이라고 말함으로써 그들에게 잘못한 일차적인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지적하신 오해가 없게 하려면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아들딸)들과 사람의 자녀(아들딸)들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럼 천사들이 이미 천상에서 자기들끼리 결혼하여 아들딸을 낳았으며 그 전에 하나님이 천사들도 남자와 여자로 성을 구분해 창조했다는 뜻이 됩니다. 천사들은 영적 존재로 마지막 심판 날까지 멸망하지 않고 활동하기에 결혼 자체를 하지 않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남녀의 성을 갖는 것은 어디까지나 유한한 생명을 갖고서 번식할 필요가 있는 지구상의 동식물에 해당됩니다.
“만일 타 천사에 빙의된 인간이 모종의 성관계 방법으로 인간 여성을 수태시켜”라고 하셨습니다. 천사가 남성에만 빙의된다는 뜻이 되는데 그 진술부터 양성(兩性)을 다 밝혀야 한다는 주장과 모순됩니다. 그리고 인간을 유혹하여 시험에 걸리게 하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방황 중에 모압 여성들과 음행한 죄로 심판받았듯이(민25장) 아무래도 하나님의 딸들이 더 적합할 것입니다.
“영적 상태를 특별히 원죄 이상으로 오염시키기 위해서” 나쁜 천사가 사람과 결혼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사람이 원죄로 타락한 것만으로도 하나님 심판의 충분한 조건이 됩니다. 더 오염시킨 후에 노아 홍수로 심판했다면 비참한 인간을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는 즉, 인간을 갖고 놀았다는 뜻이므로 하나님의 성품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아담의 원죄로 타락한 인간의 비참한 영적 실상이 많이 약화 퇴색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기에 충분하지 못하다는 뜻이 됩니다. 당장 아담의 아들인 카인부터 자기에게 아무 잘못도 범하지 않은 친동생 아벨을 죽였는데 추가로 더 추악하게 타락시켜서 심판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둘째 근거:
1절과 2절을 문맥상 함께 봐야합니다. 1절에서 분명 사람이 땅에 번성하면서 딸들이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분명 2절의 사람의 딸들이란 앞에서 지칭한 그 딸들입니다. 그런데 1절에 지칭하는 사람은 문맥상 카인의 후손 한정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를 통칭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둘째 변론:
정확히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의미를 1절과 2절만 연결해서 봐선 부족합니다. 결혼의 의미를 창세기 2장과 연결해 봐야 하듯이 ‘사람’의 의미도 1-2절은 물론 창세기 전반부와 연결해서 봐야 합니다. 먼저 아담은 최초인간의 고유명사이기도 하지만 사람 전체(남녀구분 없이-영어 man처럼)를 뜻하는 보통명사로도 사용됩니다. 히브리 원어로는 같은데 문맥에 따라 ‘아담’ 혹은 ‘사람’으로 번역합니다.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창5:1,2) 의미에 따라 아담과 사람으로 구분하여 번역했는데 남자와 여자를 둘을 합쳐서 ‘사람’이라고 받았습니다.
이어서 창5:3부터 경건한 사람인 셋 계열의 족보를 죽 설명했는데 당연히 남녀가 다 포함되지만 대표되는 남자들 이름만 밝혔습니다. 그리고 성경원문은 5장과 6장을 구분하지 않기에 6장도 셋의 후손들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봐야 합니다.
굳이 6: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로 구분한 이유는 셋 계열 사람들도 타락하기 시작했는데 그 원인을 밝히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2절 후반부)고 강조한 것입니다. 카인 계열의 라멕이 행한 죄를 그대로 따라 범했다는 것입니다.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창 4:19 &23)
하나님은 부부가 서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되는 일부일처 결혼제도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는 라멕이 일부다처제를 시작했고 그것도 예쁜 여자를 무력으로 제 맘대로 빼앗았습니다. 라멕(남자)이 두 아내(여자)를 맞이하였다고 말하듯이 성경에, 아니 일상적 표현에서도 여성이 남성을 취해 결혼했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셋째 근거
조금 뜬금없어 보이지만 3절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땅에서 거두시겠다는 말씀과 함께 인간의 수명을 120년 이하로 줄이겠다는 선언을 하십니다. 이유는 인간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아마 이 육신은 신약에서 말하는 육신(flesh) 즉, 원죄로 타락한 옛사람이라는 의미이지 몸(body)라는 뜻은 아닌듯합니다. 인간은 타락 전부터 몸이 있었으니까요. 일차적으로 육신이 된 이유는 선악과 사건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네필림과 연혼 이야기가 나오다가 이 구절이 삽입되었을까요? 단순한 신자와 불신자의 결혼 이야기였으면 이 구절들 간의 연관성이 전혀 없습니다. 그보다는 타천사로 인한 치명적인 인류의 오염이 이 수명 위축 선언과 모종의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셋째 변론
육신은 말씀하신대로 인간이 자기를 주인으로 삼는 타락된 본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일차적으로 육신이 된 이유는 선악과 사건일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진리입니다. 아담 이후의 인간은 모두 원죄 하에 태어나 육신의 상태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그 중에서 당신을 순전히 경배하는 자만 옛사람을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해서 구원을 베푸십니다.
그런데 인간의 수명을 120년 이하로 줄이겠다는 선언은 노아 홍수 이후의 인간에게 해당됩니다. 지금 창세기 6-9장까지의 주제는 노아 홍수이고 서론 격인 6:1-7까지는 홍수로 심판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4절에서 수명을 120년으로 줄이겠다고 말한 까닭은 그 전에는 수명이 매우 장구했다는 뜻인데 5장 셋 계열의 족보가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전체적으로 연결해서 논리적으로 추론하여서 합리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120년으로 줄인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앞 장과 연결해 보면 홍수심판에 셋 계열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카인 계열은 수명이 짧았고 셋 계열만 수명이 길었던 것은 아닙니다. 셋 계열 사람이 하나님을 순전히 따르고 있었다면 구태여 인류 전부를 무차별로 멸망시키는 심판을 내릴 리 없었다는 뜻입니다. 홍수 기사는 셋의 후손 중에 노아(창5:29-32)만 하나님께 은혜를 입어(창6:8) 그 심판에서 면제되었습니다. 그 중간의 6:1-7은 당연히 셋 계열의 타락에 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6:5-7)
사람의 마음의 생각하는 모든 것이 항상 악하다고 합니다. 남녀성별 구분 없이, 셋 계열 사람까지 타락하여 육신이 된 것이 심판의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따르는 경건한 자들이 남아 있다면 심판하지 않으십니다. 가나안의 이방족속들도 그 죄악이 땅에 관영하기 까지 사백년도 넘게, 사실은 노아 홍수 이후로 따지면 훨씬 긴 기간 동안에 심판을 유보하고 참아주셨습니다. 노아 홍수 때도 죄악으로만 가득했고 더 이상 관용 인내할 여지가 없었다고 창세기 6:5-7은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 네피림에 관해 언급한 이유도 셋 계열 사람들이 네피림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네피림’이 누구냐는 것이 본문 해석의 관건입니다. 구약성경의 최초 헬라어 번역본(70인역)에선 “힘세고 위엄 있는 사람”이란 뜻의 ‘기긴테스’라고 번역했습니다. 그 단어에 영적 존재라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인의 작품입니다. 성경 단어의 용례와 문장의 의미를 가장 정확히 알고 또 선조들의 전승과 신앙에 대해서도 정통한 유대인 랍비들 70여명이 번역했다고 해서 70인 역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성경에 가장 정통하고 대대로 보존 유지 암송해온 유대인 랍비들이 천사가 아니고 사람이라고 번역했는데 기독교 신학자들이 오히려 천사와 사람 사이에 낳은 반인반신의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떨어진다’는 단어 ‘네팔’에서 유래한 명칭 하나에만 집착해 유추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그런 단어로 표현한 까닭도 아주 힘이 세고 장대했기에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자들 같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히브리어 네피림의 뜻도 실은 “벌목꾼, 약한 자를 못살게 구는 사람, 폭군, 거인, 장부 등”입니다.
"그들의 날은 백이십년이 되리라"(창6:3) 의 뜻은 인간의 바뀔 평균수명을 예언한 것이 아니고 당시에 심판 받을 자들에게 유예된 기간입니다. 백이십년 후에 홍수가 난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홍수 후에는 인간의 수명이 줄었는데 그 원인은 홍수 후에 지구 환경이 이전과 판이하게 바뀌었고 초식만 행하다가 육식이 허용된 까닭으로 봐야 합니다.(창9:3,4) 영적으로는 원죄 하의 인간은 홍수 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있을 것이므로(창3:17-19, 9;21), 죄로 타락해져 있는 비참한 상태를 단축시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넷째 근거:
네필림이 이 부분에 중요하게 언급됩니다. 결정적으로 4절의 문맥을 보면 이 네필림은 사람의 딸과 하나님의 아들들이 결혼해서 나온 자녀라 보는 게 맞습니다. 그리고 무려 고대의 용사라고 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의 정탐꾼들도 이 네필림을 언급했으니(실제로 아낙자손이 네필림이라는 뜻은 아닐 것 같습니다. 열 정탐꾼의 주관적 의견이지 사실정보 기록이 아니니까요) 그만큼 네필림은 분명 거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한 신자와 불신자의 연혼으로 거인이 나올 수 있을까요?
넷째 변론: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3) 가데스 바네야에서의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내용을 정확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지 ‘네피림’을 직접 본 것은 아닙니다.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네피림의 후손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그럼 두 가지 의미입니다. 첫째는 표현 그대로 실제로 아낙 자손이 네피림의 후손이라는 것입니다. 아낙 자손이 인간이므로 그 선조인 네피림도 인간입니다. 천사가 자식을 가질 수 없는 까닭은 셋째 변론에서 설명했습니다. 둘째는 유대인들은 고대의 네피림이라는 거인 족속을 알고 있었기에 아낙 자손의 장대함이 그처럼 커보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보고는 네피림이 천사의 후손임을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임을 뜻합니다.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 사이에 난 자들입니다. 홍수 직전까지도 노아의 경고를 무시했던 무력 권력 재력을 이용해 약탈, 방종, 사치를 일삼았던 세력가들입니다. 정작 창6:4에선 이 결혼으로 난 후손이 거인이나 장대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홍수심판의 원인을 밝히는데 거인이라는 요소가 개입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용사요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본문의 표현이 그 원인으로 적합합니다. 민수기 13:33과 연결해서 창6:4도 거인이라고 전제하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삼상9:2)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도 보통사람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삼상17:4) 블레셋 족속인 골리앗은 지금 키로 2미터 93센티였습니다.
고대에도 얼마든지 거인은 돌연변이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아니 실제로 고대에 인간 거인 족속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아프리카에 소인족 피그미가 있지 않습니까? 한국전쟁 때에 아직은 발육상태가 좋지 않았던 한국 사람의 눈에는 백인들 특별히 흑인들이 거인으로 보였지 않습니까? 인간의 체격과 신장은 환경 기후 영양 유전 등으로 달라질 뿐입니다. 그러니까 요즘 한국인은 평균 신장이 아주 커져 백인을 거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반면에 영양결핍으로 키가 오히려 줄어든 북한주민들에겐 여전히 그렇게 여겨질 것입니다.
거인이 악한 천사와 인간이 결혼해야만 출생할 수 있다는 가설은 불합리합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창6:1-8은 노아홍수의 원인을 설명하는데 주안점이 있지 거인족의 출현을, 그것도 악한 천사와 인간의 결혼으로 출생했다는 가설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또 그들이 심판의 첫째 원인이라는 것도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원리에도 어긋납니다.
다섯째 근거:
무엇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기록한 경우 많은 경우 천사를 지칭했던 점도 근거가 될 것 같습니다(예: 욥기) - 일차 반론: 예수님이 부활 후 하늘나라에서는 천사들과 같이 장가 들지 않는다고 했으니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재반론: 주님은 '하늘에 있는 천사'를 이야기하셨습니다. 즉 천국에서 쫓겨난 악한 천사들은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일수 있습니다. 재반론2: 소돔과 고모라 사건 때 천사들을 상대로 인간들이 남색을 시도한바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선한 천사였지만, 어쨌건 천사들도 물리적 상호작용을 일부분 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소돔 사람들은 천사들과 성관계를 하려고 시도했으니까요. 그순간 만큼은 육신을 현현시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건 그저 심증에 불과하지만 베드로후서와 유다서에는 형벌에 처해진 천사들이 언급됩니다.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 갇혀있다는 뜻이더군요. 아직 사탄의 부하들은 갇혀있지는 않죠. 즉 이들은 타천사들 중에서도 너무 악해서 하나님께서 미리부터 가둬두신 부류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큰 날의 심판까지라고 기한을 말한 것을 보아, 계시록 9장의 그 무리들과 같은 대상으로 추측됩니다) 흥미롭게도 그 구절 앞뒤로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가 언급되죠. 물론 저자가 단순히 거짓선지자들을 비유하기 위해 여러 악한 예시들을 나열해놓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토씨 하나까지 영감을 받은 것이니 이 예시들을 순서대로 나열한 것은 어쩌면 중요한 심증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갇힌 천사들이 저지른 죄가 연혼의 중죄라면 말이 어느 정도 됩니다. (참고로 이쪽 의견을 지지하는 신학자들은 타천사들이 연혼을 한 목적이 인간의 후손을 더럽혀 구속사를 방해하거나. 혹은 고대 설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 같은 반인반신을 만들어 우상숭배를 유도하려는 목적이라고 추측하더군요)
다섯째 변론:
하나님의 아들들이 욥기에서 악한 천사들을 지칭하기도 했지만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인간, 특별히 왕이나 권세자들을 지칭했습니다.(시73:15, 82:6) 이 뜻이 창6:4의 고대의 용사라는 의미와 더 부합됩니다.
“천국에서 쫓겨난 악한 천사들은 해당사항(결혼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없는 이야기일수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은 이미 말씀드린 대로 영적존재로 결혼 자체를 하지 못합니다. 악한 천사(귀신)들은 가장 우두머리 천사(사탄)가 하나님을 거역하는 바람에 함께 쫓겨 내려온 것입니다. 그들이 결혼할 수 있는 존재로 바뀐 적은 없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천사들과 성관계를 하려고 시도했으니까요. 그 순간만큼은 육신을 현현시켰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천사가 육신으로 현현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죄로 추해진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바로 설 수 없기에 인간의 수준에 맞추어서 그분의 뜻을 계시해주고 실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이 관계를 맺으려 했으나 선한 천사들이 결코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상태를 보러온 천사들로선 바로 그 일 때문에 더더욱 그들을 심판할 근거가 확실해진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영적인 존재가 인간과 결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언급은커녕 힌트조차 내비취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벧후2:4)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유1:6) 이들은 태초에 하나님을 거역한 악한 천사들을 말합니다. 창세기 6장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어서 노아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 대해서 말하지만 그 심판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의를 좇은 사람들을 대상입니다.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5절) 의를 전파하는 노아에게 귀를 막은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을 심판했다고 말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6절)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았으니 마찬가지로 경건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심판한 것입니다. 두 구절 다 심판의 원인은 인간의 타락입니다.
베드로 후서 2장은 거짓교사에 대한 경고가 주제입니다.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2:1)이었습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사역과 주님의 부활 승리를 부인하기에 스스로 멸망 받을 짓을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천사들마저 심판 받았고, 경건치 못한 사람들이 심판 받은 노아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을 예로 들어서 거짓 선지자들도 반드시 심판 받는다는 필연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타천사들이 연혼을 한 목적이 인간의 후손을 더럽혀 구속사를 방해하거나. 혹은 고대 설화에 나오는 헤라클레스 같은 반인반신을 만들어 우상숭배를 유도하려는 목적이라고 추측하더군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세상 어떤 존재에게도 방해는커녕 영향도 받지 않습니다. 욥기 서론에 따르면 사탄이 인간을 죽일 능력이 있으나 그럴 권세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내지 묵인 없이는 사탄도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구원을 이루시는 일에 훼방을 놓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그리고 원죄로 타락한 인간은 로마서 1-3장까지 바울이 변론하듯이 그 상태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가기들 머리 위에 쌓았습니다. 구태여 헤라클레스 같은 사람의 시험 유혹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많은 이적과 은혜를 베풀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져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 족속들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약시대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사역이 완성되기 전이고 성령의 역사도 특정한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임했습니다. 셋 계열의 사람도 원죄 하의 본성이 생생히 살아있어서 불경건한 가인 계열의 사람의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쾌락에 젖은 방탕한 삶의 유혹에 넘어가서 노아 한 사람을 빼고는 다 타락했습니다. 그 타락의 결정적 계기가 두 계열의 사람들의 결혼이었는데 가나안 땅을 정복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통해 계속 강조하는 내용도 바로 그들과 통혼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노아 홍수전에 셋 계열 사람의 실패했던 전철을 절대로 따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토씨 하나까지 영감을 받긴 했지만 인간의 부족한 점도 들어 사용하여 저작했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전후문맥상에 일관된 의미의 흐름과 저자이신 하나님이 강조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해석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상기 본문은 왜 노아 가족만 남겨두고 지구상의 모든 인구를 홍수로 멸망시켰는지 그원인을 밝히는 것이 문맥상의 의미이자 강조하려는 주제입니다.
결론을 내리자면 창세기 6:1의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들이 결혼”이라는 표현은 앞뒤 문맥상 신랑신부의 성별여부나 거인족의 출현 원인을 말하려는 것과는 전혀 관계없습니다. 노아홍수 심판의 원인은 창세기 3-10 장까지 전체 내용과 연결해 살펴보면 인간 스스로의 악의적인 타락 하나뿐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악한 천사가 노아 홍수 심판의 원인이거나 조금이라도 힘을 보탰다고 해석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 원리를 약화 시킵니다. 인간의 죄의 본성이 철두철미 타락했기에 심판 받기에 충분하다는 진리와, 하나님 당신만이 우주의 어떤 존재에게서도 털끝만큼도 영향을 받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적으로 심판을 주관한다는 진리, 둘 다에 상충되기에 받아들이기 힘든 해석입니다.
5/20/2020
성경은 문맥상 또 당시 정황상 확실하게 개연성 있는 행간의 의미를 유추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기록된 범위를 넘어선 안 됩니다. 그리고 성경은 모든 상황과 사건을 일일이 다 기록하지 않고 기록할 수도 없습니다.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에 꼭 필요한 내용들만 기록하기에 사실상 구체적 정황은 많이 생략되었다는 전제 하에 해석해야 합니다. 가장 먼저 성경이 독자들에게 계시하고자 하는 진리의 초점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창세기 5장은 노아의 선조들 즉, 경건한 셋 계열의 족보입니다. 우선 홍수 이전보다 장수했다는 것인데 그 뜻은 상기 글에서 설명드렸습니다. 반면에 "죽었더라"는 반복되는 표현으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정녕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불행한 처지를 드러냅니다. 셋 계열 사람이라도 원죄 하에 태어났기에 홍수심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뜻을 족보에서부터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아가 지적하신 대로 동시대에 공존함으로써 선악과 타락 사건을 비롯한 신앙적 체험이 모든 후손에게 계승되게 했습니다. 실제로 노아와 아브라함도 오래 동안 공존했는데 창세기 1-11장을 세속역사가들은 전설로 보고 12장부터 사실로 겨우 인정하지만 아브라함이 노아나 그 후손에게서 직간접적으로 실제로 들었던 이야기들이며 그것이 또 모세에게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홍수 심판 때에 노아 가족만 구원을 얻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노아의 선조들은 형제님 말씀대로 자연사 내지 심판 둘 중의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고 사실상 알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이 강조하려는 주제는 노아 가족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며 또 그것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심판과 자연사 둘 중 하나라는 뜻이 내포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는 집안의 대표자 아무래도 장남들로 노아의 선조들만 기록되었습니다. 노아 당대에 성경 족보에는 이름이 없는 자손들 즉 노아의 직계 선조뿐 아니라 친인척들도 수도 없이 번창했을 것인데 그들 모두도 심판 내지 자연사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입니다. 샬롬!
좋은 설명 감사드립니다. 생각해보니 인간의 죄만으로 심판받기 충분한 점을 생각하면 천사가설은 이러한 무게를 감소시키는 허점이 있었네요. 하기야 신자가 노아네 식구뿐이고 나머지가 모두 불신자라면 다소 절망적인 영적 상태였을듯 싶습니다. 여담으로 또 하나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므두셀라나 라멕 같은 노아의 직계 조상들도 홍수 대비기간인 120년 부근에 생존했던 것 같은데 설마 이들마저도 하나님을 배도했을까요? 하나님께서 노아만 택하신걸 보면 그런듯하기도 합니다. 아니면 그저 홍수전에 노아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자연사할것을 아셨기에 방주에 태우지 않으셨던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