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난 자의 신앙고백? (공산주의, 차별방지법, 동성애, wcc)

 

[질문]

 

교인 중에 공산주의, 동성애, 차별금지법, wcc를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면 구원과 사상은 별개라고 생각하고 혹 사상이 그렇더라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반기독교적 사상과 구원이 별개인지요? 공산주의, 동성애, 차별금지법, wcc를 지지하는 사람이 진정 거듭났다고 할 수 있는지요. 물론 교육 혜택을 좀 덜 받아서 공산주의, 동성애, 차별금지법, wcc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따라 가는 교인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만 지적 수준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교인들과 그렇지 못한 교인들에 대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요?

 

구원의 여부는 오직 주님만이 아시는 영역임을 압니다만 단지 교인들의 구원 받은 여부에 대해 궁금한 것이 아니라 과연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지지하는 교인이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그 사람 속에 성령님의 내주하심과 임재하심이 있는지요?

 

지금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진짜 복음과 가짜 복음(?)으로 혼돈 속에 빠져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어쩌면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는 검증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진짜 그 속에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님이 함께 거하신다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을 따르는 공산주의, 동성애, 차별금지법, wcc를 지지할 수 있는지요?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코로나 사태가 진짜와 가짜를 드러내는 영적 분별의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도 그동안 지적이고 멋진 설교로 수많은 교인들에게 감동(?)을 준 인기 많은 설교자들의 진위를 가리는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답변]

 

원론적으로 틀린 말씀은 아닌데 복음을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과 그 복음을 삶에 적용하면서 변화되어 가는 것에 관해서 조금 혼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 구원의 진리에 대해선 잘 알지만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 진리로 해석 분별 판단하는 차원에서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는 뜻입니다.

 

구원을 주는 참 복음

 

구원은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의해 택함을 받은 죄인에게 성령이 간섭하여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죽음의 은혜를 믿고 그분을 구주로 영접하게 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에게는 구원 얻을 만한 조건, 자격, 공로, 능력 등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찾지도 않고 거역 대적하는 자리에 있었으나 성령님이 주도적 선도적 능동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은혜를 베풀어주신 결과입니다.

 

구원을 받기까지 그 사람이 따르고 있던 윤리 철학 사상 종교 등은 구원을 얻는데 어떤 도움도 장애도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에 그 우편의 죄인은 인간사회에서 사형의 형벌을 받은 중죄인이었습니다. 죽기 직전에 단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주님과 함께 낙원으로 올라갔습니다.(눅23:39-43) 이 땅에서 신자답게 신앙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으나 구원 얻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속한 지파의 선조 유다는 며느리와 근친상간을 했고 모세와 다윗은 살인자였고 바울은 예수님의 극렬한 대적자였고 베드로는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한 자였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기 혼자만 살려고 아내를 두 번이나 이방 족속에게 넘겼습니다. 일일이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1:2-4)

 

바울 사도가 복음을 어떻게 정의합니까? 성경에 미리 약속된 대로 다윗의 혈통에 나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이자 그리스도로 죄인을 구원하러 이 땅에 직접 오셨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을 가르쳐서 그대로 따르면 구원해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음으로써 나의 죄 값이 완전히 용서 받게 된 은혜를 진심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의 긍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 구원에서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도 없기에 기쁜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가짜 복음은 어떤 것입니까? 신자가 구원 얻는 후에도 죄를 짓거나 구원 전의 사상과 철학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아닙니다. 구원에서 예수 십자가의 의로만 부족하니까 인간 쪽의 공로가 따로 더 필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유대주의자 거짓선생이 들어와서 구원 얻으려면 반드시 할례 같은 율법의 결례를 지켜야한다고 선동한 것이 바로 가짜 복음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7,8)

 

성경이 말하는 다른 복음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러 인간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었음을 부인하는 가르침, 둘째 구원을 얻으려면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만으로 부족하므로 그 외에 다른 인간의 공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가르침, 셋째 구원을 얻으려는 인간 쪽의 노력과 행위가 먼저 있어야만 한다고 강조하는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구원이 아니라 성숙의 문제

 

상기에 설명 드린 내용은 신자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거듭난 자가 과연 공산주의, 동성애, 차별금지법, wcc를 지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럼 바꿔 말하면 구원 얻은 자는 절대로 이 셋을 지지해선 안 되고 그런 고백을 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라는 뜻이 됩니다.

 

그럼 구원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가 아니라 그런 것들이 되거나 최소한 그런 것들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거기다 그런 것들을 지지하는 자 중에서 지적 수준이 떨어지는 자들의 경우는 예외로 간주해 주어야할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지적 수준까지도 구원 얻는 기준이 되어버렸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대적에서 그분의 자녀가 되는 신분상의 변화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에 의거해서 그 은혜를 믿는 자를 하나님이 의롭다고 칭해주신 것뿐입니다. 구원 직후에 예수님을 구주로 모셨으니 앞으로 주님의 뜻대로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 말고는 그 본인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세상 문제에 대한 각자의 윤리나 사상과 철학이 성경적으로 변화하는 것은 신앙의 성숙에 관한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신앙 성숙은 또 시간이 걸려야만 이뤄집니다. 단번에 복음 외에 성경의 나머지 진리 전부를 이해하고 그대로 따를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과 베드로 같이 믿음이 좋은 사도도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완벽하게 이를 수 없었습니다. 저는 예수를 믿고 한참이 지나서 그것도 사역자가 된 후에야 wcc에 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원 얻고서 신자로서 고백하고 또 고백한 대로 행해야만 할 일이 이 네 가지 외에도 수도 없이 많습니다. 말하자면 저를 비롯한 신자들이 일상적으로 짓는 죄들은 수도 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명시적으로 금지하는(don’t) 계명은 비교적 잘 지키나 행하라는(do)는 계명은 잘 순종하지 않습니다. 지금 논하고 있는 주제와 연결시켜 봐도 형제들의 잘못을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해주어야 함에도 그러지 않고 오히려 반대로 정죄합니다.

 

모든 성경적 진리를 실현하는 것은 둘째 치고 평생토록 전부 다 깨닫기도 힘듭니다. 모든 신자들은 그래서 하나씩 자기 생각을 바꿔가는 과정 중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정 문제에 대해서도 현재로선 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거나 온전히 깨닫지 못했어도 언젠가는 성경적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제 삼자는 다른 성도의 무지, 미숙, 하자, 결점은 물론 죄악까지도 주님의 사랑으로 포용하며 온전히 성숙될 때까지 참고 기다려줄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잘못을 범하고 있는 신자라도 하나님이 택하여서 구원을 주고 사랑을 베풀고 있다면 성령의 역사로 언젠가는 그 생각을 바꾸게 될 것입니다. 그 일이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현실적으로 따져서 배우자도 동시에 죽지 않으니까 어떤 이를 죽을 때까지 바로 곁에서 관찰할 수도 없습니다. 이런데도 미리부터 어떤 이를 정죄하는 것은, 그것도 구원과 연결시켜서 그러는 것은 아주 큰 잘못입니다.

 

이런 주제는 이차적 과제라고 말씀드렸듯이 교회가 성도들에게 어떻게 성경적으로 이해하고 반응해야 하는지 잘 가르쳐야 합니다. 목회자의 소관이자 책임이라고 할 수 있기에 성도끼리 다투고 판단하고 비방할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공산주의, 차별금지법, 동성애, WCC에 관해

 

신자들 중에 공산주의, 동성애, 차별금지법, wcc를 지지하는 자들에 대해서도 각자의 생각부터 먼저 알아보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 중에는 구원은 물론 그 이슈들에 대한 성경적 진리를 잘 알고서도 본인만의 선한 뜻이 있어서 그러는 자들도 있습니다. 일률적으로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도매금으로 정죄해선 안 됩니다. 혹시라도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저도 공산주의, 차별금지법, 동성애, wcc는 반대합니다.

 

우선 신자가 반대해야 할 공산주의는 물질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유물론에 기초하여서 하나님은 물론 예수님과 그 십자가 사역을 부인하고 성경을 불태우고 교회를 박해하는 폭력적 정치체계입니다. 칼 맑스가 말한 것처럼 종교는 대중들의 아편으로 연약한 자들이 자기 위로를 얻으려는 방편일 뿐이라는 사상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물론 기독교 자체를 부인하는 체계를 신자라면 절대 지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 원초적인 공산주의가 아니라 단순히 진보좌파 정권이라고 여기고 지지한다면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정치적 판단에 속하는 문제이지 구원은 물론 신앙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현재의 한국정권을 두고 공산주의인지 판단하는 것은 제 소관이 아니며 이 질문의 주제도 아닙니다. 

 

우파든 좌파든 국력을 키워서 국민의 복지를 신장시키려는 공통적인 목표는 있습니다. 그 방법론을 아주 단순하게 분류해서 분배를 우선하면 좌파이고 생산을 우선하면 우파입니다. 성경도 사유재산, 자유경쟁, 자본의 투자 활용 등 우파적 자본주의도 용인 내지 지지하지만 토지의 공개념과 빈민의 무상구제 등 좌파적인 원리도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양쪽 진영 모두 자기들만 성경적으로 옳다고 고집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교차로 집권해서 각각의 장점은 실현하고 단점은 서로 보완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신자가 현재의 정권을 지지 혹은 반대를 하는 이유도 절대로 파당논리, 지방색, 개인의 이익과 선호도 등에 두지 말아야 하고 그 구체적인 정책에 따라야 합니다.

 

근본적으로 신앙은 정치적으로 좌파냐 우파를 나누는 문제가 아니고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안에 거하느냐 아니냐의 씨름입니다. 하나님과 기독교 자체를 부인하는 진짜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한 정치적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은 인정해주어야 합니다.

 

한국의 차별방지법도 만약 동성애는 성경적 죄가 아니라고 믿고서 지지한다면 분명 잘못입니다. 반면에 일부 신자는 동성애는 분명히 죄이지만 동성애자를 차별해선 안 된다고 판단하고 지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간혹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동성애가 조장되는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조금 무리한 논증입니다. 역으로 따져서 사기, 폭행, 강간, 살인 등은 아무리 엄격히 금하고 그 형벌이 중해도 그것 때문에 그런 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차별금지법으로 동성애자들이 차별을 덜 받고 이전보다 더 공개적으로 활동할 수는 있어도 그 법 때문에 동성애자가 되지 않고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교회와 목회자의 wcc 참여하는 문제도 동일한 맥락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기독교 이단 분파에 구원이 있다고는 전혀 인정하지 않지만 그 안에 참여하여서 그들을 변화시키려는 동기를 가진 자도 있습니다. 구원과는 별도로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일에는 동참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 일률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완전히 구원을 얻고 초대교회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한참동안 유대교의 관습을 버리지 못했으며 예루살렘 공의회 후에도 이방인들 앞에서 유대주의자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과 교제했습니다.(갈2:11-14) 말하자면 오늘날로 치면 wcc에 참여한 셈입니다. 바울이 크게 야단쳤듯이 베드로가 잘했다는 것이 결코 아니며 구원 얻은 자도 그런 잘못을 상당기간 지속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외모로 구원을 판단하지 말라.

 

다시 강조하지만 구원 이후에 행한 일로 구원여부를 판단해선 안 됩니다. 구원 받은 자는 절대로 그런 고백을 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지 말아야 하고 그런 고백을 하면 구원 안 받은 자라고 단정 짓지도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에 비추면 틀린 것입니다.

 

만약 동성애자가 성령의 간섭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으나 계속해서 그 습성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것도 교회에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아서 동성애가 왜 잘못되었는지 모른다면 말입니다. 최근의 잘못된 주장처럼 죄가 아니라 유전 때문이라고 믿는다면 과연 정죄할 수 있습니까?

 

이미 일부 교회에선 그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럼 그런 교회의 교인들 전체에 구원이 없어야만 하거나 전부 다른 교회로 옮겨야만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남아 있는 교인들도 이미 얻은 구원이 취소되거나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고 정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그 동성애자의 구원 체험은 헛것이므로 무효가 되어야 합니까?

 

이와 반대로 신자 중에 아직도 간음을 행하면서 교회 안에서 떳떳이 직분을 맡거나 아니 목사이면서 경건한 척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틀림없이 뒤로 호박씨를 까는 신자들이 이 네 가지 이슈를 미처 잘 몰라서 지지하는 자들보다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럼 모두가 구원이 취소되거나 함부로 성경의 다른 진리들을 고백해선 안 되는 것입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 공산주의, 차별방지법, 동성애, wcc가 옳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니며 저 개인적으로도 절대 찬동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구원여부의 판단 기준으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개인적으로 이뤄지는데 살펴본 대로 각 개인마다 사정이 다 다릅니다. 현재는 잘못하고 있어도 언젠가 생각을 바꿀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하고 그렇게 되게끔 교육 인도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책임입니다.

 

바꿔 말해 기독교가 성경이 말하는 본래의 임무에 충성하지 않고 이런 개별적이고 비본질적인 이슈들을 갖고 계속 문제 삼고 외적으로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정치운동을 하면 기독교는 그런 것들을 반대하는 수준밖에 안된다고 우리 스스로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셈입니다. 나아가 교회 내부적으로는 그것들이 구원의 기준이 되어버리기까지 합니다. 몇 가지 이슈로 편을 가름해서는 기독교의 부흥은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깎아먹는 일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심과 정성으로 특정한 운동을 일으키면 도리어 기독교를 쇠퇴시키는 결과를 낳는데 교회사적으로 그런 예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신앙은 한 죄인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참 생명을 얻고 그 참 생명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리의 실현은 물론 고백도 평생에 걸쳐 조금씩 진행됩니다. 신자 개인과 예수님과의 일대일의 교제와 동행과 헌신입니다. 제 삼자는 옆에서 교육, 권면, 기도만 해줄 수 있을 뿐입니다.

 

저는 예수를 믿은 지는 35년, 목사가 된지 24년, 인터넷 문서사역을 시작한지 17년이나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제게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으며 구원 후에도 그분의 은혜와 권능을 받아 누릴 자격이 저에게 하나도 없다고 날이 갈수록 더 절감합니다. 모든 세대의 모든 인간 중에 하나님께 구원은 물론 그분의 은혜를 받아 누릴 자격이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제 삼자에 대해서 구원 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외에도 즉, 구원 이후에도 인간 쪽에서의 선한 행위가 구원에 필수이거나 구원을 완성시키는데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이 거짓 복음입니다. 신자가 다른 신자의 외적 행위나 모습으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하는 것도 엄격히 말해서 거짓 복음에 해당됩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고 절대적으로 그분의 소관사항입니다.

 

코로나 같이 모두가 힘든 고난의 시대에는 더더욱 신자끼리 서로 용서하고 사랑해주기에 바빠야 합니다. 불신 이웃과 원수까지도 그래야 하는데 같은 신자끼리 정죄 판단해선 안 됩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도 신자가 행할 바는 자기부터 주님이 걸어가셨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 하나 뿐입니다. 그럼 복음의 생명력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주변에 반드시 누룩처럼 번져나가게 되는 참 부흥이 일어납니다.

 

(11/2/2020)  


amazing_grace

2020.11.02 17:5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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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이트를 이용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목사님의 답변거의 대부분이 다른곳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균형있고 성경적본질에 바탕을 두고 일관적이라 늘 많이 배우게 됩니다.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MANGGO

2020.11.03 1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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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으로 궁금한 점이 있는데요. 공산주의는 자본주의, 민주주의 같은 단지 사상일 뿐인데 이게 (도덕적 의미로) 나쁜 건가요? 오히려 저는 소득의 분배라는 의미에서 공평하게 나누어지니 좋은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물론 실현될 수 없는 이상이나 사상에 불과하다는 전제하에요. 공산주의가 노동의 대가에 따라 차등을 두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성경에 위배되는 건가요? 

master

2020.11.03 11: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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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는 하나님은 물론 예수님과 그 십자가 사역을 부인하고 성경을 불태우고 교회를 박해하는 폭력적 정치체계입니다. 칼 맑스가 말한 것처럼 종교는 대중들의 아편으로 연약한 자들이 자기 위로를 얻으려는 방편일 뿐이라는 사상에는 절대적으로 반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물론 기독교 자체를 부인하는 체계를 신자라면 절대 지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상기 글에서 공산주의는 현재의 중공과 북한을 유지하는 사상과 체계를 뜻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순전한 의미로 모두가 동일하게 공평하게 나누자는 사상은 그 자체로는 도덕적으로 중립, 아니 아주 선하지만 인간의 죄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개념입니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상적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순진한 공상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자기를 높이는 욕심과 교만을 지녔다는 즉, 원죄 하에 태어난다는 성경적 가르침에도 어긋납니다.

 

실제로 초대교회에 공산주의 식의 공동체를 잠시 유지했지만(행2:44,45),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그 공동체가 흩어져버렸고(행8:2) 유대 땅에 큰 흉년이 들어서 여유 있는 공동체가 부조를 보내주었습니다.(행11:29) 공산이 가능한 완벽한 사랑의 공동체는 예수님이 재림하여 이루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master

2020.11.03 12: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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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족을 하나 붙이자면 "삼십 살 전에 공산주의를 지지하지 않는 자도 바보이고, 삼심 살 이후에도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자도 바보이다"라는 오래된 속담이 있습니다. 이 속담에서 삼십 살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현실의 삶을 주체적으로 시작하는 나이를 상징합니다. 현실과 부딪히기 전의 청년 때에는 이상적 세상을 꿈꾸어야만 하나 죄로 타락한 인간 사회는 절대로 그 이상이 실현되지 않고 말씀드린 대로 이 땅에선 불가능하므로 부양할 가정을 가진 기혼자가 되었어도 계속 붙들고 있는 것도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구 쏘련이 노동자 혁명으로 공산주의를 시작했으나 정부가 모든 것을 관리하니까 새로운 특권층이 생겼고 오늘날의 중공처럼 부정부패는 더 심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은 돈을 주인으로 삼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상적인 공산주의는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캐나다에는 의사가 월급제인데 수입이 항상 같으니까 일을 빨리 성의껏 처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중병에 걸린 캐나다 부자들은 돈이 많이 들더라도 미국에 와서 치료 받는 일까지 있습니다. 생활필수품을 공평하게 배급받는 쏘련에선 모두가 게을러져 업무의 능력이 전혀 오르지 않았습니다. 인공위성을 미국보다 먼저 쏘아올려놓고도 나중에는 완전히 미국에 상대가 안 될 정도로 뒤쳐졌고 결국은 망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공평한 분배에 초점을 두되 자유경쟁을 하려는 수정사회주의는 물론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분배에도 힘을 쏟는 수정자본주의가 나온 것입니다.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에서 벗어나 거의 자본주의 형식이 되었지만 여전히 정치권력이 절대적으로 통제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과 기독교를 탄압 말살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상기 글에서 밝힌 대로 좌파와 우파 다 수용 강조하고 있고 특별히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아주 중요시하기에, 바꿔 말해 중앙집권적 강압 폭력적인 독재체제를 반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입니다. 

 

낭여

2020.11.03 22: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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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께서 답변하셨듯 공산주의의 본질적인 차원, 소득을 공평(?)하게 재분배하는 경제체제로서는 그 자체로는 중립, 또는 선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타락한 인간의 죄성으로 인해 온전히 실현될 수 없는 실패한 체제(경제적)이고, 폭압이나 독재와 같은 여러 부패와 폐해(정치적, 사상적)가 문제가 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피스

2020.11.03 23: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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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만 더 짚자면

1. 성경에서 언급된 초대 교회의 운영 방식은 언뜻 보기에는 공산주의처럼 보여질 소지가 있으나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왜냐하면, 초기 교회 공동체는 성령의 역사에 힘입은 '구제하려는 마음' 때문에 각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자발적으로 베푼 것이지 시스템에 의해 강제적으로 재분배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오늘날의 식으로 비유하면 사회 전반에 영적 대부흥과 복음의 왕성함이 일어 모든 부자들이 성령 충만하여 (그럴 일은 사실상 없겠지만) 후히 자신의 재물을 사회와 이웃에게 환원한 것입니다. 공산주의와는 실상 무관합니다.

 

2. 성경이 '베품'과 '분배'를 요구한 것은 분명 사실입니다. 어려운 이웃에게 구제의 손길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당연한 의무입니다. 하지만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 구체적 방법으로 개인의 자유의지에 의한 '자발적인 구제'를 주로 요구하셨습니다. 힘에 의해서 누군가가 뺏고 재분배하는 방식보다는요.

 물론 현실적으로 죄에 찌든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베풀 가능성은 희박하니 어쩔 수 없이 일정부분 국가의 복지 제도에 의존해야 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극한까지 높여 공산주의까지 이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누군가는 그 이상적(인 것처럼 보이는, 실제로는 이상적이라고 보기도 어렵겠지만) 평등 분배를 수행하기 위해 절대 권력을 쥐어야만 합니다. 이는 필연적으로 부패, 독재, 개인의 자유 말살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3. 공산주의의 영적 배후에 마르크스주의가 깃들어있으며, 마르크스는 하나님의 존재를 철저히 부인한 '유물론' 사상을 내세운 악의 주역이었음은 너무도 잘 알려져있으니 구태여 추가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낭여

2020.11.03 22:3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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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설명이십니다.

MANGGO

2020.11.04 08: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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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개념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구체적 사례로 짚어주셔서 이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모두 감사드립니다^^

기호

2020.11.04 15: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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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않는 것과 미워하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참으로 악을 미워하는 자는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이 아니라 먼저 스스로를 미워합니다. 신자가 마땅히 미워해야 하는 것은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 내 마음이고, 내 기준으로 하나님까지 판단하려 드는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내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서 티끌을 빼주겠다고 덤비는 이는 유대의 종교지도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입니다.

목사님께서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하시는 것 중의 하나는 성경은 도덕이나 윤리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어떤 이데올로기가 옳은지 성경적으로 따지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 성경은 타인의 생각이나 행위를 판단하는 준거가 아닙니다. 오직 나의 죄와 악을 온전히 깨닫게 할 뿐입니다. 성경은 선과 악을 객관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이용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직 악할 뿐인 나 자신을 비추어 창조주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릎 꿇게 하는 생명의 책입니다.

 

 

구원

2020.11.05 05:42:09
*.144.49.124

성경은 선과 악을 객관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이용하는 책이 아닙니다. 오직 악할 뿐인 나 자신을 비추어 창조주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릎 꿇게 하는 생명의 책입니다.

 

 ㅡ> '성경은 선과 악을  객관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이용(?)하는 책이 아닙니다' 

 

1. 객관적으로 구분하기 위한 이란 표현이 무슨 뜻인지?

2. 그리스도인이 선과 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요?

 

기호

2020.11.05 17:45:09
*.226.200.65

흔히 세가지 진리를 말합니다. 주관적 진리와 객관적 진리, 그리고 절대적 진리. 객관적 진리는 보편적 진리라고도 합니다. 

주관적 진리는 자신만의 진리입니다. 따라서 선악의 기준이 자기자신입니다. 주관적 진리의 세계에서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무한투쟁이 벌어집니다. 보편적 진리는 공동체 안에서 개인간 이해의 상충을 최소화하면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구성원간의 암묵적 동의를 바탕으로 합니다. 공동체는 작게는 가족일 수도 있고 크게는 인류 전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의 크기가 아무리 커도 객관적 진리는 주관적 진리와 마찬가지로 상대적 진리일 뿐입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영원불변하는 절대적 진리는 오직 성경뿐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선과 악은 단순명쾌합니다. '선하신 분은 하나님 뿐이며, 예수님을 제외한 모든 인간은 악하다.' 

우리는 모두 악합니다. 자본주의자든 공산주의자든,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인간은 다만 악할 뿐입니다. 믿음은 거기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입니다. 속속들이 악한 자신을 바로 알고 그런 나를 악에서 건져주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께 긍휼을 구하는 것, 그것만이 믿음입니다. 

유대인들이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있었음에도 선지자들과 예수님께 악하다고 책망받았듯이, 아무리 열심히 교회 다녀도 우리가 악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런저런 조건으로 자신들과 이방인을 구별하고 차별하며 으스대던 유대인의 역사는 지금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톨릭이든 개신교든, 정통이라고 주장하든 이단이라고 핍박받든, 개인이 집단이 되면 반드시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어떤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의롭지 않습니다. 의로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덧입기 전에는 누구라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의를 덧입는다는 것은 예수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 죄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고 동의하는 정도로는 예수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아버지가 하라고 한 말만 하고, 아버지가 하라고 한 일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는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율법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할례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지 안 지내는지, 따위는 의와 불의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이방인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악이 악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집니다. 성경의 자구를 들이대며 타인을 정죄하는 것은 아직 스스로가 악임을 모른다는 반증일 뿐입니다.

구원님의 열심을 폄하하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의 열심은 자칫 우리를 하나님의 자리에 세우게 되고, 성경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을 추구하는 그 마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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