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를 교묘하게 실족(失足)시키는 목사
마태복음 강해(#180)



http://youtu.be/4V_v1nzP_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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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18:12-14)

비유 해석의 원칙

예수님은 제자들을 가르칠 때나 무리들에게 설교하실 때에 비유를 자주 사용하셨다. 천국 구원의 영적 진리를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물건이나 사건에 대비하여 그 뜻을 쉽고도 명쾌하게 이해시킬 목적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쉽게 이해하게끔 든 이런 비유가 때로는 도리어 오역(誤譯)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천 년 전의 문화, 관습, 제도를 잘 모르기 때문만이 아니다. 당시 상황을 역사적으로 철저히 고증을 해서 잘 알고 있는데도 그렇다. 비유를 해석하는 원칙을 모르거나 제대로 적용하지 못해서 그렇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본문의 잃어버린 양의 비유다.

그중에도 특별히 14절의 해석이 문제가 된다. 하나님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는 것이 당신의 뜻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을 받을 자를 미리 선택하여 예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이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였는데 인간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을 믿지 않았기에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원 받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만인구원론을 변호하는 구절로 든다.

그 주장의 맞고 틀림을 떠나서 우선 비유를 해석하는 원칙에 위배된다. 본문이 말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다. 수소 원자 둘과 산소 원자 하나를 결합해야 물이 나오는데, 산소 둘에 수소 하나를 결합하면 물이 아닌 엉뚱한 것이 합성되는 것과 같은 꼴이다.

예수님의 비유에는 두 종류가 있다. 비유 하나만으로 특정한 가르침을 주는 것과, 비유를 어떤 주제를 보충해서 설명하는 예화로 등장시키는 경우다. 비유만으로 가르치는 경우는 당연히 그 비유 안의 핵심 구절과 주제를 찾아서 해석해야 한다. 반면에 예화로 보충 설명하는 경우에는 그 비유 밖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강조하고자 하는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잃어버린 양의 두 비유

성경에는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 누가와 마태의 두 복음서에 기록되었는데 마침 각각 이 두 경우에 해당된다. 누가는 비유만으로 가르쳤고, 마태는 비유를 예화로 사용했다. 하나님이 죄에 빠진 인간들을 누구나 사랑하신다는 근본 대의(大意)는 같다. 그러나 구체적 의미를 해석하여 실제 삶에 적용시키는 면에선 달라진다.

먼저 누가복음(15:4-7)에선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비난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의인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온 메시아임을 변호하려고 이 비유를 사용했다.    

반면에 마태복음에선 예수님이 천국에선 누가 큰지 물은 제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는 중에 보충설명을 하려고 이 비유를 들었다. 하나님 앞에 낮아진 자가 큰데, 세상은 그런 소자들을 핍박하는 일들이 있겠지만, 너희 제자들은 절대로 서로 업신여기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그 이유를 10절에서 하나님은 구원 받은 신자 한 사람마다 천사를 붙여 보호하시고 또 하늘에서 하나님께 그 맡은 신자를 위해 중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 본문의 비유는 그 이유를 다시 보충해서 설명한다. 하나님의 뜻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라도 정말로 귀하게 여기므로 너희도 소자를 절대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하나님의 심정을 정확히 깨달아서 모든 성도들을 섬기라는 것이다. 따라서 14절은 10절과 평행되는 구절인 셈이다.  

누가나 마태 두 비유 다 구원 받는 자의 범위에 수치적 제한이 있고 없음을 말하는 뜻이 아니다. 만인구원론 아니면 제한구원론이라는 신학적 교리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의미는 없다. 누가복음에선 본문 14절 같이 하나님의 심정을 설명하는 내용이 없다. 예수님이 죄인과 식사 교제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잃어버린 양을 찾는 메시아임을 강조하려는 뜻이었을 뿐이다. 또 마태복음에선 세상에서 가진 것의 많고 적음으로 교회 안에서 차별대우 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는 예화였을 뿐이다.

본문 14절에선  “이 소자 중”에라고 어떤 범위를 제한하는 “이”라는 수식어가 사용되었다. 예수님이 불러서 제자들 사이에 세운(2절) 그 아이가 아니다. “소자 중에 하나라도”라고 했으니 복수(영어로는 아예 these로 번역되어 있음)를 지칭한다. 그렇다고 “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모든 소자 또한 아니다. 예수님이 3,4절에서 이미 설명한대로 돌이켜 자기를 하나님 앞에 낮춘 자다. 구원을 이미 얻는 자요, 앞으로 구원으로 예정된 자들이다. 본문은 바로 “이”라는 수식어 하나 때문에라도 사실상 만인구원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비유의 해석과 그 적용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 보충설명을 위한 예화로 등장되었고, 특별히 14절의 의미가 만인구원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해도, 실제로 신자가 이 말씀을 삶에 적용시켜 실천할 때는 달라져야 한다. 신자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도 당연히 업신여기지 말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한다. 그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소자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야말로 진짜로 하나님 보시기에 잃어버린 양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인생은 세상에서 아무리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높이 쌓아도 향방 없는 달음질이요 허공을 치는 싸움밖에 안 된다. 어거스틴이 말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기 전까지는 자유함은 커녕 평강과 안식도 결코 누리지, 아니 맛도 보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재산과 권력과 명예를 자기 나름대로 부족함이 없게 차지했는데도 여전히 그러니 자꾸만 더 차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나아지는 것 하나 없다. 이젠 그토록 노력하여 이만큼이나 쌓았는데도 갈급하니 초조 불안 허망해진다. 그 동안에 세운 인생의 목적은 완전히 퇴색되고 열심히 살아야할 뚜렷한 이유도 없어진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한탄(2:13) 대로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보았지만 그 웅덩이는 밑이 터진 웅덩이라 물을 담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불신자들은 자기들이 그렇게 잃어버린 줄을 모르고 또 자기가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스스로는 도무지 알 수 없기에 진짜로 잃어버린 자인 것이다. 신자는 그들을 예수님의 심정을 갖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섬겨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수님께로 인도해야 한다.  

핍박을 자초하는 기독교인

작금 미국에선 동성결혼의 합법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거기다 주(州)에 따라선 신자가 공공장소에서 기도하고 전도했다고, 심지어 가정집에 모여 예배드리고 성경공부 했다고  고발당해 체포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종교의 자유가 가장 많이 보장된 미국에서 유독 기독교만 박해를 받고 있다.

인간들의 죄가 타락의 절정으로 치닫고, 그 배경에는 영적 흑암의 세력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으며,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해지고 있음이 확실하다. 사람들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 그 어떤 것도 더 이상 죄가 아니니까 사람들이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서 낮아질 이유나 필요가 전혀 없다. 구원의 기회는 점차 상실되고 심판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도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기독교인들이 자초(自招)한 측면도 분명 있다. 역설적인 예를 하나 들면 교회에서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 운동을 너무 집요하게 전개했기 때문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한다. 그런 운동이 잘못되었거나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 정문에 동성애자, 알콜 마약중독자, 홈리스, 창녀, 귀신들린 자 누구나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걸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걸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어떤 자라도 따뜻하게 환영하는 분위기가 실제로 형성되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소한도 대학입시 기원 특별새벽기도회나 신년축복성회 같은 간판은 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작금 교회들이 사람들로 기독교는 현실적 복만 추구하는 종교로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예수 믿는 것을 너무 시시한 일로 축소시킨다.

동성결혼 반대에 대한 기도 모임이나 집회의 광고는 난무하는데 반해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겠다는 광고는 전무하다. 단순히 풍자적으로 비난하려는 뜻의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어 하신 주된 일이 바로 그것이지 않는가?

교회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말로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그분을 따르는 모습을,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실천해 보이는 곳이다. 기독교가 세상을 정죄만 했지 잃어버린 죄인들을 진정으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품는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니 미국이나 한국에서 하나님과 예수님은 좋아하는데 기독교와 교회와 예수쟁이들은 싫다고 한다.

나아가 신자는 예수님의 모습을 자신의 삶을 통해 구현해내는 자다. 그런데 지금은 불신자들이 신자들의 사는 모습이 저 정도밖에 안 된다면 예수와 그 가르침 또한 같은 수준일 것이라고 여기고 예수를 믿을 필요조차 없다고 단정 짓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예수님은 단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이라도 찾으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데 신자는 수많은 잃어버린 양을 더 멀리 쫓아버리는 형국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예수님의 당부와 하나님의 심정과는 달리 교회 안에서 “이런 소자”들을 업신여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성도들끼리도 세상에서 갖춘 것이 많은 자들을 우대한다는 단순한 뜻이 아니다. 그 문제는 지난주에 이미 살펴봤다.

목회자들이 교인을 대하면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목사가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교인을 우대하여 교회에서 중직을 맡기거나, 자기 말을 고분고분 따르는 자들을 총애한다는 뜻만도 아니다. 목사들도 인간인지라 아무래도 그런 자에게 심정적 호의가 쏠리긴 한다.

그러나 다른 교인들이 뻔히 알도록 우대한다면 사실상 온전한 목자가 아니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삯군 목자다.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것이다. 또 신자가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진정으로 존경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이미 큰 벌을 받은 것이다.

그보다는 작금 대부분의 신자들이 자기들이 실족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를 만큼 신자로 하여금 너무나 교묘하게 실족케 만드는 일을 목사들이 자행하고 있다. 심지어 그러는 목사들조차 자기가 그렇게 행하는 것이 신자를 실족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분도 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가 근본적인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불쌍히 여기신다는 것인가? 물론 그렇다. 그러나 더 정확히 따지자면 하나님은 한 사람의 잃어버린 영혼이라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천국에서 누가 높은지 묻는 질문을 대답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강조하는 핵심 주제가 있다. 천국에는 계급과 서열 제도가 없다고 했다. 대신에 하나님과 일대일로 맞대면 하여 거룩한 인격적 교제를 나눈다고 했다. 또 소자처럼 낮아져 천국에 입성하기에 합당한 자에게는 천사가 붙어서 보호하고 또 그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했다. 이제 본문에 와선 하나님은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이라도 귀하게 여기고 끝까지 찾아 나선다고 한다.  

여러 번 강조했지만, 하나님은 신자를 세상에서 오직 그 한 사람만 있는 양 대우, 보호, 인도,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분의 안중에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도, 남아 있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도 똑같이 그렇게 사랑하신다. 사람들은 그렇게 못하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은 한 명의 신자를 다른 사람과 절대 비교하지 않으신다. 신자가 현재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 요컨대 하나님은 사람을 상대 평가하는 분이 아니라, 일대일로 절대적 평가를 하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실족케 하는 일의 원인과 그 해결책

예수님은 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에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씀하셨다(7절). 원죄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주신 이유는 하나님은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니까 인간도 하나님을 절대로 비교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 우주 전체에 어떤 것도 그분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당신께서 인간을 절대평가 하는 분이기에, 인간도 당신을 절대평가를 해달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다른 나무의 열매와 비교했다.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그 열매를 따먹어버렸다. 말하자면 인간이 하나님을 사탄과 비교해서 사탄을 더 좋아하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인간은 하나님과 인간을 비교했다. 하나님보다 인간 자신을 더 좋아하고 그분 위에 두기로 했다. 나중에는 인간끼리도 서로 상대평가를 하기 시작했다. 가장 사랑해야 할 남편과 아내 사이에도 서로 자기가 더 잘났다고 다투게 되었다.

따라서 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정확하게 말해 죄의 본질적인 모습은 살인, 강도, 폭력 같은 것이 아니다. 권력과 재산으로 사람을 상대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이 많고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굽실거리고 그렇지 못한 자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하나님으로선 당신에 대해서 오해하여 죄를 범했기에 인간을 구원하려면 바로 그 오해부터 풀어야 했다. 당신에 대한 평가를 올바르게 고치는 것이 바로 구원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 분 즉, 상대평가를 하지 않는 분임을 온전히 깨닫게 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의 출발이라는 뜻이다.

또 그래서 하나님 본체 되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십자가에서 모든 인간의 죄 값과 상처와 고통은 물론 서로 업신여김을 주고받은 것까지 다 감당하셨다. 실제로 주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당신의 자녀들로부터 어떤 인간도 받지 못한 멸시와 비방을 당하지 않으셨는가?  

그래서 예수님을 일대일 인격적으로 만난 신자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시편 27:10)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게 된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만난 자들이 창녀, 귀신들린 자, 세리, 죄인, 불구자 등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게이, 홈리스, 알콜 마약중독자들이다. 또 그들 중 대부분은 부모마저 버린 자들이다.

예수님은 그런 육신적인 소자들마저 영접했다. 예수님처럼 어떤 사람도 상대평가를 하지 않고 절대평가를 하는 것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영접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제자들더러 이런 소자를 영접하는 것이 당신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했다. 신자가 그들을 상대평가하지 말고 절대평가를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신자가 예수님을 절대평가 하는 즉, 제대로 믿고 따르는 길이라는 것이다.

입학기원 특별새벽기도 이전에,

너무나 유감스럽게 목회자들이 교회 안에서 신자로 실족케 하는 일이 자주 있다. 재차 강조하지만 가진 것이 많은 신자를 총애하는 정도가 아니다. 하나님 그분은 신자를 절대평가 하지 않고 상대 평가하는 분으로 믿게끔 잘못되게 소개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거기다 그 가르침을 종교적 영적 모습으로 교묘하게 포장하기에 거의 모든 신자가 속아 넘어가게 된다.

교회에서 헌금을 많이 하고 성실하게 봉사하고 교회 집회에 개근하고 새벽기도에 백일 천일 제단을 쌓으면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입시기원 특별 새벽기도 집회를 대대적으로 광고하며 행한다. 물론 자기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어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은 아주 좋은 일이다. 아무 하자가 없는 선한 일에 틀림없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에 영적으로 문제는 없다.

그러나 그 이전에 아이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분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느 대학에 들어가던 어떤 직장에서 무슨 일을 하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부터 먼저 해야 한다. 또 그 전에 부모들부터 자기들이 그렇게 되도록 기도해야 하고 그런 삶의 본을 보여주어야 한다.

신자라면 당연히 헌금과 봉사를 많이 해야 하고 교회 모임에 성실하게 참여해야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은혜가 너무 귀해서 자발적으로 기꺼이 감사하며 해야 한다. 손이 부끄러울 정도로 보잘 것 없는 이 헌금이라도 이 교회와 이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사용되길 진정으로 소원하며 바쳐야 한다. 내가 복을 받고자 헌금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신자가 하나님을 상대평가 하는 분으로 알고 헌금 봉사 많이 하면 복을 받으리라 기대하는 것은 종교에 열심을 낸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절대평가 하는 분이기에 매일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여 그분을 일대일 개인적으로 만나야 한다. 현실의 삶 속에서, 그 모습이 풍요하든 궁핍하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고난 속에 헤매든, 하나님의 너무나 놀랍고도 신비한 은혜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그분만의 계획이 있고 지금도 그렇게 이끌려가고 있음을 확신하는 신자는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특별히 목사의 편애를 받지 않아도 교회에 충성하게 된다. 그러는 것이 바로 신앙으로 살고 있는 모습니다.

본문 14절이 만인구원론의 근거가 되는지 설교에서 깊이 따질 주제로는 적합하지 않다. 그 주장의 초점을 하나님의 무한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에 두었고 또 누구에게나 구원을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심정을 대변했다는 점에선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인간사이의 우열(愚劣)이 인정되는 오류를 범한다. 인간 영혼의 전적 타락이 부인 된다.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스스로 깨달을 만큼 지혜 있는 자가 있는 반면에 도무지 알 수 없는 영적으로 어리석은 자로 나눈다. 믿음 자체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아니라 인간이 취득한 공로가 된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절대평가 하는 분이 아니라 상대평가 하는 분으로 전락된다.

이 또한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만인구원론은 하나님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강조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의 전적인 은혜가 인정되지 않으니까 오히려 하나님이 상대평가 하는 분, 즉 인간이 가진 것에 따라 차별하는 분이 되어버렸지 않은가?    

정말로 두렵고 떨리기까지 한 말씀

본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밝히는 말씀이다. 죄는 당신이 죽기까지 저주하되 죄인은 당신이 죽기까지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잃어버린 영혼이라도 끝까지 일대일로 찾으실 만큼 소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약 외모 재산 학벌 도덕성 종교성 등으로 인간을 상대평가 하는 분이라면 예수님이 구태여 이 땅에 오실 이유나 필요는 전혀 없다. 유대인들은 이미 하나님을 믿고 따르며 상대적으로 아주 경건했었지 않은가? 예컨대 예수님이 당시로선 최고 경건한 유대인들이의 비난을 받으면서, 아니 오늘날로 상황을 바꾸어도 저부터라도 민족을 등지고 자기 치부만 하는 매국노라고 비난할 삭개오를 먼저 찾아서 만나고 식사교제하고 그 집에서 유(留)할 이유는 없다. 또 창녀 마리아와 교제하고, 다섯 남편과 헤어지고 또 다른 남자와 사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러 한 낮에 우물가로 찾아갈 필요도 없다.  

거창하게 따질 필요 없이 지금 제자들이 하늘에서 누가 큰지 묻는 질문에도 “그 답은 너무나 간단하지. 세상에서 사람들 사이에 의롭다고 칭찬 받는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가장 크지.”라고 답하면 그만이다. 요즘 일부 목사님들이 하는 방식대로 교회출석부 개근한 신자와 헌금대장에 가장 금액을 많이 낸 신자가 천국에서 크다고 답하든지 말이다. 예수님이 이 소자를 영접하는 것이 바로 나를 영접한다는 말씀으로 가르칠 필요도 없다.    

때로는 목사들이 교인들을 훈련시키기 위해서라도 헌금을 독려하고 집회 참석을 강권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물론 그 순수한 동기는 좋다. 어떻게 하든 신자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체험해서 그분을 더 깊이 알게 해서 거룩하게 변화시키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특별히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능력을 경시하는 처사다. 목사가 신자를 강요하여 훈련시켜야 할 만큼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가 부족하거나 약하지 않다. 하나님의 능력을, 영원한 진리의 말씀의 파워를 우습게 보는 것이다.

엠마오 도상으로 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이 성경 말씀을 풀어 설명하자 그들의 속에서 마음이 뜨거워졌다고 하지 않는가?(눅24:32)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의 말씀의 능력은 엄청나다. 사람의 가슴을 뜨거워지게 만든다. 그런 가슴이 뜨거워진 자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다. 목사는 그 진리를 정말로 올바르고도 정확하게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 교회 안에 십자가 진리가 살아있게 해야 한다. 복음으로 신자를 변화시키면 저절로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하게 된다.

예수님의 잃어버린 양의 비유는 굉장히 심각한 말씀이다. 두렵고 떨리기까지 한 말씀이다. 단순히 하나님은 모든 이를 사랑하시는 분임에 감동 받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된다. 예수님은 정말로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밤늦게 멀리까지 다니시는데 또 찾으면 천국에서 잔치를 베푸신다. 그에 반해 “너희는 과연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묻는 말씀이다.

그렇다고 아프리카 선교사나 목사가 되라고까지는 요구하지 않는다. 당신의 일을 막지는 말라는 것이다. 제발 복음의 진리를 교묘하게 가리지는 말라는 것이다. 교회 안에 가진 것으로 차별한다면 그 자체로 이미 참 신자나 참 목사라고 말할 수 없다.

게이 환영이라는 프랜카드를 내걸 필요까지는 없다. 동성결혼 반대 운동을 하려면 신자들부터 간음 같은 성적 타락을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또 남녀 간의 정상적인 결혼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지 실제 사는 모습으로 그들 앞에 보여줘야 한다.

교회가 소외 받는 자를 섬기고 있음을 일회성 행사를 통해 주위에 자랑하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오히려 막는 일이 될 뿐이다. 사회에서 천대 소외 받은 자들이 오면 언제라도 동일하게 따뜻하게 영접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 최소한 내가 특별히 나쁘게 대우받는 것은 아니라는 확신은 갖게 해야 한다. 그러면 그들이 예수님뿐 아니라 교회와 신자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신자가 만약에 세상 앞에 하나님을 상대 평가하는 분으로 소개하는 일을 한다면 그 믿음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가지 않고 있는 것이며, 자기를 그 십자가 앞에서 부인하지도 않은 것이다. 신자는 반드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절대평가 하는 분으로 소개해야 한다.

요컨대 모든 이를 불쌍히 여기라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단 한 명이라도 어렵지 않은 이가 있는가? 모두가 나름대로 남이 모르는 중한 고난, 깊은 상처, 말 못할 시련으로 괴로워한다. 또 십자가 진리를 거부 왜곡하여서 무슨 일을 해도 갈급하고 허무해 하는 자가 너무 많지 않는가?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은혜가 필요치 않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신자는 그들을 진정으로 예수님 사랑으로 영접해야 한다. 최소한 절대 업신여기지 말아야 한다.

8/11/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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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에 기도로 동참할 수 있다. 마태복음 강해 (198) http://youtu.be/ScHdExNJdSk (클릭하시면 설교를 You-tube에서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

신자들의 잘못도 아주 크다. (마태복음강해 #197 - 마21:12-17) [2]

신자들의 잘못도 아주 크다. 마태복음 강해(197) http://youtu.be/5Vh7VGyt0b0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

목사들부터 심판대에 설 것이다. (마태복음강해 #196 - 마21:12-17) [1]

목사들부터 심판대에 설 것이다. 마태복음 강해(196) http://youtu.be/1O7wtR11hMI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

로마에서 해방을 소원하지 않았다. (마태복음강해 #195 - 마21:1-11) [1]

로마에서 해방을 소원하지 않았다. 마태복음 강해 (195) http://youtu.be/RU-_SvdrACQ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

끈질긴 믿음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강해 #194 - 마20:29-34) [1]

끈질긴 믿음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 강해(194) http://youtu.be/7wxKNidYDUY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 소경 둘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

이방인 집권자 같은 목사들 (마태복음강해 #193 - 마20:24-28)

이방인 집권자 같은 목사들 마태복음 강해 (193) http://youtu.be/TKJptBzXpkw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

푼수 같은 엄마의 엉뚱한 믿음 (마태복음강해 #192 - 마20:17-23) [1]

푼수 같은 엄마의 엉뚱한 믿음 마태복음 강해 (192) http://youtu.be/jgW9RPWbniA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 열 두 제자를 따로 데리시고 길에서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

새치기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 (마태복음강해 #191 - 마19:30-20:16)

새치기 구원을 계획하신 하나님 마태복음 강해 (191) http://youtu.be/M9Eu0irYStI (클릭 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천국은 마치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심판(審判) 보좌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마태복음강해 #190 - 마19;27-29) [1]

심판(審判) 보좌에 앉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마태복음강해 (190) http://www.youtube.com/watch?v=f1nVgh_OMMY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

청부(淸富)사상을 설교하지 말라.(마태복음강해 #189 - 마19:23-26) [1]

청부(淸富)사상을 설교하지 말라. 마태복음 강해 (189) http://youtu.be/K7Ltriyc5-A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

예수님이 던지는 너무나 심각한 질문(마태복음강해 #188 - 마19:23-26) [3]

예수님이 던지는 너무나 심각한 질문 마태복음 강해(188) http://youtu.be/YjZEbjthG3A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

부자청년이 돌아간 진짜 이유(마태복음강해 #187 - 마19:16-23) [3]

부자청년이 돌아간 진짜 이유 마태복음강해 (187) http://youtu.be/WaW-HVkFfNg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

구원받은 가장 확실한 증거 (마태복음강해 #186 - 마19:13-15)

구원받은 가장 확실한 증거 마태복음강해 (186) http://youtu.be/tvC7-Wi1cgQ (클릭 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

죽음의 문화를 전파하는 현대교회 (마태복음강해 #185 - 마19:10--12) [4]

죽음의 문화를 전파하는 현대교회 마태복음 강해 (185) http://youtu.be/YqK9OQpH4Ko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찐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

하나님의 법(法)을 뜯어 고친 예수님(마태복음강해 #184 - 마19:1-9)

하나님의 법(法)을 뜯어 고친 예수님 마태복음 강해 (184) http://youtu.be/fRnmQwkgmpc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큰 무리가 좇거늘 예...

진심보다 중심으로 용서하라.(마태복음강해 #183 - 마18:21-35)

진심보다 중심으로 용서하라. 마태복음강해 (#183) http://youtu.be/b4yIkHbUosQ (클릭하시면 You Tube 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

너무나 잘못된 합심(合心) 기도들 (마태복음 강해 #182 - 마18:18-20) [1]

너무나 잘못된 합심(合心) 기도들 마태복음 강해(#182) http://youtu.be/vfuTQBfl4sE (클릭하시면  You 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

죄를 짓고 있는 교인을 어떻게 치리해야 하는가? (마태복음강해 #181 - 마18:15-17)

죄를 짓고 있는 교인을 어떻게 치리해야 하는가? 마태복음 강해 (#181) http://youtu.be/Rny7ftJ9mJ4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

신자를 교묘하게 실족(失足)시키는 목사 (마태복음강해 #180 - 마18:12-14)

신자를 교묘하게 실족(失足)시키는 목사 마태복음 강해(#180) http://youtu.be/4V_v1nzP_NE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오디오로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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