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문화를 전파하는 현대교회
마태복음 강해 (185)


http://youtu.be/YqK9OQpH4Ko
(클릭하시면 You-tube에서 설교를 오디오로 들을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찐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찌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찌어다.”(마19:10-12)


너무나 몰상식한 제자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음행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내어보내선 안 된다고 했다. 만약 그렇게 하고 다른데 장가가는 것은 간음이라고 선포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당시의 어떤 유대인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종의 폭탄선언이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말씀이었다.  

아내에게 하자가 발견되면 이혼증서를 주어서 내어보내는 것은 유대 남성들에겐 오랫동안 익숙한 아주 편리한 제도였다. 또 율법이 그렇게 규정하고 있으니 선한 제도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유대인들에게 거룩한 모세의 율법을 어긴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같은 유대인인 예수님은 그 율법을 문자적으로 위반했고 사형에 해당하는 간음죄의 형벌을 이혼으로 경감시켰다.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이 마음대로 수정한 셈이었다. 바리새인들이야 예수님을 올가미 씌우려 왔다가 그 음흉한 속내가 들켰기에 아무런 반발도 못했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말씀에 나타낸 반응은 바리새인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제자들은 만약에 그럴 것 같으면 차라리 장가가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바꿔 말해 하자가 있는 마누라는 내쫓고 새 장가 가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것이다. 현대인들로선 종교나 윤리를 거론할 필요도 없이 일반 상식에조차 어긋나는 말이었다.

그들이 누구인가? 재산과 가족을 뒤로 하고 유대 지도층의 멸시와 박해를 감수하면서도 예수님과 삼년 간 동고동락하며 배우고 사역에 동참했던 자들이 아닌가? 그렇게 한 이유도 오직 새로운 세상으로 개혁될 것을 꿈꿨기 때문이지 않는가? 그들이 꿈꿨던 새 세상은 우선 로마의 지배로부터 풀려서 이스라엘이 독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출신, 신분, 재산, 학력 등으로 인해서 차별 받지 않는 공평과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였다. 그런 그들이 여성을 아예 인간 취급을 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예수님이 음행 외의 이유로 아내를 버리고 다른데 장가가면 사형에 해당하는 간음죄라고 선포했기에 제자들로선 혹시라도 그런 큰 죄를 범할까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 또한 기본적으로 여자를 재산, 물건, 노예로 간주했고 또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만 삼았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는 제자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로 모든 인간의 죄악이 발전 확장되고 사탄에게 미혹되어 죄의 종이 되어있다는 극명한 예였다. 죄를 전혀 죄로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떳떳하다고 자랑하며 그 잘못을 지적하며 회개하라는 예수님을 오히려 이단으로 몰아 죽이려 했다. 제자들도 그런 완악한 영적 흐름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영적인 배경 외에 현실적 이유도 있었다. 명색이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해서 가르치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함으로써 함께 멸망의 구렁텅이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 예수님 오시기 전 인류의 상태였다.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따르는 이스라엘도 포함해서 말이다.    

장가가지 않아도 되는 세 예외

그런 말도 안 되는 제자들의 반문에 대해 예수님은 항상 그랬듯이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대답을 하셨다. 앞에선 하나님이 맺어준 결혼이기에 이혼은 결코 할 수 없지만 음행만은 유일한 예외 사유가 된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맥락으로 본문에선 하나님은 모두가 결혼하길 원하지만 독신으로 살아도 되는 특별한 예외로 세 경우만 인정했다.

첫째는 어미의 태에서 고자로 난 자다. 생식 불가능한 불구자로 태어난 사람이다. 둘째는 사람이 만든 고자다. 궁중의 내시처럼 어떤 연유에서건 강제로 거세당한 자다. 셋째는 천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된 자다. 예수님보다 후대의 사람이지만 초대교회의 교부 중에 오리겐이라는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했다.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면 아무래도 세속적인 삶에 묶일 수밖에 없으니 평생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거세한 것이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독신으로 살 수 있는 경우는 이 세 경우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 말씀을 사람마다 받지 못하고 받을 만한 사람만 받으라고 하셨다.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 그대로 따르라는 것이다. 이는 직접적으로는 세 번째 경우에 해당된다.

결혼 생활이 하나님과 교제 동행하는데 꼭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다. 결혼으로 인생의 고뇌와 갈등은 물론 기쁨과 보람도 더 풍성히 체험할 수 있다. 결혼을 해봐야 더 깊고도 폭넓은 영성을 유지 발전시킬 수 있다. 그래서 다른 이의 고충도 더 잘 이해하여 제대로 상담해 줄 수 있다. 결혼이 목회하는데 훨씬 유익하기에 하나님의 종이라고 구태여 고자가 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보다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한 것이라는 산상수훈의 가르침과 연결시켜야 한다. 주님은 또 이어서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고 했다. 백체가 온전해서 지옥 가는 것보다 백체 중에 한두 개 없어지고 천국 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이다(마5:29,30).

건장한 남자에게 정욕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런 생리현상이라 도무지 막을 수 없다. 그래서 마음으로 간음할 소지 자체를 원천적으로 제거하려고 거세하는 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특별한 예외로 예수님 뜻은 오리겐처럼 정말로 평생을 성경만 연구하고 신학의 발전에 이바지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모두가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

알다시피 베드로는 선교여행을 다니며 아내를 동반했다. 반면에 바울은 그의 결혼 여부는 아직도 논쟁중이지만 성경에 따르면 혼자서 선교여행을 다닌 것만은 분명하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전 세계를 다녀야 하므로 가족을 동반하면 불편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독신자만이 맡을 수 있는 특별한 사명이 있을 때에 평생을 독신으로 보낼만한 자를 따로 부르신다. 또 그런 자에게는 아내 없이도 충분히 잘 견디고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을 만한 은사를 미리 주신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도 절대 함부로 고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눈이 마음으로 간음하여 실족케 만든다고 빼어버릴 필요도 전혀 없다. 본문의 제자들의 경우처럼 죄의 뿌리가 인간의 심령에 깊숙이 박혀서 인간을 노예로 묶고 있는 힘이 너무나 강하고 끈질기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눈을 빼어야 할 정도로 즉, 평생을 두고 피 흘리기까지 죄와 맞서 싸우라는 것이다. 마음으로 간음한다고 지옥에 보내지고 구원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럴 수밖에 없는 영적으로 연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더더욱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독신 생활에 대한 첫째 둘째의 예외도 동일한 맥락이다. 불구자로 태어나거나 강제로 거세당하는 것 둘 다 인간의 타락이 갈 데까지 간 결과다. 먼저 궁중의 내시의 경우, 왕들이 자신의 위엄을 허세로 과시하려는 의도와 또 성적으로 타락하여 첩들을 성적 유희 대상으로만 삼은 결과 아닌가?

나면서 생식 불능으로 태어나는 것도 엄밀히 따지면 죄 때문이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선물인 자신의 육체를 건강하고도 아름답게 가꾸어야 함에도 혹사하고 더럽게 만든다. 또 피조세계도 인간의 죄로 같이 더럽혀지고 있기에 병균이 갈수록 추하고 강하여져 인간의 유전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가나안 땅을 발굴했더니 우상숭배로 인한 혼음이 성행한 탓에 성병의 흔적이 남아 있고 나면서 불구가 된 시체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하지 않는가?  

물론 생식불능으로 태어나거나 강제로 거세당한 자들은 본인의 직접적 잘못이 아니며 자신이 바라던 바는 더더욱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독신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뜻은 당신을 위해서도 당신이 따로 독신으로 부르지 않는 한, 아니 불러도 구태여 고자가 될 필요는 없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소원과 계획은 모두가 결혼하라는 것이었다.

왜 하필 고자라는 표현을 사용했을까?

문제는 주님이 그냥 모두가 결혼하고 또 결혼했으면 이혼하지 말라고 쉽게 설명했으면 되는데도 구태여 고자가 되지 말라는 민망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앞에선 하나님이 맺어준 결혼을 인간이 나누지 못할 즉, 이혼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말씀하셨다. 지금은 독신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할 즉, 반드시 결혼해야만 할 당위성에 관한 말씀이다.

고자란 생식 기능을 강조하는 말이다. 세 가지 고자의 예외 말고는 독신으로 남지 말라고 했다. 그럼 누구나 꼭 결혼해야 할 당위성이 생명을 보존하고 유지하는 것에 있다는 뜻이 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케 하려는 첫째 복을 이루는 통로가 결혼이라는 것이다.

현대 젊은이들 사이에는 결혼은 해도 아이는 갖지 않으려는 커플이 늘어나고 있다. 너무 세상이 각박해져 위험과 경쟁이 과도하게 증가하기에 자기 자식으로 그런 고통을 겪게 해주기 싫다는 선한 의도가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선한 의도를 뒤집으면 아주 악한 생각이 뒤에 숨겨져 있다.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귀찮고 힘들다는 것이다 자기들끼리만 인생을 엔죠이(enjoy)하는데 방해가 되고 키우는 비용이 많아져 경제적으로 궁핍해질까 걱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지금 엄숙하게 선언하고 있다. 고자가 아닌 한에는 결혼하라고 말이다. 스스로 고자가 되는 일도 하나님이 정말로 독신이어야만 감당할 수 있는 소명은 물론 독신의 은사를 주셨고 본인도 그 사명에 전적으로 독신으로 평생을 헌신할 자가 아니면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결혼을 했으면 반드시 아이를 낳으라는 것이다. 만약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라면 결혼할 의미도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결혼하여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간음이라는 것이다. 이혼증서를 주어서 아내를 내어보내는 일은 유대의 관습과 법으로는 합법이요 정당한 일이었다. 비록 성경을 잘못 해석한 오류는 범했어도 문자적으로는 어쨌든 하나님의 율법이 규정하는 바였다. 그런데도 음행 외의 연고로 증서를 주어서 아내를 내어보내고 새 장가를 가면 간음이라고 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여전히 이전 결혼이 유효하니까 간음인 것이다. 즉 결혼이라는 틀 밖에서 행하는 성적 교섭이니까 간음인 것이다.  

혼전에 순결을 잃는 것은 당연히 결혼이라는 틀의 밖에서 일어난 것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의도적으로 낳지 않는 것도 하나님이 바라는 결혼을 부인하는 것이다. 주님이 본문에서 남녀가 연합하고 한 몸을 이루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을 완전한 결혼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제정한 결혼의 틀을 깨는 짓이다. 혼전 교섭과 같은 결과다.  

나아가 하나님의 뜻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는 것이다. 신분, 위치, 자격, 인격 모든 면에서 남녀는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 결혼은 동등한 남녀끼리의 연합이다. 창조 시에 아담이 고백했듯이 여자와 남자는 서로 간에 뼈 중의 뼈이다. 만약 여성이 혼전에 순결해야 한다면 마땅히 남자도 그와 똑같이 해야 한다.

고자가 되지 말라는 하나님의 참 뜻?

고자가 되지 말라는 것은 또 남녀 간의 성적 교섭에 의해서만 자식이 번성해진다는 의미다. 그 외의 방법으로는 절대 자식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동물은 완전 성체가 된 암컷과 수컷의 교합으로만 동일한 종의 후손이 출생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종에서 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인위적 수단이나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 피조물에게 허용된 것은 자기가 속한 그 종 안에서의 번식뿐이었다.

쉽게 말해 생명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진화는 아예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결혼해서 자식을 가지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분의 생명을 자기 후대에게 계승하는 일이다.

작금 미국에선 인간의 자유와 평등과 권리가 가장 많이 보장된 모습으로 동성결혼을 꼽는다. 또 동성 결혼을 찬동하는 것이 아주 지성적이고도 윤리적으로 선한 일로 간주되며, 그것에 반대하는 자는 비지성적이며 반윤리적이라고 비방 받고 있는 지경이다.

동성애는 성적 타락이 갈 데까지 갔다는 윤리적 측면을 따지기 이전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동성애 부부의 치명적 결함은 생명을 계승할 수 없다는 점이다. 자기들 당대로서 생명은 단절 된다. 비록 고아 같이 불쌍한 자들을 입양하여 가족을 이루는 선행을 행해도 그들 사이에 새 생명은 절대 태어나지 못한다.

창조주 하나님을 배제한 채로는 아무리 인간의 인권과 자유와 평등 같은 선한 가치를 추구해도 그 결말은 죽음이다. 단순히 모든 인간이 한 번은 죽게 마련이라는 육신적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동성애는 인간이 스스로 자기 생명을 마감하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며, 자신의 궁극적인 정체성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뜻이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아담이 선악과 금령을 위반한 죄를 벌하기 위해서 종교적 형벌을 가한다는 차원이 아니다. 실제로 아담은 육신적 죽음의 벌을 받지 않았다. 하나님이 선포한 죽음은 당신과 함께 하지 않는 자는 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인간이 육신적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능력의 근거이다. 또 그보다 더 중요하게는 인간이 자기 삶을 충만케 할 수 있는 모든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하며 거룩한 가치와 의미를 공급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근원이다. 하나님께로부터 그런 공급이 없으면 끝까지 갈급하고 허망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부재(不在)는 참 생명의 부재다. 그 자체로 죽음이며 그것이 바로 참 죽음이다.

예수님이 21세기 미국에 오셨다면?

그런데도 작금 미국의 교회들은 동성 결혼을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선하고 옳은 행위라고 옹호하고 있다. 거기다 동성애자가 목회자가 되어서 양떼를 치기까지 한다. 본문에서 제자들이 차라리 장가가지 않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예수님께 반문하는 모습에서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아무리 간음이라는 죄를 범치 않겠다는 선한 뜻이 포함되었어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그들마저 자신의 음욕을 채우기 위해서 죄를 죄로 여기지 않던 바로 그런 모습 말이다.  

인간 사회에서 인간끼리 평가할 때는 동성애와 그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뜻 안에서는 가장 인간답지 못한 일이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다. 하나님을 부인하는 죽음의 문화다. 참 생명을 가르치고 나눠주어야 할 목회자가 오히려 죽음의 문화를 옳다고 옹호하고 전파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처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서 함께 죽음의 구렁텅이로 걸어가는 중이다.

예수님이 만약 21세기 이런 미국에 오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간음한 연고 외에는 아내를 절대 버리지 말라고 선포하면 사람들이, 특별히 바리새인 같이 성경을 곡해한 동성결혼 옹호 목회자들이 “그럼 차라리 동성 결혼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이까?”라고 반문하지 않겠는가? 또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고자도 아니면서 고자처럼 행동하여 실제로 고자가 되는,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고 죽음으로 결말지어지는, 그런 일은 절대 하지 말라.”는 대답을 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을 십자가에 매단 바리새인과 제사장들마저 저들이 사탄에 미혹되어 자기들이 하는 짓을 모르니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셨다. 자신을 직접 살인한 그들마저 당신의 긍휼로 품었는데, 간접적으로 죽음의 문화를 생성하는 동성애자들은 더더욱 불쌍히 여기실 것이다. 동성애라는 죄에 대한 형벌은 당신께서 십자가 죽음으로 대신 갚으시고 동성애자는 당신의 부활 참 생명으로 품어주실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님의 구원이 임하면 “고자도 나는 마른 나무라 말하지 말라”(사56:3)고 예언했던 그대로 말이다.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또 진리 되시는 당신께서 직접 그 가르침을 실천하셨다. 모든 자들의 죄를 십자가에서 다 사해주셨다. 모든 인간들이 사실상 동성애보다 더한 죄를 수도 없이 짓고 있지 않는가? 정상적으로 결혼한 신자들마저 마음으로 간음하는 일 또한 얼마나 많은가? 정말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어 그 죄 값을 대신 갚는 길 외에 우리를 구원할 방도란 전혀 없다.  

호세아 선지자의 예를 보라. 음란한 아내를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한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불륜으로 낳은 혼외의 자식마저 자기 자식으로 받아서 키우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당신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보다 당신과 원수였던 이방인마저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이고 어쩜 더 큰 은혜를 주셨지 않는가?

하나님 축복의 유일한 통로, 결혼

지금 진화론자나 동성결혼 옹호론자를 비난하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결혼을 고자라는 단어를 사용해 생명의 보존과 연결시켰다. 하나님의 창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정상 결혼으로 이룬 가정에 넘치도록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자가 아닌 한 모두 결혼하여 자기 인생과 삶에 하나님이 주시는 참 생명으로 충만하게 채우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더러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한 것이 결혼하여 후손을 번창시키라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그 충만의 책임이 인간의 노력과 수고에 맡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맡아서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가정 안의 부부 관계, 부모와 자녀들 사이에 당신의 축복을 풍성하게 부어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만의 충만으로 가정에 충만케 해주신다는 것이다. 가정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충만하게 담는 그릇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자가 하나님께 서약했으니까 이혼을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혼을 단지 종교적 계명의 위반 정도로 간주해선 안 된다. 동성 결혼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듯이, 이혼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인 가정을 스스로 깨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 밖으로 스스로 뛰쳐나가는 것이다. 하나님 안에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비록 부부 사이라도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해주어야 할 만큼 서로 간에 수치, 하자, 죄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정말로 예수님의 사랑으로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용서한다면 하나님이 그들 사이에 부어주시는 은혜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불신자로선 도무지 알 수 없는 참 생명이 풍성하게 넘쳐난다.

물론 불신자 부부도 남녀 간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한다. 상대를 보고 자신의 반면교사로 삼아 스스로를 깎아가며 여러모로 성숙해진다. 힘들 때나 즐거울 때나 항상 함께 하는 인생의 동반자다. 설령 자신이 잘못했어도 다른 이들을 향해 항상 같은 편이 되어준다. 세상에서 당한 상처, 억울함, 고통 등을 언제든 부부끼리 호소하며 그 짐을 함께 나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불완전하고도 연약한 점을 제대로 해소할 길을 갖지 못한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제하니까 그분의 참 생명을 자신들 사이에 채울 방도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생각과 고집은 물론 인간적 의와 자랑과 교만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평생을 두고 하나님의 충만을 누리기는커녕 알 수도 없다.    

신자의 결혼은 다르다. 창조주 하나님이 직접 그 부부와 가정을 거룩하게 통치하신다. 그분이 부어주실 은혜와 권능은 하늘에 무궁무진하게 쌓여 있다. 남편과 아내 각자가 하나님 앞에 항상 겸비하게 서면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케 채워진다. 그래서 서로 손을 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면 그분의 뜻을 찾아 순종해 나가면 그분께서 너무나도 세밀하게 인도하면서 놀랍고도 신비한 은혜로 채워주신다. 어떤 어려움도 주님과 함께 손을 잡고 이겨나갈 수 있다. 예수님이 진정으로 온전한 주인이 되어 있는 가정의 풍성함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그렇게 동행해본 자들만이 안다.        

창조의 목적이 바로 결혼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당신의 대리자로 세워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다. 마치 창조를 보존 유지할 수단으로 결혼이라는 제도를 창조 후에 제정한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녀 간의 결혼으로 생성된 가정으로 완전한 교회의 역할을 감당토록해서 이 지상에 순전한 천국의 모습이 드러나게 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이었다. 요컨대 결혼이, 가정이 창조를 이어가는 수단이 아니라 창조의 목적 자체라는 것이다. 당신을 아는 자들의 순전한 결혼만이 당신의 참 생명을 계승 발전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신 목적을 성경이 어떻게 진술하고 있는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1:10) 그렇게 하는 수단은 그리스도의 몸 되는 교회 안에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충만”(엡1:23)으로 채우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엡2:7) 하신다.

인간이 타락할 줄을 아시고도 창조하시고 당신을 배역하는 범죄를 허락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충만이 예비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십자가 구속으로 그리스도의 충만을 모든 세대에 드러내게 하시는 것인데, 교회의 주일 학교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믿음의 가정에서라는 것이다.  

신자의 부모들이 먼저 하나님의 참 생명 안에서 실제로 충만하게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야 한다. 그리고 자녀들로 하여금 자기 인생에 궁극적이고 유일한 소망과 목적을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두는 자로 키워야 한다. 사나 죽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그분의 제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신자 부모 안에 있는 하나님의 참 생명이, 진실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그 영적 생명이 자녀들에게 또 그 자녀의 자녀들에게 계승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창조를 신자가 대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다. 이 땅에서부터 가정을 하나님만이 다스리는 거룩한 천국의 모습이 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신자를 이 땅에 소수의 남은 자로 두신다. 세상의 멸시와 핍박을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했기에 그 수고를 보응하여 천국으로 입성시킨다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다. 결혼을 통해서, 결혼을 출발점으로 하여서 죽음의 문화가 성행하는 세상에게 참 생명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여주며 적극적으로 전파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다. 신자 가정에 가득한 그리스도의 빛을 남들로 보게 하라는 것이다. 무엇이 참 진리이고 참 선이며 참 아름다움인지를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신자의 삶을 통해 깨닫게 하라는 것이다.

한번 상상을 해보라. 가정마다 아버지는 하늘을 향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고, 아내와 자식은 그런 아버지에게 순복하며, 매사에 그 가정의 참 주인이신 예수님의 뜻대로 순종 헌신하며 사나 죽으나 그분의 영광을 위한다면 세상이 과연 이렇게 타락했겠는가? 아무리 적은 숫자의 가정이라도 세상을 거룩하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신자로 이 땅에 남겨두시는 하나님의 뜻이다.

지난주에 믿지 않는 자들도 현재 일어나는 세상의 모든 문제의 원인이 참 사랑의 실종임을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항 하나가 있다. 참 사랑은 오직 하나님의 참 생명으로부터, 그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과 용서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도 않는다.

신자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는다는 것은 정말로 엄청난 하나님의 일이자 축복이다. 신자니까 단순히 간음하지 말고 이혼하지 말아야 하고 가족끼리 사랑해야 한다는 종교적 교리적 임무에 묶일 계제가 아니다. 하나님의 참 생명이 충만하게 부어지는 첫째이자 가장 중요한 그릇이 가정이다. 신자로 하여금 그 풍성한 참 생명을 세상으로 알게 하고 나누어주게 하여서 세상을 거룩하고 아름답고 풍성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안이다. 바꿔 말해 불신자들도 갈급해하는 세상에 참 사랑을 회복시키는 일은 오직 신자에게 달렸다는 것이다.    

9/15/2013

사라의 웃음

2013.09.16 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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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의 죄악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죄임을, 생명의 이어짐을 스스로 단절하며 사망으로 치닫는 죄악임을 배웁니다.

가정을 이루고 그 아름다운 곳에서 하나님의 풍성히 주시려는 은혜를 간구하며 이미 십자가에서 용서해주신 인간의 무지, 교만, 이기심...등을 감사하며 서로를 용서해주고 이해해 주며 토닥이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가정들, 부어주시는 그 은혜들로 이루어진 가정들이 세상 이곳 저곳에서 우렁 우렁 솟아나고 자라나길 너무도 원하시고 계실 우리 주님의 맘을 배웁니다.
예수님 안에서 더더욱 은혜로 뒤덮이는 가정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국중후

2013.12.01 23:38:42
*.243.238.62

감사합니다 목사님
주님의 은혜가 항상 목사님 가정에 넘치게 하실줄을 믿습니다.

운영자

2013.12.02 00:49:18
*.119.139.57

국중후 형제님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저와 이 홈피를 위해서 항상 기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형제님의 가정에도 동일한 은혜가 넘치길 기원합니다. 샬롬!

사라의 웃음

2013.12.03 00:31:07
*.109.85.156

국중후 형제님 이름이 낯설지 않음은 많은 댓글로 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뒤 늦게 인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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