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공의와 법적 정의의 관계?

조회 수 371 추천 수 2 2020.10.14 10:39:12

하나님의 공의와 법적 정의의 관계?

 

[질문]

 

저는 삶 속에서 법에 따라 다른 사람들을 판단해야하는 위치에 있는 청년입니다. 일을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생기게 된 질문이 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죽기까지 다른 이를 용서하는 삶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었고 부족하지만 그런 삶을 살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이를 판결하고 난 후에는 마음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분명 잘못한 이에게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한 것이고 이것이 정의로운 것이나 인간적인 감정에 치우쳐 판단력마저 흐려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실현하실 때(삶 속의 징계의 때, 재림의 때 등)에 어떠한 마음일까 궁금해졌습니다.

 

1. 공의를 실현하실 때 하나님의 감정 - 안타까움, 당당함, 기쁨 등 많은 것 중 어느 것에 가까울까요?

2. 우리도 삶속에서 정의와 공의를 실현해야 할 때가 있다면 상기의 하나님의 감정을 닮으려고(만약 다른 감정이 든다면) 노력해야 하는가요?

 

[답변]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사회의 공의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사회의 공의와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다릅니다. 첫째로 인간사회의 공의는 단순히 착한 자는 상을 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공의는 당신의 무한한 긍휼의 은혜가 함께 해야만 완성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므로(렘17:9)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합니다.(창8:21) 예수님도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마15:18,19)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결코 의로워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3:20,21)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의 뜻은 하나님은 죄는 죽기까지 저주하되 죄인은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여전히 인간사회의 공의에 묶여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직전에 진리의 영인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성령이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책망하실 것인데 ‘죄’(罪)는 당신을 믿지 않는 것이고 ‘의’(義)는 당신께서 아버지로 가신 것 즉,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완성한 것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요16:8-10) 한마디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둘째는 선과 악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만이 완전하고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이며 모든 절대적 진리도 그분께로만 나옵니다.(마19:17) 그분의 선에 대한 기준을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일부나마 풀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행동으로 짓는 죄만이 아니라 말은 물론 마음으로 짓는 것이 더 심각한 죄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또 그런 가르침을 당신의 공사역 중에 몸으로 완벽하게 실천해 보였습니다.

 

반면에 인간사회의 선악의 기준은 불완전하고 부족한 위에 나라 민족 문화 종교마다 다 다르며 시대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기준에선 죄악이 되는 일부다처제와 계급제도와 여성비하가 떳떳하게 공의로 적용되는 미성숙한 인간사회가 많습니다. 선진사회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상대정파의 공의가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며 뒤바꾸려고 시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에 바탕을 둔 완전한 공의를 모르는 모든 자연인은 결코 하나님이 바라시는 공의를 실현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성령으로 거듭나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신자들은 그분의 공의를 온전히 깨달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이 돌을 맞고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듯이 말입니다.(행7:60)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4)

 

그래서 신자는 예수님이 권면하신 대로 원수도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형제들의 잘못을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불신자들은 물론이고 신자들마저 주님의 긍휼 없이는 한시도 제대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불신자는 용서 받지 못한 죄인이며 신자는 용서 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똑같은 죄인끼리는 용서와 사랑 외에는 그 관계를 온전하게 이어갈 수 없습니다.

 

신자의 독특한 신분과 소명

 

신자가 된 후에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도록 노력해야 하며 주님이 이 땅에서 살았던 방식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종교적인 의무가 아닙니다. 성령이 내주하는 신자의 심령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법이 신자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켰기에 영을 좇는 자로선 영의 일을 생각하고 실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롬8:2-8) 또 그렇게 하라고 세상에서 따로 불려 나온 것입니다.

 

문제는 신자가 예수를 믿어도 죄의 본성은 생생하게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의로 의롭다는 칭함만 받은 것이지 그 성품마저 예수님처럼 바꿔서 구원해준 것은 아닙니다. 평생토록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노력하면서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내주해주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해 간구하면서까지 의의 길로 이끄십니다.

 

그럼에도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이 땅에선 주님처럼 완벽해질 수는 없습니다. 잘못한 형제들을 일흔 번은커녕 세 번 용서도 너무 힘들며 원수사랑은 아예 요원합니다. 예수님처럼 살고 싶은 소원은 있으나 육신이 도무지 따라주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의를 몰랐을 때가 편했고 신자가 된 후로는 도덕적 영적 죄책감과 수치심이 더 늘어납니다.

 

바로 그것이 신자가 당면하는 딜레마이지만 사실은 큰 축복입니다. 신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해도 불신자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경건해졌습니다. 허물과 죄로 괴로워하는 것 자체도 엄청난 은혜로 더 거룩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천국 가는 그날까지 아주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가며 그분의 공의를 세상 앞에 실현하는 것이 신자의 인생입니다.

 

신자는 그래서 독특한 정체성을 갖습니다.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within the world)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닙니다.(not of the world)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하고도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시민이 되었기에 이 땅에선 그분의 의를 최선을 다해 실현해야 합니다. 신자의 영원한 신분 위치 소속은 하나님의 자녀로 완전히 바뀌었기에 천국 가는 그날까지 그분의 거룩하고 온전하신 보호 인도 은혜 권능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현실적인 삶은 이 땅에서 세상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며 인간이 정한 세속의 관습 규범 법률을 따라야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에 분명하게 위배되는 것은 따르지 않아야 합니다. 예컨대 이슬람사회의 일부다처제 관습은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고 형벌을 가하지는 않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천국

 

그런데 비록 인간의 공의가 불완전하고 상대적 일시적이긴 해도 인간에겐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지어진 흔적이 남아 있어서 대체로 선한 편입니다. 인간사회가 그런 관습 윤리 법률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해 놓으신 일반은총입니다. 신자가 세상에서 살아야 하되 세상과 별개로 떨어진 이중적 신분을 가졌기에 바울은 아래처럼 권면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5:9-13)

 

신자는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는데 온갖 죄인들과 단순히 함께 하는 정도가 아니라 교제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십자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적 진리는 우선 교회에서 적용해야 한다고 합니다. 세상은 복음 안에 들어오기 전이라 그분의 진리를 이해는커녕 어리석고 잘못되었다고 여깁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는 말씀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11:12)고 선포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 땅에서 사탄의 권세를 무너뜨리고 죄인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그 은혜를 믿는 신자에겐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정확히 깨달아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진리의 영인 성령을 내주케 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조종과 농간 아래 있도록 허용해두었습니다. 세상에서 불러낸 신자들로 사탄에 미혹되어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비취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천국은 이미(already) 도래했으나 아직(but yet) 완성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이 땅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전히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구속계획에 동역자로 부름 받은 신자는 자신과 자기 주변부터 그리스도의 공의가 실현되는 공동체로 적극적으로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이미 도래한 천국을 침노하여 가시화 시켜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신자가 세상법률에 순종 실현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신자라면 앞장서서 법률을 따라 사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도 사회적 거리운동에 적극 동참했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만약 그분의 절대적 진리와 분명하게 위배되는 것이 있다면 정당한 법절차에 따라서 고쳐나가도록 힘을 쓰면 됩니다.

 

공의를 실현하는 하나님의 심정

 

이제 주신 두 질문에 대해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이 인간사회에 당신의 공의를 실현할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물었습니다. 아무리 목사라도 감히 그분의 심정을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상기에 설명 드린 성경적 진리로 살펴보면 무엇보다 아주 안타깝고 불쌍한 심정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세대의 인간을 향한 마음은 언제나 재앙이 아니라 구원이며 인생으로 고생하고 근심하게 하심은 결코 본심이 아닙니다.(애3:33) 사사시대에 이스라엘에게 형벌을 가해도 매번 다시 회개하고 부르짖으면 새로운 사사를 세워서 구원해주었습니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을 심판한 첫째 이유도 도덕적 죄가 아니라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백성이 어떤 죄를 범해도 당신을 향해 다시 얼굴을 돌리면 언제든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완악하게 하나님을 거역 대적하고 있는 모든 열방의 백성들도 비록 사탄에 미혹되어 있어도 당신께서 지은 백성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자면 부모가 자기 몸에서 낳은 자식을 보는 심정과 같은데 밖에서 나쁜 짓만 일삼는 자식을 부모는 더 애처롭게 여깁니다.

 

결코 간과해선 안 될 사항은 불쌍함과 안타까움으로 공의를 실현하더라도 당신만의 기대와 소망은 물론 기뻐하는 심정도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인류 구원의 길이 활짝 열리고 신자들로 세상에 당신의 영광이 비춰질 것을 계속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또 신자들이 때로 죄를 범해도 징계와 연단은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더 거룩하게 성장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히12:7-10) 현재는 예수님이 재림하여서 바꾸실 새 하늘과 새 땅으로 가는 필수적인 여정이므로 마찬가지로 당신만의 기쁨을 품고 계실 것입니다.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 ...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사19:19-25)

 

신자의 공의에 대한 태도

 

둘째로 신자가 삶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할 때에 어떤 심정이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본체이시나 비천한 인간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셔서 당신은 죽는 대신에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신 그런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1-5)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를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천국 갈 때까지 신자로선 조금씩 최선을 다해 실현할 뿐이고 천국에 가서야 이뤄질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땅에선 하나님이 마련하신 일반은총에서부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신자이기 이전에 그 공동체의 건전한 소속원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이 정한 법률을 집행함으로써 예수님처럼 죄인을 끝까지 용서 못하고 벌을 주게 되더라도 양심의 가책을 과하게 느낄 필요나 이유는 없습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롬13:1-5)

 

권세자들은 하나님이 세상의 악을 다스리라고 세운 종이기에 신자들더러 그들에게 복종하라고 명합니다. 법을 집행하는 자는 세상 악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칭합니다. 죄인들끼리 시기 경쟁하는 인간 사회에 죄악은 상존합니다.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지 않아도 죄악을 최대한 줄이는 것은 큰 선이자 아주 훌륭한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직분이 얼마나 귀한지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막중한 소명감으로 임해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다른 이에게 참 생명을 주셨던 주님의 성육신의 정신을 기본직업관으로 삼으면 됩니다.

 

법을 전공하신 전문가에게 주제넘고도 어설픈 권면이 되겠지만 두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법을 제정한 정신에 따라 판결하면 될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서 일부 제사법과 정결법의 법정적인 효력은 다했지만 그것들을 포함한 모든 율법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은 지금도 분명히 유효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모세의 이혼증서 법에 대해서 그 정신을 풀어서 가르쳤듯이 말입니다.(마19:3-12)

 

대표적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국헌법에 결혼을 두 사람 간에 평생을 함께 산다는 언약으로 규정해 놓았는데 지금 와선 두 이성(異性) 간의 결합이라는 명시적 규정이 없다고 동성결혼을 합법이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헌법을 작성할 때는 동성결혼은 꿈도 꾸지 못하고 당연히 남녀 간이라는 것을 전제가 되었는데도 법을 제정한 당시의 정신을 무시한 것입니다.

 

둘째는 절대로 혈연 지연 학연 같은 인간관계 친밀도에 영향 받지 않아야 하며 뇌물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정파적 이익에 휩쓸려서도 안 됩니다. 신자도 자신만의 특정한 정치적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상대적 불완전한 정책들이지만 그 중에 최선의 것을 택하여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법을 판결 집행하는 입장에선 법적 규범이 어떤 정치적 의견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한마디로 예수님의 심정을 품고서 공의를 집행하시면 됩니다. 모든 관련 당사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대하고 최선을 다해 판결 집행하십시오. 순전한 마음에서 행한 판결이라면 반드시 조금씩 개선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성령의 역사를 통해 전해질 수 있다는 기대와 감사를 가지셔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성경 진리를 묵상하고 깨달은 진리에 최대한 접근하도록 법을 해석 적용하시면 하나님도 분명 기뻐하실 것입니다. 무엇보다 공무 외의 일상생활에서 더더욱 신자다운 모습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면서 원수까지 사랑하고 형제의 잘못을 일흔 번씩 용서하는 일은 목회자도 실현하기 아주 어렵습니다. 목회자들이 먼저 그렇게 살아야 하고 또 그렇게 살도록 신자들을 가르치고 격려해야 합니다. 일반 신자들로선 세속의 직업 자체가, 비성경적인 것이 아닌 이상, 하나님이 주신 천직이므로 그 직업을 통해 그리스도의 빛을 드러내시면 됩니다. 혹시 잘못된 판단과 집행을 해도 하나님은 신자의 순전한 진심을 알기에 합력해서 선으로 바꿔주십니다.

 

10/14/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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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5 03:5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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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감사드립니다. 정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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