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세상에선 어떤 성과를 이루려면 반드시 수고와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땀을 흘리지 않으면 열매를 먹을 수 없습니다. 이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피조세계도 함께 벌을 받아 이 땅이 가시덤불을 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창3:18,19)
그러나 하나님은 신자로 꼭 고통을 거치게 해서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신자의 믿음을 더욱 성숙시키기 위해서 또는 당신의 특별한 일을 맡기기 위한 준비와 훈련으로만 고통을 주십니다.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 앞에 온전히 자기늘 낮추는 겸손과 그분만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신약 사도들 중에 가장 많은 고통을 받은 바울은 그래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자기가 낮아질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더 두드러지게 역사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탁하다보니까 이런 고백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풍요하게도 하고 궁핍하게도 하지만 스스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빌4:10-14) 말입니다. 단순히 검소하게 산 것이 아닙니다. 풍요할 때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외적인 형편에 상관 없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라면 그분만 의지할 때 그분이 이뤄주므로 그분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고통을 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이 없다고 한정 지으면 하나님도 그런 수준으로 제한되어 버립니다. 고통이 있어야만 그분의 복을 받는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신 분이며 스스로 자존하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뜻에 따라서만 행동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신앙상의 매뉴얼은 없다고 제가 입이 닳도록 강조한 것입니다.
고통도 하나님의 복을 받는 여러 통로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임하면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하면 됩니다. 그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의 말씀이 현실의 삶에서도 실제로 큰 은혜로 실현됩니다.
2 번 질문
형제님의 사고 방식은 어쨌든 형제님이 형성하거나 변화시켜야 합니다. 어떤 문제라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깨비방망이 뚝딱 식으로 단번에 해결해주는 법은 아주 비상한 경우 외에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평소에 형제님이 성경을 배워나가거나 계속 묵상 고민하고 있을 때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닫게 해주고 그래서 형제님이 사고방식을 바꿔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깨달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형제님에게 생겼던 마음의 상처나 엄청난 스트레스도 형제님 스스로 해소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사고 방식 자체가 단 번에 완전히 바뀌거나 스트레스나 상처가 없어지고 위로만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뜨거운 찬양이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이 주시는 위로로 감정이 충만해지면 상처나 스트레스가 해소된 것 같아도 일시적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반드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스스로 사고방식을 바꾸고 그렇게 바뀐 사고방식 대로 자신의 내면의 찌꺼기도 스스로 해소해 나가고 나아가 형제님이 먼저 기꺼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개선해나가도록 노력해야만 실제로 그 관계도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신자의 순종을 바탕으로 일어나며 그 둘은 항상 같이 갑니다.
1 번 질문
인간 세상에선 어떤 성과를 이루려면 반드시 수고와 희생이 따라야 합니다. 땀을 흘리지 않으면 열매를 먹을 수 없습니다. 이는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피조세계도 함께 벌을 받아 이 땅이 가시덤불을 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창3:18,19)
그러나 하나님은 신자로 꼭 고통을 거치게 해서 복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신자의 믿음을 더욱 성숙시키기 위해서 또는 당신의 특별한 일을 맡기기 위한 준비와 훈련으로만 고통을 주십니다.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 앞에 온전히 자기늘 낮추는 겸손과 그분만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신약 사도들 중에 가장 많은 고통을 받은 바울은 그래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12:9,10) 자기가 낮아질수록 하나님의 능력이 더 두드러지게 역사하더라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탁하다보니까 이런 고백도 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풍요하게도 하고 궁핍하게도 하지만 스스로 자족하는 비결을 배웠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빌4:10-14) 말입니다. 단순히 검소하게 산 것이 아닙니다. 풍요할 때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외적인 형편에 상관 없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라면 그분만 의지할 때 그분이 이뤄주므로 그분의 일이라면 무엇이든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고통을 주시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고통 없이 얻는 것이 없다고 한정 지으면 하나님도 그런 수준으로 제한되어 버립니다. 고통이 있어야만 그분의 복을 받는다는 이상한 결론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신 분이며 스스로 자존하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뜻에 따라서만 행동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신앙상의 매뉴얼은 없다고 제가 입이 닳도록 강조한 것입니다.
고통도 하나님의 복을 받는 여러 통로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고통이 임하면 하나님에게 간절히 기도하면 됩니다. 그럼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126:5)의 말씀이 현실의 삶에서도 실제로 큰 은혜로 실현됩니다.
2 번 질문
형제님의 사고 방식은 어쨌든 형제님이 형성하거나 변화시켜야 합니다. 어떤 문제라도 기도하면 하나님이 도깨비방망이 뚝딱 식으로 단번에 해결해주는 법은 아주 비상한 경우 외에는 없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평소에 형제님이 성경을 배워나가거나 계속 묵상 고민하고 있을 때에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깨닫게 해주고 그래서 형제님이 사고방식을 바꿔먹어야 합니다.
그렇게 깨달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형제님에게 생겼던 마음의 상처나 엄청난 스트레스도 형제님 스스로 해소해 나가는 노력을 해야만 합니다. 가만히 있는데 사고 방식 자체가 단 번에 완전히 바뀌거나 스트레스나 상처가 없어지고 위로만 채워지지는 않습니다. 뜨거운 찬양이나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성령님이 주시는 위로로 감정이 충만해지면 상처나 스트레스가 해소된 것 같아도 일시적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반드시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스스로 사고방식을 바꾸고 그렇게 바뀐 사고방식 대로 자신의 내면의 찌꺼기도 스스로 해소해 나가고 나아가 형제님이 먼저 기꺼이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개선해나가도록 노력해야만 실제로 그 관계도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신자의 순종을 바탕으로 일어나며 그 둘은 항상 같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