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성경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고,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도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돌아가신 것이 아닌지요. 우리는 이스라엘과는 민족도 다르고, 역사적 사실도 전혀 다른데 어떻게 예수님이 내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인지요. 상징적인 의미로 확대해서 해석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성경에 명시되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담이 인류의 조상이라면, 모든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시조는 동일하게 아담이 되는 것인지요. 또 왜 그 많은 민족 가운데 하필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여 성경에 직접 언급하셨을까요.
[답변]
신자라면 누구라도 한번 씩 고민해본 과제일 것입니다. 이천년 전에 로마 사형수로 죽은 유대인 예수의 죽음과 한국인인 나의 죄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또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하필 유대인으로 태어나게 했으며 또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면 그 선택받은 민족은 복을 받아야지 그 후의 역사 전개는 오히려 전 세계를 떠돌며 온갖 핍박을 받게 하는가 등등 관련된 의문은 꼬리를 뭅니다. 그런데도 누군들 시원한 대답을 해주지 않으니 의문만 증폭되다가 나중에는 해답 찾기를 포기해버리는 신자도 많습니다.
1. 유대인 예수와 한국인 나와의 관계
역설적으로 쉽게 접근해보겠습니다. 우선 하나님이 반드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직접 오셔서 인류의 죄를 사하러했다면 필연적으로 어떤 한 민족을 택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예수님은 중국, 로마, 인도 심지어 한국 등 어디서든 여자의 몸에서 탄생해야 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중국, 유대, 한국 등 세상 어떤 민족에서 태어났건 인류 전체의 구속에 효과를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가 유대인이라서 한국인은 구원할 수 없다가 아니라, 인간으로 오신 구세주이기에 인종과 민족을 초월하여 모든 죄인을 구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자가 정작 따져야 할 문제는 “하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는가? 아니면 다른 방법은 없는가?”입니다. 만약 인간 구세주로 십자가에 죽는 것이 인류 구원의 유일한 길이라면 그가 어떤 민족으로 태어났건 한국인인 나의 죄를 구속할 수 있으며 유대인 예수가 왜 한국인인 나의 죄와 연관이 있느냐는 질문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집니다.
성경은 신구약 공히 예수님의 구원이 모든 민족에게 미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의 대표적인 구절로는 메시야에 대해 가장 잘 예언해 놓은 이사야서에서 들 수 있습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42:1,6) “땅 끝의 모든 백성아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사45:22)
또 신약 성경에선 십자가 구속의 의미를 가장 잘 설명해 놓은 로마서(롬1-5장)를 들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인류의 조상 아담과 둘째 아담인 예수님을 서로 대조하여 범죄와 구속의 효과가 모든 인간에게 미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롬5;12-21)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7-19)
2. 인간 구세주라야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이 주제를 논하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고 성경에 기록된 내용 전부가 사실 이 문제를 설명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추측컨대 질문자님께서도 설교와 성경공부 등을 통해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들이 잘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 간단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인간의 구원은 죄에서 구원이며 그 구원을 주시는 이는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인간으로 오셔서 구원해 주지 않으면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구원의 합격점에 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모든 종교가 말하는 구원으로서 죽은 후에 이 땅에서의 성적에 따라 하나님이 우수한 자는 구원을, 열등한 자는 심판을 주신다는 원리입니다. 한 마디로 사람이 죽으면 착한 자는 천국에, 악한 자는 지옥에 간다는 것입니다.
흔히들 어떤 흉악한 죄인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주는 기독교는 너무나도 불공평하고 불합리하다고 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그 정반대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거짓말이라는 죄를 예로 들어봅시다. 평생에 열 번 미만 한 사람은 천국가고 만 번 정도한 사람이 지옥 간다면 누구라도 불평 못할 공평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그 중간에 착한 자와 악한 자를 나누는 Cut Line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평생 5천 번 거짓말 한 것으로 칩시다. 그럼 5001, 5002, 5003번 거짓말한 것과 4998, 4999, 5000번 한 것의 차이가 영원한 운명이 갈릴 만큼 심각한 것입니까?
착한 자를 천국 보내는 하나님이야말로 오히려 불공평한 하나님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 스스로 하나님의 합격점에 들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작 하나님 본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인간이 스스로 꾸며낸 구원에 불과한 것입니다. 용서란 전적으로 용서 해주는 자의 마음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면 과연 거짓말을 평생에 5,000 번 한 자는 구원하고 5,001 번 한자는 지옥으로 보내겠습니까?
나아가 인간이 스스로 선해져서 하나님의 기준에 합격할만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리 인간들끼리는 선인과 악인의 구별이 가능할지 몰라도 하나님이 인간을 보기에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아니 너무나 불쌍하고 연약해 당신의 긍휼과 사랑이 필수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는 인간을 하나님이 구원할 수 있는 기준과 근거는 무엇이겠습니까? 누구든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기에 스스로 겸비하게 되어 그분 앞에 무릎 꿇어 엎드리며 “오직 당신의 긍휼만 의지합니다”라는 고백뿐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모든 인간이 아담의 원죄 아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죽을 죄인이라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자비만 구하는 자를 구원하겠다는 그분의 구원 원칙도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보다 자기는 의롭다고 자신하는 교만한 자들, 즉 사단의 종이 된 자들이 착한 사람이 천국가야 한다는 인본주의적 종교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이 오히려 가장 불공평한 하나님인 줄도 모르고 사단에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선 당연히 죄와 사단과 사망의 멍에 아래 있는 불쌍하고 연약한 인간들을 향해 당신의 애끓는 심정을 알려 주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또 헬라인이든 유대인이든, 자유자든 종이든, 남자든 여자든 당신 앞으로 가난한 심정이 되어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해주신다는 진리를 보여 주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죄인 아니 당신과 원수 된 자들을 향해서 내가 너희를 죽도록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제발 알아달라는 하소연(요3;16)이기도 합니다. 십자가상의 흉악한 강도마저 구원된 이유는 단순하게 그 사랑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였던 것뿐이었지 않습니까?
이 외에도 메시야가 인간으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는 아주 많이 있습니다. 만약 질문자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꼭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야 했다는 것만 진정으로 믿을 수 있다면 앞서 밝힌 대로 예수님이 유대인이셨다는 사실이 한국인에게도 하등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왜 하필 유대인을 택하셨는가입니다.
3. 하나님은 왜 유대민족을 통해 메시야를 보내셨는가?
먼저 아담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 맞습니다. 질문자님이 말하신 대로 모든 인간의 족보를 역 삼각형으로 위로 추적해 가다 보면 결국에는 한 부모 밑으로 모이며 바로 그분들이 아담과 이브입니다. 자꾸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특정한 인류 조상이 어떤 특정 장소에 있었다는 것을 먼저 강조하니까 도대체 그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살았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으므로 의심부터 들게 됩니다. 그 반대로 인류의 조상은 필연적으로 최초의 한 쌍의 부부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성경의 아담과 이브도 사실은 지금처럼 성씨와 이름이 합한 어떤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라는 뜻입니다. 또 그들이 살았던 곳이 바로 에덴동산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3장의 내용이 단순히 상징적인 의미라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인류 시조가 있었고 또 그런 장소에서 그런 일이 구체적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들이 창세기의 기록대로 여럿으로 나뉘어 흩어져 주거지를 삼고 살았으며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마저 다 다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민족이 생겼습니다.
그 중에 왜 하필 이스라엘을 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았는지는 성경에 명시적으로 이유를 밝혀 놓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신7:7) 수효가 많은 민족이 아니라 가장 적어서 택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쪽에 선택받을 만한 조건이나 자격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그런 면에선 꼴찌였다고 합니다. 선행이나 공적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로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간이 똑 같이 죽어야 할 죄인이라 당신의 무조건적인 긍휼 앞에 겸비하게 엎드린 자를 하나님은 구원합니다. 그런데 현실적, 인간적, 세상적으로 강하고 뛰어난 민족은 아무래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습니다. 반면에 가장 약한 민족이라야 하나님을 찾게 되고 또 메시야를 대망하게 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당시의 최고 강대국 애굽과 앗시리아(바벨론)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나라였습니다. 항상 외적들의 침입에 시달리는 고통을 받았기에 하나님께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반면에 두 강대국들은 온갖 우상을 섬겼고 특별히 그중에서도 애굽은 태양을, 바벨론은 달 신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이 여러 민족 중에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특별히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섬기던 갈대아 족속 가운데서 아브라함이라는 한 인물을 택해 당신을 아는 믿음을 심어주고 그 믿음이 자라게 한 후에 그의 후손들로 예수님이 태어날 민족으로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가 택함을 받았을 당시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커녕 유대 민족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또 세상에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사람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 당신을 계시하시고 약속의 말씀을 줍니다.(창12;1-3) 하나님이 한 인간과 언약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 언약에서 하나님은 그를 복의 근원으로 삼으시겠다고 합니다. 그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장차 메시야가 태어날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더러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요구합니다. 이 땅이 전부임을 알아 우상을 섬기던 옛 삶에서 떠나 이제는 참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모시며 영원을 바라보는 인생으로 변화되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에게 어떤 선택 받을 만한 조건이나 자격 하나 없었으며 선택을 받은 후에도 많은 실수와 죄를 짓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구원 즉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을 이루실 계획을 아브람 아니 에덴 동산의 범죄 때부터 하나님은 수립하시고 그 일을 하나하나 진행시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서 유대 민족이 가장 수효가 적은 연고로 택했다고 하면서 이렇게 보충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신7:8) 아브람과 약속한 언약 때문에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원해 주었다고 합니다. 또 다만 너희를 사랑함으로 인해 구원해 주었다고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타민족보다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쪽에서 일방적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사랑했으니 편애한 것 아닌가라고 오해해선 안 됩니다. 당시로선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유대인들뿐이었니 사랑했던 것입니다. 왜 유대인을 택했을까라는 질문은 여러 민족을 상호 비교하여 유대인들이 선택 받을 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민족이 형성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한 사람을 뽑았고 또 그 사람을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바꿔 나갔다면 선택이 아니라 계획이었습니다. 태초부터 갖고 계셨던 인류 구원의 계획을 당신의 전적인 주권 하에 집행하기 위해 유대인을 들어 사용한 것뿐입니다. 말하자면 그 계획을 차질이 없도록 이루기 위해 이스라엘의 역사에 당신께서 직접 간섭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기록에 비추어 실제로 하나님이 이루신 인류 구속의 결과를 분석해보면 얼마나 그 계획이 정미하고 완전했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입니다. 그 중 가장 간단한 것 하나만 들면 하나님은 신구약 성경을 인류에게 남겨주기 위해서 유대 민족을 택했습니다. 그들은 최초로 알파벳을 가진 민족 중의 하나였고 나아가 유대의 건조한 사막 기후가 두루마리 성경을 손상 없이 완전하게 보존하기에 가장 적합했습니다.
역으로 추정하면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처럼 주변 강대국들에 항상 짓밟힌 동방의 가장 수효가 적었던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습기 찬 기후가 성경 보존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컨대 예수님이 유대인이셨고 성경 기록이 이스라엘 중심이라고 해서 한국인인 나의 구원과 연관이 없지 않느냐는 의아심은 한갓 기우에 불과하다는 뜻입니다. 십자가에 드러난 모든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영원하고도 무조건적인 사랑만이 인간 구원의 유일한 근거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만 전해지고 깨달아 진다는것이요.
무지한 저에게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셨던 진리를 목사님의 글을 통해 다시금 기억하게 되어 이곳에 나누고자 합니다.
20년을 넘게 교회에 다녀도 이해가 안되던 '속죄양 예수'에 어느 한 순간, 그 존재에 감사하고 눈물 흘린적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내 죄를 간파하고 미리 대속할수가 있을까, 그리고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한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성경에 나는 왜 덤으로 붙어 치사하게 천국행 티켓을 따야하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던 저 였습니다. 물론 그래도 치사하게 천국엔 가고 싶어서 부지런히 교회에 출석하던 어느날, 예상치도 못하게 하나님을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가 참으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물론 그 순간까지 행한 나의 못된짓들도 죄였겠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동안 그분의 사랑을 외면 해 왔다는데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을 몰랐던것이, 그리고 부정했던것이 나의 가장 큰 죄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몰라 보고 분위기에 휩쓸려 십자가에 박아버린 그 당시의 군중들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라면, 나의 존재를 무시하는 사람은 같이 무시해 버리거나 미워하거나 그럴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의 외면을 용서해 주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래서 뒤늦게라도 제가 그분의 용서와 희생을 깨닫고 감사하므로 하나님과 가까워 질수 있게 말입니다.
그 이후로는 더이상 이스라엘 민족에, 예수님의 국적에, 그리고 성경의 문화적 연대적 낮설음에 구에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것을 깨닫게된 그 순간을 허락하신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이곳에 찾아오신는 수많은 저와 같은 분들에게 저에게 허락된 그은혜가 똑같이 허락되길 바라는 맘으로 쑥스럽지만 몇자 적었습니다.
불편하신 중에도 늘 귀한 말씀 나눠주시는 목사님께 감사드리고, 목사님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