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과 신자의 관계는?

조회 수 1996 추천 수 698 2008.08.29 23:11:07
올림픽과 신자의 관계는?

[질문]


질문을 드리고 싶은 것은... 우연히 폐막식에서 들은 올림픽 찬가의 내용입니다.

“고대 불멸의 영, 만물의 순결한 아버지, 미와 장엄, 진리가 당신 앞에 나타나오니, 당신의 천지를 비추소서. 각 경기와 트랙과 필드에서의 고상한 노력 위에 빛을 비추소서. 오소서 당신의 신전으로, 당신을 위한 경배로…, 오 고대의 영원한 신이시여!”

제우스 신에게 하는 찬가라고 하더군요... 문득 드는 의문...과연 올림픽이 신앙적으로 문제가 없는걸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더니...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정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올림픽 제전을 이교도들의 종교행사로 규정, AD 394년 폐지를 명령하는 칙령을 선포함으로써 바로 AD 393년에 열린 제293회를 마지막으로 고대올림픽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그후 약 1,500년 동안 중단되었던 고대올림픽 경기는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de Couberton)의 노력으로, 1894년 6월 23일 파리의 소르본 대학(파리대학교)에서 열린 국제스포츠대회에서 유럽 각국의 대표들로부터 만장일치로 찬성을 얻어 근대올림픽이 시작되었다.

올림픽은 신앙적으로 문제가 없는 건가요? 기독교 선수들도 승리 후에 기도하던데... 참여해서 경기를 치루거나 응원하는 우리들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건가요? 복음 전파의 기회로 주신 하나님의 선물로 생각하면 되는 건가요?

[답변]

세속적인 문화 스포츠 행사에 대한 신자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입니다. 모든 세속적 행사는 사단의 술수가 숨겨져 있기에 아예 가까이 해선 안 될 죄악으로 간주하고 전혀 동참하지 않는 한 극단이 있습니다. 그 반면에 성경적 고려는 아예 배제한 채, 사실은 해보려고 시도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즐기는 다른 한 극단도 있습니다.

또 분명히 참여해선 안 될 곳인 줄 알고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신자라는 신분을 숨기거나 그런 문제엔 아주 초연한 자유주의신자인양 하여 참여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간혹 의식이 있는 신자라도 제대로 분별을 하지 못하고 일단은 참여하고선 뒤에 가서 괜한 죄책감에 빠지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성경적인 원칙을 갖고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목사님들마저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그 원인은 우선 이런 주제에 관해 성경이 구체적 케이스별로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현대와 시공간적으로 너무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문화는 시대와 장소에 따라 급격하게 변화하므로 새로운 사안들이 자꾸 발생합니다. 새로운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성경에서 딱 부러진 규정을 찾으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신자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책입니다. 케이스별 해법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이런 주제에 연관되는 말씀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보면 어떤 구체적 사안에도 적용될 수 있는 성경적 원리를 유추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먼저 세속 문화에 적용되는 성경적 원리를 살펴본 후에 질문에 대한 실제적인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고려할 사항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6:10-13)

신자가 구원 이후에 싸울 대상은 눈에 보이는 현실적 문제가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사악한 영적 존재 사단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였습니다. 불신자 시절에는 인생이 사단과의 영적 전쟁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다 했습니다. 신자가 되어서도 습관적으로 발동하는 이전 버릇을 의지적 노력만으로 끊기는 아주 힘듭니다. 정말 무시(無時)로 깨어서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여 사단의 궤계를 잘 분별해 내어서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만사는 하나님과 사단에 의해 통치 내지 조종됩니다. 특별히 세속적 일은 사단의 직간접 조종 아래 있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2:2) 신자더러 영적전쟁을 잘 수행하라고 하나님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한시적으로 공중의 권세를 사단에게 맡겨두었습니다. 다른 말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거나 사단의 사악한 조종 아래 있거나 둘 중 하나이지 그 중간지대는 없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사람도 그러합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12:30)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15:19) 예수님은 분명히 당신을 따르는 자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속했다고 합니다. 바꿔 말해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공중 권세 잡은 사단에게 속한 것입니다.

그럼 불신자는 사단에 속아 넘어가서 항상 사악한 짓만 일삼고 하나님에 속한 신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받기에 언제나 그분의 영광만 드러냅니까? 그래서 신자는 사단에 속한 자들, 즉 불신자들이 주관하는 세속적 행사에는 당연히 참석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신자더러 무시로 깨어서 사단과 영적전쟁을 벌리라는 성경 권면 자체가 신자도 사단에게 수시로 속아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지 않습니까?

그 반대로 불신자도 때로는, 스스로 의식은 못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직접 교통하여 그분의 거룩한 일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기에, 영적으로는 여전히 사단의 권세 아래 붙잡혀 있는 불순종의 아들임에도, 그분의 진선미를 그 나름대로 세상에 드러낼 수 있다는(신학적 용어로 ‘일반은총’) 뜻입니다.

성경은 불신자와 신자의 차이에 대해서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4:4,5)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심령이 사단에게 미혹되는 바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참 하나님을 거부하며 우상 신을 따를 뿐입니다. 말하자면 불신자는 스스로는 의식 못한 채 사단에 묶여 있는 불쌍한 존재들로서 신자가 십자가 복음으로 섬겨야 할 대상입니다.
  
따라서 신자가 세속적 행사의 참여 여부를 결정할 때에 가장 먼저 고려할 사항은 주관하는 사람과 그 내용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즉 사단에 속한 자가 사단의 일을 하면 당연히 불참해야 합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고전 10:20-21) 그러나 사단에 속한 자들이라도 하나님의 진선미를 반영하는 행사를 한다면 참여해도 됩니다.

신자가 쉽게 지나치는 사항은 오히려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사단의 일을 할 경우가 있는데 그 때는 같은 신자라도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교회 안에서 공개적, 지속적으로 죄를 범하는 신자는 당연히 출교 조치를 취해야 하며 또 목사파 장로파로 나뉘어 서로 옳다고 싸우며 법정 공방까지 가는 일에는 절대 참여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무조건 하나님의 일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쩌면 사단이 더 활개 치는 곳이 교회일지 모릅니다. 물론 성령이 좌정하는 교회가 사단에게 결코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으며 또 실제로 깨어 있는 교회도 많지만, 사단이 교회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장 먼저 쓰러뜨리려는 대상으로 삼는 것만큼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 내에 불거진 음행사건과 파당에 관해 어떻게 권면했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외인들을 판단하는데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중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치 아니하랴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고전5:9-13)

우선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죄악 가운데 있고 심지어 우상 숭배를 하더라도 그들과 사귀지 말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사귀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또 사귀려면 그들의 행사에 초대 받으면 얼마든지 참석해도 된다는 뜻입니다. 그들의 영적 상태는 하나님이 판단하신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신자가 그러면 단연코 너희 중에서 쫓아내라고 명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일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고전6:1,2,6,7)

나아가 차라리 상대에게 지는 한이 있더라도 교회 분쟁을 일반 법정에는 절대 들고 가지 말라고 분명히 명했습니다. 말하자면 신자가 교회 일로 송사를 벌리는 것은 하나님에 속한 자들이 사단의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나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말씀과 기도로 잘 분별하는 것이 바로 대표적인 영적 전쟁의 예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이름을 세상으로 끌고나가 욕보이려는 사단의 흉계를 깨트려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교회 분쟁에 서로 이기려고 모여서 철야 기도하거나 자기 편한 식으로 성경을 갖다 맞추어 짜깁기하는 것을 영적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잘못 가르치며 잘못 실천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신자는 상대의 신앙 여부에 관계없이 불신자와 교제하며 그 행상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일이 사단의 일이 확실할 때는 주관자가 신자든 불신자든 막론하고 참여해선 안 됩니다. 물론 문제는 지금 질문하신 경우처럼 사단의 일인지 하나님의 일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입니다.  

근대 올림픽의 영적인 의미

올림픽에는 개막식 행사에 우상을 형상화하거나 뉴에이지 음악이 연주되거나 타 종교인들도 직간접으로 참여하여 종교적 색채를 일부 드러내니까 명확한 판단이 서질 않습니다. 나아가  금메달을 딴 세계적 영웅에게 사람들이 열광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는커녕 인간적인 자랑만 늘어놓는 행사 같습니다. 신자가 과연 참여해야할지 또 경기에 이기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야할지 애매합니다.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다 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10:27-33)

고대에는 시장에 파는 고기가 전부 우상 신전에 바쳐졌던 것인지라 신자가 먹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논란이 있었고 바울이 그 해답으로 준 말씀입니다. 우상이란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어떤 고기라도 실제로는 우상에 바쳐진 것이 아닙니다. 만약 문자적으로 엄격하게만 적용하면 신자는 평생 가도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26절)이기에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25절) 먹을 수 있습니다. 또 불신자들이 초대했는데도 고기 때문에 거절하면 그들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상 숭배하는 자와의 교제도 금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누가 그 고기를 우상숭배 제물이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면 먹지 말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우상을 숭배하는 행사라고 공식적으로 천명이 되면 참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신자는  행사를 주최하는 사람과 그 내용 외에도 목적을 점검하고 또 그 목적을 실현시키는 방식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고대 올림픽의 경우는 분명히 우상숭배자들이 제우스신에게 경배 드리는 목적으로 그들 종교의 형식으로 치러졌습니다. 크리스천이 절대 참여해선 안 되었습니다. 병이 나으려고 무당에게 굿을 받거나 사업 형통하려고 점쟁이한테서 점괘를 받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누가 봐도 사단에 속한 사람이 사단의 목적으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 도모하는, 사단의 일을 사단의 형식대로 한 행사였습니다.    

반면에 근대 올림픽은 어떠합니까? 우선 주관자가 세계 각국의 도시이고 그 목적은 스포츠를 통한 인류 화합과 세계 평화의 증진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불신자들이 그분의 보편적인 진선미를 반영하는 선한 일이라는 뜻입니다. 행사 내용도 직접 우상을 경배하는 일은 없고 단지 운동경기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상을 경배하는 형식도 동원되지 않습니다. 바울이 신자가 응해도 된다고 말한 불신자의 초대에 해당됩니다.  

문제는 질문하신대로 올림픽 찬가나 식전 행사에 이교도의 우상숭배 흔적이 베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참석 여부를 따질 문제가 아니라 참석은 하되 분별력을 키울 문제로 보셔야 합니다. 올림픽 찬가는 근대 올림픽이 고대 올림픽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연주되는 것이지 고의적으로 제우스신을 찬양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또 지금은 그리스 신화가 그야말로 신화였지 그 신들이 실존한다고 믿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참석은 하되 분별력을 갖고 신자답게 처신하면 됩니다.

사실상 더 큰 문제는 올림픽 찬가나 공개행사 같이 눈에 보이는 우상숭배 흔적보다 오히려 그 이면에 흐르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우선 세계 평화나 인류 화합이라는 목적 자체는 대승적으로 따지면 하나님의 뜻과 부합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간의 힘으로 실현하자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말하자면 인간들이 하는 세속적 문화 행사에는 인간이 보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하나님의 진선미적인 형상이 드러날 수 있는 반면에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인간 스스로 높아지려는 교만의 죄악도 동시에 드러납니다.  

예컨대 체조의 경우를 봅시다. 우선 인간의 육체는 참으로 조화롭고도 아름답게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꾸준히 단련하면 아주 강건해질 수 있기에 하나님이 주신 육체를 잘 유지해야겠다는 각오도 다지게 해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날고 기는 선수가 공중회전을 해봐야 원숭이나 고양이와는 전혀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올림픽을 수백 번을 해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냅니다. 불신자는 올림픽을 통해 인간 능력을 찬미하려 들겠지만 신자는 반대로 창조주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찬양하고 그분 앞에 인간이 겸손해지는 법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또 나라별로 메달 획득 경쟁이 과열되다 못해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고 나중에는 화합은 뒷전이고 시기, 분노, 저주로 끝맺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역시 죄인이자 불완전한 인간끼리 서로 사랑하고 화합하려 노력해선 절대 성공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반드시 주 안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세계 평화와 인류 화합이 가능하기에 전도의 필요성을 올림픽을 통해서 더 절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라도 자기 나라가 우승하면 기분 좋아지고 또 응원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기독교가 인종과 나라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이웃으로 삼아 사랑해야 한다지만 신자도 여전히 하나님이 바벨탑 사건으로 인류를 흩어 놓으신 뜻 안에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정말로 겸비해져 합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4-27)

바울이 만신전이 있고 심지어 이름 모를 신에게 바치는 제단도 있는 아데네에서, 마침 올림픽의 발상지이기도 한, 행한 설교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한 혈통으로 만들었기에 서로 사랑해야 함은 당연하지만, 각 나라로 나눠서 사는 것도 그분이 주관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 뜻은 선의의 경쟁은 용인하지만 그 도가 심해지면 오히려 분쟁으로 치닫고 나아가 인간끼리 노력해서 섬긴다고 진정한 화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경쟁을 통한 모든 인간적 노력이 실패로 판명되면 더듬어서라도 당신을 찾으라는 뜻입니다.    

세속 행사와 신자가 취할 태도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에 달렸습니다. 외부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문제가 아니라 그 내면에 흐르는 뜻이 더 문제입니다. 세상은 분명 사단의 조종 아래 있지만 신자도 그 세상 안에 살아야만 합니다. 세상 사람과 사귀며 세속 행사에도 참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세상에 속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세속 행사에 참여해야 하는지의 문제는 위에서 살펴 본대로, 반드시 그 주최자가 누구인지, 행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의 행사인지, 어떤 형식을 취해서 하는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판단하기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불교계에서 하는 초파일 기념식의 경우는 주최자나, 목적이나, 행사 내용이나, 행사 형식 모두가 반(反)기독교적입니다. 당연히 신자는 참석해선 안 됩니다. 그러나 한국장애인 협회에서 장애인 돕기 행사를 하되 각 종교계 대표도 참석해달라는 요청이 오면 참석해야 합니다. 심지어 불교계에서 소녀가장 돕기 모금 행사를 주관하되 종교적인 색채는 일절 나타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면 주최자가 이교도이지만 참석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선 그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자기 종교를 고무 찬양하는 방식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또 행사 참석하기 전에 종교적인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정확하게 구분해 내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만약에 애매모호한 경우는 발생 가능한 잘못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 아예 참석하지 않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전도 내지는 기독교인의 올곧은 자세를 보일 준비와 각오가 되어 있다면, 종교적인 색채를 드러내라는 것이 아니라 빛과 소금으로서 덕을 세우며 선한 행실을 보이는 것임, 참석은 하되 반드시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영적인 분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러나 재삼재사 강조하지만 이교도들이 공개적으로 반 기독교적 주장을 선전 고무할 목적으로 하는 행사가 확실하면 절대 참석해선 안 됩니다. 교계 지도자들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기독교에선 참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줄 확신하지만 특별히 목사가 그런 행사에 참석하면 일반인이나 믿음이 약한 신자들은 자칫 다른 종교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오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인데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는 경우는 절대 금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7-13) 바울은 그런 경우라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서약했지 않습니까?

이런 맥락에서 최근 한국사회에 영향력이 큰 K 목사님이 외국인이 한국 산사(山寺)에 며칠간 머물면서 명상이나 기도에 정진하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그것도 이멜을 통해 근 20만 명이나 보는 아침 편지에서 밝힌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비록 종교가 주는 일반적 유익과 한국의 종교자원을 외국에 소개한다는 원론적 차원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기독교 목사라는 입장에서 불교라는 종교와 그 형식을 따르는 명상을 인정해준 것이므로 결코 성경적이지 못합니다. 요컨대 신자는 타종교인들과 교제는 해도 타종교를, 특별히 구원의 방도로는, 절대 인정해주어선 안 됩니다.

그러나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은 덕을 세워가며 해야 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13-23)

몰몬교의 본산인 미국 Salt Lake 시에서 2002년 동계 올림픽이 열렸을 때의 일입니다. 세계 최대 교단이랄 수 있는 미국 남침례교에서 연차 총회를 일부러 그곳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미국 각지에서 신자들이 자진해서 몰려와 현지 신자들과 함께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도하는 캠페인을 연중무휴로 벌렸습니다. 올림픽을 십자가 복음을 확장하는 기회로, 특별히 몰몬교도들을 대상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몰몬교 당국도 그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자기 교인들에게 더더욱 자기들 경전과 침례교인들의 전도에 방어할 논리와 역으로 몰몬교를 소개하고 기독교인을 몰몬교로 개종시키는 전략까지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남침례교나 몰몬교 공히 신사적으로 처신하여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도록 주의시켰습니다. 그런 와중에 얼마나 복음전도의 열매가 맺혔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남침례교 쪽에선 몰몬교가 정통 기독교에선 이단시하는 별도 전도할 대상이라는 점을 일반에게 각인시켰습니다. 반면에 몰몬교에선 자신들이 비록 이단 취급을 받지만 그럼에도 아주 관용적이며 친절하다는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제고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결국 단순한 스포츠 행사의 이면에는 두 종교 간의 올림픽도 아주 격렬하게 열린 셈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영적전쟁이었습니다.
   
종교개혁의 단초를 놓은 재침례파나 20세기 초의 근본주의자들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를 다른 종교와 타협하지 말고 확고하게 붙들고 실천해야 한다는 애초의 의도는 분명히 옳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진리를 너무 문자적으로 붙들었고 무엇보다도 타종교인들을 정죄하고 그들과 완전 분리하는 정책을 고수하는 바람에 그 뜻을 구현하는 데에선 실패했습니다. 또 문자적으로 엄격히 붙드는 것은 반드시 극단 내지 강경파로 치달아 또 다른 이단을 형성하기 쉽습니다.

결론적으로 올림픽을 비롯한 일반 세속 행사의 경우 확실한 이교도 행사가 아닌 이상 신자들은 자신의 판단 하에 참여해도 무방합니다. 단 믿음과 성경적 분별력이 성숙해져 있거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불신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그리스도를 소개할 태세를, 단순히 종교적 방식이 아닌 상호 덕을 세우며 섬기는 모습으로 특별히 교리를 소개하는 것보다는 복음 안에서 변화된 자신의 삶과 인생을 통해, 갖추고 또 실제로 실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이름에 누가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신자는 세상 속에서 사단에 속한 자와 함께 살되 세상에 속한 자는 아니기에 명시적인 사단의 일을 하거나 옳다고 인정해 주어선 안 됩니다. 대신에 구원 이후의 모든 신자는 목회자든 평신도든 평생을 두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사람 앞에 증거 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비유하자면 신자가 갱들을 전도하기 위해 갱들의 모임에 갈 수는 있어도 같이 갱 짓을 해선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신자는 무슨 일에서든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하면 됩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14:5-8)

8/29/2008

mskong

2008.08.30 00:56:01
*.225.54.224

목사님~~~ 요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항상 걱정이 됩니다.
미련한 질문에 정성과 온힘을 다해서 답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목사님과 모든 분들께 주님의 은혜가 가득하시길
잠시 기도하며 또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샬롬

운영자

2008.08.30 02:49:56
*.104.224.250

공문수 형제님 ~~~
요즘 건강은 좋습니다. 자주 관심을 갖고 방문해주시고 잊지 않고 기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 열심히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샬롬!

사라의 웃음

2013.01.12 21:38:50
*.109.85.156

신자도 사단의 영에 미혹되어 사단의 일을 행할 수 있고 불신자이면서도 자신도 깨닫지 못한 가운데 하나님의 진선미(일반은총)을 드러낼 수도 있음을 배웁니다. 신자로서 영적분별력이 얼마나 중요하며 사실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고 더더욱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여야만 함을 다시금 각인해 봅니다.

올림픽을 보면서도 인간의 나약함, 그러면서도 얼마나 교만해지고 싶어하는지를, 질투와 시기는 또 얼마나 많은지를... 정말 하나님 앞에 엎드릴 수 밖엔 없는 우리들임을 더더욱 깨달아 겸손히 십자가 아래 무릎을 꿇을 수 밖엔 없는 존재들임을 또 확인하고 확인하는 기회로 삼아야함을 배웁니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덕을 세상사람들 앞에 선전하며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가야 하건만... 교회내에서도 자기의 입장만을 고수하기 위하여. 자신의 어떠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런 저런 상황들을 연출하면서 성경말씀을 짜깁기하여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해석 적용하는 우도 얼마나 자주 범하며 살아가는지.... 참으로 이런 저런 모습을 뒤돌아 보며 영적 분별력을 갖기 위해,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기 위해 말씀을 대하며 기도하는 자가 되어져 가길 또 두손 모아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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