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조회 수 4106 추천 수 116 2003.11.05 08:57:19
[질문]

저는 작은 교회의 신앙 경륜도 짧은 보잘 것 없는 신자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 제게 정립이 안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희를 해방하였다고 했습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단코 정죄함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정죄하지 마라, 죄인이기에 어쩔 수 없다 혹은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 한편 혹자는 점점 죄에 대해 민감해 져야 하며 죄를 애통해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죄를 짓고도 죄책감이나 정죄감이 없다고 하면 죄로부터의 자유보다는 죄에 무감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실제로 죄를 지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절대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죄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건가요?  죄로부터 자유롭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답변]

이 문제는 신앙 연륜과 상관 없이 아주 많은 신자들이 제대로 정리가 안 된 부분입니다. 특별히 한국말로는 성경에서, 강단에서, 일상 대화에 ‘죄’라는 한 단어로 명확한 의미의 구별 없이 혼용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시각으로 죄를 바라보아야 할지 어렵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신자란 죄에서 자유해졌다고 하는 반면에 또 죄를 멀리하고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두 가지 중 하나가 맞고 다른 것은 틀릴 리는 없습니다. 동일한 단어나 표현이 서로 모순되어 보일 때는 다른 개념과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신자가 죄에서 자유해져야 할  상태와 죄에 민감해져야 할 상태가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상황의 같은 죄를 두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질문자께서도 분명하게 두 문장으로 나눠서 말씀해 주셨기 때문에  이해하기 편하게 두 가지로 구분해서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1. 원죄에서의 해방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1.1. 죄란 무엇인가?

성경에선 죄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구약의 히브리어 표현으로는 세 가지입니다. 제일 대표적인 것으로 ‘하타’(hata)는 ‘표적을 빗나가다’ 혹은 ‘기준에  못 미치다’는 뜻입니다. ‘반역’으로 번역된 ‘페샤’(pesha)는 ‘기준에 대한 반항’을 뜻하며, ‘불의’ 혹은 ‘죄책’으로 번역된 ‘아원’(awon)도 ‘기준을 왜곡한다’는 의미입니다. 신약의 헬라어 ‘하말티아’(hamartia)는  구약의 이 세 가지 의미를 다 갖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의미는 근본적으로 인간이 과녁을 벗어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부인하고 있는 생각이나 상태나 행동이나 그 모든 것이 죄입니다. 말하자면 죄의 근원을 하나님을 배반한 것에다 두며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분리(分離)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인간은 스스로 자신과도 분리되며 다른 사람과도 분리됩니다.

영어만 해도 겉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난 잘못된 행동의 ‘범죄’ (crime)와 그 범죄를 일으키게 하는 잘못된 마음과 영혼의 상태는 ‘죄’(sin)로 구분해 표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말로 죄라고 했을 때에는 분명히 겉으로 드러난 잘못 즉 범죄만을 의미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성경적으로 봐선 그것은 사실은 죄의 결과이지 죄 자체가 아니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신자가 꿈에서 죽어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자기 일생의 죄를 적어 놓은 기록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첫 페이지에는 굵직한 글씨들로 자기 범죄 기록이 적혀 있는데 전부 행동으로 한 죄였고 거의 90% 이상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둘 째 페이지는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하게 적어 놓았는데 겨우 20-30%도 기억 못할 정도였는데 말로 지은 범죄였습니다. 셋째 페이지는 아예 현미경으로 보아야 할 정도의 작은 글씨가 마이크로 칩처럼 완전히 새카맣게 적혀 있었는데 전부 마음으로 지은 죄였고 기억할만한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이었는가 확인한 셈입니다. 그래서 이제 끝났다 보다 했는데 한 페이지가 더 남아 있었습니다. 그 페이지에는 글씨는 한 자도 없고 완전히 새까만 먹지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하나님은 그것이 바로 너의 영혼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인간과 죄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는 예화입니다. 예수님은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15:11,18,1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죄가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흥미 있는 것은 마음과 생각을 구별하여 마음에서 악한 생각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생각하는 것을 사고활동이라고 말하듯이 악한 생각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뿐이지 행동으로 범죄한 것이며 그것도 악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거짓증거 같은 말로 하는 범죄와 도적질, 간음 같은 행동으로 범하는 죄도 당연히 다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꿈에 본 예화처럼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 즉 마음이 악해져서 모든 범죄를 저지른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이 부패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범죄한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의 범죄의 원인이 바로 아담의 원죄로 소급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과녁에서 벗어난 것, 인간이 하나님의 품 안에서 벗어난 상태로 묘사하는 것입니다.

1.2. 원죄의 의미

그럼 원죄란 무엇입니까? 잘 아시는 대로 아담이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많은 신자들이 공통적으로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었다는 범죄 행위를 처벌해 원죄라는 멍에를 모는 인간에게 메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주신 이유는 인간더러 하나님의 품 안에 살아야만 참 인간답게 살 수 있으니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잊지 말아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단이 아담에게 하나님이 너가 선악과를 따먹으면 하나님 같이 될 것을 하나님이 싫어해서 따먹지 말라고 했다고 거짓으로 속였습니다. 그러자 아담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해치우기로 결심한 후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미 그의 영혼이 사단의 더러운 영으로 부패한 후에 금령을 어기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제 멋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한 것 즉 원죄(Original Sin)를 저지르자 선악과를 따먹는 범죄(crime)를 저지른 것이지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 자체가 원죄가 아닙니다. 하나님으로서도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 혼자 제 멋대로 하겠다는 자를 더 이상 에덴에 둘 수 없어 추방한 것입니다.

그 이후 아담의 모든 후손은 원죄 하에 태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죄가 괘씸해서 일부러 천대 만대 자식에게 까지 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자연인은 아담의 부패된 영혼을 물려 받아 하나님을 모르는 원수 된 채 태어난다는 것이 원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단의 노예요 죄의 종입니다.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자기가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겠다고 고집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거부하는 완악한 교만이 바로 원죄입니다.  

1.3. 원죄와 구원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 낸 것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생각의 끝이 아니었으며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을 구원할 방도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원죄 하에 있는 인간이기에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구원이 가능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다시 선악과를 만들어 두 번 다시 따먹지 않으면 용서해 주겠다고 해야 합니까?

원죄란 하나님을 배반한 것이므로 인간을 돌이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마음이 바뀐 것을 원 상태대로 고쳐야지 행동 한 두개 고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은 사단에게 속아 하나님께 토라져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시기해서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다고 생각했으니 선악과를 허락한 하나님의 본심을 다시 인간에게 재 확인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 가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하나님은 사단에 붙들려 있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에게 돌아 오면 누구든 무슨 범죄를 저질렀던 용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이전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모르고 외면하고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했습니다. 간혹 알아도 신경질적, 율법적, 권선징악적인 하나님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이 범죄하면 벌 주고 죽은 후에라야 자신이 한 행위로 심사 받아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는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공적으로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격하여 천국 갈 자 없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죄의 삯은 사망이었습니다. 본질상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을 피할 수 없는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 오시기 전 까지 인간이 사탄의 영으로 부패되어 “죄와 사망의 법” 아래 놓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죄인을 아무 차별 없이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마저 하나님께 저들이 자기 하는 짓을 모르니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그들 모두 사단의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것을 예수님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부패해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범죄했기에 그 영혼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부어 주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고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과녁을 벗어났던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쪽으로 향하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했습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아담이 범죄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것입니다.

1.4. 첫 번 질문에 대한 답

신자가 처음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원죄의 멍에에서 해방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3단계 중 첫 단계인 칭의(稱義 salvation) 입니다. 신자의 상태가 도덕적으로는 전혀 의롭지 않지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의롭다고 칭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의 신분과 소속만 변화되었습니다. 우리의 품성 자체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형벌만 면제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옥 갈 염려가 전혀 없습니다. (Free from the penalty of sin)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인을 원죄에서 해방시킨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던 간에 십자가 상의 강도처럼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를 죄인 취급하지 않고 의인 취급해 주십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더 이상의 ‘정죄함’이 없습니다. 신자란 용서 받은 죄인인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의 본성은  남아 있어서 수시로  죄를 짓는 죄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서로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정죄와 용서는 오직 하나님 만의 몫입니다. 신자란 단지 원죄만 용서 받은 상태로 어느 누구도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에 완전할 수 없으니 서로 간에 짓는 범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인간 모두 죄인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이 죄에 대한 면죄부는 아닙니다. 사람끼리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가 제거 되면 인간끼리, 또 신자 스스로도 자신과 다 화목되어야 합니다. 죄는 여전히 내 안과 밖에 존재하고 있지만 오직 예수님의 복음 안에서 분리가 화목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자유로와진 것입니다.

그러나 윤리적 죄든,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지 못하는 죄든 우리가 일상 짓는 죄에서 자유로와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진정으로 항복하여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더 이상 영원한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이런 죄를 짓다가 혹시 지옥 가는 것 아닌가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나아가 교회 봉사도 못하고 성경 공부도 빠졌는데 혹시 하나님이 나를 미워해서 어려운 고통이나 징계를 주시는 것이 아닐까 불안해 하는 것도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지는 않습니다. 죄는 죽도록 미워하시지만  죄를 지은 인간은 독생자와 바꿀 만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서 유일한 기준은 어떻게 하든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 들이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과 참 사랑의 진정한 관계를 맺기를 소원하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한다고 했습니다. 십자가 사랑을 제대로 알면 세상의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의 신자를 향한 사랑을 방해하고 훼손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시험과 유혹에 넘어가는 윤리적 죄로 인해서도 독생자 예수를 통해 회복된 신자와의 새로운 관계를 절대 취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신자가 된 후에 죄를 지으면 징계는 하시지만 신자와의 관계를 끊고 지옥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흔들림 없이 확신하는 것이 죄에서 자유해지는 것입니다.

2. 죄에 민감하고 피 흘리기 까지 싸워라.

2.1 성령의 탄식

비록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위에 말씀 드린 인간의 원죄와 하나님의 구원의 성경적 원리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이 문제는 간단하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어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용서 받은 죄인이며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 뿐이지 결점도 없고 죄도 안 짓는 완전한 성자가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신학적 용어로 말해 구원의 두 번째 단계인  성화 (聖化 Sanctification)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칭의가 신분을 바꾸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으로서 구원이라면 성화는 성품을 변화시키는 현재의 계속되는 과정으로서 구원입니다.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져 가는 싸움입니다. (free from the power of sin)   원죄의 굴레를 벗어난 신자를 하나님과 멀리하게 하고 세상을 향하도록 하는 어떤 악한 힘이 계속해서 우리 밖에서 설칩니다. 또 비록 우리 영이 새롭게 되고 하나님의 성령이 좌정해 계시지만 여전히 부패된 영혼의 흔적과 죄의 본성은 우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것들이 신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자라도록 피 흘리기 까지 싸워야 할 죄(sin)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예수를 믿고 나면 이제 죄에 대해 더 민감해진다는 것입니다. 이전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무시했던 사소한 죄마저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고 죄책감은 더 커집니다. 그 까닭은 사단에게 잡혀 있던 우리 마음에 성령이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을 때 이제는 성령이 감지하고 성령이 속에서 탄식하시기 때문에 더 예민하게 되고 더 아픕니다. 이전에 어두움 가운데 있을 때는 아무리 더러운 옷을 입고 있어도 추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제 빛 가운데로 나왔으므로 아주 작은 얼룩이라도 눈에 쉽게 뛰고 더러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가 된 후라도 죄를 지으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원죄에서 자유함을  얻었다고 해서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죄에 대해서 무감각 해져도 안 됩니다. 죄책감이 들어야 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알게 모르게 지은 죄까지 회개하셔야 합니다.

간혹 예수님의 복음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었다고 회개할 필요도 없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입니다. 회심과 회개의 차이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신자가 하는 회개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바꾸는 회심(回心)이지 몇 가지 죄를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제 마음대로 하려 했던 것이 얼마나 완악한 교만이었으며 하나님께 큰 죄였는지 깨달아 이제는 하나님 품 안으로 돌아가 오직 주님만을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겠다는 사고의 전환입니다. 인본주의 가치관에서 신본주의 가치관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가 된 후 죽을 때까지 지을 수 밖에 없는 여러 가지 죄들은  일일이 스스로 반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 고쳐나가는 회개(悔改)를 해야 합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세상의 어떤 성자도 절대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2.2. 참된 회개

그런데 예수를 믿는 신자의 회개는 다른 종교나 일반인들의 회개와는 그 차원이 달라야 합니다. 더 오래 동안 더 많은 죄를 회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죄의 본질과 하나님의 품성을 제대로 알고 하는 회개라야 합니다. 인간의 도덕성과 종교성에 비추어 자기 의지력으로 윤리적 죄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짓는 모든 죄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그 마음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마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범죄는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끼리 이 땅의 주인이 되어 서로 많이 빨리 더 좋은 것을 차지하려는 데서 나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2:16)  

신자라도 잠시 하나님을 잊거나, 그 관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그 마음이 다시 세상을 향하고 사단의 방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윤리적 죄를 회개하되 이 죄의 본질과 원인을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그래서 오히려 그 원인을 먼저 제거하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기를 높이고 세상을 향하는 마음부터 고치고 주님을 향한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의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 긍휼, 은혜와  권세를 자꾸 확인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자 소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깨끗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죄에 빠지는 것조차 막아 주십니다. 회개의 전 과정이 성령님이 주관해서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5:18)

결론적으로 말해 신자는 죄에서 자유로와야 합니다. 원죄의 멍에 아래 묶여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외면하므로 생겼던 모든 염려와 불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죄에 대하여 민감해야 합니다. 신자가 된 후에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여 생기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 상의 범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죄는 철저하게 미워하시되 회개하는 죄인은 끝가지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신자는 죄 자체에 대해선 민감해야 하되 자기가 용서 받은 죄인이라는 것 즉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칭함을 받은 그 신분에 대해선 한 없이 감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어진 신분이므로 담대하게 세상과 죄악과 사단과 날마다 피흘리기 까지 싸우시되 승리는 이미 신자의 것으로 보장되어 있음을 확신하기 바랍니다.

하태광

2011.02.26 14:20:46
*.32.182.220

먹지가 내 자신이었다...흠...생각해 볼 문제군요..

사라의 웃음

2012.09.05 04:29:36
*.235.51.228

오늘 이 글 앞에선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요...
죄의 열매만 죄로 보아 주시길 바라고, 맘 속의 죄는 보이지않기에 슬며시 지나 버리기 일수고, 또 무엇이 죄인지 분별할 능력도 없는, 이 어쩔 수 없는 죄인을 독생자와 낮바꾸시며 사랑하여 주셨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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