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에 관한 궁금증(1/4) - 이단교회 출석교인
[질문]
신천지 통일교, JMS(정명석) 같이 공식적으로 이단판명이 나지 않은 폴 워셔, 사랑과 진리 벤자민 오 같은 목사님 (신사도운동과 약간 관련이 있다고 문제시 되고 있는 여러 목사님), 베리칩을 주장하고 세계 단일 정부와 이스라엘이 회복할 때 주님 오신다는 백투 예루살렘 사상을 주장하는 목사님들도 이단이라 할 수 있는가요? 그런 목사님들은 전부 주일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구원이 없다고 설교하는 것 같습니다. 위의 목사님들이 담임으로 있는 곳의 성도들한테도 구원이 있습니까?
[답변]
신자들이 궁금해 하는 구원에 관한 다양한 주제들을 물어 주셨네요. 의문부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을 보니 평소에 상당히 깊이 생각해왔던 것 같습니다. 답변의 편의상 비슷한 내용의 질문들을 제 임의로 네 부분으로 나눴습니다. 질문을 하나씩 다루기보다는 주제별로 원론적인 답변을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물론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측면이 있다면 개별 질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단의 구별
원론적 답변을 드리겠다고 전제한 대로 열거하신 폴 워셔, 벤자민 오, 신사도운동, 베리칩, 백투예루살렘 사상 등에 관해선 제가 이단 여부를 판정 짓지는 않겠습니다. 대신에 이단을 판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기준을 본 사이트의 #113 “이단 판별 기준은 무엇인가요?”에서 밝혀 놓았으니 비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또 베리칩에 관해선 #275 “베리칩이 666의 표시인가요?”의 글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113 글에서 밝힌 핵심기준에 위배되지 않아도 이단으로 볼 수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그 기준을 다 따르는 것처럼 표방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거의 모든 이단들이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으로 이루신 대속의 은혜를 믿어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살피면 초대교회 안의 유대주의자들이 예수를 믿어도 할례 같은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던 것처럼 인간의 공로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덧붙입니다. 또 그 추가조건들을 아주 애매하고도 교묘하게, 무엇보다 선하고 거룩한 방식으로 설명하기에 교인들이 비성경적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인간의 공로를 요구하니까 소속 교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뭔가 열심히 충성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래서 더 경건하고 의롭다고 여겨지니까 이단에 쉽게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인간의 공로를 분명히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는 비교적 판별이 쉽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 외에 이런 저런 것도 필요하다고 가르치려면 그에 대한 해명도 늘어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단들은 생성될 때부터 인간의 공로를 덧붙이려는 의도 즉,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아닌 자기들 종교의 틀 안에 교인들을 묶어 놓으려는 저의가 있어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부족하다고 전제를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전혀 없이 성경의 세부규정에 관한 해석을 달리 하다 보니까 결과적으로 또 부분적으로 이단적(異端的)인 내용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베리칩을 맞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우선 베리칩은 미국에서 아직 강제적으로 시행도 하지 않고 있으며 만약 시행한다고 해도 성경에서 말하는 666의 의미는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구원은 예수님의 은혜를 진심으로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것이며 한번 주신 구원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베리칩으로 인간의 추가적 공로를 능동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영단번(永單番, once-for-all))의 의(義, righteousness) 즉, 믿은 후의 죄도 용서되며 또 구원은 취소되지 않는다는 진리(히9:11-15)를 일부 부인하는 셈이 됩니다. 베리칩이 예수님의 은혜를 축소, 수정, 취소, 무효화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이 경우 주님이 다 이루신 의에 인간의 의를 추가할 의도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형국이 되었습니다. 그런 주장을 펼치는 본인들조차 십자가의 의가 부분적으로나마 훼손된다는 사실을 미처 모를 수도 있습니다.
이는 마치 방언의 은사가 금지되었는지 계속되는지 여부는 성경구절의 해석상의 차이이지 그것으로 이단으로 구분 지을 수 없는 경우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방언을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식으로 방언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체한다고 주장하면 이단이 되어버립니다. 베리칩과 같은 이 시대의 흐름들을 성경말씀에 비추어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잘 살펴야 한다고 경고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베리칩 자체를 구원이 나눠지는 기준 즉, 십자가를 대체하는 것이라고까지 말하면 이단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단과 이단적(異端的) 해석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단은 처음부터 구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의를 부인하거나 그 위에 덧보탤 의도를 가졌고, 또 그래서 그런 주장과 해석을 공식적 교리로 천명하여 일관되게 가르치는 일단의 체계나 교회나 목사를 말합니다. 그런 의도는 전혀 없이, 또 공식적 교리 체계 없이 성경의 일부 구절을 개인적으로 복음과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에는 이단적 해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세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먼저 “방언 받지 않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 또 “이미 구원 받은 자라도 베리칩을 받으면 구원이 취소된다.”를 확정된 교리로서 공식적으로 천명하면 “이단”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를 부인하지는 않은 채 그런 주장에도 일부 타당한 측면이 있다는 개인적 생각만 있다면 “이단적 해석”이 됩니다. 반면에 방언이 중지되었다거나, 베리칩이 666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 해석상의 차이”일 뿐입니다. (목사가 일단 설교하거나 성경공부로 가르치면 공식적 주장이 되기에 개인적 생각인지 공식적 교리인지 정교하게 구분 접근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만....)
나아가 말이란 ‘어’와 ‘아’가 다르며, 특별히 한국말 표현과 어법이 과학적 객관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아 어떤 주장에 대한 해석에 아주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거두절미하거나, 말꼬리만 잡거나, 전체 대의와 화자의 진정하고도 순수한 의도를 무시하거나, 표현상의 실수와 어법상의 약간의 모순마저 용납하지 않고 마녀사냥 식으로 이단을 판별해선 안 됩니다. 분별이 애매한 주장과 교파에 대해선 신학적 전문가의 체계적인 연구를 반드시 참고해야 합니다. 질문자께서 열거하신 목사와 교파 등에 관해 제가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단교회 교인의 구원
마찬가지로 이단교회와 이단교회 출석교인 개인은 구분해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단 교회에 출석한다고 무조건 구원이 없다고 단정 지을 필요까지는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의 구원 여부는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이단의 주장을 믿고 따르는 자들까지 그렇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단 중에도 기독교 핵심 교리를 그대로 다 가르치기도 하니까 정말로 순수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만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사람도 아주 드물게 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역으로 따져서 이단이 아닌 복음주의 정통 교회에 다니는 자 중에도 겉으로는 그 교회에 소속되어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이단의 주장에 동의하는 신앙관을 가진 사람이 있을 수 있듯이 말입니다. 또 궁금해 하신 대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는데도 주일날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이에 대해선 2번 답변을 참조하시기 바람)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단 교회에 출석하면 아무래도 그들의 주장을 계속 접하다가 그대로 믿게 되어서 구원 받을 확률이 굉장히 희박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반대로 정통교회에 출석하면 올바른 가르침을 받기에 당연히 구원 받을 확률은 높아집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구원은 하나님이 한 개인에게 당신의 절대적 주권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사항이기에 제 삼자가 함부로 판단 내지 정죄할 수는 결코 없습니다. 모든 이에게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긴 하지만 실제로 구원받는 이는 의외로 적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구원 범위에 대해 수치적으로 계량, 추측, 상상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단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의 구원 확률이 너무 낫기에 오히려 그들을 더 불쌍히 여기고 전도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딛3:10)고 했지만 그들에게 몇 번 복음을 전하다가 제대로 듣지 않으면 아예 무시하라는 단순한 뜻은 아닙니다. 바로 앞 절,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9절)에 비추어 해석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교리적인 논쟁과 다툼이 될 만한 상황은 피하라는 것입니다.
이단 사역자들은 제외하더라도 그들에게 속아 넘어간 자들에겐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벧전3:15) 섬겨야 합니다. 바울이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가야 할 것이라”(고전5:10)고 했듯이, 이단교인들과 교제를 나눠도 됩니다. 또 그래야만 참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본 사이트의 #240 “이단이 운영하는 가게에 가지 말아야 하는지요?”의 글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6/18/2013
답변이 너무 늦어져서, 그것도 넷 중에 겨우 하나만 올려놓고, 죄송합니다.
서두에 밝힌 대로 네 가지 주제로 답변드리겠으니
조금 더 천천히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0^
방문자님들께서도 "구원에 관한 궁금증"에 대한 답변을
1-4 시리즈로 연결해서 읽어봐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