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7) 타락 전 아담의 영적 상태는?
[질문]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으셨는데 그럼 타락하기 전 아담은 성령님이 내주 하셨나요? 아담이 모든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지혜가 있었고 무죄의 상태로 성령이 충만한 상태가 아니었는지요? 어떤 글에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되었지만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피조물이었지 아들의 신분으로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리는 상속자가 되려면 선악과의 시험을 통과 했어야 했다는 표현을 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선악과 이후엔 당연히 죄로 하나님과 단절이 있었지만 타락 전 아담의 상태는 지금 우리가 거듭나 성령이 내주하심 즉, 아버지의 상속자로써 신분과 같은 것이 아닌지요. 그러니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다스리게 하시고 하나님과 교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지요. 타락 전 아담의 영적인 상태를 알고 싶습니다.
[답변]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신학적으로 깊이 파고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복잡한 문제일수록 간단하게 알기 쉽게 접근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범위를 넘어가는 위험을 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먼저 지적하신대로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말씀의 정확한 뜻부터 알아야합니다. 생기(生氣: 생명의 기운, the breath of life)는 성령을 뜻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하나님이 당신의 생명의 숨(호흡)을 인간의 코에 불어넣은 것입니다. 또 그래서 생령(a living soul)도 부정관사로 표현되어 있듯이 단순히 살아있는 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생기를 인간의 영혼으로도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창조기사인 1-2장의 문맥상에 드러난 영적인 의미로 구분하자면 인간만 따로 하나님이 직접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셨다는 뜻입니다. 다른 모든 동식물은 당신께서 명하시는 말씀만으로 창조했습니다.(창1:11,20,24) 따라서 인간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생물이긴 하되 특별한 생물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른 모든 피조물과 다른 점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둘은 동일한 의미를 반복한 것임)을 닮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형상과 모양에 대해서도 수많은 이론이 많으나 마찬가지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범위 안에서 해석해봅시다.
다른 생물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전혀 닮지 않았으나 인간만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창조경륜에서 다른 피조물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만 받지만 인간만은 그 외에 이 땅을 하나님 대신에 다스리는 청지기 직분을 받습니다.(창1:28) 그 직분을 잘 감당하려면 그분을 뜻을 알아서 그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형상과 모양은 가장 먼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성을 부여 받았다는 뜻으로 보시면 됩니다. 문자적 의미는 생령이 단순히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나 문맥상의 영적의미로 따지면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영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되 성령이 내주하는 것과는 다른 상태입니다.
성경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적 관점에선 인간은 하나님과 창조 때부턴 언약적인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맡기신 그 직분을 잘 수행하면 그분의 모든 선한 것을 공급 받아서 창조 시에 받은 생명이 그래도 풍성하고 아름답게 유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언약을 위반할 경우에는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 되고 죽음이 임하게 되는데 그 언약을 명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선악과 금령입니다.
그리고 아담이 창조되어 타락하기 전까지는 사실은 삼위 하나님이 사역을 나눠서 행하시는 단계는 아니었습니다. 신학적 용어로 본질은 같으나 셋으로 구별된 위격으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창조의 전 과정은 삼위 하나님의 합동사역이긴 하지만 하나님과 아담의 개인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삼위가 따로따로 역사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하나님과 최초 인간 아담 부부뿐이고 또 직접적인 교통이 이뤄졌기에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타락 전의 인간의 상태를 단지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에서 순전한 상태였다고만 설명합니다. 그의 기독교강요 15권의 인간에 관한 논의나 창세기 강해에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탁월한 피조물로서 그분과 순전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인간이 삼위 하나님이 상의해서 합작한 걸작품이긴 하지만 성령님이 내주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담이 함께 교제 동행하는 모습을 묘사한 창세기2:15-25까지의 기록에도 성령의 내주에 대한 어떤 언급도 힌트도 없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생기가 성령이었고 아담이 성령으로 충만했다면 어떻게 됩니까? 성령님이 아담의 타락을 막지 못했다는 불합리한 결과가 됩니다. 성령이 인격적인 분이므로 강요하지 않고 그냥 두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구태여 내주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에 (삼위) 하나님과 최초 인간과는 언제든 상호 교통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탄의 시험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에 있었고 인간의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성령님이 인간의 타락을 막거나 묵인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성령이 아담에 내주하면서도 그의 타락을 알고도 묵인했다면 하나님에게 그 일부 책임이 돌아가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서 완전한 희생 제물로 하나님에게 바쳐지는 의미가 퇴색됩니다. 타락이 인간의 전적인 책임이어야만 그 구원을 위해서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으로서 오실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기로 결정함에 있어서 하나님 쪽에서 타락으로의 강요는 물론이고 그렇게 되도록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만한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제약, 조건, 상황 등을 조성하신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당신의 모든 좋은 것을 다 주었고 당신과 교제 동행하는 체험을 통해서 당신의 은혜와 권능이 얼마나 좋고 풍성한지 충분히 알게끔 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내주, 개입, 간섭 없이 인간 스스로 자기 의지로 최고로 좋은 상황인 낙원에서 하나님을 능동적으로 완악하게 거역하고 사탄을 따라갔다는 것이 죄의 본질이자 타락이라고 증언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신자에게 내주하는 것은 타락 후에 그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사역이 완성되고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야 가능해졌습니다. 인간의 타락은 오직 십자가로만 원상으로 회복하는 길이 열리며 그것도 성령이 한 죄인의 영혼을 거듭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구약에서 성령의 역사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당신의 종에게 일시적 개별적 특정한 일에서만 개입 간섭 역사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타락하기 전의 아담의 상태는 성령님 없이도 하나님과 교제 동행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영육 간에 완전히 순전한 상태였습니다.
(3/1/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