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4:24-26의 해석이 어렵습니다.
[질문]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4:24-26) 우선 문자적으로 해석이 어렵고 특별히 25절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답변]
성경을 읽을 때 먼저 본문의 뜻을 해석한 다음에는 반드시 두 가지 사항과 연결해봐야 합니다. 첫째는 앞뒤 문맥에서의 의미의 흐름과 부합한지와 둘째는 그 성경책이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와 일치되는지 여부입니다. 그런데 질문하신 구절들의 경우처럼 본문의 뜻부터 이해하기 어려울 때는 거꾸로 접근하는 편이 좋습니다. 책의 주제에 비추어서 문맥상의 의미부터 먼저 추정해보면 본문도 쉽게 해석이 됩니다.
특별히 상기 구절은 첫마디부터 저자 바울이 비유로 설명하고 있다고 전제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히 문자적인 의미를 따져선 안 되고 비유법에 합당한 해석을 해야 합니다. 먼저 어느 부분에 비유법이 사용되었는지 찾은 후에 그 각각이 무엇을 상징 혹은 대변하는지 추적해야 합니다.
우선 갈라디아서의 주제는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은혜를 부정하며 모세의 율법을 - 대표적으로 할례(갈2:3,4) - 함께 지켜야한다는 유대주의자들 주장의 잘못을 파헤치고 복음을 변증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율법 준행에 의한 행위구원과 하나님의 구원 선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은혜를 시종일관 대조하고 있습니다.
상기 24절도 비유라고 말한 후에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고 했습니다. 두 언약은 당연히 시내 산 율법의 행위언약과 예수 십자가의 은혜언약입니다. 또 ‘이는’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했으니까 앞에서 말한 것을 받아서 부연 설명한다는 뜻입니다.
바로 앞 22, 23절은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22,23절)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갈라디아서 주제를 비유법으로 변증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본처 사라와 그 아들인 이삭을 약속에 따른 자유 있는 자로, 반면에 후처 하갈과 그 아들인 이스마엘을 육체를 따라 난 종으로 비유했습니다. 육체는 인간 스스로 구원 얻으려 노력하는 것을, 약속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약속하신 장차 올 여자의 후손을 통한 구원(창3:15, 갈4:4)을 뜻합니다. 자유와 종으로 비유한 이유도 간단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대속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죄의 형벌과 율법의 제약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아직도 율법을 지켜야 구원된다는 주장에 동조한다면 자유를 얻지 못하고 여전히 사탄의 미혹에 묶인 종이라는 것입니다.
문맥상의 의미를 파악했으니까 본문에서 어떤 설명 혹은 문구가 각기 두 언약 중 어떤 것을 비유하는지 구분해야 할 차례입니다. 시내 산, 종을 낳은 자, 하갈은 율법의 행위를 상징한다고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그(하갈)가 그 자녀(행위언약을 아직도 따르는 사람)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25절)까지가 유대주의자들의 거짓 가르침을 비판하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예루살렘’인데 자세히 보면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대조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라고 했으니 지금 있는 예루살렘도 하갈과 시내산과 같은 의미의 비유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은 유대주의자들의 본산으로 율법대로 제사와 할례 같은 결례를 행하고 있는 바울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을 말합니다.
반면에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율법에 종노릇하던 자들을 예수님이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시킨 천상의 영적인 예루살렘(눈에 보이지 않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을 뜻합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은 당연히 율법의 저주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에 “우리 어머니”라고 비유한 것은 아브라함의 본처 사라를 뜻하는데 사라의 아들 이삭의 후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왔기 때문에 모든 신자는 사라를 우리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으며 또 이삭처럼 약속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론 짓자면 상기 본문에서 두 여인 하갈과 사라는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을, 또 각각의 후손은 율법주의자(유대교신자)와 은혜주의자(기독교신자)를 비유합니다. 그래서 전자는 아직도 율법에 종노릇하고 있는 반면에 후자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 안에서 자유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책의 주제에 비추어 앞뒤 문맥상의 의미를 파악한 후에 본문의 의미를 따져보되, 단순히 문자적 의미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사용된 문학적 기법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럼 굳이 신학적 지식이나 주석에 의지하지 않고도 쉽게 뜻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1/24/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