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내주에 관한 몇 가지 의문
질문 1.
성령님이 내재하시면 신자는 평소에 성령님을 느낄 수 있나요?
답변 1.
예수님은 성령이 역사하는 방식에 대해서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3:8)고 가르쳤습니다. 고대에는 바람이 언제 어떤 방향에서 어떤 세기로 부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자는 자기에게 내주하신 성령님을 평소에는 자신의 오감을 통해서 혹은 이성으로 제대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나면 흔적이 남듯이, 신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고 난 후에 스스로 잘 분별해 보면 성령님의 간섭 역사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매번 확인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평소에 성령님이 자기 안에 분명한 인격체로 내주하셔서 나와 교제 동행하기를 기뻐하신다는 확신과 함께 그분의 인도를 받고 싶다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범사에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성경의 진리에 비추어서 하나님 중심으로 깊이 묵상하고 판단해 봐야 합니다.
그런 신자에겐 예를 들면 성경을 읽을 때 깊은 깨달음을 주거나, 순전한 믿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할 때는 내면의 미세한 음성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주거나 새로운 지혜를 주시고, 현실에서 어떤 문제가 전혀 불가능해 보였는데 합력하여서 선하게 결과가 지어지고, 죄인을 구원으로 초대 인도하게 되고, 성도들과 교회의 덕을 세우게 하는 등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서 "아! 이런 일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생길 수 없는 깨달음과 역사다. 내 이성으로 생각하거나 실력으로 행한 일이 아니며 나아가 주변 사람들이 돕거나 대신 행해준 결과도 아니다. 이 일의 배경에는 분명히 성령님의 의로운 간섭이 있었다."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 간섭은 또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뜻과 그리스도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만들고 특별히 성령의 열매(갈6:22.23)를 맺게 해줍니다. 성령이 신자 개인만 형통하게 해주는 일에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질문 2.
요한복음 14장 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는 말씀에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한다’는 것이 예를 들면 종종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 이렇게 이해하면 될까요?
답변 2.
성경은 항상 당시의 상황, 성경적으로는 문맥상에서의 의미부터 찾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 때에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승천하시고 당신을 대신해서 보내실 성령님이 어떤 분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때는 신약 성경이 아직 저작되지 않았고 주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도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오시면 제자들에게 일차로 십자가 구원의 의미를 가르치고(요16:8-15, 고전2:6-16, 12:1-3 등 참조), 또 삼 년간의 공사역 중에 가르치신 내용들(예, 산상수훈 마5-7장)의 의미를 정확히 깨닫도록 인도해 준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령 세례를 받은 후로 스승이 생전에 가르쳤던 대로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임을 확신하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예수님께 배운 대로 천국에 대한 영적 원리와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쳤고 교인들이 이단에 잘 대처하도록 신약 성경도 저작했던 것입니다. 나아가 당신을 위해 죽으면 영생을 얻는다는 스승의 가르침 대로 예수님의 주님 되심을 절대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순교까지도 담대하게 감당했습니다.
따라서 인용하신 요14:26을 오늘날의 신자에게 적용하자면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제자들과 똑같은 깨우침이 있고 그 깨우침 대로 현실 삶에 적용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물론 말씀하신 대로 성경 말씀이 종종 떠오르는 일도 분명히 성령의 깨우침이지만, 상기 본문이 의미하는바 중의 하나의 실례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오히려 질문 1의 답변에 더 적합합니다.
질문 3.
구약시대에도 성령님이 가끔 역사하셨던 것으로 아는데 구약시대에서는 왜 성령님이 내재하지 않으셨나요?
답변 3.
성령님은 간단히 말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사역을 대신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아주 간략하게 줄이면 하나님이 기뻐하여 택한 자를 죄에서 구원한 후에 그분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는 일입니다.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은 삼 년 동안만 소수의 제자와 제한된 장소와 시간에서 구원하고 교제했습니다. 영으로 오신 성령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시므로 예수님 승천 후의 모든 세대의 모든 죄인에게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구원의 역사를 베풀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신자에게 내주하여 동행 교제하시는 이유는 신자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해서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사역에 평생토록 동참하게 하려는 뜻입니다.(마28:18-20) 말하자면 성령님이 본격적으로 모든 신자에게 내주하시려면 반드시 그 전에 예수님이 먼저 오셔야만 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어떻게 죄인을 구원하는지 정확하게 다 가르치시고 실제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대속 구원을 완성하시고 부활까지 보여주신 후에 성령님이 오셔야만 합니다.(요1:1-14) 그래야만 질문 2의 답변처럼 신자들이 십자가 복음을 온전히 깨닫고 그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에 구약시대는 예수님의 오심과 오셔서 이루실 십자가 구원의 의미와 결과에 대해서 점진적으로 계시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성령님이 일부의 선지자나 하나님의 일꾼에게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때에 하나님의 영적 진리 특별히 구원의 복음에 대해서만 계시해 주었습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어도 하나님이 따로 구원을 주신 자들에겐, 예컨대 엘리야 때 하나님이 따로 남겨둔 7천 명의 선지자처럼(왕상19:18), 당연히 성령이 역사하여 구원을 주신 것입니다. 또 그들이 선지자로서 활동할 때도 내주하시지는 않아도 당신의 일을 수행함에 필요 충분할 만큼 성령의 인도와 계시가 따랐습니다.
(10/9/2023)
구약 시대 삼손이랑 사울 관련 글에서도 본 것 같습니다. 문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