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학대와 식육(食肉)의 차이는?
[질문]
저는 동물학대가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학대가 식육(食肉)을 위한 것이라면 성경말씀대로라면 올바른 것 아닌가요? 세상만물에 인간을 제외한 동식물들은 우리의 먹이를 위해 태어난 거니까요. 이상한 가치관이라고 매도당할까봐 두렵습니다. 남들 다 모여 있는데 시츄나 달마시안 죽여서 개고기 파는 곳(티비에 방영됨)을 두고 성경에 빗대어 보면 정당한 것 같다고 말하면 몰매 맞을 것이니까 말입니다.
[답변]
특이한 주제를 거론하셨네요. 물론 성경은 동물을 식육으로 사용해도 되며 심지어 우상 숭배 제사에 드려진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가르칩니다.(롬14:1-3, 고전8:4-8) 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롬14:17)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이런 주제는 죄인의 구원은 물론 신자가 신자답게 사는 문제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와 이런 문제를 두고 주장 내지 논의할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신자는 성경이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 원리만 알고 있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연환경과 다른 피조물들을 인간을 위해서 먼저 창조했습니다. 인간이 생존, 충만, 번창할 여건을 완전히 마련한 후에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습니다. 인간은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 대신에 거룩하게 다스릴 직분을 맡았습니다.(창1:28) 인간은 이 땅을 관리할 책임과 마음대로 활용할 특권을 동시에 받은 것입니다. .
그런데 노아의 홍수 이전에는 각종 채소와 과일을 인간의 주식으로 주셨습니다.(창1:29) 노아의 홍수로 지상의 모든 것이 다 멸절되었습니다. 지상의 채소와 과일도 다 물에 잠겼거나 썩어버렸습니다. 당분간 노아 가족의 먹을거리는 방주에 실린 짐승, 그중에서도 정결한 짐승들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홍수 이후로 육식이 허용됩니다.(창9:3)
그럼에도 하나님은 율법에서 식용으로 먹을 수 있는 동물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분해 놓았습니다. 또 신약에서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허용한 것도 이 율법 규정을 바탕으로 말한 것임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실제로 유대인들은 아직도 엄격히 그 규정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도 기독교 신자는 그 율법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법과 식용에 관한 규정은 효력이 다했다고 성경 자체가 선언하고 있습니다.(히9:10)
율법의 정결한 동물 규정이 단순히 유대교의 종교적 계명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동식물을 “종류대로” 만드시고 좋아하셨습니다.(창1장) 종류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각각 고유의 기능과 목적이 있다는 뜻입니다. 만드신 후에 좋아하신 이유도 그 기능과 목적대로 완벽하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식물에는 분명히 채소와 과일처럼 인간 식용으로 주신 것이 있습니다. 양념이나 약용으로 사용할 식물도 만드셨습니다. 반면에 절대 먹어선 안 되는 독버섯 같은 식물도 있습니다. 나무 중에도 관상용, 방풍용, 관개용, 등등 용도가 각기 다릅니다. 식물에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이 구분되었다면 동물에도 마찬가지로 각각 하나님 고유의 기능과 목적이 부여되어 있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로 일부 벌레, 곤충, 파충류 등은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징그럽고 무서워 도무지 먹을 엄두가 나지 않지 않습니까? 본성적으로 판단이 되는 그런 것들은 인간더러 먹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런 분별과 활용을 잘하는 것이 인간이 이 땅을 다스린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동식물 전부가 인간의 먹이 목적으로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일부만 그러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럼 먹지 않아야 할 것도 당연히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개나 고양이에게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목적을 부여했습니다. 오래 된 미국영화 “늑대와 함께 춤을”에서 보듯이 외딴 곳에 혼자 사는 자나, 독거노인에게 절실한 애완동물입니다. 또 개가 집을 지키거나, 에스키모들의 운반 교통수단이 되거나, 마약 감시하는 경찰견 같은 특수용도도 하나님이 미리 부여해 놓은 것입니다. 개를 식용으로 사용하기 이전에 바로 이런 목적대로 활용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대신에 소, 돼지, 닭, 생선 같은 것은 식용으로 사용하게끔 창조되었음을 인간 이성으로 쉽게 판단될 수 있습니다. 그런 동물을 죽여서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동물 학대가 아닙니다. 인간도 그 동물들이 죽을 때에 고통을 최대한 덜어주려고 한 순간에 죽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예컨대 소의 명치의 급소를 망치로 세게 한 방 때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동물을 식용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를 두고 세상 사람들도 전혀 학대라고 여기지 않는데 신자가 구태여 “그런 학대는 해도 된다.”고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하고 불합리한 일입니다.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애완용 개나 고양이를 먹이를 주지 않거나 새끼를 낳았는데 키우기 싫고 비용이 들어서 생존이 불가능한 환경에 유기하는 것 같은 행위를 말합니다. 또 동물을 채찍이나 전기방망이로 두들겨 패는 것입니다. 나아가 인간의 사치를 위해서 표범의 가죽만 얻기 위해 도살하거나, 건강 보전을 위해서 곰의 쓸개즙만 주사로 빼서 먹는 행위 등입니다. 이런 일들은 인간이 절대로 해선 안 되는 것이며 이는 구태여 성경을 거론하지 않고도 세상에서도 잘못으로 아니 범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개를 하나님이 특수한 목적으로 창조했다고 해서 전혀 먹어선 안 된다는 법 또한 없습니다. 도무지 다른 먹을거리가 부족한 경우는 단백질 보충으로 사용해도 됩니다. 즉 일부 민족들이 개를 식용으로 사용하지만 대부분은 먹지 않고 애완용으로만 활용하는 이유가 바로 지금껏 설명 드린 내용입니다. 이 주제는 성경적 교리나 인간사회의 도덕률로 따질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문화나 생활 여건의 차이 내지 개인의 기호 수준일 뿐입니다.
이젠 문명이 발달되어 다른 먹거리가 다양하고도 풍부하게 개발되었습니다. 만약 그런 풍족한 여건 하에 있는 신자들마저 구태여 애완동물까지 먹어야 할지는 재고해볼 필요는 있습니다. 여전히 이 또한 역으로 따져서 하나님 나라와는 무관하니까 엄격히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로마서 14장과 고린도전서 8장(꼭 직접 세밀히 읽어보시기 바람) 등에서 말하는 성경적 원리를 제대로 숙지하여서 그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11/20/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