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성과 중립적 화장실에 관해서?
[질문]
1,하나님을 믿기 전에 동성애 혹은 양성애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회심을 하면 동성애를 그만 두고 이성을 좋아하려고 많은 노력을 당연히 해야겠죠? 그럼 하나님을 믿기 전에 이미 성별수술을 끝마친 트렌스젠더인 사람이... 진정 하나님을 믿으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미 바꾼 성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여성호르몬 혹은 남성호르몬을 주기적으로 몸에 넣었던 걸 그만두어야 할까요? 또한 성별수술을 위해 바꾸었던 신체 부위는 다시 복구수술이라도 해야 됨으로써 자기 자신 본래의 성별로 돌아가려는 것이 믿음에 대한 행위의 결과로 봐야할까요?
만약 생체리듬 컨디션으로 호르몬 주사를 끊지 못하거나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본래의 성별로 되돌아 갈려는 상황이 안 될 경우, 트렌스젠더로 남자에서 여자로 몸을 바꾸었는데 여성 호르몬은 계속 몸에 주입하고 얼굴에 화장을 한 상태에서 "나 진심으로 하나님 믿고, 구원받고, 회계도 하고, 기도도 항상 드려" 이러한 언급
모습은 다른 교회 신자들에게 굉장한 시험에 들지 않을까요??
2,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제3 성별을 위한 화장실을 대학이나 공공장소에서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동성애, 양성애 혹은 무성애 등등 자신이 남성 & 여성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든 성소수자를 위한 화장실인데요. 당연히 기독교에서는 말세라고 보는 시각이지만, 성소수자랑 같이 화장실을 쓰기 꺼려하고 특히 일반 여성분들은 수치감이 든다고 생각하는 일반인들을 보호하고 성소수자들 또한 보호하는 용도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보는데요, 목사님은 제3 성별의 화장실을 어떻게 보나요?
그리고 성소수자가 교회에 많아질 경우, 일반 신도들이랑 성소수자가 남자&여자 화장실을 같이 쓰기 어렵다고 판단이 들 경우(누가 봐도 남자인데 화장을 하고 여성 옷을 입고 여자화장실에 있으면 일반 여성신도들이 굉장히 놀랄 수도 있겠죠?), 교회 안에서 또한 제3 성별을 위한 화장실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하나요? 만약 성소수자를 위한 화장실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신다면 화장실 문제로 일반성도랑 성소수자들을 어떻게 통솔해야 될까요? 만약 성소수자를 위해 제3 성별을 위한 화장실을 만들게 될 경우 사회의 비난과 다른 기독교인들의 맹렬한 비난은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답변]
흔히 생각지 못하는 앞서가는 민감한 질문을 주셨습니다. 만물 중에 가장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으로 아주 거짓되고 사악합니다. 그런 인간들이 어떤 일을 만들어내던 그 과정과 결과들도 그러합니다. 앞으로 불신 세상에선 윤리적 종교적 잣대를 갖다 댈 수도 없으며 아예 상식으로도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점점 더 많이 생길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영적 흐름으로 그래서 언젠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자들은 이 문제는 물론 우리 시대의 여러 유사한 문제들에 대해 성경적으로 판단 분별할 수 있는 원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그 원칙을 정리하고 시행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두 질문을 주셨지만 조금 세분해서 답변 드리겠습니다.
1. 트랜스젠더로 바꾼 자가 예수님을 믿게 되면 다시 이전 성으로 돌아가야 하는가요?
원칙적으로 그래야 합니다. 처음 가졌던 성이 당연히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신 성적 정체성입니다. 성전환수술 후에 계속해서 호르몬 주사를 맞아야 하는 것 자체가 바뀐 것이 비정상임을 증명해줍니다. 교회에서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에 비추어서 거룩하고 아름다운 성정체성에 관해 잘 가르쳐서 본인 스스로 깨닫고 결단 시행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2. 만약 의학적 건강상의 이유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만약 그렇다면 바뀐 그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하거나 건강을 크게 훼손할 수 있는 일을 구태여 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무한한 은혜를 믿고 기도하면 기적적으로 길을 열어주실 수도 있습니다. 역으로 바꿔 만약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주사를 맞지 않고도 바뀐 정체성에 따라 정상적인 성생활과 임신출산이 가능한 경우도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가능한지는 몰라도 마찬가지로 본인의 선택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3.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트랜스젠더 신자를 보는 다른 성도와 교회의 반응은 어떠해야 하는가?
당연히 사랑으로 품어주어야 합니다. 트랜스젠더 같은 성소수자가 예수님을 믿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데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한다면 하나님도 아주 기뻐하실 것입니다. 아니 복음을 제대로 알면 저절로 그런 마음이 들 것입니다. 그 본인보다 교회의 책임이 더 크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과 생각이 순전하다면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기적을 베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신자들은 마땅히 그런 자들을 따뜻하게 품어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하면서 온전해질 때까지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현재 한국교회에 성소수자가 교회 안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비정상적인 성이 왜 죄가 되는지 정확히 성경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십자가 복음의 의미는 죄는 죽기까지 증오하되 죄인은 죽기까지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상에서 살인자까지 용서하며 구원해주셨지 않습니까? 기존의 신자들도 뒤로는 온갖 죄를 지으면서 마치 하나님 앞에 의로운 양 행세하며 성소수자를 미워해선 결코 안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 주님께 크게 야단 맞은 바리새인의 행태와 똑 같은 짓입니다.
4. 중립적 성별의 화장실은 옳은가?
당연히 비성경적이고 있어선 안 됩니다. 문제는 모든 것을 다수결로 결정하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는 것을 신자가 막을 방도는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선 50개 주의 자치제가 확립되어서 아직까지는 그런 화장실이 없는 주가 더 많지만 지금 추세대로라면 전부 그렇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최대한 지연시키거나 다시 정상으로 돌려야 하나 현재처럼 무조건 반대하는 방식만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로선 성소유자에게 인권, 평등, 자유, 선택을 보장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비정상적 성이 싫고 잘못이라고 여기는 자가 많아도 그것을 제한하는 것은 더 큰 잘못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신자들은 정상적인 남녀관계와 결혼생활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지 실제 자기 삶으로 세상 앞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소수자들을 적극적으로 전도하여서 온전한 성을 가르치고 변화시켜야 합니다. 복음의 권능으로 정상으로 돌아간 신자로 이전의 동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마약중독에서 회복된 신자가 아직도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에게 복음을 더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왜곡된 성 외에도 옳지 않은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이 자행되고 있기에 교회와 신자들은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교회 안에서는 물론 신자들이 그 반대로 현실 삶에서 세상과 동일하거나 더한 죄들을 저지르고 있기에 세상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교회와 신자들은 제 삼의 성을 가진 자들을 탓하기 전에 성적으로도 먼저 자신들을 돌아보고 성결해야 합니다. 그 외의 모든 측면에서도 주님을 닮아가며 그분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자와 교회가 먼저 깨끗해지면 세상도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 순서는 절대로 거꾸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과 십자가 죽음으로 이 진리를 정확하고도 확고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5. 교회 안에 중립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나요?
상기에서 설명 드린 대로 그래선 안 됩니다. 교회야말로 남녀 화장실을 구분해서 세상 앞에 구별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 전에 교회 안에 사역자를 포함해 모든 성도들이 죄는 미워하고 죄인은 사랑한다는 분위기가 확고히 서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소수자들도 기존의 교인들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일이 화장실을 어떻게 설치하는 문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며 우선적입니다.
결국은 교회도 제삼의 화장실을 만들어야 한다고 법으로 규정할 것입니다. 그럼 끝까지 벌금을 내던지 일반 화장실은 그대로 두고 별도로 제삼의 화장실만 만들면 됩니다. 관건은 교회와 교인들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믿음과 태도를 유지하느냐 여부 하나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 삼의 성을 가진 자들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출석한다는 것만도 엄청난 일인데 신자들이 그들을 냉대 차별하고 쫓아내어선 오히려 하나님에게 큰 벌을 받을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신자들은 모든 문제를 도덕적 종교적으로 옳다 그르다, 해도 된다 해선 안 된다 이분법으로 딱 잘라 나눠서 판단 시행하려 해선 안 됩니다. 여전히 율법적 신앙에 머무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 자신부터 평생을 그렇게 행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수도 없이 많은 죄들을 짓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내 눈의 들보부터 빼내는 씨름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나 잘못을 지적하거나 염려하기 전에 내 자신부터 되돌아보고 매일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신자로 부름 받은 것은 세상 앞에 빛과 소금으로 서라는 것입니다. 정치적 운동으로 세상이 바로 잡아질 것 같으면 예수님부터 골고다 십자가로 가는 대신에 빌라도 총독관저와 헤롯 궁전부터 천군천사로 파괴하고 이스라엘에 다윗왕국의 영광을 재현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신자는 매일 주님처럼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걸어 가야합니다. 신자는 이웃과 자기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 주님의 영광의 빛을 어떤 방식으로든 비춰내어야 합니다. 십자가 복음이 세상 앞에 드러내는 진리와 그 진리가 적용되어서 실현해내는 권능을 절대로 과소평가해선 안 됩니다. 신자의 거룩한 삶만이 세상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12/22/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