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
고전 5장 1절~5절을 보면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음행을 저지른 자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 때 바울은 그 자를 공동체에서 쫓아내도록 권하며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탄에게 내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합니다.
쉬운 성경으로 보았더니 '그 사람을 사탄에게 내어 주어, 그 사람의 죄의 본성은 멸망당하더라도 영혼은 우리 주님의 날에 구원 받게 해야 할 것 입니다.' 라고 해석하고 있는데,
제가 이해하기로는' 그 사람을 공동체 내에 두면 적은 누룩이 온 빵을 부풀게 하듯 그러한 음행이 공동체 안에 가득 퍼지게 될 것이므로 그 사람을 공동체 밖으로 쫓아내되, 그 사람이 얻은 구원은 결코 취소되지 않으므로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이다. ' 인 것 같은데, 제대로 이해한 것 맞나요?
그런데 뭔가 머리 속에 깨끗하게 정리가 되지 않는 것이,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지되는 것인데, 음행을 저지르는 구원받은 그 사람 또한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에서는 쫓겨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되돌리지 않는 한의 단서가 있겠지만 말입니다) 이 부분에 명확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답변1]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비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같이 이 일을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내 영과 함께 모여서 주 예수의 능력으로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전5:1-5)
먼저 핵심 구절인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 이는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5절)의 정확한 해석이 선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구절을 전체 문맥에 의거하지 않고 단지 한 구절만 떼어서 해석하려 들면 반드시 몇 가지 의문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저자인 바울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전체 문맥의 중심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먼저 밝힌 후에 그에 따라 해석해야만 합니다.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에 음행을 저지르는 교인을 출교하라고 권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아내(친모가 아니라 계모 혹은 첩, 아버지의 사후인지 생전인지 불명함)와 음행하는 것은 율법에는 당연히 사형에 해당하는 죄입니다. 또 로마법으로도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는데도 교회 공동체에서 그런 자를 용납하고 함께 교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엄격하게 금한 죄를 범했는데도 징계하지 않은 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영적인 교만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온갖 성령의 외적인 은사가 활발했기에 자기들은 우월한 신자라고 자랑했습니다. 또 인간은 영과 육신 둘로 구성되어 있는데 죄는 더러운 육신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고 거룩한 영과는 무관하므로 어떤 죄를 지어도 용납하는 영지주의에도 물들어 있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음행도 통한히 여기지 않았던 까닭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 식물은 배를 위하고 배는 식물을 위하나 하나님이 이것 저것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느니라”(6:12,13)고 그런 영지주의 폐단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전체 문맥에서 강조하는 핵심은 그런 죄를 용납하여 공동체내에 그대로 두면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듯이 되니까 그것을 막으라고 한 것입니다. 단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의 능력에 힘입어 전 교회가 공동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반면에 5절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그렇게 출교시켜도 그 영은 구원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즉. 한 번 믿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 대한 구원을 취소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이 문단의 초점은 죄를 교회가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저자 바울로선 영혼과 육신이 따로 구원되는지, 또 신자의 구원이 취소되는지와 같은 복잡한 신학적 논쟁을 제기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 구절을 다시 정확하게 보시면 바울은 구원의 취소나 영과 육의 분리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선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했지 “얻을 것”이라거나 그 구원이 “다시 확인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바울은 그 음행을 저지른 자를 오히려 구원 이전의 상태라고 보고 있습니다. 구원의 취소 가능성 여부와는 아무 상관없이 단지 자신의 간절한 희망을 밝힌 것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 주었으니”라는 표현입니다. 언뜻 보면 이 표현 때문에 그 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자였는데 출교를 통해 사단에게 내어준 것처럼 되고 또 그래야만 마지막 날에 그 영이라도 다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해석이 되기 쉽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이 예수 안에 있다가 다시 사단에게 갔다가 마지막으로 영만 예수에게 돌아오는 이상한 구원 과정을 설명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에 혼동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단에게 내어주었다”는 의미는 초대 교회 성도들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다스림과 보호하심 아래에 있는 반면에 교회 밖은 그리스도의 지배에서 벗어난 그래서 사단의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반영한 표현일 뿐입니다. 즉 교회에서 징계하여 출교시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구원의 취소 여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만약 그런 뜻이 되려면 “주 예수의 날에 다시 구원 얻게 하려 함”이라고 ‘다시’라는 단어가 들어가야만 합니다.
나아가 바울이 육신은 멸하고 영은 구원 된다고 표현한 것도 영과 육이 분리된 구원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육신이 죽어야 구원이 된다는 뜻이 되는데 성경에는 헬라 철학적인 영과 육이 이분 되는 구원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영과 육이 하나로 구원받고 부활되는 것만 이야기하고 있으며 또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공로로만 이뤄집니다. 한 인간이 자기 육신을 사단에게 내어주어 죽고 영은 대신에 천국 간다는 말이 되면 인간 스스로의 구원일 뿐만 아니라 아주 이상한 사교(邪交)적인 구원이 됩니다. 기독교의 십자가 구원의 진리를 가장 잘 설명한 로마서를 기록한 바울이 그런 뜻으로 표현했을 리는 만무합니다.
대신에 바로 앞에 있는 “사단에게 내어주는 바”와 연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내어준다’는 의미는 영원한 심판과 구원이 이뤄지기 전의 일시적, 선언적인 임시조치를 말합니다. 따라서 “사단에게 내어 준 육신이 멸한다”는 의미는 또 다시 교회에서 출교당하는 징계를 받는 것만 의미하지 영원한 심판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가 교회 밖에 나가면 계속해서 음행하며 죄를 더 짓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에게도 주님의 은혜가 베풀어져서 언젠가는 구원을 얻게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래서 “영은 주 예수의 날에 구원을 얻게 하려”라고 말했고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인해 궁극적이고도 영원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건대 출교는 당시 교인들에게는 사단에게 내어주어 멸망을 받으라는 극단적인 조치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단지 일회적 임시조치이지 영원한 멸망과는 관계없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인들이 아무리 영지주의에 물들고 도덕적인 불감증과 영적 우월감에 걸려 있다 할지라도 교회가 그렇게라도 해야 그 본인이 다시 회개하여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소원을 피력한 것입니다. 동시에 교회에 누룩이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요컨대 바울이 전체 문맥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뜻의 핵심은 공동체의 거룩한 보존과 음행한 당사자의 회개를 촉구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영육간의 구원의 분리나 구원의 취소 가능성에 대해선 전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심지어 징계만 강조한 단순한 뜻도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 전체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죄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다시 그리스도의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바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편으로 출교를 강력하게 권고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범죄자를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의 소치로 그 사람을 오히려 더더욱 멸망으로 빠트리고 다른 사람까지 함께 타락케 만드는 범죄가 됩니다. 그래서 반드시 징계를 하되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 당사자가 회개할 수 있도록 끝가지 권면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예수님이 머리이고 성령의 보호와 인도가 이끌어 가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떤 신앙의 공동체라도 완전히 순수해져 누룩 없는 떡으로 이루어진 곳은 없습니다. 반드시 가라지가 섞이게 마련이라 이 땅에선 완전한 조직체 교회는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의 누룩도 한 불쌍한 영혼이기에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구원을 위해 섬기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처럼 공개적으로 명백한 죄를 지속적으로 짓고 있어서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이 될 때는 한두 번 교회 전체의 이름으로 증참하되 그래도 회개하지 않을 때는 출교시켜야 합니다. 물론 출교 후에도 바울처럼 계속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그에게 베풀어지기를 소원하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질문을 오래 전에 주셨는데 그 동안 개인적으로 이멜로 먼저 들어 온 질문들이 좀 있어서 답변이 늦어졌습니다. 기다리실 것 같아 우선 첫째부터 답변을 실었습니다. 나머지 두 답변도 정리되는 대로 곧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