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가 죄 지으면 천국 못 가는가요?

조회 수 2945 추천 수 78 2009.06.23 17:41:22
신자가 죄 지으면 천국 못 가는가요?


[질문]


요즘 성경을 읽다가 궁금한 점이 생겼는데요. 고전 10장에 보면 이스라엘백성이 홍해를 건너며 세례를 받았고 신령한 음식과 신령한 반석 곧 예수그리스도를 체험한 자들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로, 이스라엘백성은 구원받은 성도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했을 때, 간음 원망 우상숭배 주를 시험하는 등,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것을 적용한다면 ..“거듭난 신자들도 이스라엘백성들처럼 회개하지 않고 범죄하면 약속의 땅인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믿음을 지킨 여호수아 갈렙만이 가나안을 얻었던 것처럼 거듭난 성도도 끝가지 믿음을 지켜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중간에 믿음으로 살지 못하면 천국에 못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로 해석됩니다. 히브리서 4장 1절에도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염려함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거듭난 신자들도 약속의 땅인 천국에 못 들어갈 수 있는 건가요? 그리고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지었던 죄(간음 원망 우상숭배 주를 시험)와 같이 성도가 죄를 짓는 것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인가요? 그리고 성경에 장성한 자의 분량이 되지 못한 자, 곧 어린아이 신앙은 육에 속한자라고 하는데 이런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표현이나, 벧전 2:2절 말씀같이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구원에 이르는 믿음처럼 성도가 믿음이 자라지 않으면 천국 못 간다는 뜻이 되는 것인가요?

[답변]

질문하신 주제는 저희 성경문답 사이트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습니다. # 6 “한 번 얻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가?”와 #164 “신자가 죄를 지으면 믿음이 없는 표시인가요?”의 두 글입니다. 이 글들을 참조하면 원론적인 해답은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인용하신 성경구절들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전에 먼저 확실히 해둘 사항이 있습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한 죄인 간의 일대일 개인적 관계에서 은밀히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집단적으로 동시에 이뤄지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시쳇말로 마누라 치맛자락 잡았다고 함께 천국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반드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공로가 없었다면 자기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다는 진정한 고백과 그 무한하신 사랑 앞에 철두철미 엎드리며 주님을 자신의 온전한 주인으로 영접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처음으로 성령이 강림했던 오순절에 베드로의 한 번 설교에 삼천 명이 동시에 회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행2:41) 그럼에도 그 각자 모두는 개별적인 성령의 간섭이 있어서 마음에 찔림을 얻고 진정으로 회개한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총 얼마인지 모르지만 동일한 설교를 듣고도 회개하지 않은 자도 얼마든지 있었다는 뜻입니다. 집단적인 구원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자리에 모인 사람이 동일한 전도를 받으면 모두가 자동적으로 구원 받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홍해를 함께 건너서 다 같이 신령한 식물을 먹었고 다 같이 신령한 음료를 마셨던 이스라엘 선조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중에 개별적으로 누가 구원 받고 안 받고는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신령한 식물과 음료를 먹고 마셨던 체험이 있었다고 다 구원 받았다고 간주하면 안 됩니다. 이는 기도원에서 정말 간절히 기도하여 암이 낫거나 찬양전도 집회에서 감정적인 충만을 느껴서 교회에 출석했다고 해서 진정한 중생의 체험이 없다면 구원 받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쉽게 말해 교인 중에 거듭나서 구원 받은 신자가 있는가 하면 구원과는 거리가 먼 종교인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뜻입니다.  

십자가 구원의 깊은 뜻 몇 가지

한 번 얻은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지 여부를 알려면 먼저 구원 받은 의미부터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이유는 한마디로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세대 모든 인간이 이 땅에서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직접 십자가로 가신 것입니다. 선행, 구제, 희생, 고행, 수양, 심지어 자신을 제물로 죽이더라도 인간의 자력(自力)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만약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기준에 합격할 자가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오시어 죽을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자력 구원이 불가능한 까닭은 하나 같이 똑 같은 죄인이지 더 착하고 덜 착하고의 차등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전에 모든 인간이 창조주로서 세상만사를 주관하는 하나님께 경배는커녕 알지도 찾지도 않았던 죄만으로 그분의 진노 아래 들 수밖에 없습니다. 온갖 세상 쾌락과 죄악에 탐닉하며 당신과 원수 사이에 있었음에도 하나님은 당신이 지으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죄로 치면 당장 다 죽어 마땅하지만 그 죄책을 당신께서 다 감당하셨고, 또 그 은혜를 믿음으로 겸비하게 받아들이는 죄인은 살려주기로 한 것입니다.    

모든 인간이 동일한 죄인이기에 십자가상의 강도의 예에서 보듯이 예수님은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구원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오로지 십자가에 드러난 그분의 의에 힘입어 구원을 얻은 것이지 인간 쪽의 자격, 능력, 공적, 조건 등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말하자면 죄를 짓고 안 짓고의 여부로 구원이 갈리지 않습니다. 그럼 당연히 구원 이후에도 신자가 죄를 지었다고 그 구원이 취소될 리 없습니다.

십자가 구원은 심지어 당신과 원수 된 상태에 있던 죄인이 단지 예수님께 항복하여 엎드렸는지 여부만 평가합니다. 또 예수를 믿고선 아무래도 그 전보다 죄를 훨씬 덜 짓습니다. 나아가 평생을 두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구원을 취소시킨다면 당신의 생명과 맞바꾼 십자가가 완전 무용지물이 되어버리지 않습니까?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이미 순전히 믿었는데도 다시 어떤 계명을 지키거나 조건을 충족해야 구원된다는 주장을 “다른 복음”이라고 칭했습니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1:7,8) 천사라도 그런 주장을 하면 저주 받는다고 합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갈2:16,17) 율법의 의로는 절대 의롭게 될 자가 아무도 없어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는데, 죄 지었다고 다시 심판을 받으면 오히려 그리스도가 정죄당한 것이자 헛되이 죽은 꼴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구원 후에 죄를 지어도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 자력 구원의 불가능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죄를 범해서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이미 죄인이 되어 있기에 죄를 범한다고 말합니다.(마15:10-20) 아담의 원죄 이후로 모든 세대 모든 인간의 영혼은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구원은 죄 된 행동 몇 가지를 회개했다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이 간섭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해주어야 합니다.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었다면 그 범죄를 회개하면 되지만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다면 사람부터 바꾸어야 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고 니고데모에게 구원의 길을 가르쳤습니다. 바울도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고후4:17,18) 주셨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1,2)고 구원의 취소가 절대 없음을 명백하게 밝혔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단순히 천국과 지옥 중에 천국 보내기로 결정한 정도가 아닙니다. 혹시 신자가 잘못을 범했다고 그 결정을 바꾸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어서 세상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기고 성령까지 내주케 하셨는데 그 구원을 취소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어떻게 약속하셨습니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6,17) 구원 받은 신자에게 성령을 보내어 영원토록 함께 있게 해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승천 직전에 제자들에게도 세상 끝 날까지, 땅 끝까지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갖고 함께 해주시겠다고 보증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구원을 취소한다는 것은 예수님 스스로 자신의 약속을 취소한 셈입니다. 그럴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교회 안에 마치 구원 받았는데도 취소되는 것 같은 교인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은 처음부터 성령으로 완전히 거듭나 구원 받은 신자가 아닙니다. 취소될 구원 자체가 없습니다. 교리를 단지 머리로만 동의하고 교회에서 시키는 대로 따르는 종교인일 뿐입니다. 자신이 십자가 앞에서 철두철미하게 완전히 깨어지고 뒤집어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체험이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일대일 인격적 대면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밀한 구원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구원 받았다고 죄를 완전히 짓지 않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죄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로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달라진 것은 예수님과 완전히 등지고 있다가 이제는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 따르는 인생을 살게 된 것뿐입니다. 여전히 속에는 이전의 타락된 본성의 잔재가 남아 있습니다. 옛날의 나쁜 습관도 완전히 고치지 못했으며 세상에도 죄악의 유혹과 사탄의 훼방이 아직도 활개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비록 죄는 가끔 지어도 주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제 다시는 이전의 예수를 몰랐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신자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데 한두 가지 죄로 하나님이 억지로 돌아가게 하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구원 할 때 이미 죄의 여부는 불문하고 구원해놓고 말입니다. 한 마디로 구원은 개인적인 중생의 체험으로만 이뤄지되 일단 성령으로 거듭난 참 신자에게는 절대로 구원의 취소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그리스도시니라.”(1-4절) 그런데도 저희의 다수가 몇 가지 범죄 하여 광야에서 하나님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서두에서 말한 대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구원 받은 것은 아닙니다. 출애굽으로 구출 되고, 홍해를 지나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입경하는 순서와 겉으로 드러난 모습들은 구원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반드시 개인별로 이뤄집니다.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은 자 중에도 얼마나 구원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비밀입니다.

그 중에서 특정한 죄로 벌을 받아 멸망한 자들은 구원이 취소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구원 받은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악을 즐겨했고, 우상숭배를 했고, 이방 여인과 간음했고, 주를 시험했으며, 주를 원망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자들의 행동이 아닙니다. 고의로 줄기차게 즐기며 죄악을 범한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현실적으로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출된 것뿐입니다. (이 구절들에 관해선 “잘못 가르쳐진 성경” 사이트의 #12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이지 환난이 아니다”는 글을 자세히 참조 바랍니다.)

반석에서 나는 생수를 다 함께 마셨는데 그 반석이 그리스도라고 해서 구원을 얻었다고 보시면 안 됩니다. 출애굽, 홍해와 광야, 가나안이 각각 칭의, 성화, 영화를 상징하듯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성육신하기 전의 예수님이 항상 함께 거했다는 뜻입니다. 또 구약시대에도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반석의 생수를 마시고도 불평과 원망을 그치지 않은 자들이 있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권능 아니 그 실체 자체마저 부인하는 행위였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예수를 믿고 나선 두려워서라도 그분에게 불평과 원망을 공개적으로 그것도 계속해서 쏟아내지 못하지 않습니까? 진정으로 거듭나 구원 받은 신자는 부지불식간에 죄를 짓는 경우가 있어도 그분을 완전히 배반하고 다시 사탄을 좇지는 않습니다. 고의로 계속 동일한 죄를 지었던 그들은 아예 성령의 간섭이 없었거나 단지 한 번의 비췸만 있었을 뿐입니다.

히브리서 4장 1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본문의 해석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이렇게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희와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그러나 그 들은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2절) 복음을 전해 들었어도 믿음으로 화합지 않은 것입니다. 구원 받지 않은 자이지 구원 받아서 취소되는 경우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 받은 신자란 말 그대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선물로 완전히 받은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믿어서 구원을 얻어 보려 노력하는 중도 아닙니다. 복음을 전해 듣고 납득하여 기독교인이 되려고 헌신하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옛사람이 완전히 깨어져버리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이미 성취된 채 소유하고 있는 자입니다. 천국의 영화가 그 앞에 확실하게 보장되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절대로 변경 포기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3절에서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3:29) 하나님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에게 천국을 주신다고 약속한 것을 취소할 리 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도 그가 아무리 중간 중간 흔들렸어도 하나님은 끝까지 성취하셨지 않습니까? 물론 그리스도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약속은 복음을 전해 듣는 모든 자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이 실제로 응하는 것은 믿음으로 화합하는 자에 한합니다.  

고린도전서6:9-1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討索)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10) 본문만 보면 마치 예수 믿고 죄를 지으면 구원이 취소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런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11절) 교회 안에 온갖 죄를 상습적으로 짓던 자들이 있었는데 성령의 씻음으로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성령의 거듭남이 없이 머리로만 예수를 믿다가 이제 새사람으로 변화되고선 그런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거듭난 자의 구원 취소는 없습니다.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는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육에 속한 것이 죄를 지은 여부로 구별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아직 받지 못해 구원 받지 못한 상태를 말합니다. 교회에 속해 모든 종교적 방식은 따르지만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의 주인이 예수님이 아니라 여전히 자기인 자입니다.

다른 말로 성령을 받아 거듭나서 그리스도께 속한 자는 죄악을 고의로 즐기거나, 회개도 하지 않은 채 줄기차게 동일한 죄를 짓지는 않습니다. 혹시 외적으로 그런 경우가 보인다 해도 신자 본인은 정작 죄책감으로 두렵고 비참해 합니다. 정말 사탄에게 완전히 미혹되어 죄의식이 안 생긴다 해도 하나님이 이미 구원한 자라면 함께 하시는 성령님이 대신 탄식하기에 영적으로 항상 메마르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역사하여 회개토록 하십니다.  

베드로 전서 2:2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구원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지옥의 영원한 형벌에서 면제되는 구원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의를 믿었기에 하나님이 의롭다고 칭해주는 칭의(稱義-Justification)입니다. 흔히 일반적으로 통칭하고 이해하는 구원으로 성령의 초자연적 간섭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미 과거에 완료된 일회적 사건입니다.  

두 번째는 구원 받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기 위해 죄와 싸우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죄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성화(聖化-Sanctification)의 구원으로 천국 갈 때까지 계속 진행되는 과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신자가 구원 받았을 때에 이미 보장 받은 대로 천국에 들어가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스런 존재로 변하는 것으로 영화(榮化-Glorification)라고 합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반드시 이뤄질 것이며 신자의 평생 목표이자 소망입니다.  

그런데 이 세 단계의 구원을 신자가 하나씩 이뤄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 거듭날 때에 응당 성화와 영화는 이미 보장받은 것입니다. 칭의의 구원을 받으면 자동으로 뒤의 두 구원은  따라옵니다. 쉽게 말해 구원(칭의) 받고 죄 지었다고 구원이 취소되고 천국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 이후에 죄를 지어서 성화에 게으른 자는 단지 천국에서의 상급이 적고 부끄러운 구원이 될 뿐입니다.(고전3:10-15)

그럼에도 본문처럼 성경에는 마치 구원을 신자의 노력으로 얻거나 더 풍성한 구원으로 이뤄가는 것 같은 표현이 간혹 나옵니다. 그러나 앞뒤 문맥을 잘 살펴보면 구원의 둘째 단계인 성화를 의미함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을 수 있을 만한 수준의 신앙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원 받은 자가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모습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 받아 더 이상 취소가 없으니 마땅히 더 거룩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5:19-6:2)

성경은 어떤 죄를 지었어도 구원 얻었고 또 구원 이후에 죄를 지어도 그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 은혜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마음 놓고 죄를 지을 수는 없다고 선언합니다. 죄의 형벌에서 구원 받았으니 더더욱 죄를 짓지 말아야 은혜가 은혜로서 참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사형수를 사면해 주었는데 또 다시 죄 짓고 감옥에 갈 수는 결코 없듯이 말입니다.

본문의 경우도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성화의 구원에 관한 권면입니다. 간단히 바로 앞에서 말하는 바를 봅시다.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벧전1:25, 2:1) 간단히 말해 복음을 받았으니 즉, 구원을 얻었으니 그러므로 이런 저런 일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또 바로 뒤의 구절은 어떠합니까?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2:3) 주님이 십자가에서 용서해주는 긍휼을 입었으면 방금 이야기한 것을 잘 지켜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2:2절은 당연히 이미 구원 받은 자를 두고 성화에 열심을 내라는 권고인 것입니다.

이 구절들을 역으로 따져보면 그 의미가 더 분명해집니다. 만약 스스로 죄를 안 짓도록 노력하여 어떤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구원이 취소된다고 가정하면, 예컨대 본문에서 지적한대로 남을 시기하거나 비방하는 말만 해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럼 이 세상에 구원 받을 수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아마 가장 먼저 목사들부터 그렇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갓난아이’라는 말은 구원 자체가 약해서 언제든 취소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성화를 이루는 신자의 마음과 믿음의 상태가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갓난아이의 최대 관심사는, 어쩌면 유일한 목표는, 젖을 먹는 것입니다. 또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 특별히 다른 복음이 아닌 참된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말합니다.

따라서 갓난아이 같은 단순함과 열정으로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고 순종하여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라는 뜻입니다.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의 의미도 당연히 “성화의 더 높은 단계에 이르도록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아주 많은 신자들이 구원을 얻고도 죄를 지으면 구원이 취소될 수 있는지 불안해하고, 심지어 그렇게 겁을 주며(?) 가르치는 교회들도 있습니다. 간단히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오.(서두에 말씀드린 십자가 구원의 몇 가지 깊은 뜻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는 권세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친 백성이자 자녀가 된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조금 잘못한다고 부자관계를 끊자고 나오는 법은 절대 없습니다. 예수를 알기 전에는 스스로 집나간 탕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회개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내쫓을 이유는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어떻게 됩니까? 구원을 인간이 노력하여 얻는 것이라면 즉, 어떤 수준에 이르러야 하나님이 구원을 주는 것이라면 취소도 가능할 것입니다. 아니 그 일정 수준에서 떨어졌으니까 그래야 맞습니다. 말하자면 죄를 안 짓거나 덜 지어서 구원을 얻었다면 다시 죄를 짓거나 더 많이 지으면 당연히 그 구원은 취소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일 때에 예수님이 모든 죄책을 감당하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얻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와서 그 십자가 죽음을 취소시키지 않는 이상 구원이 취소될 리는 없는 것입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1:3-6)

창세 전에 택하고 예정하여서 거저 준 은혜로 당신의 아들로 삼아주었는데 취소하겠습니까? 그럼 너무나 싱겁고 신실하지 못한, 아니 믿을만한 자격조차 없는 하나님이 되지 않습니까? 비유컨대 어린 아이가 스스로 아버지라고 또렷하게 부르는 순간 좋은 옷을 사주겠다고 태어나기 전부터 약속했고 또 그래서 옷을 사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계속 아버지라고 부르는데도 물을 마시다가 그 옷에 좀 흘렸다고 옷을 다시 빼앗아가는 아버지가 있겠습니까?  

신자가 구원 후에 죄를 지으면 징계는 물론 따르지만 한 번 맺은 부자관계는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7,8) 따라서 신자가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자신을 가꿔나가며 “구원(성화)에 이르도록 자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참 신자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완전히 깨어져서 이미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있는 자입니다. 구원의 취소를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대신에 과연 내가 제대로 성화의 씨름을 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날마다 자기를 쳐서 복종하며 주님이 가신 길이 비록 좁고 협착하고 세상 사람들이 가지 않더라도 묵묵히 따라 가기만 하면 됩니다. 천국의 면류관은 이쪽 길 앞에만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고 있는 넓고 쉬운 길 앞에는 낭떠러지만 기다릴 뿐입니다.

6/23/2009  

운영자

2009.06.24 19:53:45
*.104.231.60

이 메일로 개인적으로 받은 질문입니다.
유사한 질문을 수시로 받게 됩니다만
이참에 정말 제대로 다짐 해두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구원이 정말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로 죄와 관계 없이 새로운 피조물로 사람을 변화시켜 주셨고
그래서 사탄의 멍에에서 풀어주신 것이 확실하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다시 옛 사람으로 바꾸어 사탄의 종으로 돌려 보낼 수 있겠습니까?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와 권능 앞에 변화되지 못할 죄인이나
용서 받지 못할 죄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진정 거듭난 자라면 그분을 박차고
사탄에게로 스스로 다시 돌아가는 법도 절대 없습니다.

놀라운 예수님의 은혜에 새삼 무한 감사하오며
저를 비롯해 신자라면 평생을 두고 오직 그분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

사라의 웃음

2013.03.07 22:28:50
*.109.85.156

신자도 죄책이 들 때에는 이러다가 천국 못가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것은 잘못 배워왔기에 그러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정확한 십자가 진리를 가르치는 교회를 만나지 못한 까닭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잦은 죄책감으로 뒤뚱거릴 때, 분명 예수님의 보혈로서 구원받았음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죄를 짓는다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자 아닐까? 아니면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혼자만의 공상이였나?...이런 저런 생각들로 머리 복잡하여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갈 때, 정말 십자가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더면~~

죄를 지었기에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에 죄를 지을 수 밖엔 없는 존재, 그리 태어나 사단의 종이 되어진 존재를 피로서 값주시어 건져올려주신 십자가 사랑은 지은죄만을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존재자체를 변화시켜 놓으신 너무도 귀한 선물이심과 이제 피값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가르치시고 씻겨주시며 징계도 하시며...징계하심의 속깊으신 맘도 너두 귀한 사랑의 맘이심을 말씀을 통하여 또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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