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1)

조회 수 1838 추천 수 95 2009.09.05 14:49:21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요?(1)


[질문]


요한 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님과 함께 천국 보좌에서 영영히 살아간다는 마지막 부분은 아멘 하면서 읽었는데요. 처음부터 20장 10절까지는 ...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계시된 건가요? 그렇게 믿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직 믿음과 지식이 어려서 막연하네요.

[답변]

너희의 알 바 아니요.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24:36) 종말의 때는 예수님도 모르신다고 했습니다. 제자들더러 그 시기와 방식에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대신에 깨어 있으라, 예비하고 있으라. 받은 재능을 사용하여 주의 적은 일에 충성하고 또 지극히 작은 자부터 섬기라고 당부했습니다.  

주님은 부활 후 승천하기 직전에도 제자들이 이스라엘이 언제 회복할지 묻자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가 아니요”(행1:7)라고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성령의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러 당신의 증인이 되라고 명했습니다.

삼위일체로서 성자 하나님 되시고, 아니 다시 오실 당사자인 예수님이 종말의 때를 모른다니까 의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자로 오셔서 지상 사역 중에 있는 동안에만 그렇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예수님의 표현이 미묘하게 달라진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런 신분으로 되돌아간 승천 직전에는 직접적으로 당신께서 모른다고 하지 않고 “너희의 알 바가 아니요”라고만 말했지 않습니까? 알고 있지만 가르쳐 줄 사항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하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은 분명히 인류의 미래, 특별히 그 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밝혀 놓은 책입니다. 독자로선 자연히 그 시기와 방식에 관한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체적 시기를 밝히지 않았고 또 비밀로 둔 것 자체가 바로 당신의 뜻입니다. 당신의 권위를 한층 더 높이려는 의도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신자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구체적 시기를 밝히는 것이 그러지 않는 것보다 나쁜 점이 더 많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경륜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인간의 상식으로만 따져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우선 가짜 신자들이 양산될 것입니다. 종말이 다가오는 것이 확실한 데 믿지 않을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설령 반신반의해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일단 교회에 출석하고 보지 않겠습니까? 또 그 반대로 세상 쾌락과 죄악을 다 즐기다가 때가 코앞에 닥쳐야 믿으려는 게으름도 부리지 않겠습니까? 특별히 신자는 경건의 훈련을 미룰 여지가 다분해집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그 본성상 종말의 시기를 몰라야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할 바를 다할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은 신자더러 시기를 저울질 하지 말고 언제나 자발적으로 기꺼이 당신을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또 그것이 신자가 누리는 유익의 핵심입니다. 따로 받을 복을 기대하기보다 믿음을 소지한 것 자체가 신자의 특권이자 축복인 것입니다.

말하자면 계시록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오히려 자꾸 종말의 시기와 방식에 관한 궁금증을 풀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는 자체가 그 대신에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과 그에 드러난 진리에 관심을 더 쏟으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예언과 묵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에 관한 예언을 상징을 통해 요한에게 환상으로 보여주셨고, 사도는 자기가 보고 들은 바대로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책입니다. 따라서 이 책을 잘 이해하려면 성경의 예언과 묵시에 관한 지식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우선 성경의 예언(豫言)은 단순히 미래의 일을 연대기 식으로 미리 밝히는 것(foretelling)이 주목적이 아닙니다. 그런 예언은 성경 전체에 아주 특수한 몇몇 경우를 빼고는 없습니다. 당신의 뜻과 계획을 선포하는 것(forth-telling)이 주 내용입니다. 그것도 인간을 죄에서 구속하고자 하는 뜻과 계획에 초점을 둔 것입니다.  

또 계시(啓示, reveal)라고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 쪽에서 먼저 밝혀서 전해주어야만 알 수 있을 뿐이지 인간 스스로 상상, 추측, 추론, 도출해낸 사상이나 철학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땅에서 이왕에 일어난 어떤 사건이나 현상이 아닙니다. 초자연적 방식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인간에게 전해졌고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에게 그 뜻이 전해질 때에 서두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제외하고는 구체적 말씀이 없이 주로 상징(象徵)으로 표현되는 비사(秘事)를 통해서였습니다. 그 이유는 통용 사용하는 강화언어(discourse language)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나타내려는 것입니다. 상징이란 명확한 이미지는 있되 그 구체적 뜻은 숨겨질(黙示 Apocalypse) 수밖에 없어 이해하기 어렵지만 오히려 하나로 여러 사안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모든 예언은 요한계시록 뿐 아니라 이중, 삼중의 뜻을 지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구약에서 유다의 후손에서 의로운 왕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 다윗, 히스기야, 요시야 왕을 예시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지칭한 것이지 않습니까? 또 이스라엘을 이방 대적에서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을 세울 것이라는 예언도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할 일뿐 아니라 예수님을 통한 죄인의 구원도 겸하여 예언한 것이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구약 성경에 산재한 메시아 도래에 관한 중요한 이백 여개의 예언은 이미 이뤄졌습니다. 그러나 재림 때까지 그 실현이 미뤄진 마지막 날의 심판에 관한 예언도 그만한 숫자만큼 많은데 꼭 요한계시록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에스겔서와 다니엘서를 비롯한 구약선지서와 신약성경 곳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계시록을 이해하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 몇 가지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우선 일정표식으로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 배경의 하나님의 뜻과 계획 즉, 그분이 인류를 다루시는 원리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상징과 예언이 그 연대나 구체적 실현 모습에서도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한 구절이 이미 일어난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비사와 상징이기에 현실의 역사에 너무 구체적으로 대입 적용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원칙이란 어디까지나 원칙에 불과하므로 실제 해석에 적용하려면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신학자들 간에도 계시록을 해석하는 입장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입니다. 어느 누가 확정적으로 옳고 그르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이 있고 난 후에 구약의 메시아 도래에 관한 예언이 명확히 해석되어졌듯이 종말에 대한 예언 또한 실제로 그 때가 되고난 이후라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성경 해석이 확정되어봐야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마지막이, 아니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미 도래한 다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초림보다 재림의 예언이 더욱 묵시적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인간에게 더 이상 다른 유예 시기나 수단이 없어지는 마지막이기에 그러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든 죄인에게 정말 아무도 모르는 불시에 최후의 심판이 임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계시록 해석에 관한 학자들 간의 입장이 나눠지는 핵심 이유도 시기(時期) 때문입니다. 이 시기를 따지는 입장은 전체적인 측면과 세부적인 측면 두 가지로 나뉩니다. 시기를 대략 혹은 세밀히 맞춰보려는 시도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계시록 전체 내용을 특정한 시대로 나눠 적용하려는 시도와 동시에 천년왕국과 재림의 전후 순서를 밝혀 보려는 시도 두 가지 이론이 있다는 뜻입니다. 물론 후자는 아무래도 전자의 결론에 따라 영향을 받게 됩니다. 먼저 전체적 시기에 관한 대표적 이론들을 간단히 알아봅시다.

계시록을 해석하는 유형들

(이에 대해선 아가페 출판사가 1988년 발간한 “오픈성경”의 요한계시록 서론의 설명이 아주 알기 쉽게 잘 구별하였기에 발췌하여 전재하되 제 의견을 간단히 첨부하겠습니다.)

본서를 해석하는 이론으로 대표적으로 과거파, 역사파(세계사 혹은 교회사 학파), 온건미래파, 극단적 미래파(세대주의), 이상주의 다섯을 들 수 있습니다.

- 과거파

저자인 사도 요한 당대의 사건을 기록한 것이라는 이론입니다. 로마 제국의 핍박받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기 위해 씌어졌는데, 박해를 피하기 위해 상징적으로 유대 묵시문학의 방식을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즉, 짐승은 로마 제국(혹은 황제들)이며 거짓 선지자는 황제 숭배교라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은 임박했기에 인내로 싸워 승리할 것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 학파는 계시록을 언약의 맥락에서 보아 그 주제가 배교에 대한 계약적 위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한 예루살렘(유대교)의 파멸을 예언한 것으로 선지자들을 죽인 예루살렘 도성에 쏟아지는 어린 양의 진노의 심판을 묘사한다는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의 파멸은 영원한 경고로서 기독교 교회에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인류사가 아닌 교회사를 다룬다는 관점에서 볼 때 본서는 신32장의 정신으로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과거파의 입장은 본서가 요한 당대의 삶의 정황 속에서 그 당대 독자들에게 기본적으로 의미를 주기 위해 씌어졌다고 보는 점에서 옳습니다. 그러나 본서 저자가 예언(1:3)이라고 밝혔고 또 분명 종말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파의 약점이 있습니다.

- 역사파

세계사(혹은 교회사) 전체를 계시해 주는 것으로 보는 이론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는 근거는 본서에 역사의 종점과 시발점이 제시 되어 있고 그 두 지점 사이에 어떤 단절도 예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파에 속한 학자들은 계시록에서 역사적 사건들의 세세한 성취를 찾아내려 합니다. 또 이러한 역사 맞추기는 학자마다 다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본서는 역사라는 열차의 “시간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때와 시간 계산의 자료로 사용하는 것은 극히 바람직스럽지 못합니다. 역사상으로 여러 예언이 계시록에 근거하야 나왔으나 모두 실패로 끝났고 잘못된 종파 운동을 초래한 사실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 온건 미래파

극단 미래파(세대주의)와 구별하여 붙인 이름입니다. 본서는 처음 세 장들을 제하고는 거의 전부가 주의 재림 직전의 어느 기간 동안에 일어날 종말 사건들을 다룬다고 해석합니다.

극단 미래파와 다른 점은 첫째, 그리스도의 가견적(可見的)인 재림에 앞선 교회의 “은밀한 휴거설”을 반대합니다. 둘째, 4장 이하를 순전히 유대인들에게 국한시키는 것을 반대합니다.  다시 말해 교회와 이스라엘의 구분을 인정치 않는 것입니다. 셋째, 계 2-3장의 일곱 교회들이 교회사 전체를 각기 가리킨다고 보지 않는 것입니다.

- 극단 미래파(세대주의)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1:19)에 근거하여 계시록을 다음과 같이 그 세대를 나누는 이론입니다.

먼저 1장은 요한이 본 바 부활하신 예수님의 환상이며, 2-3장은 이제 있는 일로 교회사 전체를 다룬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즉 예배소 교회는 사도말기교회, 서머나는 로마 박해 시의 교회, 버가모는 정교(政敎) 결탁 시의 교회, 두아디라는 중세기의 교회, 사데는 종교 개혁기의 교회, 빌라델비아는 종교 개혁 이후의 참 교회, 라오디게아는 현대 교회를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장 이하는 장차 될 일을 다룬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다니엘의 70째 이레에 해당하는 “7년 대환난기”인 “야곱의 환난기”(렘30:7) 에 대한 묘사라는 것입니다.

이들에 의하면 교회는 구약예언의 성취가 아니요 단지 임시방편으로 세워진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왕으로 임하셨으나 유대인들이 거부하였으므로 그의 왕국은 천년왕국으로 연기되고 임시방편으로 “신약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이는 신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상충하는 사상입니다. 우선 일곱 교회는 요한 당시의 실제 교회들의 상황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또 모든 세대의 모든 교회들의 특징을 드러낸 것입니다. 칼빈이나 루터가 세운 교회도 많은 잘못을 범했듯이 인간이 모인 지상 교회는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오순절 이후로 지금까지의 신약교회는 예수님이 머리가 되고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지향하기에 하나님의 뜻 안에선 참 교회입니다. 이 외에도 이스라엘의 회복과 교회의 휴거를 강조하느라 여러 무리한 문자적 해석이 동원되었습니다.

-이상주의파(역사철학파)    

계시록이 어떤 구체적인 사건을 예언한다기보다는 영원한 진리, 즉 하나님의 통치 원리, 선악간의 투쟁, 선의 궁극적인 승리 등을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상주의파는 본서가 저작 당시의 정황을 배경으로 삼고 나온 점을 십분 인정합니다. 상징(imagery)은 당대의 상황에서 취해졌지만 상징으로 제시된 그 모두는 모든 세대에 영원한 진리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어떤 이론이 타당한가?

위에서 약술한 해석 체계들은 대개 다른 해석 체계들과 상호 연관되어 사용됩니다. 한 해석자(Swete)는 “나는 전체로서 어떤 학파를 일방적으로 따르지 않고 모든 해석 체계들과 접촉점을 갖도록 할 것이다. 예컨대, 과거파에서는 저작 당시의 상황을, 미래파에서는 요한의 예언이 장차 올 시대의 상황을, 이상주의파에서는 기독교의 역사 철학을, 역사파에서는 사건들의 진행에서 대원리들이 어떻게 작용했나하는 예증을 볼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리 건전한 해석 원리를 갖고서 본서의 해석 작업에 임한다 해도 완전한 해석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인간의 지혜는 유한하여 항상 실수할 가능성이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뜻과 길은 우리와 다를 뿐 아니라 당신께서 종말에 관한 구체적인 시기와 방식을 비밀로 하고 싶어 하시어서 상징으로 묵시하였기에 제대로 알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계시록에 드러난 하나님이 인류와 역사를 다루시는 원리를 깨달아서 항상 깨워서 대비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며 믿음을 키우는 일에만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일일이 현실 역사에 부합하는 일정표를 만들겠다고 시도하는 것은 잘못이자 그분에게 불경하기까지 합니다. 오직 성령님이 조명하시는 역사를 간구하며 읽어야 할 것입니다.

또 예의 신학자처럼 여러 해석 체계들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할 것입니다. 전적으로 한 가지 체계만 고수하면 어떤 형태가 되었든 일정표를 그리는 작업이 됩니다. 또 그런 잘못을 피하고자 이상주의파만 따르면 역사에 개입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개념상의 하나님에 머물게 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여러 학파의 장점을 취하기 위해선 오히려 계시록 이전의 신구약 성경에 정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세밀하게 알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절대로 신실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당신의 뜻에, 특별히 당신이 택한 백성들과 맺은 언약에 변개, 수정, 가감, 포기는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께서 이미 구약과 신약 역사에 간섭하신 모습과 그것을 설명하는 성경의 진리들을 비교 묵상하면 미래도 어느 정도 그 원리적인 측면에서 추측이 가능합니다. 한 마디로 갈 바 모르지만 믿음으로 대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계시록을 주신 초점은 요한 당시 핍박 받는 정황에서나, 신약이후 지금껏 교회사의 피 흘린 체험에서나, 종말에 닥칠 대환난에서나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라는 것이지 않습니까?

바꿔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는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분을 따르는 삶은 머리 둘 곳도 없이 좁고 협착한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분의 제자답게 온전히 산다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두려워 할 것 하나 없습니다. 하늘과 땅위의 권세를 다 가지신 예수님이 항상 함께 하시지 않습니까?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요16:33)

특별히 신자가 어떤 환난에도 담대할 수 있는 근거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예수님이 큰 권능으로 환난을 다 막아주시고 구해주신다는 단순한 뜻이 아닙니다. 골고다 십자가에서 당신께서 이미 완벽한 승리를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와 함께 하는 권세도 바로 그것입니다. 죄악과 사단과 사망이 더 이상 우리를 노예로 묶어둘 수 없는 신분으로 바뀐 것입니다. 대환난이 닥쳐서 순교해도 영원한 운명이 보장되어 있기에 예수님의 품 안에서 다시 깨어날 것입니다.

바꿔 말해 “끝까지 견디어 이기라”는 것이 계시록에서 신자가 가장 먼저 또 중요하게 깨달아야 할 핵심 사항입니다. 바울이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고후12:4)이었다고 밖에 말할 수 없었던 뜻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장 논리 정연한 그에게 천국과 종말에 관한 성경을 기록케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기록했다면 후대 사람들로선 어쩌면 더 구체적인 추정이 가능했을 것 아닙니까? 때와 기한은 오직 그분께 달려 있으므로 우리는 깨워 경성하며 하루하루 적은 일에 충성하며 신자답게 빛과 소금이 되어 있으면 됩니다.  

9/5/2009

To be continued

Sarah

2009.09.05 15:25:26
*.216.87.235

목사님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배경 지식이라든지 상징의 의미라든지 알면서 읽어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제게, 신자에게 하시는 그 본질보다 더 앞서 나간 것 같아요.
하루하루 깨어 하나님만 더 사모하고 바라보고 닮아가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

사라의 웃음

2013.03.22 22:22:52
*.109.85.156

전에 계시록 강해를 들을 때 마다 참 무서웠습니다. 대환난이 오기전에 휴거를 해야하는데 만약 휴거를 당하지 못한다면 짐승의 표를 받지 않기 위해 반드시 순교를 하라고 배웠습니다. 혹여 짐승의 표를 받을까 보아서 입장권을 전자로 팔에 찍어주는 것도 무척 무서워했고 주변에 믿음좋은 친구들이 어느날 홀연히 사라질까 보아, 전 휴거받지 못할까 보아 전전긍긍했던 기억들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도록 하시는 아버지의 맘은 정말 우리를 사랑하시어 진리안에 거하기만을 바라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안으로 자꾸만 초대하시려는 맘이심을 배웁니다. 완벽하게 이루어놓으신 십자가 사랑안에서 넉넉히 세상을 이겨 주신 예수님 품안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한 발자욱씩 떼며 걸어가는 자가 되어지길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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