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중에 박수를 쳐도 되는지요?
[질문]
예배 중에 어느 한 사람이나 찬양대에 박수를 치며 칭찬을 해도 되는지요?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답변]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배 중에 사람을 향해 박수 치는 일을 질문자님처럼 심각하게, 최소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시는 신자들보다는 문제 삼을 주제가 되는지조차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그만큼 예배 중에 박수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아직도 신앙적으로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도 합니다.
이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선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이며 또 그것을 가로채는 것은 어떤 행위인지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 그 전에 성경에서 예배 중에 박수를 친 전례가 있는지, 그리고 박수를 치는 일반적 의미가 무엇인지 그 의미를 예배에 어떻게 적용해야할지도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박수를 치는 뜻은?
일반적으로 박수는 어떤 모임에서나 선하고 훌륭한 일을 행한 사람을 향해 공동체 전체가 그 수고와 업적이 장하다고 인정해주고, 또 그런 선한 결과를 만든 것에 감사하며, 앞으로도 더 잘하라고 격려해주는 의미로 칩니다. 한 마디로 칭찬입니다.
예배 중에 하나님께 박수를 치는 것도 동일한 의미를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나님다우심을 인정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행한 모든 선한 일에 대해 감사하며, 또 앞으로도 그분의 은혜 가운데 계속 머물기를 소원하는 의미를 가질 것입니다. 그분께 모든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경배입니다.
그런데 예배 중에 영광을 받을 분은 분명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성자라도 인간이 인간에게 영광을 받을 수는 결코 없습니다. 그러나 예배 중에 사람을 향해 박수를 쳤다고 꼭 그 사람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인지는 별개의 문제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예배 중에는 반드시 하나님께만 박수쳐야 한다는 생각이 정당해지려면 박수에는 그것 외에는 다른 의미가 전혀 없다는 논리가 성립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박수의 일반적 의미가 인간에게는 칭찬을(질문자님도 질문에서 이미 그렇게 말씀하셨음), 하나님에게는 경배를 드리는 것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미국 교회에선 교인들이 목사님의 설교에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대신에 주로 박수를 많이 칩니다. 그 박수의 의미에는 목사님 개인에 대한 칭찬은 있을지언정 경배의 의미는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목사님이 선포한 말씀을 통해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또 앞으로도 목사님을 성령의 권능으로 붙들어 말씀을 잘 전하게 해달라는 뜻이지 않겠습니까?
한국 교회에서 찬양대 찬송이나 신앙 간증을 듣고 난 후에 박수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가대나 신자 개인에게 영광을 돌리거나 경배하겠다는 뜻으로 박수치는 신자는 아마 전혀 없을 것입니다. 단지 그들이 아름다운 찬양과 은혜로운 나눔을 행한 수고를 칭찬하는 뜻이지 않습니까? 물론 성가나 간증을 통해 하나님이 은혜 주신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의미도 함께 포함해서 말입니다.
따라서 정작 따져봐야 할 문제는 예배 중에 사람을 칭찬하는 절차가 들어가도 되는지 여부입니다. 예배는 한 마디로 하나님께 모든 가치를 돌리는(worth+ship=worship) 신자의 행위입니다. 한 성령 안에서 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함께 모여서 한 주님께 찬양과 감사와 경배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과의 인격적 교제가 이뤄지고 또 그 받은 말씀에 대해 신자로서 응당 따라야 할 반응이 이어져야 합니다.
한 마디로 위로부터 하나님에게서 받음과 아래로부터 신자의 드림이 함께 교차되어야 합니다. 주로 받음은 설교 말씀과 축도, 드림은 찬양 기도 헌금 간증 등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리고 예배에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게 좌정해 계시지만 실제로는 인간 신자가 주체가 되어서 드려집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말씀을 신자에게 내려 전하는 것이요, 찬양과 기도의 순서를 맡은 자들은 신자 대표로서 올려드립니다. 인간이 예배의 참여자일 뿐 아니라 수행자가 됩니다.
그런데 앞에서도 언뜻 언급했듯이 드림의 절차인 간증이나 찬양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또 그에 대해 박수로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받음의 절차인 설교를 통해서도 신자들의 죄를 대신 내지 대표하여 회개하며 올려드릴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배의 각 개별 절차에도 받음과 드림이 교차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떤 절차에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 및 경배로, 또 예배 참여자와 수행자인 인간에 대한 칭찬의 뜻을 표해도 된다는 뜻이 됩니다. 요컨대 예배에서 박수치는 것 자체로만 하나님께 경배한 것인지 인간을 칭찬한 것인지 딱 부러지게 구분 지을 수 없으며 그럴 필요도 사실상 없다는 뜻입니다.
나아가 교회에서의 예배는 반드시 공동체로서의 예배로 드려져야 합니다. 성도들 각자가 거룩하게 변화되어서 진정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하나님께 함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예배 가운데 성도들끼리 칭찬하는 절차도 당연히 포함될 수 있고, 아니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가 각기 맡은바 수고를 인정하고 감사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여호야다(제사장)가 왕자를 인도하여 내어 면류관을 씌우며 율법 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매 무리가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부르니라.”(왕하11:12) 집회 중에 명시적으로 박수를 쳤다고 성경에 기록된 유일한 예입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섭정을 하고 있던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를 몰아내고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고 그 후 요아스는 전국적으로 종교 개혁을 이루어 냅니다.
물론 이 집회는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는 위임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제사장이, 그것도 여호와의 성전에서 집전했습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취임 예배였습니다. 그 때에 함께 참여한 자들이 박수하며 왕의 만세를 불렀습니다. 여기서 박수한 의미도 두 가지였습니다. 이런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끄신 여호와의 섭리와 은혜와 권능에 감사 경배하는 것이며, 또 인간 요시아 왕이 앞으로 더욱 신실하며 충성된 주의 종이자 국정의 책임자가 되어달라는 격려 및 소원을 담은 것입니다.
예배 중에 인간을 향해 박수 친다고 인간을 경배하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아니라는 단적인 예입니다. 결론적으로 예배 중에 인간을 향해 그 사람에게 베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동시에 그 사람의 수고를 칭찬하는 의미로 박수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경적 의미를 신자들은 잘 숙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너무 남용이 되지 않도록 절제는 해야 합니다.
아무리 예배 참여자 및 수행자가 인간이고, 또 모든 절차에 드림과 받음이 교차된다 해도 예배란 어디까지나 하나님과의 만남과 그에 대한 신자의 온당한 반응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인간을 향한 박수가 너무 잦으면 자칫 인간끼리의 교제로 박수의 의미가 제한 내지 축소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예배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진짜로 가로채는 일은 박수치는 것 같은 형식보다는 더 본질적인 것에 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정한 영광은?
하나님의 영광이란 말 그대로 그분만이 갖고 있고, 가질 수 있는 위대함을 말합니다. 신구약 성경에 여러 용례가 나오지만 한마디로 “하나님이 현현(顯現-theophany 실제 나타남)함에 따라 함께 드러나는 그분의 장중함과 광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 예로 모세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기를 간절히 소원하자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보여주되 그 뒷모습만 보여준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출33:18-23)
하나님의 실체가 나타나면 어떤 인간도 그 앞에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절대적 선으로 단 한 치의 더러움과도 공존하지 못하는 거룩하신 분입니다. 모세 같은 신앙 위인도 죄의 본성이 남아 있기에 그 자리에서 소멸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반석 사이에 숨기시고 당신의 손으로 덮었다가 지나 간 후에야 손을 거두어 등만 보게 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 인간이 그분의 영광을 볼 수도 없지만 도무지 가릴 수도 없습니다. 인간과 우주 만물이 어떤 상태에 있든, 예컨대 신자가 몽땅 죽고 심지어 피조물 전부가 다 없어져도, 당신의 영광에는 단 한 치의 손상도 없습니다. 그 영광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십니다. 영원토록 스스로 자존하시기에 조금도 손상 변개 되지 않습니다.
그분의 영광을 유지하는 것은 오직 당신일 뿐입니다.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48:11) 다만 인간의 눈에 그분의 영광이 줄거나 가리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눈에 비취는 그분의 영광은, 다시 말하지만 인간은 그 영광을 제대로 볼 수조차 없으므로, 항상 진짜 실체가 아닙니다. 줄어든 상태라든지 가짜의 상태라는 뜻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 수준에 맞추어서 당신을 계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광을 인간의 믿음의 수준에 걸맞게 드러낸 그런 계시의 절정은 바로 예수님의 성육신과 그분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12:44,45) 하나님의 영광이 인간이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육신의 모습으로 예수님 안에 온전히 드러났습니다. 온 천하 사람들에게 세상에는 없는 하나님만의 사랑을 실천해 보이셨고 권세 있는 말씀으로 천국 복음을 가르쳤으며 죄 사함의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삼 년간의 공사역을 마치는 최후의 만찬 때에 유다가 당신을 배반하러 나가자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요13:31)라고 선포했습니다. 또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17:1)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감당하시고 돌아가실 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완전한 모습의 광채로 이 땅에 비춰졌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험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히1:3) 이제 그분의 십자가 은혜에 들어가는 신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누릴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하든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 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6:4)
바꿔 말해 신약 시대의 예배에는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가 기념, 회상, 선포 되어야 합니다. 그분의 죽으심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그분의 다시 오심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기대를 그분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과의 인격적 교제가 이뤄져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살아 역사하는 주님의 은혜와 권능을 모든 신자가 맛보고 나누며 또 십자가 군병으로서 세상과 죄악과 사단을 향해 승리의 진군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본질이 무엇이 됩니까? 바로 그분의 십자가 복음이 약화, 퇴색, 변개, 취소, 실종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뭐라고 했습니까?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1:8) 다른 복음을 전해 저주를 받을 대상에 사도들 본인과 천사까지 포함시켰습니다. 그만큼 십자가 복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반증입니다.
재삼재사 강조하건대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 복음이 역사적 진실대로, 복음서의 진술대로, 사도들이 서신서에 밝힌 원리대로, 구약성경의 예언과 연관하여,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경륜에 비추어 증거 되어지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거나 다른 복음을 전하는 것만큼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것은 없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이 박수하며 산악이 함께 즐거이 노래할지어다.”(시98:8) 하나님은 영원토록 모든 피조물로부터 박수로 찬양 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모든 여인들이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그 크신 구원을 찬양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 이후로는 안식일이 아닌 그분이 부활하신 날(the Lord's Day)에 그분의 십자가 구원이 찬양되어져야 합니다.
요컨대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무한한 박수가 이어져야 합니다. 찬양대나 간증자 인간을 향해 그 수고를 칭찬하고 또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손으로 박수 치는 것은 문제 삼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존재와 삶과 인생 전부를 예수님의 십자가에만 온전히 걸고서 심령으로 박수쳐야 즉, 신령과 진정으로 영이신 하나님께 경배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종교적으로 경건하고 엄숙하며 심지어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예배당 건물을 신축하여 흘러넘치는 교인들로 몇 부씩 나눠 주일 예배를 드린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가로채는 것입니다.
1/13/2009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