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자에게 기도 받으러 가도 되는지요?

조회 수 1262 추천 수 32 2011.03.22 18:02:42
은사자에게 기도 받으러 가도 되는지요?


[질문]


어떤 책의 저자가 기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 주변 분들에게 나눠준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것을 통변이라고 표현했는데 방언을 통역해주는 것이 통변이 아닌지요? 그리고 신자들이 꼭 그런 은사를 받지 않아도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데도, 특별히 그런 분을 찾아가 기도를 부탁하는 자세가 괜찮은 것인지 아닌지 궁금했습니다. 제게 의아한 것은 그런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보다 마치 그런 상황이 점 보러 가는 사람들의 모습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책의 저자도 다른 전도사님께 기도를 받고 난 다음부터 그런 은사가 따라왔다고 하니까 말입니다. 물론 기도가 안 나올 정도로 힘이 들면 함께 기도하자고 교회에서 격려를 해야 하지만, 그런 기도와는 조금 경우가 다르지 않나 싶습니다.

[답변]

우선 질문자님께서 양해해 주셔야 할 것은 제가 그 책을 읽고서 저자의 정확한 의도를 알기 전에는 그런 진술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저로선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원칙적인 답변을 드려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사실은 질문하신 말씀 안에 거의 정답이 다 나와 있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이미 올바른 믿음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은사는 나타난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12:8-11)

상기 구절에서 언급한 성령의 은사 중에 일부 은사(charismatic gift)들은 성경이 완성되었기에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주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하나님의 은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고전13:8-10)

이 말씀에서 예언, 방언, 지식을 폐하게 하는 “온전한 것”이 온다는 의미를 성경이 정경으로 완성되는 사건으로 해석하여 이미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앞뒤 문맥과 비교하면 무리한 해석입니다. 또 전체가 아니라 일부 은사만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면 성경 기록을 인간이 판단 선택하여 옳고 그름을 정하는 잘못을 범하는 셈입니다. 나아가 현재 정통 신앙을 가진 자들 중에도 그런 외적 은사가 분명히 나타나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저는 지금도 그 모든 은사들이 유효하다고 믿습니다. 그 온전한 것이 옴을 주님의 재림으로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또 위에서 언급했듯이 은사중지론자들의 해석상의 미진한 부분에 대한 올바른 변증을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문답 사이트 #195 “방언의 은사는 중지 되었는가?”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은사가 전수 되는가?

같은 맥락에서 즉,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일들이 원칙적으로 지금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관점에서, 함께 기도할 때에 그런 은사가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고도 믿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8:14-17)

상기 구절의 의미에 대해선 여전히 신학자 간에 이견(異見)이 많습니다. 그러나 주지할 것은 “성령 받기”를 위해서 기도했지 은사 받아야 한다고 기도한 것은 아닙니다. 또 그렇게  기도했더니 은사가 나타났는지는, 앞뒤 문맥상 그런 의미일 확률은 높지만, 불명합니다. 나아가 안수라는 형식을 취했기에 그렇게 된 것만도 아닙니다. 이외에도 성령의 역사를 가시적으로 더 충만히 드러내 보여야할 초대교회의 특수 사정도 감안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사도가 기도했기 때문에, 초대교회이기 때문에, 안수기도를 했기 때문에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다는 식의 해석은 금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전에 결정된 특정 방식에 따라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럼 그 방식 자체가 하나님을 묶거나, 최대한 양보해서 하나님이 스스로 그런 방식에 묶인다는 어이없는 뜻이 되어버립니다.

이어지는 기사에 시몬이 돈을 주고 그런 은사를 사려다 사도들에게 크게 혼이 났지 않습니까? 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조종할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을 묶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주심은 하나님의 뜻이며, 또 각종 은사는 신자 개인의 영적 유익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성령님의 주권에 따라 각 사람에게 나눠줄 뿐입니다.
          
따라서 방언 같은 외적 은사를 받아야만 구원 받은 증거라고 하거나, 신자라면 반드시 받아야만 한다거나, 함께 기도해야만 받을 수 있다거나, 반복된 훈련으로도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반대합니다. 그 모든 진술이 하나님을 어떤 법칙으로 묶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온전히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들끼리 모여서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주님의 일에 전적으로 쓰임 받기를 소원하여서 기도한다면 각종 은사가 그런 모임에 잘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그런 모임에 은혜와 은사를 베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지 않습니까? 또 그래서 외적 모습만으로는 마치 은사가 전수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꼭 기억할 것은 아무리 개인이 은사를 받고 싶은 진정한 소망을 열렬히 갖고 있어도, 또 어떤 모임에 진정성과 열망이 넘친다 해도 외적 은사가 전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누차 강조하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만 달렸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초자연적 외적 은사 외에 더 중요한 은사들이 많기 때문이며(롬12:6-13도 함께 참조 바람), 모든 신자에게 그런 은사들을 한두 개씩은 이미 주셨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모든 은사 중에 가장 귀한 것은 성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고전13:1-8, 롬12:9-13) 어떤 외적 은사라도 성도를 사랑하는 목적으로 사용치 않으면 하나님께로 온 것이 아니든지, 은사자가 죄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는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롬12:3)해야 합니다. 성경의 기록을 잘 해석하여 그대로 믿고 따르되, 자신이 받은 은사가 무엇인지 확인하여서 자기 주위에서부터 복음을 확장하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드러내는 일에 잘 사용해야 합니다. 은사에 대한 이런 성경적인 기본 개념을 갖고서 주신 질문에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통변의 은사

먼저 아셔야 할 것은 방언과 관련하여 통변이라는 우리말 단어는 성경에 없지만 일반적으로 방언을 통역하는 것을 말합니다. (창42:23은 단순히 통역자란 의미임)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고전14:5)

여기서 살펴 볼 것은 초대교회의 방언은 외국어였지 지금 같이 아무도 알아듣지도, 통역하지도 못하는 언어가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물론 오순절에 내린 방언은(행2:11) 외국어 방언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고 그 후의 방언이 모두 외국어 방언이거나, 또는 그렇지 않기에 방언이 중지되었다는 주장은 조금 무리입니다.

방언은 오순절에 처음 등장합니다. 틀림없이 생전 처음 보는 현상인지라 모든 사람들이 크게 놀랐을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이 각종 나라의 방언으로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찬양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삼천이나 넘는 유대인들이 모였는데도 각기 자기 나라의 방언임을 알아들었습니다. 자기 나라 말이니까 쉽게 알아챘을 수도 있지만, 그 복잡한 상황에서도 각 사람에게 성령이 역사하여 각자가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복음이 전해진 셈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만약 외국어 방언이 아니어서 꼭 통역이 필요했거나, 외국어 방언이라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아주 혼잡한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복음은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삼천 명이나 회심시키는 성령의 역사에 장애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오순절에는 통역까지 동원되어야 하는 복잡한 상황을 야기할 필요는 없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바울이 통역은사를 은사에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초대교회의 방언이 꼭 외국어 방언만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외국어를 통역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이 은사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그냥 학습하면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당시 각 나라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그 나라 방언과 헬라어를 다 습득했다고 보면 됩니다. 구약성경도 헬라어로 번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각지에 흩어져 무역을 많이 했기에 외국어에 상당히 능통했습니다. 말하자면 초대교회들에 꼭 외국어 방언을 주고 또 그것을 통역할 필요성이 첫 오순절만큼 절실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물론 어떤 이가 외국어 방언을 했는데 교회 안에 마침 그 외국어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면 그런 은사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구태여 복잡하게 꼭 외국어로 기도내지 설교를 시키고 또 그것을 통역시키는 이중적 수고를 하실 필요가 과연 있을까요? 단지 당신의 신기한 능력을 나타낸다는 의미뿐이지 않습니까?        

통역의 은사도 성령님이 주신다는 성경의 진술은 방언이 지구상의 언어가 아님을 암시하는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로 현재의 방언이 전부 외국어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세대의 모든 신자가 하는 모든 방언을 녹음해서 언어 전문가가 분석해볼 수는 아예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영원한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의 권면은 방언이 외국어이든 천국의 언어이든 간에 그런 문제에는 신경 쓰지 말고(사단도 얼마든지 방언을 줄 수 있음), 공중예배에선 통역하는 은사자가 없으면 사용을 금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외국어든 천상언어든, 외국어의 경우 통역할 자가 없는 이상, 그 뜻을 알 수 있게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방언 기도하는 자는 방언 후에 자기 나라 말로 자기도 의도하지 않는 기도가 터져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방금 기도한 방언의 통변일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기도 모임에서 통변하는 은사를 가진 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방언은 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그 당사자나 함께 기도하는 자에게 끝까지 비밀로 붙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신자가 알아선 안 되는 동료 성도나 그 공동체의 추잡한 비밀을 위해서 중보 기도케 하거나, 하늘의 영적인 싸움을 위해서 신자더러 기도케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만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오늘날도 통역의 은사는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통역의 은사가 방언 기도 때마다 매번 통역할 수 있다거나, 은사자 혼자서 모든 방언을 통역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통역도 성령의 역사이기에 꼭 필요한 경우와 사람에게 그분이 나눠주시는 것일 뿐입니다.

예언 기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 주변 분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통변이라고 표현한 그 저자의 의도는 저로선 알 수 없습니다. 흔히 통칭되는 뜻으로는 통변이 아니라 오히려 지혜의 말씀이나 예언의 은사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할 것 같습니다.

또 그 받은 말씀이 성경구절이거나 성경이 말하는 바와 완전히 일치한다면 하자가 없고 정말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일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과연 그분이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나 누구를 만나도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입니다. 은사자야말로 항상 주님 앞에 겸비하게 엎드려 자신과 자신의 사역을 위해서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어쨌든 그분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은 저로선 유보하겠습니다.

문제는 신자들이 그런 은사자에게 기도 받으러 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에는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성경의 원칙을 서두에 말씀드렸습니다. 이 문제도 그에 따라 판단하면 됩니다.

바꿔 말해 마치 점치러 가는 것 같기에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질문에 이미 답이 들어가 있다고 말했듯이 점치러 가는 기분으로 찾아간다면 분명히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장래 일을 어떻게 대처해야 잘 해결되고 더 형통할 수 있는지 그 방안을 물으러 가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 지식, 예언의 은사는 그런 장래 일을 알아맞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 그분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신령해도 인간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질문자님이 이미 지적하신 대로 신자에겐 성령이 내주해서 영원토록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절대적 계시인 완성된 성경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어려운 현실의 문제든 스스로 기도하고 말씀에 따라 영적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특정인에게만 성령이 임했던 구약시대와는 다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전서에서 말하는 각종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심지어 방언으로 하나님께 영으로 기도할 수 있는 특권마저 주었지 않습니까? 자신은 기도나 말씀을 등한히 하고 은사자에게 자기 할 일을 의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마치 마누라 치마 자락만 잡으면 같이 천국 가는 양 착각하는 꼴입니다.  

그게 아니라 진정으로 자신의 영적 유익을 위하고 교회의 덕을 세우며 그리스도 복음이 더 확장되는 일을 위해서 은사자들끼리, 혹은 은사자와 함께 진심으로 기도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또 그렇게 기도하다가 함께 각종 은사를 받을 수도 있으며, 최소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서로 세워주며 은혜를 받는다면 아주 좋은 일입니다.  

때로는, 아니 수시로 너무 현실이 고달프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정신적 영적으로 피폐해져 기도와 말씀이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의심, 불신, 원망까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신자 속에 좌정하신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대신 기도해 주십니다. 또 모든 여건을 주장하셔서, 필요하다면 강권적으로 고난을 더 주어서라도, 영적 침체에 완전히 빠져서 절망 실패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십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그 영혼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한마디로 신자 혼자서라도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주님과 온전한 교제를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윗의 시편을 보십시오. 당시에 교회가 있어서 주일예배, 금요찬양예배, 새벽기도, 구역 모임 등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가 정기적으로 기도모임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순전히 혼자서 하나님과 씨름하였지만 스스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어떤 지경에 처해도 자기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었고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할 수 있었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는 다윗의 믿음에 전혀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성령을 주셨고 교회를 주신 것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물론 은사자를 찾아가 함께 각 지체와 공동체를 세우는 기도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은사자에게 기도받기만 하면 특별한 능력이 따라오거나 문제가 더 빨리 해결되리라 기대하거나, 자기 앞일을 알아 맞추어서 그에 대비하겠다는 생각이라면 아주 틀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기도는 응답은커녕 듣지도 않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권면대로만 즉, 은사든 중보기도든 성경이 말하는 바대로 온전히 믿고 그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지니라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5:13-18)

외적 은사를 받지 않은 보통사람의 기도에도 엘리야 같은 큰 능력이 나타납니다. 십자가 복음 안에서 진실로 겸비해지고 온전한 믿음을 갖고서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와 권능이 자신과 주변 사람과 교회와 세상 앞에 드러나기를 진정으로 바란다면 그렇게 됩니다. 특별히 자신의 겉 사람이야 아무리 후패하게 되어도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또 그런 자는 이미 믿음의 은사, 능력의 은사, 섬김의 은사, 기도의 은사 등을 받은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 앞 날에 대한 예언을 받고 싶고 또 그런 은사를 가진 자에게 안수 기도만 받아도 자기에게도 어떤 초자연적 역사가 일어나리라 기대하는 것은 전혀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혹시라도 겉으로 비슷한 현상이 일어난다면 그야말로 자기가 자기에게 속아 넘어가거나 사단이 주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만약 그런 자가 진정 거듭난 신자라면 언제 어떤 방식이 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연단이 기다릴 것입니다. 혹시 거듭나지 않은 신자라면 사단의 농간에 여전히 붙잡혀 있는 것이기에 하루 속히 십자가 복음으로 구원 받는 은혜부터 사모해야 합니다. 주위에서 제대로 말씀을 가르치고 전도해야 하며 또 바로 그런 자들을 위해서 각양 은사를 받은 자들이 모여서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3/22/2011

쌀로별

2011.03.22 22:14:32
*.234.16.126

저의 주변에 기도해서 일상적인 단어로는 설명하기 힘든 은사를 받은 어른이 전에 다니고 있던 교회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신비한 은사가 없으신 평범한 분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면 잘 듣지 않는데 은사를 받은 어른이 말씀하시면 곧이 듣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책을 읽고 저 내용이 생각이 나서 여쭈게 되었습니다. 책 내용에서는 저자분께서 회심한 이야기, 많은 분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이야기 등등 은혜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특별한 은사를 가진 분들이 기도해야 한다고 말할 때만 정말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모든 내용은 아니고 책 내용의 일부분에 대한 저의 소감입니다). 그 분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만을 믿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이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저부터 반성하겠습니다.

oh younghee

2011.03.25 03:47:55
*.254.51.128

말씀으로 풀어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게 되네요...요즘은..
받은 은사를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는데 쓰여 지길 깨어 기도합니다.

정순태

2011.03.26 02:30:20
*.75.152.191

"은사"란 조심스럽게 받아야 할 어려운 용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흔히 은사를 신비주의적 특수현상 지칭어로 이해하기 쉬운데, 성경에서의 은사란 "포괄적 의미"입니다.

학자들이 각자 취향에 따라 약 30여 개 전후의 은사 목록을 제시하기도 합니다만,
가장 큰 은사는 생명입니다. 믿음도 사랑도 다 은사입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은사입니다.

참 신앙을 지닌 모든 성도들은 이미 한량없으신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바로 '부르심'의 은사를 받은 자들입니다.
몇몇 드러나는 은사만 은사인양 오해하며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목사님의 자세한 설명이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귀한 설명,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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