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서에서 왕의 계보는?
[질문]
에스라서 4장에 사마리아인들이 유대인들을 고소할 때 첫 번째로는 아하수에로 왕의 즉위 할 때고 두 번째는 아닥사스다 왕이 통치할 때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에스라 5,6장을 보면 다리오 왕이 유대인들의 성전 재건을 허락 합니다. 그런데 에스라 7장의 2차 포로귀환 때 다시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에게 조서를 내리는 부분이 나옵니다. 성경을 읽다가 이런 부분이 나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성경은 반드시 연대별로 기록된 것은 아니며 에스라서 같은 역사서에도 가끔 그런 경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사건 별로 특별히 그 영적 의미에 따라 기록하다 보니까 그러합니다. 따라서 성경의 전체 구조와 주제는 물론 성경 저자의 의도부터 먼저 파악하여야만 이런 뒤바뀐 순서에 대한 이해를 올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다시 나타난 다리오 왕
질문자께서 중간에 다시 다리오 왕이 나타나는지 의아해진 까닭은 4장의 23절과 24절을 연결되는 내용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다리오는 분명 아닥사스다의 선대왕인데도 오히려 뒤에 나타난 것처럼 언뜻 보입니다. 그 혼돈을 푸는 열쇠는 의외로 아주 간단한데, 두 절을 이어주는 접속사 “이에”라는 번역이 조금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역사를 그치게 하니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이르니라.”(4:23,24)
‘이에’라는 말은 앞 사건과 직접적 연관이 있어서 다음 사건이 일어난 것을 뜻합니다. 당연히 연대별로도 이어진 것처럼 이해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처럼”, 혹은 “그와 같이”로 번역되어야만 합니다.
말하자면 23절 한 절이 아니라, 4:6-23절까지의 기록 전체를 받는 접속사라는 것입니다. 6절-23절은 장문의 삽입 구절로 보아야 하기에, 실제로는 5절에서 바로 24절로 이어지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신에 ‘이것(6-23절의 기록전부)처럼’을 넣어서 쉽게 해석해 봅시다.
“바사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의사(議士)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성전 재건의) 경영을 저희(沮戱)하는 바람에, 아하수에로와 아닥사스다 왕 때에 사마리아인의 방해로 성벽 재건의 역사가 그쳤던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이르니라.”
한마디로 고레스 때부터 다리오 이년까지 성전재건이 중지된 것이나 후대의 성벽재건이 중단된 것이나 동일하게 사마리아인들의 집요한 방해에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의사’는 페르시아 왕실의 자문단을 가리키며, ‘저희한다’는 것은 저지하고 희롱한다는 한자말입니다.
알다시피 에스라서는 예루살렘의 성전 재건과 종교 개혁, 느헤미야서는 성벽 재건에 관한 기록입니다. 이런 구분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고소장 내용에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왕에게 고하나이다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우리의 곳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지대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며 그 성곽을 마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필경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12,13절) 성곽이 튼튼하게 완성되면 외적 침입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므로 바사 왕국에 배반할 것이라는 구실을 대고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24절은 “전 역사가 그쳐서”라고 성전을 명시하는 표현이 나옵니다. 성벽 재건 방해에 관한 6-23절과는 다른 내용이라는 뜻입니다. 만약 23절과 24절이 이어지는 기록이라면 성벽 역사가 그쳐서라고 말했어야 하고, 또 그러면 질문자님이 의아해하신 대로 “다리오 제 이년 까지"라는 설명은 완전한 오류가 됩니다.
성읍과 성곽의 재건과 성전 재건은 별개의 역사지만 저자 에스라는 영적으로 봐서 하나님의 일을 동일하게 훼방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사단의 세력이 집요하게 사사건건 물고 늘어진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아무리 그래도 하나님의 섭리와 권능은 훨씬 크기에 그 어떤 방해도 물리치고 승리한다는 점을 더 강조하려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서 성전 재건 공사를 이루기 위해 당신의 뜻과 계획을 선포할 당신께서 예비하신 선지자들을 보냈다고 말합니다.(5:1,2) 또 중간에 성전 공사 방해 공작이 있었으나(3,4절) “하나님이 유다 장로들을 돌아보셨으므로 저희가 능히 역사를 폐하게 못했다”(5절)고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재건 공사가 중단 된 것은 사마리아 인의 방해 공작도 있었지만 처음 스룹바벨과 함께 일차 귀환하였을 때의 열정이 식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아직 아니라고 스스로 판단한 것입니다.(학1:2)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책망하여서 16년간 중단 되었던 성전재건을 다시 재개하라고 선지자를 보낸 것입니다.(스5:1) 실제로 학개의 예언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와 백성들에게 열정을 다시 불러 일으켰고 선정재건 공사를 재개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학1:14)
두 사람의 아닥사스다 왕?
둘째 질문은 4장과 7장에 나오는 아닥사스다 왕이 동일인물인지 여부였습니다. 아닥사스다라는 명칭을 가진 왕이 세 명이 있었고 성경이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동일인물 아닥사스다 1세로로 봅니다. 그는 아하수에로 왕에 이어서 BC 464-424(이후 BC 생략) 41년 동안 재임했습니다.
세밀한 구분이 없는 까닭은 우선 저작 당시의 독자로선 구태여 그러지 않아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성경은 사건보다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것이기에 그런 세부적인 명칭, 특별히 이방 족속의 경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이름 대신에 왕이라는 명칭만으로 대신할 때도 많듯이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시에 최우선적 초점을 맞추어서 읽고 공부해야 합니다.
“이 일 후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저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스7:`1)
여기서 이 일은 성전 완공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항상 같이 비교하면서 읽어야 하며 무엇보다 성벽재건과 성전재건을 혼동하면 안 됩니다. 또 바벨론 포로귀환이 세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는 사실도 반드시 기억하셔야 합니다.
성전재건은 스룹바벨 지휘하의 일차포로귀환(537)이 이뤄진 고레스 왕 때(536)에 시작해서 다리오 왕 6년인 516에 완성됩니다. 다리오 왕2년(520)에 다시 재개할 때까지 16년간의 중단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성전을 두고 스룹바벨의 제 2성전(신축이 아니라 재건한 것임)이라고 합니다.(솔로몬이 지은 것이 제 1성전, 헤롯 대왕은 3성전이고 각자의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제2성전이 완공되고 봉헌제사도 드렸습니다.(6:13-18) 1차로 귀환한 포로들이 새롭게 봉헌한 성전에서 감격의 유월절 제사도 드렸습니다.(6:19-22) 그런 일련의 일들은 물론 다리오 왕 때(520)입니다. 그 후 한참이 지난 아닥사스다 왕 때에 학사 에스라의 인솔로 2차 포로 귀환이(458) 일어나는데 7장은 이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페르샤 제국의 왕의 족보는 고레스(559-530), 캄비세스(529-523), 수메르디스(523-522), 다리오(522-486), 아하수에로(486-464), 아닥사스다(464-424)로 이어집니다. 7장에서 말하는 아닥사스다 1세는 제 6대 왕입니다. (년대는 학자에 따라 1-2년 정도 오차가 있음)
에스라는 그 아닥사스다 왕 칠년(458)에 일종의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위해서 이차로 귀환한 것입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7:10) 말하자면 재건된 성전에서 올바르게 예배를 드리며 율법을 가르쳐 준행하게끔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과 느비딤 사람(이스라엘 지파가 아니지만 공동체에 속해 비천한 일을 담당한 족속)들과 함께 귀환한 것입니다.(7:7) 또 아닥사스다 왕도 에스라에게 “네 하나님의 전에서 섬기는 일을 위하여 네게 준 기명은 예루살렘 하나님 앞에 드리고 그 외에도 네 하나님의 전에 쓰일 것이 있어서 네가 드리고자 하거든 무엇이든지 왕의 내탕고에서 취하여 드릴지니라.”(7:19,20)는 특혜를 허락한 것입니다.
성벽 재건은 성전 완공한 후에 바로 시작되었겠지만 본격적인 방해는 아하수에로 왕이 즉위할 때부터 시작해서(4:6 486년), 아닥사스다 왕의 재위 내내 이어졌습니다. 물론 성벽 재건 공사도 중간에 중지된 적이 있습니다.(느1:1-3) 그래서 느헤미야에 의한 3차 포로귀환이(444년 아닥사스다 왕 재위 중에) 이뤄졌고, 느헤미야서의 기록대로 공사 재개 52일 만에 완공된 것입니다.(느6:15, 444년)
6/24/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