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27장 28-29절의 정확한 뜻은?
[질문]
“어떤 사람이 자기 소유 중에서 오직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모든 것은 사람이든지 가축이든지 기업의 밭이든지 팔지도 못하고 무르지도 못하나니 바친 것은 다 여호와께 지극히 거룩함이며 온전히 바쳐진 그 사람은 다시 무르지 못하나니 반드시 죽일지니라.”(개역개정판)
“사람이 자기에게 있는 것 가운데서, 어떤 것을 주께 바쳐 그것이 가장 거룩한 것이 되었을 때에는, 사람이든 짐승이든 또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가문에 속한 밭이든, 그것들을 팔거나 무르거나 할 수 없다. 그것들은 이미 주께 가장 거룩한 것으로 모두 바친 것이기 때문이다. 주께 바친 사람도 다시 무를 수 없다. 그는 반드시 죽여야 한다.”(표준새번역)
상기에서 온전히 바쳐진 사람이란 어떤 자이며, 반드시 죽여야 한다는데 무르려면 죽여야 된다는 건지, 절대로 물을 수 없다는 뜻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답변]
아브라함과 인간 번제물
먼저 아셔야 할 것은 성경은 어떤 이유에서건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절대로 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우르라는 지명의 뜻이 불(火)이듯이, 바벨론 지역에선 인간을 산 채로 불에 태워 자기들 우상 신에게 바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가나안으로 인도하신 것은 그런 사악한 죄악이 성행하는 지역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아브라함 말년에 외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명한 데는 훨씬 깊고도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창22장) 잘 아시는 대로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당신께서 받으실 “여호와 이레”의 어린 양 제물을 당신께서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나중에 골고다 언덕이 된 그곳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죽음으로 죄인을 구원하실 것을 예표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성취로 주셨고 그 언약을 승계할 유일한 후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은 약속의 씨인 이삭마저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죽음으로만 죄 값을 치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어린 양을 준비해 놓으심으로써 당신의 진노 아래 있던 죄인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 긍휼로 구원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으로선 자기 생명만큼 소중했을 이삭보다 과연 하나님을 더 귀하게 여기는지 그의 믿음을 시험하려는 뜻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것인지 물은 것입니다. 온갖 인생의 풍파를 겪고 또 여러 번 도덕적 종교적으로 실패하면서 완전히 낮아진 말년에서야 통과할 수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썩어 없어질 이 땅에 미련을 두지 말고 영원한 본향인 하늘만 사모하라는 뜻입니다.(히11:16)
나아가 혹시라도 그에게 남아 있을지 모르는 인간제물의식 같은 우상숭배시절의 잔재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고려도 포함된 것입니다. 인간제물은 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정성과 열성을 의미합니다. 또 그렇게 최고를 바치는 이유는 신으로부터 그에 비례하는 보상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모든 우상 종교는 신과 Give-and-take의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만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보듯이 하나님 쪽에서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인간이 그분에게 바칠 것은 오직 하나, 그분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완전히 낮아진 순수한 믿음입니다. 믿음의 조상이 될 그가 반드시 마지막으로 통과해야만 했던 시험이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당장 본문이 포함된 레위기에서도 인간 제물을 아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너는 결단코 자녀를 몰렉에게 주어 불로 통과케 말아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18:21)
"너는 스스로 삼가서 네 앞에서 멸망한 그들의 자취를 밟아 올무에 들지 말라 또 그들의 신을 탐구하여 이르기를 이 민족들은 그 신들을 어떻게 위하였는고 나도 그와 같이 하겠다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신12:30,31) 신명기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만약 그런 일을 행하면 가나안 족속이 받았던 것과 같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7장 서두에서도 그 사상이 명확히 드러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2절) 사람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서원했지만 돈으로 환산해서 바치라고 합니다. 그 서원을 혹시 못 지켜도 사람 자체를 죽여서 바칠 수는 결코 없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드림과 바침의 차이
살펴본 대로 레27:2에선 자기 생명을 제물로 바친다는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질문하신 구절(28,29절)에서의 바침과 그 앞 26절까지의 바침의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즉 여호와께 바침에는 두 종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26절까지의 바침은 자발적으로 서원하여서 감사와 기쁨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네데르'인데 우리말로도 그런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 "드린다"(2, 9, 14,절 등)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2절의 사람의 드림은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기로 서원하거나, 나실인 서약(민6장)을 하는 것 등을 말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네가 서원치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니라 마는 네 입에서 낸 것은 그대로 실행하기를 주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신22:21-23)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은 죄가 아니지만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여호와의 전에 드릴 수 있는 서원의 대상은 레 27장의 설명대로 주로 사람, 가축, 가옥, 토지 등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서원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는 그에 따른 속죄제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본문(레 27:2-8)의 경우는, 여호와의 전을 섬기기로 서원한 모두가 성소의 일을 직접 담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신에 속전(贖錢)을 바치도록 한 규정입니다. 속전은 사람의 노동력에(자기가 하루 일하여 통상적으로 벌 수 있는 돈) 근거하여 정했기에 나이와 성별에 따라 차등을 둔 것입니다.
반면에 28,29절의 바침은 하나님께서 당신께 바치도록, 율법의 규정상 혹은 직접 명령하심으로써, 다른 것과 구별해서 강제적으로 떼어놓은 것을 뜻합니다. 사람이 당신께 죄를 지었거나, 부정한 물건이기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반드시 없애거나 진멸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어 ‘헤렘’도 그런 의미를 뜻하며, 마찬가지로 우리말 번역은 ‘드리는’ 것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바친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28,29절에 그런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 ‘아주 바친’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완전히 떼어 놓았기에 사람이 결코 물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
따라서 28절의 없애야할 대상물은 주로 우상숭배자나 그들의 재산, 혹은 신성모독자나 그 들의 재산입니다. 사람과 생축은 당연히 죽여 없애야 했습니다. 토지는 버려두어 황무지가 되게 했습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한 후에는 결코 그곳에 성읍을 짓지 말라고 명하신 대로 입니다.(수6:26) 29절의 아주 바친 사람의 예로는 진멸할 대상이었던 가나안 족속(수6:17)이나, 미스바에 모이라는 결의를 반대하고 모이지 않아 죽임을 당한 야베스 길르앗 주민(삿21:9,10) 등을 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인간이 결코 취소시킬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 아주 바쳐진 물건이나 사람을 인간이 도로 물리거나 중간에 착복하면 오히려 그 자가 하나님께 벌을 받게 됩니다..(수6:18) 여리고 성에선 승리했지만 아이 성에서 패배했던 원인이 아간이 여리고 성의 물건 중 일부를 빼돌렸기 때문이었고 당연히 그는 죽음의 벌을 받았습니다.(수7장)
거룩의 의미
주목해야 할 사항은 성경은 이처럼 부정하거나 죄를 지은 대상조차 ‘거룩하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님께서도 아마 이런 표현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거룩(holy)의 원래 의미는 세상의 것과 완전히 구별되는 것을 뜻합니다. 단순히 도덕적 선함이나 종교적 경건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구별되어졌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피조물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시기에 하나님은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도 도무지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기에 거룩한 속성 중의 일부가 될 뿐입니다. 요컨대 거룩은 오직 하나님께만 적용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그분께 아주(완전히) 바쳐진 물건이나 사람도 바쳐지지 않은 다른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 되었기에 거룩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속했다고 무조건 거룩해졌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하나님께 선한 목적으로 드려진 것이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저주를 받아 당신께 바쳐져 반드시 진멸해야 할 대상도 거룩한 것입니다.
신자도 이런 맥락에서 세상 사람과 완전히 구별된 존재이기에 신약 성경에서 성도(聖徒, saints)라고 불립니다.(고전1:2) 우리는 도무지 거룩하지 않기에 성자라고 불릴 자격은 단 한 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하나님의 불림을 받아 그분의 품 안에 따로 떼어 놓아졌습니다. 구약식으로 따지면 평생을 두고 일종의 나실인의 언약에 참여된 셈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얼마나 고귀한 신분인지, 동시에 그리스도의 대사가 되어서 세상 앞에 서야할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지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실제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만나도 우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면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요컨대 단순히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도"라는 것입니다.
이런 ‘드림’과 ‘바침’의 차이는 물론, 두 가지 ‘거룩’의 의미를 정확히 분별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모세오경이나 구약성경을 읽을 때에도 이 둘 중에 어떤 단어가 쓰였는지, 또 거룩이 어떤 의미로 적용되었는지 헤아리면서 읽으면 성경의 더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6/6/2011
이건 마치 사막길을 걷다 포도송이를 만난 느낌이랄까요.. 감동 또 감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