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탄생에 대해 궁금합니다.
[질문]
셋째로, 죄의 탄생에 대하여 궁금합니다. 창세기의 처음부터 등장하는 죄,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던 죄 같은데 왜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죄가 있었을까요? 그 당시에는 하나님만이 존재하시던 시기인데 왜 죄란 것도 같이 공존해서 있었을까요? 인간이 태어나기 전부터 죄란 것이 필요(?)했던 것인지요?
[답변]
많은 신자들이 궁금해 하면서도 제대로 정리하고 있지 못하는 주제를 질문해 주셨습니다. 인간이 더 강해지려면 환난을 통과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죄도 인간을 더 선하게 만들려고 하나님이 의도적으로 조성한 것처럼 여기는 신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아니면 사탄이 아담을 유혹해서 범죄케 했으니 전적으로 사탄의 책임으로 떠넘기려는 경향도 보입니다.
질문자님이 예리하게 지적한 것처럼 가장 먼저 주지해야 할 사항은 하나님은 절대 죄와 공존(共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진선미(眞善美)에서 완벽하며 온전하게 거룩합니다. 어떤 추하고 더럽고 악한 것과도 티끌만큼도 연관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독생자라도 죽이시어 인류의 죄 값을 치르게 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죄를 저주합니다. 한마디로 죄는 그분과는 전혀 별개로 세상에 들어온 것입니다.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는 엄격히 말해 죄가 아니라 악의 세력 즉, 사탄이 존재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먼저 하늘의 영적 존재인 천사들을 창조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가장 높은 천사장이 스스로를 너무 높이고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사14:12-20, 겔28:11-19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벌을 받아 천국에서 추방되었는데, 그 때 자기를 추종하는 악한 천사들을 데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악한 영적 세력(evil spirits)들의 우두머리가 마귀 혹은 사탄(satan)이며, 그 졸개들을 귀신 또는 악령(demons)이라 부릅니다. 참고로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혹은 사람이 죽어서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아름답고 완벽하게 조성하신 후에, 당신의 형상을 닮도록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했습니다. 인간은 당신을 대신해서 이 땅을 다스릴 존재였습니다.(창1:28, 시편 8편)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기에 그분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또 그런 교통에 의거해 스스로 판단 결정 시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심어주었습니다. 인간의 지배를 받아야 할 다른 피조물은 갖지 못한 인간만의 특성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인간을 정해진 프로그램대로만 움직이는 로봇이나, 생존과 종족보존만을 위한 한정된 지정의(본능)를 소지한 동물처럼 만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순전히 자발적으로 또 기꺼이 당신과 교제하며 그 뜻에 순종하여 이 땅을 아름답고 풍성하게 가꾸라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원래부터 하나님을 싫어하고 그분 대신에 세상을 통치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존재였습니다. 존재하는 목적 자체가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어떻게든 떼어놓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하나님과 즐겁게 교제하는 인간을 가만 두고 볼 수 없었습니다. 아담에게 하나님이 선악과를 금하는 명령을 내린 까닭이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까 스스로 두렵고 싫었기 때문이라고 속삭였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좋아하는 마음을 불평하거나 의심을 품는 마음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러자 아시는 대로 선악과를 따먹고 불순종하는 죄를 지었습니다.
사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영적 존재로 그 활동 영역은 영적 차원에 머뭅니다. 물질계에 직접 자기를 드러내고 악을 행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대체물을 이용합니다. 때로 기괴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아도 사탄의 실체는 아닙니다. 인간을 속이는 짓일 뿐입니다. 에덴에서도 뱀을 이용해서 인간을 속인 것이지 뱀 자체가 사탄은 아니듯이 말입니다.
다른 말로 사탄은 악으로만 뭉쳐진 존재로서 영계에서 활동하기에 죄가 시작된 출발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된 근본책임이 그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아담은 자유의지를 갖고 있었기에 오직 하나님만 신뢰하면서 얼마든지 사탄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죄의 탄생은 인간에 의한 것입니다.
흔히들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서 죄가 들어왔다고 계명을 위반한 행동 자체를 죄로 보지만 죄의 본질은 훨씬 더 심각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게 된 것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불순종하겠다는 결심이 이미 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불순종을 죄의 본질로 보지만 여기서도 한 칸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 지워버렸기에 불순종하겠다는 결심이 섰다는 뜻입니다. 불순종 이전에 하나님을 등진 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이런 맥락은 사탄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사탄을 비롯한 천사들 모두에게도 당연히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성경문답 사이트 #117 “왜 천사에게도 자유의지를 주었나요?”의 글을 참조 바람) 하나님은 결코 규칙을 제정해서 강제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탄이 하나님을 자기 마음에서 지움으로써 불순종을 넘어 거역 대적하게 된 것입니다.
요컨대 죄의 궁극적인 본질은 하나님과의 분리(分離)라는 것입니다. 모든 윤리적 죄악도 엄밀히 따지면 바로 그분을 외면, 거부, 대적할 때에 생기는 것입니다. 아담도 사탄의 유혹에 빠져 잠시나마 의도적으로 그분을 마음에서 지워버리자 범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되자 자신과도 분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자연인에게는 자아를 찾는 것이 평생의 과제가 되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찾아서 그 안에서 안식을 찾기 전에는 자아 발견 혹은 실현은 전혀 불가능한데도 그럽니다. 헛되고 헛된 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는 또 인간으로 이웃과도(진정한 사랑의 실종), 피조세계와도(인간의 안락만 목적으로 무분별한 자연정복) 분리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너무나 명백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죄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분리라면 그 근원을 하나님께 돌릴 수는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 대신에 이 땅을 다스리게 하고 또 그런 은혜와 복락을 누린 인간의 찬양과 경배를 받기 위해 창조했습니다. 하나님 쪽에서 당신과 교통할 대상인 인간과의 분리란, 인간적 표현으로 하자면, 꿈에도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죄의 기원은 전적으로 사탄의 유혹에 빠진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할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간혹 만약 아담이 사탄의 유혹을 물리침으로써 지금껏 죄악이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어떤 세상이 되었을지 호기심을 갖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세상이 선으로만 가득 차면 아무런 재미가 없을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악이 있어야만 선을 선으로 알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서두에 잠시 언급한대로 인간의 도덕적 발전을 위해서 하나님이 고의로 악을 만들었다는 가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죄의 본질만 고찰해 보아도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음은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만약 아담이 끝까지 순종하였더라면 세상은 선으로 가득 차서 정말로 더 풍성하고 살만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선을 선으로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선을 행할수록 더 큰 선을 행하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차게 것입니다. 절대 무료하지도 않고 날마다 더 새롭고 신나고 즐거울 것입니다. 오늘날 죄의 본성이 생생히 남아 있는 우리로선 그 아름답고 은혜로운 상태를 도무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비유컨대 천국은 분명 그러한 곳일진대 우리로선 과연 어떨지 모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의 뜻은 인간더러 이 땅을 천국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끝까지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고 순종했다면 말입니다. 다른 말로 만약 아담이 그랬다면 죄가 이 땅에 들어올 여지는 전혀 없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탄생이 과연 누구의 책임이 됩니까?
요컨대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과 분리할 뜻이 전혀 없었다는 이유로, 또 사탄은 아담이 그의 유혹을 거절했다면 죄는 얼마든지 들어오지 않을 수 있었다는 이유로, 죄에 대한 책임이 면제됩니다. 아무리 주인이 물방울 다이아몬드 반지를 철제금고가 아닌 화장대 위에 방치해 놓았다 해도 또 곁에서 자꾸 갖고 가자고 부추긴 악한 친구가 있었다 해도, 결국은 훔친 자가 죄를 지은 것이지 주인과 친구의 잘못이 아니듯이 말입니다.
10/28/2011
천국처럼 세상을 만들라시며 사람을 만드시며 기뻐하시고 좋아하셨을 우리 아버지의 맘을 더더욱 섬세히, 풍성히 말씀을 통해 배워나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