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3/3) 하나님의 방식으로만 연애해야 하는가요?

조회 수 2270 추천 수 18 2013.08.20 19:28:52
(질문 3/3) 하나님의 방식으로만 연애해야 하는가요?


[질문]


마지막으로, 배우자를 선택할 때, 위에서 질문 드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일 수 있는데요, 연애를 하는 것조차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형제, 자매를 선택해야 하나요?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을 무시하는 분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형제, 자매가 서로 호감이 생겨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를 할 수 있는 것인데, 일반적인 연애방식, 즉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식사, 영화 등으로 만나면서 교제하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요?

아니면 하나님이 언젠가는 배우자를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때를 마냥 기다리며, 누구와도 연애를 하지 않으며, 교회 어른 분들이 소개시켜주는 대로 만나고 결혼해야 하는 건가요? 특히나 목회자의 길을 갈 사람들은 반드시 이렇게 만나야 한다며 주장하시는 분들이 많아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답변]

전혀 응답이 없는 것도 응답이다.


이 질문에도 불합리한 함의(含意)가 숨겨져 있습니다. 일반적인 연애방식, 즉 데이트 신청을 하고, 식사, 영화 등으로 만나면서 교제하는 것이 불신자에겐 잘못이 아니지만 신자에겐 잘못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전제가 깔렸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하나님의 확실한 음성을 듣고서 상대를 골라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미 1번 답변에서 다뤘습니다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식에 대한 해석이 너무 제한적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비상한 방식으로만 드러난다고 보는 것입니다. 나아가 어떤 일을 하든 기도한 주제에 대한 확정적인 답변을 얻고 난 후에야 시행하라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그 일에 대해서 시행은 물론 스스로 분석, 판단, 계획, 결정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해 일상적 모습으로는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신자에게 계시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됩니다. 또 기도의 응답 없이 시행하는 것은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상한 방식보다 통상적인 모습으로 역사하는 일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또 기도가 자기 뜻대로 아닌 방식으로 응답이 되는 경우가 더 많으며, 심지어 응답이 안 되는 것도 응답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자기가 기도한 것과는 다른 배우자를 강권적으로 맺어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기도한대로의 배우자만 기다리다가간 평생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못할 수도 있습니다. 홍수에 지붕 위로 피신한 사람의 예화에서 보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것도 응답이라는 것은 신자가 구하는 내용이 잘못 되었거나 하나님의 뜻이 그와는 전혀 다름을 깨달으라는 것이 그 응답의 내용입니다.

감정은 아주 좋은 하나님의 선물

나아가 질문자님도 동의하듯이 감정은 아주 좋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특별히 연애나 결혼에선 더더욱 그러합니다. 사랑을 더 사랑답게 온전하고 순수하며 열정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사랑하는 자를 향해 더 깊고도 충만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죄가 들어와서 인간의 지정의가 왜곡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잘못 분출, 판단, 해석, 적용하는 것이 문제이지 감정 자체는 절대로 악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또한 감정이 풍부한 분이며 감정을 만드신 분입니다.([영성] 분류의 “감정을 살려라” 사이트의 글들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은 신자에게 성령이 내주하시는 목적 중에 하나도 신자가 자신의 감정을 왜곡되게 표출, 해석, 적용할 때에 그 영이 눌리게끔 해서 미리 경고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본 주제와 연결하면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결혼(연애) 상대라면 교제하는 중에 기쁨, 평강, 자유, 안식, 확신 등의 감정으로 채워주십니다. 물론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죄의 본성이 남아 있어 불완전한지라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초조하고 염려되며 도무지 결혼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 않게 해주십니다. 신자의 감정을 통해 성령님이 주시는 영적 메시지가 의외로 또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어떤 상대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다면 반드시 신자의 일상생활 가운데 그런 사실을 알게끔 해주십니다. 주위 사람과의 교통, 일어나는 사건의 추이, 교제 상대와의 대화와 관계, 매일 큐티하는 성경 구절, 기도 가운데 들리는 미세한 음성, 등등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알게 해주는 방식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래서 신자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며 또 자신이 기도한 내용이 어떤 식으로 응답되는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접목해서 그분의 뜻을 잘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컨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 것으로 응답한다는 진리도, 평생을 기다려도 도무지 응답이 없었기에 마지막에서야 알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훨씬 전에, 신자의 시간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 기도가 틀렸거나 하나님 뜻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주십니다. 전개되어져 가는 상황이 기도한 것과 전혀 엉뚱하거나, 성경으로 하나님의 더 깊은 다른 뜻을 깨닫게 해주는 방식으로 이 기도는 응답하지 않을 것을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자매에게 이끌리는 감정이 생겨도 감정은 신앙을 오염시키는 잘못된 것이므로 무시하겠다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물론 감정도 1번 답변에서 말한 대로 그 기원이 하나님, 사탄, 자신 셋일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하나님이 심어주시는 선한 감정일 확률이 1/3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쉬지 말고 기도하면서 앞으로의 추이를, 자신의 감정까지 포함해 세밀히 관찰하여 그분의 뜻을 분별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보다 사람 안에 성(聖)과 속(俗)의 구분이 있다.  

감정적으로 이끌리는 자녀에게 데이트 신청하고 놀이 공원, 극장은 물론, 댄스 클럽에도 가면서 일반적 방식으로 교제해도 됩니다. 한국적 상황에서 댄스클럽이 불륜을 조장하니까 문제이지, 얼마든지 건전한 댄스 교제도 있습니다. 성(聖)과 속(俗)의 구분이 장소, 사람, 일의 종류에 따라 구별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일을 하든 분명하게 악한 일이 아닌 다음에는 동기와 목적과 방식과 결과 등이 선하면 됩니다. 반드시 종교적인 경건한 색채가 드러나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물론 신자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살전5:22) 그러나 사람이 거룩해지는 것이 먼저이지 그렇게 한다고 사람이 꼭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거룩한 사람은 스스로 악을 버리며, 또 진정으로 거룩하게 되려는 소망을 갖고 그렇게 하는 자만 하나님이 거룩해지게 해줍니다. 예수님을 보배로 간직한 신자는 어떤 어둠 속에서도 그분의 빛으로 생생히 빛납니다. 주위 어둠들에게 주님의 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세속적 방식이 세속적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자는 세속의 방식마저 거룩하게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누차 강조하지만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어져 있고, 그 가치관을 더 온전하게 하기 위해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나가며,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그분의 뜻과 일치 되고 또 현실의 삶에 잘 반영되게 해달라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실제로 하나님이 자신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인도하는지 통찰력 있게 살펴봐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에 이끌려 데이트 신청을 하여서 일반적 방식으로 연애를 하고 있는 상대와의 만남에서도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로 선하고도 순수한 감정이 지속 내지 확장되는 것이 확인된다면 그 만남을 귀하게 여기고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  

신자의 연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도 자기처럼 하나님 중심의 가치관으로 바뀌어져 있는지부터 점검하는 것입니다. 연애상대로 그칠 것이 아니라 결혼상대가 될 수 있는지 살피라는 것입니다. 그 둘을 구분해서 행동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2번 답변에서 밝힌 대로 신자의 모든 연애는 당연히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쨌든 누구라도 만나야 상대가 그런 가치관의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뜻입니다.  

꼭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서야 연애를 하겠다고 하면 자신이 기도한 대로의 여성이 나타나길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누군가 그에 맞는 사람을 소개해 주어야만 합니다. 물론 그렇게 되어서 온전한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과 소개해주는 사람의 판단이 100% 옳다는 법도 없으며, 사람의 마음과 됨됨이를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결코 온전한 판단을 하지 못합니다.

물론 실패할 가능성을 낮추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나름대로 기도 응답 받아서 혹은 주위에 그런 적합 한 자를 소개 받았던 사후에 적합하지 않은 상대임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완전한 인간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자신의 감정이 끌리던, 이성적으로 판단하든 교제 하고 싶은 상대가 나타나면 일단 데이트 신청을 하고 만나야 합니다. 단 진정으로 자신이 바라는 바는 물론 하나님의의 마음에 합한 배우자를 만나려고 소원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소원하고 기도하는 자를 나쁜 길로 인도하실 리는 없습니다. 혹시 판단 착오나 자신의 잘못된 인간적 정욕이 앞서도 그분이 깨우쳐주시거나, 그러지 못하면 강권적으로라도 바로 잡아주십니다.

신학생의 배우자감

목회자의 길을 걸어갈 자의 결혼은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것은 옳습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이 자기를 전임사역자로 부르셨다는 음성(소명)을 분명하게 들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목회자의 아내도 전임사역자입니다. 따라서 아내도 사모로서 소명을 받아야 합니다. 본인이 분명하게 들은 음성이 없더라도, 최소한 목회자의 아내가 되어 여러모로 희생과 수고가 따르는 외롭고 고달픈 사역자의 길을 감수하며 기꺼이 함께 걸어가겠다는 자발적인 동의, 결심, 헌신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배우자를 만나도록 진정으로 기도하며 주위를 살펴봐야 하고 필요하면 소개도 받아야 합니다.  

만약에 그런 상대가 도무지 없는데, 혹은 그런 상대가 나타나기 전에 어떤 여성에게 너무나 감정이 이끌린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녀를 목회자의 아내감이 되도록 변화시키려는 소망을 갖고 만나야 하고 실제로 그렇게 노력하면 됩니다. 그녀에게도 단순히 사랑하고 또 결혼하고 싶다는 소원을 넘어 함께 사역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로 그 상대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모감이라면 반드시 선한 응답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오랜 기간 최선을 다해 노력했는데도 사모로 헌신은커녕 아예 동의도 해주지 않고,  계속해서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고집하면 그만 만나자고 하는 경우도 생길 것입니다. 그럼 자기 믿음대로 판단, 결정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모 감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그 만남을 중지할 것인지, 그와 달리 정말 너무나 사랑하기에 계속해서 만날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아름답게 헤어진 후에 다른 사모감이 나타나도록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지켜보는 것입니다. 후자는 자신의 목회자 소명을 다시 진지하게 검토해보고 목자의 길과 그녀와 결혼 둘 중 하나를 택하면 됩니다.

만약 어떤 신학생이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것이 정말 확실하고 본인도 그에 걸맞게 반응  헌신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1) 미리 예비해놓은 훌륭한 사모감을 처음부터 순적하게 만나게 해주시거나, 2) 신학생 스스로 택한 상대를 그렇게 변화시켜 주시거나, 3) 그렇지 않으면 그녀와 헤어지더라도 적합한 다른 사모감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이 셋 중에 하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나아가 중도에 목회자 길을 포기해도 즉, 하나님께 드린 서약을 어겼다고 당장 징계 받지 않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도 아닙니다.([성경문답] 사이트의 “서원기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1/2) -2012/04/12”와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어기면 어떻게 되나요? - 2010/03/07”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목회자를 통해서만 당신의 영광을 취하는 법은 없기 때문입니다. 또 본인의 믿음 자체를 포기한 것이 아닌데다 그 후에  일반 직업을 갖더라도 얼마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실화(實話)를 인용해보겠습니다. 목사님의 아들과 딸이 서로 교제를 했습니다. 둘 다 부모님들이 너무 힘들게 사는 것을 체험했기에 각자가 절대로 목회자나 사모의 길을 안 가겠다는 전제를 하고 사귀었고 결혼까지 했습니다. 남편은 미국의 최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아내도 고등학교 교사를 하며 남부럽지 않게 자녀를 키우며 살았습니다.

그러다 남편이 30대 후반에 하나님의 종이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지만 그 부르심이 너무 강해 결국 신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의 결혼 전 약속이 걸려서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아내를 2 년이나 설득하며 기다렸습니다. 아내의 자발적이고도 기꺼운 동의와 헌신 없이 혼자 사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때 아내가 동의해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 것인가 제가 물어봤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하다면 하나님이 아내의 마음을 안 바꿔줄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는 것이 목사님의 첫 번 대답이었습니다. 또 끝까지 아내가 거절하면 자기가 받은 소명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으로 알고 포기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 목사님의 답변이 자기가 들은 음성이 하나님의 것이 틀림없기에 그분께서 아내의 마음을 포함해 제반 여건을 바꿔주실 것이라고 믿었다는 데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아내가 전임 사역자로 헌신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강요하지도 않을 것이며 또 자기도 그 길을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만나 교제를 했는데 사모의 길로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에 자신의 믿음대로 하라는 것이 바로 이런 뜻입니다. 사모로 동의하지 않으면 사랑과 소명 중에 어느 것을 포기할 것인지 확실히 정하고 교제하라는 것입니다. 도무지 사랑을 포기할 수 없다면 주의 길을 포기해도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목회자의 길을 가지 않아도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당신의 뜻을 실현하는 일에 두 사람을 들어 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더 이상 축소시키지 말라.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롬14:20-23)

상기 구절이 같은 맥락의 지난 세 질문에 대한 성경적 해답이 될 것입니다. 우상에 제물로 바쳐진 고기를 먹어야하는지 여부에 관해 논의하면서 바울이 내린 결론입니다. 우선 우상 신들은 전혀 존재조차 하지 않으니까 그에 바쳐진 고기라도 실제로 더렵혀진 것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그런 진리를 모르는 신자가 바울이 그러는 것을 보고 귀신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긴다고 상처 받을 수 있다면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어도 되는 것이 영적으로는 옳은 원리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로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된다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식물”이라는 단어에 현실의 일반적인 일 모두를 대입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처음 예수를 믿어 구원받는 일이 아닌 이상, 또 예수 믿은 후에 의도적으로 악한 일을 하거나,  자기 안락만 구하는 잘못된 정욕이나, 인간적 의만 높이려는 교만이 아닌 이상, 무엇이든 자기 믿는바 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기독교적 가치관과 동의어입니다.

본 주제에 연관시키면 사모감이 확실하다는 하나님 응답을 받고서야 혹은 그런 여자를 소개 받아야만 연애하겠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하면 됩니다. 아니면 통상적 감정이 이끌리는 대로 일단 데이트해도 하나님이 선하게 역사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오묘하고도 거룩하며 완벽한 역사는 두 경우에 다 일어납니다.

그러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해보는 것은 아닙니다. 누가 봐도 분명히 잘못된 길로 가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바라거나, 자기 기도하는 대로 응답해주는 능력이 있는지만 확인하려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무엇이든 기도한 대로 응답된다고 믿고 기도하는 것이, 그분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언제 어떤 형편에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선한 뜻이 드러나며 자기가 그 선한 일에 쓰임 받겠다고 소원하며 기도하는 것은 그분의 일에 동역자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관건은 자기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며 당신의 뜻대로 순종하고 싶은 신자의 열망과 믿음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런 소망과 확신 없이는 종교적으로 아무리 경건하고 의로운 일을 해도 오히려 죄라고 하지 않습니까? 또 그래서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감정에 끌리어 연애하는 일로 영적 부담이 조금이라도 생긴다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반대로 그렇게 해도 하나님이 반드시 선하게 역사해 주리라 믿는다면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여기서도 먹고 마시는 것은 현실의 모든 일입니다. 역으로 종교적 영적 일도 당연히 포함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일의 종류나 성격으로 성과 속이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하나님이 신자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신자 자신이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유지 성숙시켜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신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먼저 바뀌는 것입니다. 연애, 결혼, 직업 등은 물로 기도와 믿음도 그 일을 위한 수단입니다. 수단에 묶이어 목적을 놓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됩니다.

목적과 수단이 다 선하면 자기 이성으로 분석 판단하고 자유롭게 결정 시행하면 됩니다. 질문자께서 세 질문을 통해 의아해하신 내용들 전부가 그런 수단들에 관한 것이었으며 또 다들 선한 것이었습니다. 악한 것 하나 없었습니다. 예컨대 라멕처럼 칼로 위협해 남의 아내를 빼앗아 여러 명의 아내를 두겠다는 것도 아니요, 헤롯 안티바스처럼 부정한 결혼을 하려는 것도 아니며, 롯처럼 근친상간을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누구나 택하는 아주 일반적이고도 선한 방식의 연애와 결혼입니다.

그런 일반적인 방안들도 다 하나님이 마련해놓으신 제도요 은총입니다. 신자의 책임은 그런 일반은총에 특별은총을 더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은총을 받은 사람끼리만 모여서 계속해서 특별한 은총만 제한적으로 누리라는 명령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것은 종교놀음이지 신앙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껏 종교는 흘러넘쳤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삶에서 믿음으로 자기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그런 신자들이, 특별히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는 목자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광대하시고 오묘하시며 신비로우며 절대적으로 거룩하고 완벽합니다. 그분을 제대로 알아 나가면서 평생을 두고 모든 것을 헌신하며 그분을 위해 살고 싶다면 자신의 믿음대로 무엇이든 행하십시오. 단 이성적 판단 미스가 생기거나, 사탄과 자기 본성의 시험에 넘어가는 일이 안 생기도록 항상 기도하고 말씀을 보면서 말입니다.

한마디로 신자와 교회가 하나님과 그분의 역사를 너무 축소시키는 오류를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무슨 일이든 선하다고 여기면 행하십시오. 율법적 하나님으로 묶어 두지 마십시오. 진리를 알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는 절대로 인간적 감정과 자랑과 교만에 오염된 방종으로 흐르지 않습니다. 평소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기에  마땅히 하나님의 거룩하고 완전한 뜻 안에서 즐겁고도 자유롭게 순종하는 자유입니다. 혹시라도 신자인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 그분이 반드시 합력해서 선으로 이끄심을 믿기에 전적으로 그분께 의탁하는 자유입니다. 그런 자유 안에서 연애하고 결혼하십시오.  

8/20/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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