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21장에서 난해한 두 가지 의문
[질문]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기브온 사람은 이스라엘 족속이 아니요 그들은 아모리 사람 중에서 남은 자라 이스라엘 족속들이 전에 그들에게 맹세하였거늘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그들을 죽이고자 하였더라 이에 왕이 기브온 사람을 불러 그들에게 물으니라 다윗이 그들에게 묻되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하니 기브온 사람이 그에게 대답하되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하니라 왕이 이르되 너희가 말하는 대로 시행하리라 그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를 학살하였고 또 우리를 멸하여 이스라엘 영토 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 사람을 우리에게 내주소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사울의 고을 기브아에서 우리가 그들을 여호와 앞에서 목매어 달겠나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내가 내주리라 하니라.” (사무엘하 21:1-6)
첫째로 왜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잘못으로 인하여 약속해 살려둔 기브온 사람들의 죽음에 직접 관련한 사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식들을 죽여 복수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걸까요? 하나님의 공의는 아비의 죄로 인하여는 자식이 죽지 않으며, 자식의 죄로 인하여는 아비가 죽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예외적인 경우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만 지금처럼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인과 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한 다수의 죽음은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됩니다.
이런 부분들은 자칫 고대 사회의 부족 간의 풍습이나 문화들로 인하여 갈등이 발생할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행하여졌던 관습에 따른 희생들이 하나님의 뜻처럼 포장된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 자체가 성경을 훼손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모욕하는 생각이라는 점에서 절대 인정할 수 없는 생각이라고 접어왔지만 ... 여전히 하나님의 공의와 성경의 죄에 대한 처벌이나 심판에 대한 일관적 기술을 고려할 때 그다지 납득이 되지는 않습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둘째로 하나님은 왜 이들을 전부 다시 묘에 안치할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기도를 들어주셨을까요? 하나님은 기브온 사람들에 대한 사울의 잘못으로 인하여 기도를 들으실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기브온 사람들에 대한 사울의 잘못을 그 자식들이 담당해야 하는 것이라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 그들이 죽었을 때 하나님은 응답하셔야 하는 걸 텐데 .... 하나님은 왜 그 아들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묘에 안장한 뒤에야 기도를 들으셨을까요?
저는 이해가 잘 안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사울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셨다는 것도 이해가 어렵지만 그들이 죽어야만 하는 공의의 이유가 있었다면 그것이 만족되었을 때 기도를 들으실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일이 다 마친 뒤에 다윗이 그들의 시신을 수습해서 안장까지 하는 예우와 배려를 다 갖춘 뒤에야 비로소 응답하셨는데 .... 리스바의 안타까운 모정을 보시고 그 응답을 늦추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어렵고 솔직히 이 사건 자체가 의문투성이 입니다.
왜 사울을 대신하여 그 자식들이 죽어야 했는지 의문이고, 기브온 사람들과 약속을 멋대로 한 건 여호수아 때 잘못인데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이 사울뿐 아니라 그 자식들에게까지 책임을 물으셨는지도 이해가 잘 안되며, 그 모든 일이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리스바의 안타까운 마음이 묻어나오는 기록이 다 기술 된 뒤 다윗이 그 일을 보고 안쓰러워 시신을 수습해 줬다는 기록까지 다 나온 뒤에 비로소 하나님이 그 모든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셨다는 듯이 응답하셨다는 것도 이해가 어렵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주권 안에서 계획 된 일임에 분명할 텐데 ... 어느 하나도 제게는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사건입니다. 도리어 ... 참 불경하고 몹쓸 생각이지만 다윗이 왕권의 안정을 위해 기브온 사람들을 핑계 삼아 사울의 자식들을 죽여 버리고, 리스바의 안타까운 행동에 대한 소식이 그 성읍에 퍼지자 그 시신을 수습하면서 자신의 자비로움을 보여줬던 통치행위에 대한 기록이 미화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어버린 게 아닐까 싶어집니다.
물론 이런 생각은 몹시 위험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무지 이 사건 자체에 대하여는 죄에 대한 연대책임이나 응답의 시기 등의 문제들이 의문투성이라 납득이 안 됩니다. 제가 이상한 건지 모르겠지만 ... 주석서들을 봐도 솔직히 납득이 잘 되지는 않는 사건이었습니다.
[답변]
성경본문 둘을 인용하였고 질문도 둘이지만 동일한 사건이라 함께 답변 드리겠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궁금해 하는 의문인데 마침 잘 질문하셨습니다. 성경이 아주 난해한 것 같아도 성경 전체를 앞뒤 연결해서 잘 살피고 특별히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과 이 땅을 다스리는 원리에 비추어 해석하면 해석의 돌파구가 열립니다. 요컨대 성경에서 답을 찾으면 됩니다.
- 대표성의 원리
우선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개인적으로보다 공동체적으로 심판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한 사람만 잘못한 것을 두고 연대책임을 묻거나, 아비가 공산당이면 아들도 사회활동을 못하게 만드는 연좌제 같은 성격의 형벌이 아닙니다.
대표성의 원리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셔야 합니다. 대표라는 것은 모두가 동일한 자격 조건 능력 신분이라는 것이 전제가 됩니다. 그래서 구성원들끼리의 결합은 상하주종의 계급공동체가 아니라 동일한 신분으로 서로 돕고 사랑하는 연합의 형태에 해당되는 벌입니다. 연합 공동체에선 대표 혹은 공동체 전체가 벌을 받을 수밖에 없고 가장 합당하고 공평한 방식입니다.
연합은 UN(국제연합)총회에서 강대국 약소국 구분 없이 한 표씩만 행사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고등학교 동기회 모임에도 회장은 돌아가면서 합니다. 능력과 신분에 차이가 없는 동질 동격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부재하는 세상의 모든 모임은 심지어 가정까지도 최고 능력자가 있고 나머지는 모두 그를 추종하는 형태입니다. 가정은 아비가, 회사는 사장이, 군대는 사령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도자가 시키는 대로 해서 부하가 잘못하면 부하는 벌을 받을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시킨 지도자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지만 원론적으로 따져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곳에는 공평과 정의도 함께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상하주종이 아닌 연합형태 공동체에서 대표가 벌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은 모두가 다 잘못했다는 점을 시인하는 셈입니다. 예를 든 학교동기 친구들 모임에서 설령 한 사람만이 잘못했어도 모든 친구들이 자원해서 그 잘못을 나눠서 책임지려 하지 않겠습니까? 또 한 명의 어려움도 같이 나누고 한 명의 기쁨도 같이 나눌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여 세운 당신의 나라는 연합 공동체입니다. 이 연합 공동체 개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두가 동일한 자격과 신분으로 섭니다. 한 사람에게 계시를 해도 모두에게 동일하게 계시한 것이며 모두가 지킬 의무가 있습니다. 한 사람이 지키지 못하면 모두가 못 지킨 것과 같습니다. 다시 동기모임의 예를 들면 한 사람이 가난해서 회비를 못 내면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도와주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그 모임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이스라엘의 경우 하나님이 한 명의 잘못을 모두에게 전가해서 모두가 벌을 받는 원리가 공평하고 더 정의로운 조치입니다. 또 모두의 잘못을 대표자가 대속의 책임을 지고 벌을 받으면 모두가 공동으로 벌을 받은 원리가 성립됩니다.
- 사울 본인의 죄
그리고 죄송하지만 제기하신 질문에 논리의 일관성이 조금 부족합니다. 여호수아의 오래 전 잘못 때문에 왜 사울 집안이 벌을 받아야하는지 의아해 했습니다. 그럼 그 전에 이스라엘에 삼년 기근이 있어서 모든 백성이 즉, 사울의 잘못과 아무 연관이 없는 불특정 다수가 하나님께 벌을 받았습니다. 당연히 이것부터 문제 삼아야 되지 않습니까?
고대의 기근은, 아니 북한의 경우를 보듯이 최근까지도, 굶어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께 벌을 받는 차원에서 기근이 기록되어 있다면 아사자가 아주 많았다는 뜻입니다. 사울 집안에선 일곱 명이 목숨을 잃었지만 틀림없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가 가난한 백성들일 텐데 그렇다면 사울 집안 일곱 명의 죽음은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는 뜻이 됩니다. 이 기근의 형벌 또한 연합, 대표, 공동체라는 연계된 차원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성격입니다.
기브온 사람이 이스라엘 경내에 남아 있게 된 것은 여호수아가 완전히 진멸하지 못한 까닭인 것은 분명히 옳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에게 속아서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후에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맹세했기에 번복할 수 없었고 대신에 그들을 종으로 삼았습니다. 즉 기브온 사람의 잘못에 대해 응분의 형벌을 가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죄에 대해 합당한 회개 개선조치를 한 셈입니다.
그럼 그 언약은 당연히 이스라엘 대대로 유효합니다. 또 하나님은 이런 사태가 일어날 줄을 미리 아셨습니다. 완전히 진멸하지 못할 것을 대비해서 율법으로 규정했습니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신24:14,15)
사울은 여호수아의 잘못과 관계없이 바로 이 율법을 어겼습니다. 하나님께 벌을 받아야만 하는 사울 본인의 죄였습니다. 하나님이 덧붙이기를 학대당한 이방인이 여호와께 호소하면 더더욱 벌 받아야 할 죄가 된다고 명확히 밝혀 놓았습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 율법을 받으러 간 사이에 이스라엘은 애굽의 금송아지를 섬기는 너무나 큰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여 이스라엘을 멸하고 모세로 다시 믿음의 선조로 삼으려했지만 모세의 중보기도로 마음을 바꾸시고 언약을 새로이 체결하고 진노를 푸셨습니다. 그 때에 가나안 족속을 멸하라는 명령을 주시면서 그러지 못하면 우상숭배의 죄에 쉽게 빠진다고 경고했습니다. 그 때에 또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 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무가 될까 하노라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34:6,7 &12-14)
우상숭배의 죄는 삼사 대까지 보응하겠다고 엄중히 선포했습니다. 처음 십계명을 주실 때에 이미 하신 말씀을 다시 강조하신 것입니다.(출20:5,6) 이 또한 연좌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계명을 잘 지키면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고 했지 않습니까? 아무리 아비가 잘 믿어도 천대가 공짜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과장법을 사용해서 당신의 뜻을 강조하려는 문학적 수사법입니다.
그럼 신자들이 축복의 연좌제는 괜찮고 저주의 연좌제만 문제 삼는다면 아주 불합리하고 독선적인 궤변이 됩니다. 하나님이 그만큼 인자가 많으시되 죄에 대해선 반드시 공평하게 처리할 것이며 특별히 우상숭배의 죄는 더더욱 그러하겠다는 뜻입니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을 죽인 사건에 대해선 성경기록은 없으나 기브온 사람이 문제 삼았고 다윗이 인정한 것을 보면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서 맺은 언약을 위반한 것입니다. 어떤 연유든 우거하는 이방인을 학대하지 말라는 계명까지 주셨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명백한 도전을 했기에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였습니다.
- 다윗의 정략과 하나님의 공의
이 사건이 사무엘하의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시대적으로도 그런 순서라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국을 견고히 세움에 있어서 공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잘못도 범했음을 밝히려고 시대 순서와 관계없이 결론 격으로 몇 개 사례를 마지막에 덧붙인 것입니다.
사울의 아들들이 살아 있었기에 본문의 사건은 압살롬의 반란이 일어나기 전 요나단의 아들 므비브셋의 생사를 확인한 후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합니다.(삼하21:7, 삼하9:6) 그 때는 아직까지 다윗 왕국이 사방의 대적을 파하고서 견고히 서기 전이었습니다. 암몬과 아람을 비롯한 주변국들과 전쟁 중이었습니다.
다윗이 왕권의 안정을 위해 자신의 자비로움을 보일만한 여유가 있었던 때가 아닙니다. 사울의 자손을 달라는 요구는 기브온 사람들이 낸 의견이지 다윗의 계획이 전혀 아닙니다. 그들을 사주한 것도 아닙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는 기록된 범위를 넘어서선 안 됩니다. 다윗의 평소 성격과 언행을 보면 밧세바 간음 사건을 제외하고는 절대로 그런 음흉한 모략을 쓸 자가 아닙니다.
기브온 사람의 요구를 듣자 왕으로써 깊은 고민을 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자손을 살리자니 하나님이 내린 기근으로 더 많은 백성이 죽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울 자손을 내주자니 전직 왕에 대해 정치적 보복으로 비칠까 염려되었을 것입니다. 질문자님의 의견대로 하자면 기브온의 요구를 거절해야 자신의 권위와 자비심이 높아지는데 그럼 애꿎은 백성들만 더 굶어죽어야만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계시가 성령의 음성이든 선지자나 제사장을 통해서건 상당히 구체적이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 때문에 기근이 생겼다는 계시를 받았으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다윗은 그에 따른 것뿐입니다. 다윗이 왕권을 안정시키려면 이왕에 종으로 부려먹는 이방인들의 뜻을 살리기보다 사울의 후손을 살리는 편이 훨씬 유리합니다. 설령 기브온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일말의 계산이 개입되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심판에는 절대로 불의가 개입되어 있지 않습니다.
- 사울 후손의 죄
여호수아가 기브온을 진멸하지 못했지만 그는 상대에게 속았습니다. 나아가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의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후대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과실을 범했어도 그의 믿음과 인품과 동기를 보고 하나님은 그를 용서해준 것입니다.
사울도 동일한 죄를 범했지만 전혀 성격이 달랐습니다.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대놓고 위반했습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키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낮은 것”만 진멸했습니다.(삼상15:1-9) 거기다 아말렉의 왕 아각까지 살려 주었는데 사무엘이 그를 대신해서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자신을 높이기에만 힘을 썼습니다. 이처럼 재물도 밝혔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해 우상숭배자였습니다. 실제로 무당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하나님의 계명대로라면 반드시 삼사 대까지 벌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이 왜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과 언약을 그렇게 많이 강조합니까? 사울의 다른 아들들은 완전히 아비 사울과 한 통속이었다는 뜻입니다. 요나단은 장자이면서도 그 집안에선 눈 밖에 난 아들이었습니다. 성경은 이미 엘리 제사장의 아들들, 기드온 사사의 아들들의 배교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아비가 아들의 신앙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여실한 예였습니다. 다윗마저 조금 다른 차원이긴 하지만 어쨌든 압살롬 교육을 잘못시킨 죄로 큰 곤욕을 치렀지 않습니까?
말하자면 사울 후손들은 하나님의 벌을 받아 마땅한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기브온 사람의 요구에 내어주어 죽음으로 벌을 내리는 하나님의 공의에는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모의 죄악을 삼사 대 후손까지 벌주신다는 계명도 부모가 신앙교육을 잘못시키면 후손도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악을 범하여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연좌제가 아닙니다. 반면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브셋의 성품은 명백히 대조되지 않습니까?
사울이 아말렉 족속을 진멸하지 않고 그들 재물만 탈취하고 아각 왕을 잘못 처리하는 바람에 후대에 얼마나 큰 비극을 겪습니까? 에스더서에 따르면 수산 궁에서 객으로 우거하는 유대인들이 진멸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하나님의 극적인 간섭과 인도로 거꾸로 아말렉 족속들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때는 유대인들이 죽이고 싶은 대로 죽였습니다. 정말로 피비린내 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공평성을 따지자면 그 때가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이 불공평합니까? 아닙니다. 아각의 후손들은 우상숭배자요 당신을 거역하는 죄인들이었습니다. 이방인을 하나님이 멸시 천대한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서 순전히 겸손하게 그분께 항복하기 전에는 심판받아 마땅한 죄인입니다. 언제 죽음의 형벌을 받아도 일언반구 항변할 수 없는 것이 원죄 하의 인간의 저주받은 운명입니다.
최대한 양보하여 다윗에게 기브온 족속의 환심을 사고자 하는 정략적 생각이 스쳐지나갔어도 하나님의 공의는 그와 별개로 반드시 공명정대하게 실현됩니다. 사울 후손들도 여호수아의 잘못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아가 3년 기근으로 죽은, 성경기록이 없는 이름 없는 가난한 백성들도, 하나님의 광대하고 불의가 전혀 없는 공의 안에서 각 자의 죄로 심판 받아 죽은 것입니다. 수산 궁의 아말렉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대신에 의인의 억울해 보이는 죽음도 천국으로 일찍 데려간 것일 뿐입니다.(사57:1,2 반드시 참조하십시오.)
한마디로 결론지으면 하나님의 공의에는 절대로 단 한 치의 불의가 없습니다. 그 실현에도 눈곱만큼도 불공평과 불합리도 없습니다. 심판은 오직 한 개인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받습니다. 연합 공동체에서 대표성의 원리로 구원과 심판이 나눠질 때도 예외는 아닙니다.
- 다윗을 도우시는 하나님
사울의 첩 리스바가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의 시체를 거두어 선조들의 무덤에 묻자 비로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어서 기근을 멈췄습니다. 사울의 죄 때문이라면 그 후손이 벌을 받아 죽었으면 그쳐야지 왜 더 지체했는지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고향 기브아에서 목 매달렸습니다. 눈에는 눈으로 보수하는 동해보복법에 따라 사울이 기브온 족속들을 칼로 쳐 죽였을 것이므로 먼저 흉기로 죽인 다음에 나무에 매단 것으로 해석합니다. 나무에 매단 것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임을 상징합니다. 또 그렇게 엄격한 형벌을 가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맹세한 언약과 그분의 율법을 어긴 자들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 것을 백성들 앞에 보이겠다는 의도입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안에 우거하는 자들이 율법을 더 잘 준행한 셈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지금 기근으로 벌하신 원인을 정확히 계시 받았기에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대로 응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이 벌하시는 것을 인간이 금할 수 없고 또 형벌이 끝나야 하나님이 기근도 빨리 멈춰줄 것이라고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방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시체가 새와 들짐승에 의해 훼손될 판입니다. 이는 고인에 대해 개인적으로 더 큰 수치입니다. 리스바는 그러지 못하도록 밤새 지켰습니다.
다윗도 이전에 사울과 요나단의 뼈를 추슬러준 적이 있습니다. 다윗은 그 사실을 기억하고 리스바의 행위를 아주 선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왕이 명하여 베냐민 땅의 선조의 묘에 합장하도록 조치를 취해줍니다. 지금 다윗은 리스바가 그렇게 시체를 계속해서 지킬 줄은 기대도 하지 않았고 몰랐습니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리스바를 도와주었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사울 가문에 대해 그런 세심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처형 장소는 사울이 속한 베냐민 지파의 땅이었습니다. 사울 지파 사람들은 기브온에 대한 증오심이 더욱 깊어졌을 것입니다. 다윗 왕에 대한 반감도 커졌을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선조와 함께 묻혀야 한다는 동양적 사고를 가졌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 가문에서 쫓겨난 셈이 됩니다. 비록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었지만 마지막은 선조의 묘에 묻힘으로써 나름대로 개인적인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이 일이 다윗 왕의 명으로 이뤄졌습니다. 사울 지파 사람들이 이전에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의 시체를 어떻게 거두었는지 다시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 다윗과 유다지파에 대한 반감이 줄고 왕으로 존경 내지 충성을 완전히 거두지 않을 것입니다. 나아가 기브온 사람들에게 자기 지파가 행했던 잘못에 대해서도 회개 내지 반성은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이 다윗 왕, 리스바, 베냐민지파, 기브온 사람들 어느 누구도 계획 의도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시체가 더 더렵혀지는 것을 막겠다는 리스바의 선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하나님이 리스바의 선행을 갚으시고, 베냐민 지파의 증오를 누그러뜨려서 회개 복종케 하며, 기브온의 오랜 원통함이 풀리고 유다에 우거하는 자로써 그 공동체에 더욱 협력 충성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만의 오묘한 섭리와 주권이 당사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한 치의 오차 없이 역사한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징벌의 원리가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우선 죄를 지어 벌을 받는 당사자로 하여금 자기 잘못을 정확히 깨닫고 철저한 회개를 하는 방식으로 심판 내지 징계하십니다. 나아가 죄로 인해 야기된 모든 폐해 부작용을 청산하도록 하십니다. 손해를 보상케 하고 용서하고 화해해야 벌을 멈추십니다. 나아가 인간이 예상치 못한 쓴 뿌리도 제거하고 앞으로 일어날 장애마저 없애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해 나가십니다.
특별히 다윗 왕의 통치를 그는 전혀 계획 의도 상상도 안했는데 하나님이 당신만의 오묘하고 완전한 방식으로 선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모든 일이 완료된 후에 기근이 그치고 비가 와야만 합니다. 만약에 이런 조치들이 선행되지 않고 비가 먼저 오면 모든 관련 당사자들의 철저한 회개와 용서 화해는 요원하며 오히려 갈등과 증오의 골만 더 깊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광해하시고 완벽하시며 모든 선은 오직 그분께로만 나옵니다. 그분의 행사에 공평과 정의는 물 같이 흐릅니다.
12/6/2016
첨언: 상기의 제 글에서 자칫 의도치 않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아래와 같이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으로 공평 정대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연좌제처럼 아비의 단독적인 죄인데도 아들과 후손에게 벌을 내리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18:2-4)
그 대표적인 예가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한 세대들은 전부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민14:31,32)
성경에 기록된 모든 형벌은 벌을 받아 마땅했기 때문입니다. 언뜻 인간들의 일상적 활동의 결과로만 보이는 일들도 그러합니다. 인간의 실수나 죄악으로 인한 결과이든, 사탄의 시험에 넘어간 결과이든, 범사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주권과 섭리에 따라 일어나기에 그 가운데에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경계의 뜻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 모두는, 상벌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요 일상적으로 보이는 일들도 그 배후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을 최선을 다해 분별하여 영적인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역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도 반드시 복을 받을 만한, 우리가 보기에는 도무지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만의 거룩하고도 완전한 뜻이 있습니다. 나아가 형벌에서 아무 이유없이 면제된 것 같이 보이는 자들도 면제시킬만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또 다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상기 글은 앞뒤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속성과 성경적 진리에 비추어서 제 나름대로 판단한 것입니다. 더 궁극적이고 완전한 이유는 하나님만이 아시며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에 제대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욥이 도무지 이해도 안 되고 전혀 공평하지 못한 것 같은 고난을 받았어도 하나님의 선하심에는, 나아가 지금 당장 온 인류를 멸망시켜도 그분의 의와 영광에는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그 구체적인 뜻은 욥과 저희가 천국에 가서야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과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는 한 치의 모순 상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상기 글 중에 "사울의 후손들의 죄" 항목을 더 보충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윗이 기드온 후손에게 넘겨주어 죽도록 한 일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대해선 성경이 기록한 바를 넘어서도 안 되지만 완전히 무시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범사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기는 했지만 성경 기자가 성경에 따로 기록했다는 것은 그분의 뜻이 더 확실히 개입되어 있다고 확신했다는 의미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자기들을 멸하여 이스라엘 경내에 머물지 못하게 하려고 모해한 사람의 자손 일곱을 내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삼하21:5,6) 그래서 다윗은 “아야의 딸 리스바에게서 난 자 곧 사울의 두 아들 알모니와 므비보셋과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 곧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 아드리엘의 다섯 아들을”(8절) 내어주었습니다.
우선 사울의 아들과 손자들이 고대의 관습에 따르면 이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만약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의 후손 전부를 멸하려 했다면 단순히 자손을 다 내어달라고 요구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일곱만 내어달라고 했습니다. 그 아들과 손자들은 요나단의 예에서 보듯이 장교 이상의 군인으로서 왕의 모든 군사작전에 핵심인물로 참여했을 것입니다. 사울의 죄악에 함께 동참했다는 뜻입니다.
또 일곱이 완전 숫자의 의미가 있듯이 그들로 모든 왕자들의 잘못을 대신하게끔 하려는 것입니다. 기브온으로선 나머지 왕자들의 죄를 묻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윗이 일곱을 내어준 것도 단순히 임의대로 뽑은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건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신하들과 의논해서 그 사건에 관여한 책임이 많은 자부터 순서대로 택했을 것입니다.
성경이 이 사건의 시작을 어떻게 기록합니까?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21:1)
이스라엘에 삼년 기근(구약시대에 하나님이 염병과 전쟁과 함께 이스라엘을 징계 내지 심판하는 대표적 세 방법 중의 하나)이 있었는데 그 이유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합니다. 그의 왕자와 손자들도 그 일에 관여되었다고 합니다.
사울의 일곱 후손을 기브온에게 내어주는 때가 처음 보리 베기 시작하는 때로(9절) 그 때까지 기근이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의 일곱 왕자들을 내어준 후에 아야의 딸 리스바가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나무에 매단 시체를 지켰습니다.(10절) 그럼 사울의 왕자들이 죽자 기근이 그쳤다는 뜻입니다.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21:14) 마지막 결론도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셨다고 즉, 이스라엘에게 벌로 내린 기근을 거두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서두와 결론의 중간부분 2절부터 13절까지 기록된 모든 일들은 1절에 밝혔듯이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 일어난 일이라는 뜻입니다.
1/15/2020
기브온 백성과 함께 살게된 것은 여호수아의 잘못이지만 함께 산 지 수 백년이 된 사람들을 이제 아무 이유없이 죽이려하는 것은 분명한 죄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종으로 살지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재건할 때 참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이 돌보시니 그들이 원한을 들고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은 왕이 된 이후 일테고, 사울을 따르는 이스라엘 군사들이 함께 했을거라 보아야합니다. 사울 혼자서 쳐들어가 칼을 휘둘렀다면 그 혼자만의 문제지만 군사들과 함께 하면 온 이스라엘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기근을 당하는 것이지요. 그 일을 주도한 사울의 자손으로 복수를 한정한 기브온 사람들의 처사가 온당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의 자손이 죽어 마땅한 죄인 들이라는 추측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죄인이라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거라는 주장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관하여는 기근의 원인과 모든 일이 마무리 되고서야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만 명확합니다. 나머지는 원한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사람들이 협상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한 기록들일 뿐입니다. 나무에 시체가 매달려 있는 동안에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매달린 시체를 보며 그 원인을 생각하니까요. 다윗은 잊었던 사울과 요나단의 유골을 찾아와 제대로 매장하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매달린 시체들을 내려서 함께 매장하는 과정을 겪으며 마음 속에서 원한과 갈등을 흩어버리는 것입니다. 비로서 하나님게 상달된 원한이 해소되고 기도가 응답된다고 생각합니다.
큰 맥락에선 형제님과 의견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봐집니다만... 아래의 글에 조금 반론을 제기하자면;
"사울을 따르는 이스라엘 군사들이 함께 했을거라 보아야합니다. 사울 혼자서 쳐들어가 칼을 휘둘렀다면 그 혼자만의 문제지만 군사들과 함께 하면 온 이스라엘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기근을 당하는 것이지요. 사울의 자손이 죽어 마땅한 죄인 들이라는 추측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기 어렵습니다."
"군사들이 사울과 함께 하면 이스라엘 전체의 문제로 그 전체가 기근을 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대의 모든 왕자들은 군인 그것도 장교 내지 사령관들입니다. 요나단의 예에서 보듯이 그들은 군사로써 아비 혹은 할아버지 사울과 함께 한 것이지 않습니까?
상기의 제 글에서 자칫 형제님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조금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적으로 공평 정대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연좌제처럼 아비의 단독적인 죄인데도 아들과 후손에게 벌을 내리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그의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 됨이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18:2-4)
그 대표적인 예가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야에서 하나님을 거역한 세대들은 전부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는 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너희가 사로잡히겠다고 말하던 너희의 유아들은 내가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들은 너희가 싫어하던 땅을 보려니와 너희의 시체는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요.”(민14:31,32)
성경에 기록된 모든 형벌은 벌을 받아 마땅했기 때문입니다. 언뜻 인간들의 일상적 활동의 결과로만 보이는 일들도 그러합니다. 인간의 실수나 죄악으로 인한 결과이든, 사탄의 시험에 넘어간 결과이든, 범사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완전한 주권과 섭리에 따라 일어나기에 그 가운데에 당신의 백성들을 향한 경계의 뜻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 모두는, 상벌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요 일상적으로 보이는 일들도 그 배후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뜻을 최선을 다해 분별하여 영적인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역으로 말해서 하나님의 복을 받는 자도 반드시 복을 받을 만한, 우리가 보기에는 도무지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만의 거룩하고도 완전한 뜻이 있습니다. 나아가 형벌에서 아무 이유없이 면제된 것 같이 보이는 자들도 면제시킬만한 하나님의 온전하신 또 다른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상기 글은 앞뒤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속성과 성경적 진리에 비추어서 제 나름대로 판단한 것입니다. 더 궁극적이고 완전한 이유는 하나님만이 아시며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에 제대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욥이 도무지 이해도 안 되고 전혀 공평하지 못한 것 같은 고난을 받았어도 하나님의 선하심에는, 나아가 지금 당장 온 인류를 멸망시켜도 그분의 의와 영광에는 전혀 하자가 없습니다. 그 구체적인 뜻은 욥과 저희가 천국에 가서야 분명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인간의 자유로운 활동과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에는 한 치의 모순 상충이 없다는 것입니다.
댓글로 의견을 쓰려니 양을 줄이려는 마음이 앞서서 충분한 서술을 하지 못하고 오해의 소지가 발생하는 것같습니다. 글이 길어지더라도 자세하게 적을까합니다.
먼저 목사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은 틀림없다는 것을 저도 믿습니다 . 전혀 실수하지 않으시는분입니다. 일상 생활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이루어진다는 것도 믿습니다.
지난 글에서 사람들이 결정해서 한 일이라고 말한 것은 피의 보복과 후손이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했던 그 당시 지역 문화에 따라 처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의 다스림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그런 일이 있다면 지금 법과 문화에 따라 후손들은 조상들의 죄를 인정하고 대신하여 사죄하는 정도로 그치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죽음으로 갚아야하는 상황을 기록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신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복음입니다. 다윗이 내어주어 매달린 사울의 후손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욱)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추측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표현한 것은 그들이 선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죽어 마땅해서 그 벌을 받았다고 말하면 화를 면한 므비보셋은 그가 선하여 피한 것이 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죽을 죄인이고 하나님이 언제 심판하셔도 이상하지 않은존재입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고 계실뿐이지요. 예수님이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브셋이 화를 피한 이유를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과 사울의 아들 요나단 사이에 서로 여호와를 두고 맹세한 것이 있으므로 왕이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아끼고”. 우리의 죄악이 하나님 앞에서 소리칠 때 하나님께서는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두고 예수님을 생각하여 아끼시고 죽음에서 면하게 하실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이야기에는 복음이 선포되어 있습니다.
둘째로,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 세상에서 지금 당장 완성되지 않습니다.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이야기에서도 나사로는 죽을 때까지 거지로 부잣집 앞에서 머물며 병들어 죽습니다. 그와 부자에 대한 보상과 심판은 죽은 이후에 이루어집니다. 삶과 죽는 모습 만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계대혼에 대한 이야기에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살아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삶과 죽음이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 하나님의 권한일 뿐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이 육신을 벗고 영으로 하나님 앞에 불려가는 것이므로 남아 있는 자들의 슬픔이 클지라도 불평할 것이 아닙니다. 거지 나사로에게 죽음은 이 세상의 고통을 끝내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하루 아침에 죽은 욥의 자녀들이나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간호하다가 병들어 죽는 신실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죽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매달린 사울의 후손들이 저주받은 모습인 것은 맞지만 자신의 죄로심판을 받은 것인지 하나님이 더 큰 환난 전에 데려가신 것인지는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주권에 속한 신비일뿐입니다. 사울의 후손들이 사울의 죗값을 치룬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갖는 것은 주권자 하나님을 알게되는 기회가 됩니다.
셋째로, ‘죄는 반드시 값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있으리니”.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이는 것은 온전한 심판은 죽음 이후에 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는 사건을 통하여 죄와 원한을 기억하시고 보응하시는 하나님을 계시하여 주신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전에 수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위한 애가를 짓고 시신을 수습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칭찬했을 뿐입니다. 이제 리스바가 죽은 자들의 시신을 지키는 모습에서 그것을 기억하고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가져다 묘실을 꾸미고 이번에 죽은 사람들을 그 묘실에 함께 장사지내게 합니다. 억울함을 풀어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뿐만 아니라 후속 조치까지 하여 남은 자들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다섯째로, 위정자의 본분입니다. “모두 왕의 명령을 따라 행하니라”. 사울과 요나단의 묘를 만들고 이번에 처형당한 사람들도 함께 묻히게 한 것은 다윗 왕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굳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에는 자식들이나 가족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있는 자들을 처벌하고, 그런 일들이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하는 목소리와 울음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외면하고, 진실규명을 오히려 방해하거나, 책임자들을 옹호하고, 심지어 지겹다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정부, 국회, 사법부에 골고루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그들은 왕이신 하나님을 대리하여 일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왕의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은나의큰도움님' 은혜로운 의견 나눠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형제님의 의견들을 원론적으로 저도 다 동의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제 이전 글을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정말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나 간략하게(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답하는 바람에 많은 부분을 놓쳤음을 새삼 발견했습니다. 계속 논의되고 있는 "사울 후손의 죄"에 대해선 제 의견을 오늘 다시 보충했습니다. 원 답변 아래에 붙은 첨언을 새로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제님 마지막 댓글의 폰트 사이즈는 제가 임의로 균형을 맞추느라고 적게 조정했습니다. 다시 한번 댓글의 불편함을 감내하며 정성스럽게 나눠주신 그 동안의 형제님의 은혜로운 의견들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샬롬!
답변이 이런 저런 이유로 조금 늦었습니다.
가능한 간단하게 이해하기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만...
혹시라도 추가의 의문사항이 있으면 언제든 다시 연락 주십시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