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믿음을 갖고 싶습니다.
[질문]
신앙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원수들에게 내주셨다는 것을 제대로 받아들인다면 무감각 할 수 없는 일인데요. 저에게는 특별히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다. 제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아서일까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복음, 이런 것들이 약간 거리가 있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변화되고 싶을 때, 나 자신을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에도, 기도를 하면서도 제게 간절함이 없습니다. 저 자신은 신앙교육을 받고 거듭나고 싶어 하는 사람, 딱 그 정도 상태인 것 같습니다. 거듭나는 것도 은혜라는데...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정말 원한다면 열심히 은혜라도 구하는 것인데, 그런 열심도 들지 않습니다. 조금만 원하는 것 같아요. 도움이 필요합니다.
[답변]
교회는 성실히 다니고 목사가 시키는 대로 다 따르지만 막상 믿음에 확신이 없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질문자님도 현재 그런 상태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갑갑하고 미진한 것 같아 온전한 믿음을 갖고 싶긴 합니다. 그러나 목이 타는 갈증에서 우러나오는 자발적 열망이라기보다는, 명색이 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으로서 기본적이고도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소양 내지 의무이기에 좀 더 알고 싶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입니다. 질문자께서 “정말 열심히 은혜를 구하고 싶다기보다 조금만 원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듯이 말입니다.
질문자님 같이 어정쩡한 모습의 교인들이 많은 까닭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출발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질문의 내용에도 그런 판단이 가능한 부분이 크게 보아 두 곳에 나옵니다. 이 두 곳에서 출발하여 기독교 신앙에 관한 가장 기본부터 설명 드리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믿음의 출발이 잘못 되었다.
우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복음,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원수들에게 주셨다는 사실들이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기독교 신앙의 출발이자 핵심, 아니 전부입니다. 나아가 그것을 마음에 와 닿는 정도 즉, 이해하고 믿어지는 정도로 그쳐선 안 됩니다. 그것들로 인하여 자신의 가치관이 이전과 전혀 다르게 새로이 형성되어야 하며 또 그런 바탕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있어야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본질부터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정작 다른 데에 있거나 아직 그런 것조차 없다는 뜻이 됩니다. 또 그 원인은 이해하기 쉽게 아주 단순화시키자면 둘입니다. 본인이 신앙을 갖는 목적이나 이유가 잘못되었거나, 그것은 올바른데 교회에서 잘못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그 잘못이 본인과 교회 어디에 귀속되는지는 본인만이 아시겠지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알고 나면 질문자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종교를 갖는 목적 - 타 종교의 특성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자 하는 목적은 크게 둘입니다. 절대자에게 의탁하여서 현실의 고통과 문제를 해결 받고, 또 그 종교가 가르치는 도덕률에 따라 선하게 살려는 것입니다. 둘 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만 적용됩니다. 죽음 이후의 영원한 운명에 관한 문제는 이 땅에서 최대한 선하게 살다보면 구원 받겠거니 여기고 치웁니다.
말하자면 인간 쪽에서 자신이 스스로 정한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종교도 자신이 선택하여 믿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종교의 창시자인 한 선각자 인간의 여러 깨우침을 배워서 삶에 적용하며 그가 규정한 여려 계명들을 지키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믿음의 대상이 절대자 신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사상과 철학입니다.
또 그 종교의 의식과 규정만 따르는 것이지 그 종교의 신 혹은 신들과 개인적 교제가 전혀 없습니다. 이 땅의 삶의 형통만 바라니까 자신의 정성과 열심을 바쳐 더 많은 복을 받거나, 최소한 신의 노여움을 덜 사서 나쁜 일만 안 생기면 종교를 가진 목적이 달성됩니다. 따라서 그 신에게, 사실은 그 종교에 바친 정성과 헌신만큼 복을 받는다고 여깁니다.
죽음 이후의 영원한 운명은 죽어봐야 알지만 일단 착하게 살면 구원받는다고 배웁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의 기준은 당연히 그 종교의 계명 준수를 얼마나 성실히 하느냐에 따릅니다. 착하게 산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 평균수준 이상의 선이면 구원 받기에 충분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나는 다른 이보다 의롭다고 여기는 교만에 불과합니다. 요컨대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구원을 얻으려고 인간 쪽에서 자기 노력으로 하늘로 올라가는 방식입니다.
기독교가 타 종교와 다른 점
기독교는 이와 정반대 차원입니다. 하나님에게 의탁하여 현실의 고통과 문제를 해결 받고 그분의 도덕률에 따라 선하게 살려고 기독교에 접근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 그런 목적만 가지면 기독교적 믿음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확신도 전혀 생기지 않습니다. 종교가 갖는 그런 두 가지 현세적 유익을 기독교도 제공하지만 어디까지나 믿음을 갖게 된 이후의 부차적인, 그것도 일부 결과일 뿐입니다.
기독교는 그 기원을 인간들의 필요와 요구와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절대적이고도 주관적인 뜻과 계획에 둡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죽음 이후의 영원한 운명을 가름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그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관하시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그것을 가름하는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이 땅에서 최대한 선하게 살다보면 구원 받겠거니 여기는 것은 구원에 긍정적 영향을 단 한 치도 끼치지 않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정한 필요와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죄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려고 역사 속에 실제로 개입하신 것이 기독교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시어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과 삶을 당신께서 절대적으로 주관하십니다. 한 분 하나님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인간도 실제로 그분을 만나서 진정으로 그분께 항복해야만 하며 또 그렇게 된 것이 기독교 믿음입니다.
죽음 이후의 영원한 운명도 죽어봐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간섭으로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이 이뤄지며 또 그 때까지 자기 영혼을 지배하고 있던 사탄의 세력은 물러가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이 땅에서부터, 죽은 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중에 구원은 확정됩니다. 본인이 구원의 구체적 과정을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자신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만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질문자께서 자신을 “신앙 교육을 받고 거듭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부분이 둘 째 오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러 내러 왔고 당신께서 택한 사람을 성령이 초자연적으로 간섭하여 거듭나게 해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음을 갖게 된 과정뿐 아니라 믿음 자체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신앙교육을 통해서 믿음을 갖겠다는 것은 여전히 믿음을 기독교의 교리와 계명을 이해 납득하여서, 그 내용이 아무리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라고 해도,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쟁취하거나 혹은 남보다 선한 사람이 되겠다는 시도에 불과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해는 마셔야 합니다. 신앙교육을 받는 중에 성령이 간섭하여 거듭날 수는 있으나, 성령의 간섭 없이 신앙교육만으로는 거듭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신자는 그런 믿음의 선물을 받은 이후 죽을 때까지 여전히 연약하여 실족하며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구원이란 한 인간의 본성을 완전히 선하게 바꿔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 십자가의 의를 그에게 덧입혀서 죄인에서 의인으로 그 신분만 바꿔 준 것입니다. 죄에 대한 형벌이 완전히 면제되었고 천국의 영광이 보장되는 것입니다. 또 그래서 신자가 이 땅에서 살다 천국에 갈 때까지 성령 하나님이 신자를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숙해지도록 죄에서 지켜주십니다. 기독교 신자도 선하게 되는 일은 마땅히 피 흘리기까지 노력해야하지만 이전과 달리 자신의 성품과 능력으로가 아니라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공동 작업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인간이 정해 놓은 계명과 의식을 준수하는 종교가 아니라 죄 중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러 하나님이 직접 이 땅에 내려온 것입니다. 구원을 얻거나 조금이라도 그분께 잘 보이려고 인간의 노력으로 올라가는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를 자신이 선택하여 믿어보겠다고 접근할 수는 있어도 온전한 믿음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종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택하여서 나를 이끌어 가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컨대 기독교는 하나님 그분과 함께 살아가야 하고 또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참 생명 그 자체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 전제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이 땅에서부터 영원까지 절대자 하나님과 실제적인 교제와 동행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면,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전지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한 후에 그 운행법칙만 부과한 후에 손을 놓고 계시는 조물주가 아닙니다. 그분은 지금도 우주만물을 통치하고 인생만사를, 특별히 개인마다 독특한 계획을 갖고서 주관하고 있습니다. 신자가 마음을 열고 그분의 뜻을 구하며 순종하면 그분의 거룩하고 의로운 통치에 실제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을 신자가 알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체를 어느 누구도 볼 수 없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해주어야만 인간은 그 계시된 한계 내에서만 그분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심어주신 이성과 영성을 사용하여서 말입니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실존하고 인간과 만물의 주인이자 통치자임을 알 수 있도록 인간의 양심과 자연 속에 드러내었습니다.(롬1:18-3:18 참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간이 하나님과 교제 동행하는 데에는 많이 부족합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이후로 모든 이가 원죄 하에 영적으로 타락한 상태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생래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라는 인간중심사고만 갖고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그 상태로는 평생토록 자아충족은커녕 자아 발견도 하지 못합니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는 달리 하나님을 닮게 지어져서 그분의 영을 공급받아야만 온전한 인간이 되는데 하나님 밖에서는 무슨 일을 해도, 아무리 많은 것을 갖추어도 갈급하고 허무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기 전에는 인간에게 온전한 만족과 기쁨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인간의 상태를 하나님은 그대로 두고 보지 않으시고 하나님 쪽에서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려서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로 찌들어있는 인간을 건져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창3:15). 또 때가 차매 여자의 후손 즉, 동정녀 탄생으로 성육신하신 성자 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그 모든 구원 계획과 의미와 십자가 사역이 이뤄진 과정과 결과 등을 인간더러 알 수 있도록 계시 해놓은 성경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은 성경의 하나님을 즉, 예수를 보내어 인류를 구원하시고 지금도 용서 받은 죄인 한 사람의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끄시는 살아계시는 절대적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 그분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에는 절대적 전제가 둘 있습니다. 첫째 성경이 절대적이고도 영원한 진리라는 것과, 둘째 그 안에 계시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만이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습대로 새롭게 만드는(구원의 의미)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성경과 예수님의 십자가 둘만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절대적 계시라는 것입니다. 이 둘을 온전히 믿지 못하면, 그 믿은 바대로 비록 실천은 더딜지라도 삶의 방향이 실제로 바뀌어 있지 않으면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니고 시키는 대로 성실히 준행해도 기독교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구원 밖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질문자가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고 열거한 내용들이 아주 구체적으로 마음에 와 닿고 그런 바탕에서 실제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되도록 예배, 성경공부, 기도 등을 통해 교육, 훈련, 실습하는 곳입니다.
현실적 대안 셋
앞에서 신앙교육 자체를 통해 거듭나는 것은 아니지만 거듭나는 경로는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거듭남에 실제로 효과적인 신앙교육이 되려면 기독교의 절대적 전제인 성경과 예수님 두 절대 계시를 반드시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즉 철두철미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의 진리 됨과 그 은혜와 권능에 대한 깨우침을 얻어야 하며, 또 그 깨우침이 개인적으로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배워야 합니다.
실제로 신구약 성경의 한 가지 주제는 “예수 십자가”입니다. 구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꼭 십자가에 죽어야만 하는 이유를, 신약은 예수님이 실제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은 경과와 그 결과를 적은 책입니다. 한마디로 성경을 통해 예수를 알고 만나야 진정한 신앙교육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질문자의 현재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들을 들어보겠습니다.
일차 교회를 잘 선정해서 출석해야 합니다. 반드시 성경을 예수님 십자가 중심으로 가르치는 교회여야 합니다. 주일 설교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과 열성을 갖고 가르치는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성경을 연속적으로 강해하는 곳이라면 일단은 믿을 수 있습니다. 설교에 현실적 이야기, 도덕적 훈화, 목사 개인적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성삼위 하나님을 우선적 주제로 삼는지 봐야 합니다.
둘째로 반드시 성경을 공부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가르치는 교회를 선택했다면 그 교회의 성경공부 반에 반드시 참여하여서 목회자님의 전문적인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성경을 본인이 계속 묵상하며 읽으셔야 합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인격적 개인적으로 만나고 싶은 열망을 갖고 읽기 전후에 그렇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우선 성경 전체를 여러 번 통독하셔야 합니다. 어렵고 지겨운 부분이 있으면 뛰어넘더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셔야 합니다. 성경을 모르고는 절대로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의문 나는 것은 목회자에게 의심이 완전히 풀릴 때까지 묻고 또 물으십시오. 구원이 초자연적 간섭이라고 해서 믿음마저 이성을 초월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성적으로도 반드시 납득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로 개인적으로 간절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구원의 확신을 갖게끔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님의 경우는 우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내 현실적 삶과 인생의 실제 주인인지에 확신할 수 있는 기도부터 하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아주 구체적이고 세밀한 기도여야 합니다. 현재 당면한 어려운 문제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살아계시어 내 기도를 듣고 응답해주시는지 확인해보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자는 나쁜 의도가 아니라 순전한 마음으로 믿음을 갖고 싶고 그분을 알고 싶어 하는 뜻의 기도여야 합니다. 일상의 구체적 기도가 응답 된다는 것은 내가 그분을 아는 것보다 그분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실제 삶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럼으로써 성경이 절대적 진리임도 자연스레 믿어집니다. 성경적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거듭남의 체험을 얻고 난 후에 배워도 됩니다.
우선 이 셋부터 정말로 순전한 마음과 소망을 갖고 성실히 수행해보십시오. 초자연적 간섭이라고 해서 절대로 가만히 있는데 “뿅!”하고 믿음이나 깨우침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완전히 낮아진 마음을 갖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를 진정으로 알고 싶어야만 중생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참고로 저의 홈피의 [성경문답]과 [믿지 않는 형제들에게]라는 두 사이트에 구원과 믿음에 관한 많은 글들이 올라가 있습니다. 관심 있는 주제를 찾아 읽어 보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성경을 공부하다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저에게 질문을 주셔도 됩니다.)
3/20/2014
좋은 교회를 찾아야겠고, 성경을 여러번 읽어야겠고, 성경공부도 해야겠군요. 사실 다 알면서 사실은 하나도 하고 있지 못한 일들이었습니다.
아직은 궁금한 것도 많이 있고 하지만 다른 글들도 읽어보고 무엇보다 적어주신 세가지를 먼저 실행에 옮겨봐야겠습니다. 제 글이 다시 없더라도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