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믿음이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조회 수 1202 추천 수 14 2014.06.27 19:46:54
내게 믿음이 있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나요?


[질문]


제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도 잘 모르는데 여러 기독교 인터넷 사이트에 신앙 질문과 상담들을 하고 있는데 솔직히 믿음도 없으면서 형식적인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 믿음이 있는지 스스로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 올바른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답답한 마음에 여쭤봅니다.

[답변]

아주 중요하고도 올바른 질문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도 거론 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비슷한 주제를 얼마 전에 다룬 적이 있습니다. 본 성경문답 사이트의 #340 “온전한 믿음을 갖고 싶습니다.”의 글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내면은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심지어 자기 자신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교회 생활을 상당히 오래했음에도 믿음이 있는지 의심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주로 문제와 환난과 상처 등에 담대하게 승리하지 못할 때에 더 그러합니다. 이런 경우 1) 근본적인 믿음은 있는데 잠시 환경에 시선이 집중되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과, 2) 근본 믿음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 둘로 나눠봐야 할 것입니다.

질문자께서 구체적으로 어느 경우에 해당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1)의 경우라면 자신의 믿음을 소지한 여부는 의심치 않고 단지 일시적으로 믿음이 약해졌다고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자께서 “자신의 믿음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궁금해 하신 대로 근본적인 신앙의 소지 여부를 스스로 점검할 수 있는 방법에 초점을 두되, 상기 #340의 글과는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도신경을 믿는가?

많은 교회들이 예배 중에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기독교 신자가 가져야 할 신앙의 기본 뼈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믿음 소지 여부를 점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사도신경의 내용을 온전히 믿는지 따져보면 됩니다. 아주 간략하게 살펴봅시다.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살아서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창조와 통치에는 그분만의 계획과 목적이 있음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신자는 그 계획과 목적을 성경을 통해 깨달아 알고 그분의 종이자 동역자로서 그분의 역사를 함께 이뤄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신자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 땅에 펼치시기에 전적으로 그분께 헌신해야 합니다.  

-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예수는 성자 하나님으로 제 삼위 하나님인 성령에 의해 동정녀 탄생으로 이 땅에 오신 구세주임을 믿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마땅히 믿어야 합니다. 사탄의 권세에 묶여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인간이 불쌍하고 안타까워 하나님 당신께서 구원하려 직접 이 땅에 오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인간이 스스로 구원하려 하늘로 올라가는 타종교와 다르다고 #340의 글에서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 구주를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알아보지 못하고 합작하여 십자가에 죽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당신의 하나님 됨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죽어 마땅한 인간의 모든 죄 값을 당신의 죽음으로   대신 감당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이 대속 사역을 온전히 믿고 그 은혜 안에 진심으로 들어가길 소원하는 자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신자는 더 이상의 정죄함이 없고 그분의 부활에도 참여하게 되어 천국 영광이 보장된 하나님 자녀의 신분이 됩니다.  

-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여 지금도 하늘에서 이 땅의 죄인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중보의 사역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태초 즉, 창조 전부터 마련해 놓았던 계획과 목적대로 세상만사를 거룩하게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때가 되면 다시 이 땅에 오셔서 마지막 심판을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바꾸어서 산 자(신자)들과 함께 세세토록 거룩하고 아름답게 다스릴 것입니다. 신자는 자신의 영광스런 구원의 완성이 이뤄지며 이 땅을 새롭게 회복하실 그분의 재림을 소망해야 합니다.  

-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삼위 하나님이신 성령의 존재만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승천했기에 성령이 대신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구원하고, 신자를 거룩하게 성장시키며, 그 신자들의 공동체를 주관하여 이 땅을 변화시키는 사역을 주도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당연히 성령의 보호와 인도를 구해 미혹된 영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자신이 받은 예수님의 사랑과 권능이 너무나 좋기에 이웃들에게 소개하여 함께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나아가 주님이 재림하면 이미 죽었던 육체의 신령한 부활도 이뤄지고 새 땅에서 주님의 영원한 통치에 동참할 것을 감격과 설렘으로 기대해야 합니다. 아멘은 상기에 고백한 모든 내용을 진정으로 믿는다고 확인하는 일종의 감탄사입니다.

사도신경은 신자로서 반드시 알아야 하고 또 믿어야 할 핵심만 축약한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히 믿어지지 않으면 온전한 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이와 다른 신앙노선을 견지하면 이단이 됩니다. 일부는 믿고 일부는 믿지 않는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나는 50% 혹은 70% 짜리 신자라고 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실상 자기 일부는 교회 안에, 나머지는 세상에 속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도신경의 전부를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불신, 의심, 당혹되는 부분이 있다면 신뢰할만한 전문 목회자와 함께  성경을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여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기 위한 당신의 뜻을 당신께서 직접 계시해 놓으신 신구약 성경의 내용을 함축한 것이 사도신경이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을 받을 목회자도 당연히 사도신경을 온전히 믿고 가르칠 수 있는 자라야 할 것입니다.  

이 신경의 내용이 완전히 믿어질 때까지 하나하나 묻고 또 물으며 탐구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성령께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여 온전히 깨우쳐지고 믿어지는 은혜를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 공부하셔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어졌기에 사사로이 풀면 안 됩니다.(벧후1:20,21) 하나님을 알아서 믿음을 갖고 싶은 순수한 동기로 성령의 인도를 구하면 진리가 깨우쳐지는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딤후3:14-17)

기독교 믿음의 대상 – 사실과 진리

사도신경은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과 “절대적 진리”(absolute truth)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란 단 하나도 가감 수정할 것 없이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이 땅에서 실제 사건으로 이미 일어난 것입니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기에 절대 거짓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절대적 진리란 그것과 아무리 유사해도 단 한 치의 오차가 있으면 절대적 비진리라는 뜻입니다. 이단(異端)은 중심부는 같다가 그 끝의 일부만 다른 것을 뜻하지 않습니까?

사도신경에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이 땅에서의 가르침과 사역과 수난, 십자가 죽음과 부활과 승천은 역사적 사실에 속합니다. 사실은 믿음과 달리 있는 그대로 알면 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1:1) 초대교회 교인들의 믿음은 예수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 주님의 부활은 첫 열매이기에 자신들도 부활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죽음 앞에서도 사실을 거짓이라고 할 수 없어 그분의 주님 되심을 부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어단어 ‘순교’(martyrdom)가 ‘증인’(witness)이라는 뜻인 까닭입니다. 그들은 있는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했을 뿐인데도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자도 십자가 사건을 실은 믿는 것보다 앎으로 소지해야 합니다. 물론 시공간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쉽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고대 역사서들이 기록한 사건들도 믿는다고 하지 않고 안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성경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 것은 사실입니다. 거짓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손으로 만진 바 된 자들이 그 사실을 부인하지 못해 죽었지 않습니까? 고대 역사기록 중에 그 진실성을 목숨으로 사수한 것은 성경이 거의 유일하지 않습니까? 자기들이 지어낸 거짓을 위해 죽는 바보는 없습니다. 십자가 죽음까지는 믿어지는데, 동일한 범주의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된 부활과 승천이 믿어지지 않으면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 진리란 1) 이 땅에 아직 사실로 나타나지 않았거나, 2) 이미 나타났어도 아무도 증험할 사람이 없거나, 3) 불가시적 영적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일임에도, 그 진술 그대로 이뤄졌거나 이뤄진다는 뜻입니다. 사도신경에서 1)은 재림과 심판과 새 땅에서의 영원한 통치에, 2)는 하나님의 창조에, 3)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는 것과 성령의 교회와 신자들에 대한 보호와 인도에 해당됩니다. 이런 진리는 인간의 감각으로 지금 당장 인식되지 않기에 믿음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그런데 이 진리도 사실은 믿음보다는 앎이 요구됩니다. 분명 역사적 사건이었던 십자가가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지만 당시 교인들이 행했던 일들을 보고 성경의 기록이 진리임을 알게 되고 그래서 믿어졌지 않습니까? 사실은 반드시 진리이며, 역으로 진리라야 사실화될 수 있습니다. 영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진리도 결국에는 가시적 세계에 반드시 어떤 영향을 미쳐서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나중에 신자가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온전히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도 명백히 알게 될 것입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11:3) 눈에 보이는 것들이 세상의 나타난 것들에 의해서만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창조가 너무 오래전 일이고 도무지 증거할 수도 없지만 나타난 모든 것을 살필 때에 그 배경에 보이지 않는 창조주가 있음을 깨달았기에  믿어진 것입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롬1:20)

실천이 수반되는 앎

요컨대 믿음이란 기실 앎이라는 뜻입니다. 알지 않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는 만큼만 믿어집니다. 계속해서 성경공부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앎이란 또 반드시 삶에서 합당한 반응과 적용으로 나타납니다. 흔히 목사님들이 비행기가 아무리 무거워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서 탄다고 설명하지만 틀린 비유입니다. 유체역학적으로 공기의 저항이 부력을 만드는데다 빠른 속도가 추진력을 발휘하기에 날 수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 원리를 모르는 사람도 비행기가 눈앞에 떠서 나는 것을 실제로 많이 보았으니까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비행기 여행은 믿음을 갖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앎으로 하는 것입니다.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앎이 없기 때문이며, 역으로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온전한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통해 사도신경의 내용이 사실과 진리로 깨우쳐졌다고 해서 생각으로만 이해, 수긍, 동의하는 수준에 머물면 믿음이 아닙니다. 이를테면 성경의 진리가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 속에만 머물러 있게 해선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이 순간 이 자리의 자신의 삶에 진리가 진리답게 실현되어야 올바른 믿음입니다. 비행기가 공중에 뜬다는 사실을 알고도 한 번도 타지 않으면 믿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기독교 믿음은 죄에서 구원을 얻는 믿음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라고 합니다. 단순히 종교적 의식을 거치라는 뜻이 아닙니다. 당시에 예수를 주라고 시인한다는 것은 유대교의 여호와 유일신 신앙에서나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상황에서나 목숨을 걸어야 할 엄청난 일입니다. 예수가 주라는 진리에 자신의 생명을 걸 정도로 그 진리가 실제 자신의 삶에서 구현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 13-14) 다시 한 번 주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그런 믿음은 들어야만 생긴다고 합니다. 복음을 전해 들음으로써 십자가 대속의 구원이 영원하고 절대적 진리임을 알게 되어서 믿어진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믿음은 앎이요, 앎은 실행입니다.

하나님과 인격적 대면

기독교 신앙에서 앎이란 신자와 하나님의 개인적인 앎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자기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고 특별한 목적과 계획에 따라 그 인생을 이끌고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대다수가 대통령의 얼굴을 알고 신상명세까지 알아도 개인적 관계는 없습니다. 대통령이 나를 알고 개인적으로 교제를 나눌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서로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원리를 하나님에게 적용하면 전자는 기독교 교리를 지성적으로 동의하여 머리로 믿는 신앙에 해당됩니다. 후자 즉, 하나님 쪽에서 나를 속속들이 알고 계시며 내 인생을 당신의 뜻에 따라 이끌고 있음을 나도 온전히 알기에 내가 그 인도에 순응하고 있는 것이라야 개인적으로 아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앎과 그에 따른 반응이 삶에서 나타나려면 반드시 그분을 인격적으로 대면해야만 합니다. 그 만남의 방식과 과정은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한 명도 같을 수는 없습니다. 질병이나 큰 사고에서 지켜주는 신비한 체험으로, 문제나 환난을 간절히 기도하여 이겨내는 과정 중에, 아내의 강권으로 교회를 출석하며 성실히 설교를 듣고 구역예배나 부흥집회에 참여하다가, 일대일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를 하는 중에, 등등 여러 경로를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온전한 믿음이, 절대 부인할 수 없고 부인하고 싶지도 않는 확신이 불현듯 생깁니다. 그 시기는 순간적으로 혹은 점진적으로, 기간도 단기간 혹은 아주 오랜 기간이 걸리는 등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대면과 그 결과로서의 믿음은 내가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하나님 그분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삶을 그분이 보호 인도하셨고 지금도 나를 너무나도 사랑하신다는 진리가 확실한 사실과 체험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껏 내가 그분을 등지거나 멀리한 것이 얼마나 헛되고 헛된 실패였으며 그만큼 큰 죄가 없음도 절감하게 됩니다.

지난 모든 죄들도 하나님을 몰랐던 탓일 뿐 아니라 그 모든 죄를 내 스스로는, 또 세상의 어떤 다른 사상 철학 도덕 종교에 귀의하여도 절대로 깨끗케 할 수 없음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 실체가 하나님 앞에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중의 괴수임을 알게 됩니다. 자신의 내면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 진리를 밝힌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적나라하게 벌거벗기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분을 알게 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실체를 온전히 발견하는 일입니다.

자기 실체의 발견으로 그치지 않고 세상 어떤 선한 것으로도, 특별히 자신의 자격과 공로와 능력으로는 절대 자신을 올바르게 할 수 없음도 온전히 깨닫게 됩니다. 성령의 깨우침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 더럽고 추했던 자신의 모든 죄를 독생자의 십자가 보혈로 덧입혀 깨끗이 씻어주시고 온전히 용서해주셨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있더라도 자기라는 존재 전체를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여주셨음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과 서로 알게 되면 즉, 믿음이 생기면 사도신경의 구절 단어 하나하나가 온전한 사실과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모든 의심과 불이해가 제거됩니다. 고백으로 그치지 않고 삶의 지표로 전환됩니다. 자기가 고백한 그대로 삶에 실현하고자 자발적으로 기꺼이 헌신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나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나 자신만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나와 내 주변을 풍성하고 안락하게 하는데 목적을 두었는데 바로 그것이 너무나 헛되고 헛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목적에서 완전히 어긋난 죄임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나의 존재와 삶과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이 걸어가신 삶을 따라 살기로 인생의 방향을 완전히 유턴하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관 역사관 가치관 모두가 인본주의에서 신본주의로 바뀌는 것입니다.

본인이 알 수 있는 믿음의 소지 여부

신비하게도 정작 본인이 그런 회심과 변화 과정의 시기와 방식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지정의를 넘어서는 영이 새롭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여 한 죄인의 영을 새롭게 해주는 하나님의 제2의 창조가 인간내면에 일어난 것입니다. 믿음도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만의 택하심과 은혜에 근거하여 값없는 선물로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 십자가 은혜에 대해 마음이 열리고 또 그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믿음의 선물을 받는 통로는 여전히 믿음입니다. 신자가 반드시 복음을 들어야 하고 복음에 대해 알아나가야 합니다.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시고 나의 마음을 열게 해달라는 기도도 간절히 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그분이 나로 당신을 알게 해서 새롭게 뒤바꿔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서 그분이 주시는 믿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1:17) 흔히들 다른 종교에선 믿기 위해 알려고 하지만, 기독교에선 알기 위해 믿는다고 말합니다. 정확히 말해 기독교는 둘 다 성립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앎이 믿음이요 믿음이 앎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신자는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는 구체적 과정은 몰라도 성령이 간섭하여 그 영이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이 새로운 피조물로 바꾸어 주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온전한 주인으로 모시고 나면, 어떤 표현을 사용했던 간에 일단 온전한 믿음을 갖고 나면 딱 한 가지 스스로 확실하게 아는 사실은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 중심으로 살았던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달라졌다는 것을 본인은 압니다.

자선사업가 같이 윤리적 의도로 의타적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정도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이 걸어갔던 길을 걸어가겠다는 흔들림 없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비록 주님을 따라가는 실천은 더딜 수 있지만 이전의 인생으로는 죽어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본인은 아는 것입니다. 아직도 죄의 본성과 나태함이 생생히 살아 있는데다 다른 사람의 죄악과 사탄의 방해가 항상 있기에 주님 따라가는 길이 쉽지는 않지만 자기 인생의 목적과 방향만은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이런 방향전환이 없다면 온전한 믿음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바꿔 말해 온전한 믿음이 생겼으면 본인은 압니다. 예배 중에 사도신경을 자신의 진심을 담아 고백합니다. 단순히 종교적 의례로 의무적 형식적으로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모습과 방향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지고 부족하면 무의식중에라도 영혼이 눌림을 느낍니다. 목사가 시켜서도 아니요, 고난을 이기고 복을 받을 목적도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 좋아서 매일 말씀을 보고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려고 기도하고 그분의 인도에 자신을 내맡기게 됩니다.  

질문자에게 대단히 죄송한 답변이지만 온전한 믿음이 있는지 본인이 의심스럽다면 솔직히 말씀드려 믿음이 없는 것으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을 주인으로 영접하여 인생의 방향을 자발적으로 완전히 바꾼 것이 기독교 믿음의 출발입니다.  그런 만남과 결단의 과정을 본인이 모를 리 없습니다. 서두에서 말한 대로 고난이 닥쳐 주변 환경의 위급함에 눌려서 하나님의 크심을 잠시 잊어버리고 의심하고 불안해 한 것이 아닌 이상 말입니다. 또 그런 상황은 본인이 스스로 깨닫고 자기 믿음이 다시 힘을 발휘도록 적용해 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금 결론 내린 말씀이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 만약에 사실이라 해도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런 질문을 했다는 자체가 성령이 역사하여 믿음을 갖고 싶다는 마음을 심어준 것이자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이미 시작된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께선 알기 위해서 성경의 진리를 믿어야 할뿐 아니라, 믿기 위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열린 마음과 간절한 마음을 갖고 성경을 공부해 나가면서 그와 동시에 진리가 깨달아지고 성령의 역사로 나를 개인적으로 만나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는 체험을 하고나서 이 답변 글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제가 드린 말씀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이 하루 속히 오도록 틈이 나는 대로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6/27/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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