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가?
[질문]
목사님의 어느 글을 읽다가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신자는 주님보다 더 큰일을 할 수도 있다"라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사람이 상대적인 시각으로 어떤 일의 크고 작음을 논할 순 있지만, 본문에서 그분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우리의 주권자이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신 것 보다 더 큰일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고 그 뜻에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이고, 말 그대로 순종하는 만큼 쓰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분보다 더 큰 일”이라는 표현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답변]
제 글이나 설교 중에 가끔 강조하는 내용인데 예리하게 지적해주셨네요. 이는 제 생각으로 한 말이 아니라 주님이 직접 하신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2-14)
상기 본문을 주제로 설교나 글을 쓴 경우가 아니면 시간이나 지면관계상 문맥상의 구체적인 뜻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들도 질문자와 동일한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지적하신 대로 인간은 단지 하나님께 쓰임 받을 뿐이지 그분보다 더 큰 일을 할 수는 절대로 없습니다. 이참에 상기 본문의 뜻과 제가 인용한 의도를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7절)고 덧붙였습니다. 그러자 제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도 보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에 대해 주님은 당신께서 아버지와 함께 있기에 당신과 당신이 하는 일을 보면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어서 상기 본문을 말했기에, 주님이 하신 일의 근본 의미는 하나님을 보이는 것이며 또 신자가 할 수 있는 더 큰 일도 동일한 성격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성육신한 첫째 목적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인간 구원의 길을 여는 것입니다. 당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먼저 선포하신 까닭입니다. 죄 중에 있는 인류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방식을 십자가의 절대적 진리로 계시했습니다. 주님의 공생애 삼년은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습니다. 무턱대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할 수는 없습니다. 사전에 천국 비밀과 당신의 죽음에 관해 가르쳐야 나중에 진리의 영 성령이 오시면 당신께서 생전에 가르쳤던 죄와 의와 심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됩니다.
다른 말로 공생애 기간 동안에 주님은 크게 두 가지 모습을 실제로 사람들에게 보여서 알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당신의 사역과 가르침을 통해 드러냈습니다.(요1:18) 둘째는 그런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된 신자가 이 땅에서 신자답게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해 당신께서 솔선수범해 보였습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은 인간이 도무지 할 수 없으며 감히 해보겠다고 마음먹거나 시도해서도 안 됩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죽은 자를 살리고, 불치병이나 불구자를 말씀 한마디로 완벽하게 고치시고, 군대 귀신도 쫓아내시고, 폭풍우를 잠재우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는 등의 일은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라도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은 당신께서 사랑의 하나님 되심과 인간을 그 사랑으로 어떻게 다스리는지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주님처럼 세리, 창기, 과부, 고아, 죄인, 병자, 불구자, 이방인, 귀신들린 자 등과 만나 참 사랑으로 교제하고 섬기는 일은 인간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구원의 길에 대해서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미혹된 영혼들에게 십자가 복음을 선포하고 죄와 사탄과 사망의 세력에 당당히 싸울 수 있습니다. 머리로 가능하다고 여기고 결단만 할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실제 삶에서 몸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참 신자라면 세상 사람과 다른 좁고 협착한 길을 걸으며 현실적 손해와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그렇게 살아야만 합니다.
요컨대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람들에게 완전한 하나님과 완전한 인간의 모습 둘 다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인간으로 오신 까닭입니다. 신자가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주님이 보이신 둘째 완전한 인간 모습에 국한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본문 뜻대로 참 신자답게 살되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합니다. 단순히 인간적 선한 윤리를 실천하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됩니다. 자기에게 남는 여유로 남을 돕는 적선이 아니라, 본인은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더라도 다른 이에게 참 생명의 열매가 나도록 해야 합니다.
실제로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의 역사에 힘입어 하루에 삼천 명이나 회개를 시켰습니다. 열두 사도와 백여 명 남짓의 신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한 곳에 함께 모여서 간절히 기도한 결과입니다. 주님이 하신 일과 수치적으로 비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어쨌든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했습니다. 신자들이 의술과 신약을 개발하여 수많은 병자들을 고칠 수 있으며, 십시일반으로 헌금하여 가난한 자들을 오천 명 아니라 수천만 명도 단번에 구제할 수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당신보다 더 큰 것을 할 수 있다고 약속하면서 곧장 이어서 기도하라는 명령을 덧붙였습니다. 더 큰 일도 반드시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주님이 이 땅에서 하나님으로서 하신 일마저 신자가 할 수 있다는 의미는 처음부터 배제한 셈입니다.
신자가 자기 생각, 말, 행동을 주님이 행했던 것과 일치시킨다면 신자도 얼마든지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두드러지게 내보일 수 있습니다. 신자를 보는 다른 이들이 신자 안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이 신자 안에 계시기에 특별히 주님의 마음을 우리 것으로 만든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는 것입니다. (차후의 글이나 설교에선 오해가 없도록 간단하게 이런 의미를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11/20/2014
요한복음 14장 12~14절 말씀과 더불어 목사님의 다른 글들을 먼저 많이 읽고 그 글을 읽었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갔을 부분이었겠구나 싶습니다^^
홈페이지에 가입하고 제일 처음 읽은 글에서 해당하는 의문의 문구가 나와 질문 드리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도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