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났어 정말

조회 수 1209 추천 수 79 2005.07.12 04:52:01
김수현의 “부모님전상서”라는 연속극을 아끼면서 보고 있다. 여지껏 본 김수현 씨의 작품 중 가장 빼어나다 싶은 것은, 내가 나이 들었기 때문일까?

암튼, 내가 이 연속극을 들먹이는 것은 이 연속극 평을 하려는 것도 아니요 김수현 씨 찬미가를 쓰려는 것도 아니다. 지난 주말에 방영된 분에서 내 속을 긁는 장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극의 주인공인 안교감댁 큰 사돈 영감은 일찍 상처하고 딸 하나 반듯하게 키워 왔는데, 첨엔 집안일 도움받고자 들여 왔던 아주머니와 날이 가면서 정이 들어 한 방을 쓰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면서도 그 여자와 결혼을 하지 않고 사돈에게조차  “여자친구”라고 소개하는 사이로만 지낸다. 그러나 그 여자는 사실상의 부인이고, 사돈에게도 그렇게 예우해 주면 좋겠노라고 부탁한다. 안교감의 작은 사돈은 그러한 큰 사돈이 부인에게 돈을 물려 주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런데 큰 사돈이 그러는 것은 실은 죽은 부인과의 약속 때문이란다. 정확하게 어떤 약속이었는지는 마침 그 대목을 놓쳐 알 수 없으나 재혼을 않겠노라는 약속이었으리라. 죽은 부인에 대한 사랑이 컸던가 보다. 그 사돈 “여자친구” 마님은 나무랄 데 없는 여인이다. 자신을 여자친구 이상으로 높여 주지 않는 남자에게 불평없이 조용히 주어진 자리를 지킨다.

나는 그 사돈 영감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아니, 죽은 사람과의 약속 지키자고 산 사람을 그렇게 대해도 대는 거냐고. 산 사람이 중하지 죽은 사람이 중하냐고. 그래 자기는 죽은 부인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노라고 떳떳해 할지 모르겠으나, 오십도 넘은 나이에 한 집에 살면서도 “여자친구”라고 소개되어져야 할 때—그것도 한국 사회에서—그 여자친구는 수치심과 곤혹감을 겪어야 하고 그것을 내색치 못하는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에는 그렇게도 생각이 미치지 않느냐고.

내가 이렇게 열을 내는 것은, 아마도 내 속에 있는 독선적 경향 때문이리라. 나 또한 내 의를 지키고자 상대를 불편하게 한 적이 많았으며 아직도 알게 모르게 그러고 있을 것이다. 나와 같은 사람에게 한 마디 듣기 전에 좀 더 주위 사람의 속내를 더 헤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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